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풋볼] 서재원 기자 = 한국 선수들의 활약으로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EPL)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그러나 우리가 EPL을 볼 수 있는 부분은 TV 위성 중계에 잡힌 모습이 전부다. 두 시즌동안 모 일간지 EPL 현지 통신원 역할을 수행한 필자의 경험을 통해, TV에서는 볼 수 없는 EPL 뒷이야기를 매주 목요일 '서재원의 EPL通'에서 풀어내고자 한다.[편집자주]

EPL의 경쟁력을 위해 리그컵을 폐지하자는 주장이 제기됐다. 물론 ‘리그컵 폐지론’은 아직까진 한쪽의 의견에 불과할 뿐, 공론화가 돼가는 과정 중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이 제기됐다는 것만으로도 EPL 스스로 강한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는 점은 틀림없다.

지난주 칼럼에 이어 이번 주도 리그컵의 존폐논란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지난 칼럼에서도 소개했듯이 리그컵 폐지론이 거론된 이유는 EPL에 소속된 팀들이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UCL), UEFA 유로파리그(UEL) 등 유럽대항전에서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을 거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UCL의 경우도 EPL은 위기였다. 아스날과 첼시가 UCL 조별리그 최종전에서 승리하면서 극적으로 16강행을 결정지었고, 대회에 참가한 4개 팀 중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제외하고 3개의 팀이 16강에 진출했지만, 그 과정은 좋지 못했다. 하마터면 맨체스터 시티를 제외하고 나머지 팀들이 16강에 진출하지 못하는 결과도 나올 수 있었던 상황이었다.

UEFA는 지난 11일(이하 한국시간) UCL과 UEL의 조별리그가 종료된 직후,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2015-16시즌 중간 리그랭킹을 업데이트 했다. 현재 EPL은 이탈리아 세리에A(69.272점)에 앞선 72.659점으로 랭킹 3위를 기록 중이다. 2011-12시즌 최종 랭킹까지 1위를 지키던 EPL의 순위는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에 밀렸고, 지난 시즌엔 독일 분데스리가에까지 역전 당했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UEFA 리그랭킹은 최근 5년간, 유럽대항전에 진출한 각 리그 소속팀들의 성적으로 점수가 평가된다. 다음 시즌이 되면 2011-12시즌의 점수는 삭제되고, 다음 시즌의 점수가 새롭게 업데이트 된다. 현재 점수에서 2011-12시즌의 점수(EPL: 15.250, 세리에A: 11.357)를 제외하고 나면 EPL은 세리에A에 점수를 역전 당하게 된다. 그만큼 이번 시즌 유럽대항전에서 EPL 클럽들의 성적은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랭킹 3위의 리그에 UCL 티켓이 3.5장, 4위는 한 장이 줄어든 2.5장만 부여 받기 때문이다.

# EPL 경쟁력의 해결책은 리그컵 폐지?

위기에 놓인 EPL.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EPL 축소’, ‘리그컵 폐지’ 등 EPL의 경쟁력을 살리려는 논의가 계속해서 이루어지고 있다.

‘리그컵 폐지론’이 거론된 이유에 대해 짧게 요약하자면, 겨울 휴식기가 없는 EPL의 빡빡한 일정으로 선수들의 체력이 EPL 경쟁력을 하락시킨 결정적인 이유라는 점이다. 때문에 사실상 FA컵보다 명성과 인기가 떨어지는 리그컵을 폐지해 경기 수를 줄이자는 주장이다.(이는 지난주 칼럼 “‘EPL의 경쟁력’ 위해 리그컵이 폐지돼야 한다고요?”에 보다 자세히 설명했다)

그러나 ‘리그컵 폐지론’을 반대하는 측의 주장도 확실하다. 지난 칼럼에서도 리그컵의 역사에 대해 설명했듯이, 리그컵은 올해로 56회째를 맞이했다. 1960-61시즌부터 56년 동안 문제없이 이어진 리그컵에 갑자기 ‘EPL의 경쟁력이 떨어진 이유’라는 화살이 돌아간 것은 당사자 입장에선 황당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다시 말해, 이들의 주장은 ‘리그컵은 EPL 경쟁력에는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다. EPL의 경쟁력 하락은 불과 10년, 아니 5년도 채 안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지난 2007-08 UCL만 보더라도 4강에 맨유, 리버풀, 첼시 등 EPL 소속 3팀이 진출했고, 결승전에선 맨유와 첼시가 만났다. 당시 첼시는 UCL 결승전에 오르는 상황 속에서도 리그컵 준우승을 차지했다.

# 리그컵이 폐지되면 안 되는 이유(1. 유망주의 장)

리그컵이 리그 스케쥴에 영향을 줄 순 있다. 하지만 팀의 일정과 선수들의 체력에 영향을 준다는 것은 사실 억지 주장일 수도 있다.

유럽대항전을 병행하는 팀들은 대게 리그컵에 힘을 빼고 출전한다. 실제로 이번 시즌에도 맨유, 첼시, 아스날 등이 16강에서 조기 탈락했다. 셰필드 유나이티드에 0-3으로 대패한 아스날의 경우 해당 경기에서 알렉스 이오비, 글렌 카마라 등 유망주를 비롯해 조엘 캠벨, 칼럼 챔버스, 마티유 드뷔시 등 주전으로 기용되지 않은 선수를 대거 출전시켰다.

유럽대항전을 병행하는 팀들이 상대에 따라 1.5군 또는 2군을 내보내는 것 자체가 리그컵의 하락한 이미지를 대변해 주기도 하지만, 이는 반대로 클럽 입장에선 유망주, 새로운 선수, 출전 기회가 적은 선수 등을 시험해 볼 수 있는 장이 되기도 한다.

실제로 우리에게 익숙한 수많은 선수들이 리그컵을 통해 이름을 알렸다. 세스크 파브레가스(당시 아스날)는 2003년 10월, 16세 177일의 나이로 로더럼 유나이티드와의 리그컵(당시 칼링컵) 경기를 통해 프로 데뷔의 꿈을 이뤘다. 당시 파브레가스는 아스날의 클럽 역사상 최연소 출전기록을 경신했다. 과거 존 테리, 저메인 데포, 데이비드 베컴 등도 자신의 첫 번째 프로 선수 데뷔를 리그컵을 통해서 경험했다.

몇몇 선수들에겐 잊지 못할 순간도 제공했다. 웨인 루니는 지난 2002년 에버턴 소속으로 렉섬과의 리그컵 경기에서 프로 데뷔골을 터트렸고, 아스널의 시오 월콧도 2006-07 리그컵 결승전에서 첼시를 상대로 프로 데뷔골을 넣었다. 유망주, 신인선수들에게 리그컵은 기회이자 희망이었고, 지금도 그 점은 변함이 없다.

# 리그컵이 폐지되면 안 되는 이유(2. 중소클럽의 희망)

리그컵이 폐지를 쉽게 논해선 안 되는 이유는, 이 대회가 처음 탄생했던 이유에서 찾을 수 있다. 대회를 처음 고안했던 스탠리 루스 경(국제축구연맹 6대 회장)은 ‘FA컵에서 탈락한 팀들을 위로하는 차원에서 새로운 대회를 만들자’는 아이디어를 내놨다.

이번 시즌 리그컵 준결승 진출 팀만 봐도 리그컵은 빅클럽뿐 아니라 중소클럽들에도 희망이 되는 대회임을 확인할 수 있다. 에버턴과 스토크 시티가 그들이다. 사실상 리그와 FA컵 등에서 우승컵을 기대하기 힘든 에버턴과 스토크가 우승의 꿈을 가질 수 있는 대회가 리그컵이다.

특히 약 2년 전 리그컵 결승전은 기자에게도 잊을 수 없는 경험이었다. 2013-14 리그컵 결승전엔 맨시티와 선덜랜드가 올라갔고, 당시 영국에서 EPL 통신원을 하던 기자는 기성용(26, 당시 선덜랜드)을 취재하기 위해 결승전이 열린 웸블리 스타디움을 찾았다.


경기장과 연결되는 웸블리 파크역(Wembley Park Underground Station)에 내리자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졌다. 맨시티의 팬들도 마찬가지였지만 수많은 선덜랜드의 팬들이 경기장으로 가는 길을 가득 메웠고, 모두 “우리는 웸블리로 간다. 우리가 웸블리에 왔다”고 노래를 부르는 장관을 연출했다. 당시 기성용의 사진 앞에서 사진을 찍던 벤(당시 24, 선덜랜드)이란 이름의 한 팬과 인터뷰를 진행했는데, 그는 “선덜랜드를 응원하러 웸블리 스타디움에 오다니 꿈만 같다”고 말하며 기쁨을 표현하기도 했다.

당시 선덜랜드는 파비오 보리니의 선제골에 불구하고 후반전 아야 투레, 사미르 나스리, 헤수스 나바스 등에 연속골을 허용하며 1-3으로 역전패 하며 준우승에 머물렀다. 하지만 경기 결과에 상관없이 약 9만석의 경기장을 반반씩 가득 메운 양 팀의 팬, 특히 1973년 FA컵 우승 이후 약 40년 만에 우승컵을 꿈꿨던 선덜랜드의 팬들의 모습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이는 비단 선덜랜드에 해당하는 이야기만은 아니었다. 선덜랜드뿐 아니라 여러 중소클럽들이 리그컵 결승전 무대를 밟았고, 우승에 대한 꿈을 꿀 수 있었다. 브래드포드 시티-스완지 시티(2012-13), 카디프 시티(2011-12), 버밍엄 시티(2010-11), 애스턴 빌라(2009-10), 위건 애슬래틱(2005-06), 미들즈브러, 볼턴 원더러스(2003-04) 등도 리그컵 결승전을 통해 그 꿈을 꿨다. 그리고 이들 중 스완지, 버밍엄 등은 그 꿈을 실현시켰고, 유로파리그 진출의 경험까지 얻을 수 있었다.

이처럼 리그컵은 수많은 스타를 양성하고, 중소클럽들에겐 우승의 희망과 유럽대항전 진출의 꿈을 실현시키는 장이다. 이는 56년의 역사를 지닌 리그컵의 존재이유 중 하나며, 리그컵은 잉글랜드 축구만의 전통과 역사임은 분명한 사실이다.

사진= 게티이미지코리아, UEFA 공식 홈페이지, 인터풋볼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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