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풋볼] 서재원 기자 = 한국 선수들의 활약으로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EPL)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그러나 우리가 EPL을 볼 수 있는 부분은 TV 위성 중계에 잡힌 모습이 전부다. 두 시즌동안 모 일간지 EPL 현지 통신원 역할을 수행한 필자의 경험을 통해, TV에서는 볼 수 없는 EPL 뒷이야기를 매주 금요일 '서재원의 EPL通'에서 풀어내고자 한다.[편집자주]

스포츠와 팬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아무리 스포츠가 ‘자본’과 ‘미디어’ 등에 좌지우지 된다곤 하지만 정작 팬이 없다면 스포츠의 존재 의미가 없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팬 역시 스포츠가 없다면 탄생 자체가 불가능하다.

축구라는 스포츠에서 팬의 영향력은 그 어떤 종목보다 더욱 특별하다. 팬들이 구단의 방향성을 정하고 색을 만들기도 하며, 선수의 영입과 이적에도 영향을 끼친다. 팬들에 의해 하나의 구단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특히 한 경기 한 경기만을 놓고 봤을 때, 축구팬들이 경기에 미치는 영향은 막대하다. 팬들의 응원과 야유에 따라 경기장의 분위기는 좌지우지되며, 경기의 결과를 바꿀 수도 있다. 이렇듯 축구팬은 단순한 소비자(Consumer)를 넘어 생산자(Producer)의 역할을 하는 생산소비자(Prosumer)의 대표적인 예를 보여준다.

그러나 문제는 팬들이 항상 구단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팬들의 성향에 따라 경기장 분위기를 재미없게, 또는 험악하게 만들 수 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EPL의 훌리건(Hooligan)이다. EPL의 열혈 서포터인 훌리건들은 잘 알려졌다시피 과거부터 경기장 내외서 각종 폭력사고를 일으켰고, 이러한 사고는 영국의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기도 했다. 특히 '리버풀의 멈춰진 시간'이라 불리는 헤이젤 참사는 39명의 축구팬이 사망하는 결과를 초래했고, 훌리건이란 존재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 ‘EPL의 문제아’ 훌리건은 이제 옛말?

헤이젤 참사는 어느덧 30년 전의 역사가 됐다. 물론 30년이란 시간동안 훌리건들의 크고 작은 사고는 계속해서 존재했지만, 현재의 EPL엔 훌리건이란 존재를 찾아보기 힘들다. 아예 사라졌다곤 말할 순 없지만, 과거와 같이 쇠파이프와 칼을 든 훌리건은 당연히 볼 수 없다. 물론 본 기자가 본 모습이 전부라고 할 수 없다. 그러나 기자가 두 시즌 동안 매주 1~2경기씩 꼬박꼬박 경기장에 취재를 갔을 땐, 훌리건과 같은 팬들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실제로 기자의 EPL 첫 직관은 기대에 비해 실망감이 더 컸다. 실망감은 경기의 질이 아닌 팬들의 열기였다. 기자가 2008년 영국축구여행을 떠났던 당시, 아스널의 홈 개막전(vs 웨스트 브로미치 앨비언) 경기를 직관했다. 김두현(현 성남FC)의 EPL 데뷔전이기도 했던 경기에서 기자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대부분의 관중이 앉아서 경기를 관람했고, 기대했던 열광적인 응원, 서포팅은 찾기 힘들었다. 곳곳의 구역마다 열성적으로 응원하는 서포터 모임은 있었지만, 경기장 전체적인 분위기는 ‘관람’ 그 자체였다.

2년 전 EPL 통신원으로 활동할 당시 그 모습은 여전했다. 특히 기자가 취재를 위해 자주 찾았던 아스널의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의 분위기는 ‘생각보다 조용하다’ 였다. 오히려 위성 중계로 보이는 장면과 팬들의 목소리가 더욱 크게 느껴졌다. 가장 많이 찾은 경기장이기에 애착이 갔던 아스널의 홈 경기장은 그래서인지 더 아쉬움이 컸다.

통신원 활동 당시 친분을 유지했던 아스널의 한 스튜어드(안전요원)도 이 점을 인정했다. 경기장 안전관리문제 등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던 중 그는 “내 직장이긴 하지만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의 분위기는 다소 아쉽다. 경기장이 큰 만큼 팬들이 더 큰 응원을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직책이 직책인 만큼, 열성적인 팬들이 늘어나면 좋겠지만 훌리건은 싫다”고 선은 확실히 그었다.

# 아스널의 경기장 분위기는 17위...맨유와 첼시는 각각 16위와 13위?

영국 언론 ‘텔레그라프’는 지난해 11월 흥미로운 기사를 보도했다. ‘텔레그라프’의 짐 와이트 기자는 ‘EPL 20개 구단의 경기장 분위기 순위’라는 글을 통해 각 경기장마다 분위기를 평가해 순위를 매겼다.

와이트 기자는 이 기사를 통해 아스널의 순위를 17위로 평가하며 “하이버리 시절과 비교해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은 부유한 팬들이 많고, 이들은 시끄러운 분위기를 만들지 못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아스널의 티켓값은 EPL 구단 중 가장 높았고, 이에 따라 과거와 달리 팬들의 계층은 노동자보다 중산층이 차지하는 비율이 높아졌다. 기자가 봤을 때도 이들은 열성적으로 응원하긴 보단 차분히 앉아 박수와 같은 간단한 동작을 취했고, 응원을 주도하려고 일어나 소리를 지르는 팬을 오히려 이상하게 쳐다보는 모습을 종종 발견할 수 있었다.

맨유의 홈 경기장, 올드트래포드의 순위도 충격이다. 약 7만 5천여석의 EPL 내 최대 규모의 관중을 수용할 수 있는 경기장의 분위기 순위가 16위밖에 기록되지 못했다. 올드트래포드의 경우 거리상 이유로 자주 방문하진 못했지만, 경기장이 주는 웅장함에 비해 팬들의 응원이 다소 부족하다는 느낌은 분명했다. 오히려 자신의 선수들에게 욕설을 하는 모습이 더욱 열정적이었던 것으로 기억난다.

첼시의 스탬포드 브릿지도 이 조사에서 13위로 하위권을 기록했다. 실제로 기자가 느낀 첼시의 홈 경기장 분위기도 아스널과 비교했을 때 크게 다르지 않았다. 경기장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아서 인지, 보다 오밀조밀한 느낌은 있어도 아쉬움은 항상 있었다. 특히 2013-14 UEFA 챔피언스리그(UCL) 준결승전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전에서 소수의 원정팬들이 경기장 안과 밖의 분위기를 압도했던 점은 잊을 수 없는 장면으로 기억된다.

주제 무리뉴 감독도 과거 인터뷰를 통해 첼시의 경기장 분위기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다. 그는 지난해 11월 퀸즈파크 레인저스와의 경기가 끝난 후 인터뷰에서 “빈 경기장에서 경기를 치르는 것 같았다”며 조용한 경기장 분위기에 대한 불만을 드러내기도 했다. 물론 3일 뒤, 이 발언에 대해 해명하긴 했지만, 뼈가 있는 말인 건 사실이었다.

한편, 이 순위에서 1위는 이청용이 소속된 크리스탈 팰리스의 셀허스트 파크가 꼽혔고, 스토크 시티의 브리태니아 스타디움, 리버풀의 안필드, 에버턴의 구디슨 파크, 기성용이 뛰고 있는 스완지 시티의 리버티 스타디움이 그 뒤를 이었다. 웨스트햄의 불린 그라운드는 6위, 맨체스터 시티의 이티하드 스타디움이 9위 등을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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