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태국 나콘랏차시마에서 열린 킹스컵 1차전에서 우즈베키스탄 공격수 토히르욘 샴시트디노프는 한국의 강상우(포항 스틸러스)를 발로 가격한 데 이어 심상민(FC서울)의 얼굴을 주먹으로 마구 때렸다. 충격이었다. 갓 스무 살을 넘긴 어린 선수가 한 행동에 국민들은 분노했다. 이에 우즈벡축구협회는 샴시트디노프에게 1년 자격정지를 부여했다.

상처가 조금씩 아물어 가던 이달 7일, 우리 선수가 또 피해를 봤다. 카타르 레퀴야에서 활약 중인 남태희가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ACL) 조별리그 최종전에서 경기가 끝난 후 라커룸으로 향하던 중 폭행을 당했다. 알 나스르의 미드필더 파비안 에스토야노프가 주먹을 휘둘렀다. 남태희는 무방비 상태였고, 얼굴에는 출혈도 있었다.

이처럼 보고도 믿기지 않는 일이 국내에서 일어났다. 23일 오후 4시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전북 현대와 인천 유나이티드의 K리그 클래식 12라운드가 열렸다. 1강을 구축한 전북과 최근 3연승 중인 인천의 맞대결로 관심을 모았다. 그런데 전반 5분 만에 한교원이 다이렉트 퇴장 명령을 받았다. 이유는 그라운드에서 있어서는 안 될 폭행이었다. 상황은 이랬다. 한교원이 수비에 가담하다 인천 박대한과 가벼운 몸싸움이 있었고, 이 과정에서 1차 펀치가 빗맞자 쫓아가 2차로 얼굴을 때렸다. 납득이 안 가는 행동이었다.

이에 최강희 감독은 “경기 흐름에 찬물을 끼얹었을 뿐만 아니라 홈 팬들이 즐길 기회를 잃었다. 책임감을 갖고 철저히 교육하겠다”며 씁쓸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한교원의 이 주먹질은 단순히 폭행으로만 끝날 문제가 아니다.

우선, 축구 팬들에게 실망 그 이상의 충격을 안겼다. 이날 전주성에는 13,543명의 관중이 들어찼다. 연휴에도 불구 팬들의 전북사랑은 식을 줄 몰랐다. 올 시즌 평균 관중 19,540명으로 FC서울에 이어 가장 많은 팬층을 확보하고 있다. 더불어 경기는 전주 MBC를 통해 생중계됐다. 16일 대전 시티즌과의 홈경기는 9.4%의 시청률과 25%의 어마어마한 점유율을 자랑했다. 그러나 한교원의 주먹질 한 방은 경기장을 찾은 팬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고, 자라나는 새싹들의 동심을 짓밟았다. 이 장면은 고스란히 공중파를 탔다.

리딩클럽인 전북 명성에 먹칠했다. 전북은 K리그에서 가장 화끈한 공격축구와 성적을 구가하고 있다. 올 시즌에는 K리그 클래식, ACL, FA컵까지 트레블을 목표로 잡았다. 초반 흐름도 괜찮다. 하지만 한교원은 잠시 전북 소속이란 걸 잊었나 보다. 자신 때문에 팀은 경기 내내 가시밭길을 걸었다. 이겼으나 이긴 것 같지 않은 찝찝함. 팀 사기에도 악영향을 끼치게 됐다. 권투를 하려거든 상의를 벗고 장갑을 끼고 그라운드가 아닌 링에 섰어야 했다.

또 하나는 지금 자신을 있게 해준 친정팀 인천을 상대로 이 같은 일을 저질렀다. 한교원은 지난 2011년 인천을 통해 프로에 입문했다. 악조건 속에서도 빛을 내며 인천을 먹여 살렸다. 그리고 2014년 전북의 선택을 받았다. 이곳에서도 승승장구했다. 태극마크를 달았고, 2015 호주 아시안컵 본선 무대에도 나섰다. 벼를 익을수록 고개를 숙여야 하는 법이거늘. 부담 탓인지 시즌 개막 후 플레이가 생각보다 안 올라왔다. 인천을 만났으니 잘하고 싶었을 거다. 이건 과욕 정도가 아니라 순간 분을 참지 못한, 인성적인 문제다. 피해자인 박대한은 1년 후배다. 그라운드 안에서는 정해진 규칙이 있고, 페어플레이를 해야 한다. 상대에 대한 존중도 필요하다. 그래야 프로니까. 박대한과 함께 생활한 적은 없으나 그라운드 안에는 자신이 인천에 있을 때 동고동락한 동료들도 있었다. 지도자, 선후배, 동료 축구인들을 망신준 거나 다름없다.

마지막으로 주먹 한 방에 공든 탑이 무너졌다. 어릴 때 축구를 시작해 자신이 K리그 최고 팀과 국가대표에 승선하기까지. 왜, 힘들었던 때를 기억 못 하고 자만에 빠진 걸까. 이날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경기를 지켜보고 있었다. 축구 실력이 아닌 주먹 실력으로 확실한 눈도장을 받았다. 그간의 노력이 수증기처럼 증발했다. 전북 구단의 자체 징계, 연맹에서 징계가 내려지겠지만 확실한 건 축구 실력도 중요하나 인성적인 교육도 필요하다는 걸 보여줬다. 반성과 성찰? 이미 엎질러졌는데 무슨 소용이 있겠나. 우리 모두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줬다.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인터풋볼] 이현민 기자 first10@interfootball.co.kr

Copyright ⓒ 인터풋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인터풋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