[인터풋볼] 서재원 기자 = 한국 선수들의 활약으로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EPL)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그러나 우리가 EPL을 볼 수 있는 부분은 TV 위성 중계에 잡힌 모습이 전부다. 두 시즌동안 모 일간지 EPL 현지 통신원 역할을 수행한 필자의 경험을 통해, TV에서는 볼 수 없는 EPL 뒷이야기를 매주 '서재원의 EPL通'에서 풀어내고자 한다.[편집자주]

EPL에서 ‘국민구단’의 호칭을 얻은 팀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다. 퀸즈파크 레인저스(QPR)도 한 때 박지성의 영입을 통해 국민구단을 꿈꿨지만 결과는 실패였다. 그리고 이번 시즌 토트넘 핫스퍼가 손흥민을 영입하면서 그 가능성을 열어둔 상태다.

국민구단이란 말은 사전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신조어다. 대개 ‘한국 사람들 대다수가 좋아하고, 애정을 갖고 있는 해외 구단’이라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물론 국민구단의 호칭을 얻을 수 있는 조건에는 ‘한국인 선수가 뛰고 있는지’라는 부분이 충족돼야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EPL에 13명의 한국선수가 진출했음에도 국민구단이란 단어에 어울릴만한 팀은 맨유밖에 없었다.

# ‘박지성 효과’에 놀란 QPR, 국민구단을 향한 꿈

지금으로부터 약 3년 반 전, 런던을 들썩이게 한 소식이 있었다. 맨유에서 활약하던 박지성이 QPR로 이적하면서 런던으로 입성했기 때문이다. QPR은 2012년 7월 9일(한국시간) 공식 기자회견을 통해 박지성의 영입을 발표했다.

QPR의 박지성 영입은 지금 돌이켜봐도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등번호 배정부터 남달랐다. QPR은 맨유에서 13번을 달고 뛰던 박지성에게 팀의 에이스를 상징하는 7번을 부여했다. 기존에 7번을 달았던 아델 타랍은 10번으로 번호를 변경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한 달 뒤, 개막전을 한 시간가량 앞두고 QPR은 구단 공식 SNS을 통해 박지성의 주장 선임을 알렸다. 박지성은 아시아인 최초의 EPL 구단 공식 주장으로 임명되는 순간이었다.

박지성의 이적으로 한국에서도 QPR에 대한 관심은 폭발적이었다. QPR도 사실 예상치 못한, 박지성 효과에 당황한 눈치였다. 박지성이란 존재 하나 때문에 QPR 경기의 대부분이 한국에 중계됐고, 한국 기업들의 스폰서 문의가 끊이질 않았다. QPR은 박지성 영입 두 달 만에 국내 게임 업체인 넥슨과 공식 스폰서 계약을 맺었다.

QPR의 경기장 로프터스 로드 스타디움을 찾는 한국인 관광객도 부쩍 늘었다. 당시 현지 통신원으로 QPR을 취재하던 기자는 홍보팀으로부터 “경기장을 찾는 한국 팬들의 수와 그들의 박지성 사랑이 정말 놀랍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실제로 QPR의 매 홈경기에 약 50~100여명의 한국 팬들이 꾸준히 찾아왔다

이에 QPR도 발 빠르게 움직였다. 박지성을 활용한 다량의 머천다이징 상품을 만들어 구단 메가스토어에서 판매했고, 경기 하프타임에는 당시 가장 인기 있던 한국 노래인 ‘강남스타일’을 꾸준히 틀어줬다. 또 당시 급하게 한국인 직원(인턴)을 고용해, 지구 반대편의 한국인 팬들을 대상으로 QPR과 박지성의 소식을 전하기도 했다.

그렇게 QPR의 국민구단을 향한 발걸음은 시작됐었다.

# ‘국민구단’이 되지 못했던 QPR...그 이유는?

그러나 ‘제2의 국민구단’을 꿈꿨던 QPR의 꿈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당시 QPR은 개막 후 16경기 무승이란, 치욕적인 기록을 EPL 역사에 남겼다. 그 사이 마크 휴즈 감독이 경질 당했고, 해리 레드냅 감독이 새 사령탑으로 부임했다. 휴즈 감독의 두터운 신뢰를 받던 박지성의 입지도 흔들렸다. 감독 교체와 더불어 부상까지 겹친 박지성의 출전 빈도는 점차 줄어들었고, 시즌 도중 주장 완장까지 빼앗겼다. QPR은 2013년 1월,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수비수 클린트 힐의 주장 선임을 공식 발표했다.

이후, 한국인을 대하는 QPR 구단, 팬들의 태도도 점차 변하기 시작했다. 시즌 초반만 해도 과한 친절을 베풀던 QPR 홍보팀은 한국인 통신원들에게 무관심을 보이기 시작했고, 팬들이 한국팬들을 바라보던 시선도 부정적으로 바뀌었다. QPR은 박지성에 이어 ‘유망주’ 윤석영까지 영입했지만, 한국시장을 공략하겠다는 마케팅 의지는 줄어들었다. 그리고 한 시즌만의 강등과 박지성의 PSV에인트호벤 임대로 QPR은 한국에서 점차 잊혔고, 우리에겐 애증의 구단으로 남게 됐다.

QPR이 국민구단이 되지 못한 이유는 간단했다. 맨유와는 구단 네임벨류에서도 차이가 났지만, 결정적인 이유는 박지성의 활약정도였다. 박지성은 시즌 내내 단 한골도 기록하지 못하며, 맨유시절 만큼의 임팩트를 못 보여줬다. 박지성이 만약 QPR에서도 우리가 그리워했던 골을 터트리고 폭발적인 모습을 보여줬다면, QPR은 제 2의 국민구단이 될 수도 있었다.

최근 레버쿠젠의 회장이 이와 연관될 수 있는 중요한 말을 남겼다. 레버쿠젠의 미하엘 샤데 회장은 하비에르 에르난데스(치차리토)의 활약을 이야기하면서 “만약 당신이 국가적 영웅을 보유했다면 마케팅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가 좋은 선수인가와 팀을 도울 수 있는지를 보고 영입을 결정해야 한다. 치차리토는 이 두 가지를 모두 갖고 있다. 그는 좋은 선수이자, 이곳(아메리카)에서는 아이돌과 같은 존재다”고 말했다. 결국, 구단이 특정 국가나 지역을 공략하기 위해선 선수의 실력이 우선적으로 뒷받침 돼야 한다는 뜻이었다.

# 또 다른 국민구단을 노리던 토트넘...그들의 운명은?

지난 칼럼에서도 소개했듯이, 토트넘은 손흥민의 영입을 통해 야심찬 꿈을 키우고 있었다. 그 꿈 중 하나는 한국시장 공략을 통한 ‘국민구단’으로서의 발돋움이었다.

그러나 최근 토트넘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아니 정확히 말해 토트넘에서 손흥민의 입지가 흔들리고 있다. 아직 한 시즌이 채 지나지 않았고, 손흥민의 적응기가 진행형이긴 하지만 불안함을 감출 수 없는 것은 사실이다.

토트넘은 14일 오전 5시 영국 런던에 위치한 화이트 하트 레인에서 2015-16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EPL) 21라운드 레스터 시티와의 경기를 치렀고, 결과는 0-1 패배였다. 손흥민은 이날 경기에서도 선발에서 제외됐고, 후반 37분 출전해 12분만 경기장을 밟았다.

물론 손흥민은 3일전 FA컵에서 풀타임 출전해 이날 경기 벤치가 예상됐다. 그러나 똑같이 3일전 풀타임을 소화한 크리스티안 에릭센은 선발 출전했다는 점에서 손흥민의 입지를 판단해 볼 수 있다. 현 상황에서 손흥민은 확실히 토트넘의 주전은 아니었다.

구단의 한국마케팅도 점차 그 빈도수가 줄고 있다. 토트넘은 시즌 초반 한국어 홈페이지-SNS 페이지 개설, 한국 팬들의 위한 이벤트 등을 펼쳤고, 한 주에도 몇 번씩 손흥민에 대한 소식을 전했다. 그러나 손흥민의 출전시간이 줄어들자, 그러한 횟수도 줄어들었다.

적극성도 떨어지고 있다. 기자는 개인적으로 손흥민의 이적을 기점으로 토트넘과 계속해서 연락을 취해왔다. 처음 연락이 닿았을 때만해도 오히려 적극적이었던 쪽은 토트넘이었다. 토트넘은 기자에게 한국시장 공략방법 등을 물어보며, 이적 당일만 5통의 메일을 주고받았다. 그러나 최근에 들어 연락 횟수도 줄어들었고, 질문에도 소극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토트넘의 한국투어도 장담할 수 없는 부분이다. 몇 달 전 토트넘의 한국투어 가능성이 제기됐고, 기자는 구단 직원에게 그 사실여부를 확인한 적이 있다. 당시 해당 직원은 “전 세계적으로 토트넘의 프리시즌에 대한 추축은 항상 많이 있다. 토트넘의 정책은 그 어떠한 루머에 대해서도 답해주지 않는 것이다. 원하는 답변을 못줘 미안하다”고 답했다. 물론 긍정도 부정도 아닌 답변이었다. 그러나 손흥민의 불안한 입지가 계속된다면, 굳이 토트넘이 한국투어를 강행할 확률은 떨어지기 마련이다.

국민구단의 길은 멀고도 험하다. 토트넘의 갈 길도 아직 멀다. 우선적으로 손흥민이 토트넘에서 살아남지 못한다면, 토트넘의 국민구단을 향한 꿈은 QPR과 같은 행보를 겪을 수 있다. 지금 현재의 상황으로만 봤을 땐, 그 가능성이 다소 떨어져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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