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풋볼] 서재원 기자 = 한국 선수들의 활약으로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EPL)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그러나 우리가 EPL을 볼 수 있는 부분은 TV 위성 중계에 잡힌 모습이 전부다. 두 시즌동안 모 일간지 EPL 현지 통신원 역할을 수행한 필자의 경험을 통해, TV에서는 볼 수 없는 EPL 뒷이야기를 매주 금요일 '서재원의 EPL通'에서 풀어내고자 한다.[편집자주]

명실상부 EPL 최고의 빅매치가 펼쳐진다. EPL 최고의 콘텐츠로 자리 잡은 첼시 대 아스널, 아니 주제 무리뉴 대 아르센 벵거의 맞대결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첼시와 아스널은 19일 오후 8시 45분(한국시간) 영국 런던에 위치한 스탬포드 브릿지에서 2015-16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 6라운드 경기를 앞두고 있다.

경기를 앞둔 양 팀의 분위기는 상반된다. ‘디펜딩 챔피언’ 첼시는 이번 시즌 체면이 말이 아니다. 리그 5라운드까지 진행된 상황에서 1승 1무 3패의 초라한 성적표를 기록 중인 첼시는 승점 4점으로 리그 17위에 머물러있다. 반면 아스널은 3승 1무 1패, 승점 10점으로 리그 4위를 기록하며 무난하게 시즌을 시작하고 있다.

# 급속도로 성장한 런던더비...EPL 최고의 콘텐츠로 자리 잡다

양 팀이 만나면 항상 시끄럽다. 첼시와 아스널, 무리뉴 감독과 벵거 감독 때문이다. 이정도면 EPL 최고 콘텐츠, 최고 더비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다.

그러나 사실 양 팀이 극도의 라이벌 구도를 그린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첼시와 아스널은 각각 전통적인 라이벌이 존재했고, 양 팀 간의 경쟁의식은 기존 라이벌구도를 넘어설 정도는 아니었다. 서런던지역에 위치한 첼시는 퀸즈파크 레인저스, 풀럼FC 등과 오랫동안 서런던더비를 형성했고, 북런던지역에 위치한 아스널은 토트넘 홋스퍼라는 너무나도 유명한 앙숙이 존재했다.

물론 같은 런던을 연고로 하는 이유로 라이벌의식은 존재하긴 했다. 과거 기록을 살펴보면 양 팀이 처음 맞대결을 펼친 1907년 11월 9일(현지시간 기준), 스탬포드 브릿지에는 약 65,000여명의 관중이 몰렸다고 전해진다. 이후 1935년에도 영국 축구 역사상 두 번째로 많은 관중수인 82,905명이 경기를 관람했다고 알려졌다. 그러나 당시의 기록적인 관중수는 단지 축구에 대한 관심과 입석좌석으로 인한 수치일 뿐, ‘라이벌이기 때문에’만은 아니었다.

양 팀의 라이벌의식이 고조된 시기는 2000년대 이후라 볼 수 있다. 특히 러시아 재벌 로만 아브라모비치가 첼시를 인수하고, 첼시가 신흥 강호로 떠오르면서 양 팀이 부딪힐 일이 잦아졌다. 리그뿐만 아니라 2003-04 UEFA 챔피언스리그 8강, 2006-07 리그컵(당시 칼링컵) 결승 등 중요한 길목에서 양 팀은 서로를 상대해야 했다.

특히 2006-07 칼링컵 결승전은 양 팀 최악의 경기로 기억된다. 웨일스 카디프에 위치한 밀레니엄스타디움에서 열린 이 경기에서 경기 종료 직전 난투극이 벌어졌다. 당시 주심을 맡은 하워드 웹 주심은 존 오비 미켈(첼시)와 콜로 투레, 에마뉘엘 아데바요르(이상 당시 아스널)를 즉시 퇴장시켰다. 경기 후 FA(잉글랜드축구협회)는 이 세 명의 선수와 더불어 에마뉘엘 에부에(당시 아스널)에게도 추가 징계를 내렸다. 당시 경기는 첼시의 2-1 승리로 종료됐다.

이후 양 팀의 팬들은 서로를 라이벌로 지목하기에 이르렀다. 마케팅 전문 회사 ‘풋볼 팬 센서스’가 2009년 조사한 바에 의하면 아스널팬들은 토트넘보다 첼시를 가장 싫어하는 클럽으로 지목했다. 첼시의 팬들도 리버풀 다음으로 아스널을 가장 싫어하는 클럽으로 지목했다. 미국 스포츠전문 웹진 ‘블레처리포트’의 2014년 조사에 따르면 첼시와 아스널의 팬들은 각각 서로를 두 번째로 가장 싫어하는 클럽으로 꼽았다.

# 무리뉴의 등장과 함께 폭발한 양 팀의 관계

첼시와 아스널의 경기는 무리뉴 감독과 벵거 감독의 대결로 묘사되곤 한다. 벵거 감독은 지난 시즌 34라운드 경기를 앞둔 기자회견에서 “두 감독과의 만남이 아닌, 두 팀 간의 만남이다. 선수들에 의해 경기와 결과가 결정된다. 그것에 집중했으면 좋겠다”며 감독 대결로 미화되는 것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기도 했다.

하지만 첼시와 아스널이 서로 물고 뜯는 관계가 된 데에는 무리뉴 감독과 벵거 감독을 빼곤 설명하긴 힘들다. 양 감독의 설전은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난 2005년 벵거 감독은 “스포츠에서 전략이나 계획 없이 승리만 집중하는 것은 위험이다”고 승리에 집착하는 무리뉴 감독을 자극했다. 이에 무리뉴 감독은 “벵거 감독이 관음증을 갖고 있다. 지난 12개월 동안 첼시에 대해 언급한 것을 모으면 120페이지나 될 것이다”고 자극했고, 벵거 감독은 “통제가 불가능한 사람”이라고 되받아쳤다.

무리뉴 감독이 EPL을 떠나있을 동안은 문제될 일이 없었지만, 그의 복귀는 다시 양 팀의 관계에 불을 지폈다. 지난 2013-14 EPL 31라운드를 앞두고 두 감독은 또 다시 설전을 벌였다. 무리뉴 감독의 첼시의 우승 가능성에 대해 “아직은 우승을 논할 때가 아니다”고 말하자, 벵거 감독이 “무리뉴 감독이 실패를 두려워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무리뉴 감독은 “벵거 감독이 진정한 실패 전문가다. 나는 실패해본 적이 많지 않아 실패를 두려워한다”며 오랫동안 우승을 하지 못한 벵거 감독을 비꼬았다.

무리뉴 감독과 벵거 감독의 설전은 결국 몸싸움으로까지 번졌다. 지난 시즌 7라운드 경기에서 아스널의 알렉시스 산체스가 첼시의 개리 케이힐의 거친 태클을 받자, 벵거 감독이 테크니컬 에어리어를 벗어나 대기심에 항의했고, 무리뉴 감독의 진영까지 침범하게 된다. 이에 무리뉴 감독이 격하게 항의했고, 두 감독은 충돌했다.

그리고 지난 8월 3일, 시즌의 시작을 알리는 2015 FA 커뮤니티 실드에서 만난 두 감독은 ‘악수 거부’ 논란을 야기하며 앙숙관계가 끝나지 않았음을 알렸다.

# 잊을 수없는 1년 전 벵거 감독의 1000번째 경기...불난 집에 기름을 부운 주심

기자 개인적으로 봤을 때 두 감독이 가장 심각하게 신경전을 벌인 때는 2014년 초였다. 기자가 현지에서 직접 취재한 경기였기에 더욱 그 살벌한(?) 분위기를 몸소 느낄 수 있었다.

‘실패 전문가’ 논란을 빚은 2013-14 EPL 31라운드. 벵거의 감독 통산 1000번째 경기였기에 더욱 관심이 모아지는 경기였다. 아스널은 이 경기 전 홈경기부터 벵거 감독을 위한 특별 책자를 발행하고, 구단 소식지인 매치데이 프로그램에 벵거 감독의 역사를 담은 대형 브로마이드를 제작하는 등 심혈을 기울였다.

의미 있는 경기였기에 암표가도 치솟았다. 현장 분위기를 전하기 위해 경기장 주변을 맴도는 암표상에게 당일 경기 암표가를 물어보니 최소 250파운드(약 45만원)의 금액을 불렀다. 당시 티켓 정상가가 약 80파운드(약 14만원)이었으니 3배 이상 뛴 가격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관심이 갔던 벵거 감독의 기념적인 경기는 0-6이라는 치욕적인 스코어만 남긴 채 종료됐고, 벵거 감독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

이 경기의 하이라이트는 무리뉴 감독도 벵거 감독도 아닌 주심이었다. 전반 6분 만에 사무엘 에투와 안드레 쉐얼레에게 연속골을 허용한 아스널은 전반 15분 올슬레이드 체임벌린이 핸드볼 파울을 범하며 페널티킥을 내줬다. 그러나 당시 주심이었던 안드레 마리너는 체임벌린이 아닌 키에런 깁스에세 퇴장명령을 내렸다. 가뜩이나 부상자로 수비 자원이 부족했던 아스널엔 치명적인 오심이었고, 이후 아스널은 페널티킥 포함 내리 4골을 허용하며 무너졌다.

당황스러운 곳은 기자석이었다. 경기 상황을 전해야 하는 영국 현지 기자들도 마리너 주심의 오심에 폭소했고, 경기 내내 대기심에 항의하는 벵거 감독의 모습을 비웃었다. 두 감독의 라이벌 구도가 극에 달하는 시점, 그리고 벵거 감독의 기념비적 경기에서 주심의 오심이 경기를 망친 희대의 사건이었다. 영국 ‘데일리 메일은 지난 2월 보도를 통해 이 경기를 벵거 감독 역사상 가장 치욕적인 경기로 선정하기도 했다.

# ‘첼시vs아스널-무리뉴vs벵거’의 대결구도는 현재 진행형

첼시와 아스널이 다시 만난다. 그러나 이젠 확실히 상황이 달라졌다. 양 팀의 현재 리그 순위표가 현실을 극명히 보여준다. 이어 지난 커뮤니티 실드에서 벵거 감독은 지긋지긋한 무리뉴 공포를 극복했다.

무리뉴 감독 상대 14경기 1승 6무 7패.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 첼시와 아스널, 무리뉴 감독과 벵거 감독의 대결. 이들의 만남이 또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낼지, ‘런던더비’의 사이즈는 계속해서 팽창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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