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풋볼=부산] 신명기 기자= 비록 우승은 아니었지만 여자 대표팀은 동아시안컵서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며 앞으로를 기대케 했다. 어수선하던 분위기는 콜린 벨 감독의 선임과 지도력으로 바로 잡힌 모습이다. 선수단 내 융화와 선수들의 신뢰를 받기 시작한 콜린 벨 감독이 이끄는 여자 대표팀이 어떤 스토리를 써내려갈지 기대가 커지고 있다.

부산에서 개최한 2019 동아시안축구연맹(EAFF) E-1 챔피언십 경기가 모두 끝났다. 남자부는 한국, 여자부는 일본의 우승으로 막을 내리게 됐다.

지난 10월 새롭게 사령탑으로 임명된 벨 감독의 여자 대표팀은 1승 1무 1패를 기록하면서 아쉽게 준우승에 머물렀다. 하지만 중국-일본과 대등한 경기를 펼쳤고 경기장 내에서 보여주는 여자 대표팀 선수들의 에너지가 그 전보다 달랐다는 점에서 충분히 긍정적인 평가를 내릴 수 있었다. 그 가운데에는 팀을 하나로 이끌고 가기 위한 벨 감독의 노력이 있었다.

올해 여자 대표팀은 여러 우여곡절을 거치면서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프랑스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기량과 경험 차이를 절감하며 탈락했고 윤덕여 감독이 물러난 뒤 선임된 최인철 감독이 폭행 논란 끝에 사퇴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새 감독에게 요구됐던 것은 축구적인 부분은 물론이고 분위기를 끌어올릴 수 있는 긍정적 에너지와 인성 부분이었다. 대한축구협회는 고심 끝에 벨 감독을 선임했다. 독일에서 주로 지도자 생활을 했던 그는 아일랜드 여자축구 대표팀에 이어 잉글랜드 허더즈필드 수석코치를 거쳐 여자 대표팀을 맡게 됐다. 독일 여자부 분데스리가의 프랑크푸르트를 이끌면서는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끌기도 했다. ‘여자 축구 전문가’라는 타이틀이 붙을 만한 업적이었다.

그랬던 벨 감독은 부임 직후 공식석상부터 선수들과 함께 하는 시간까지 한국어를 구사하려는 적극성을 보였다. 분위기를 바꿀 필요가 있었던 여자 대표팀은 벨 감독의 노력으로 밝아진 분위기 속에 동아시안컵을 치를 수 있었다.

마지막 일본전 패배로 아쉬움은 남았지만 선수들은 벨 감독의 인상에 대한 부분을 이야기했다. 먼저 생소한 한국어를 쓰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모습과 친근한 리더십, 그리고 누구나 느낄 수 있도록 공정한 선수 선발을 하려 애썼던 부분을 선수들의 입을 통해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하지만 경기를 치를 때만큼은 달라진 모습이었다. 벨 감독은 경기장 안에서 자신이 강조한 부분과 반대되는 플레이가 나올 때마다 불 같이 화를 내곤 했다. 선수들에게 자신이 무엇을 원하고, 원하지 않는지 분명히 알리려는 의도가 있었다. 그런 후에는 선수들에게 긍정적인 부분은 그것대로, 또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짚어주면서 두 얼굴의 리더십을 선보였다. 아쉽게 우승은 놓쳤지만 1승 1무 1패를 기록하면서 상당한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평가가 이어졌다.

벨 감독 선임 이유이기도 했던 선수단의 결집이 눈에 띄는 부분이었다. 월드컵 당시 문제로 지적됐던 신구조화가 자연스럽게 이뤄진 느낌이었다.

장슬기는 “그 전보다 어린 선수들도 책임감을 가지고 한 것 같다. 오랜만에 들어왔어도 계속 함께 해왔던 언니들처럼 녹아들었다. 현대제철 선수들도 늦게 합류했는데 그럼에 융화가 잘 됐다. 점점 신구조화가 되고 있는 것 같다. 생활적으로든 운동장에서든 잘 되고 있는 것 같다”면서 좋아진 분위기에 대해 이야기했다.

벨 감독이 친밀하게, 그리고 적극적으로 선수들에게 다가간 것도 분위기 전환에 도움이 됐지만 무엇보다 큰 영향을 미쳤던 것은 편견 없는, 공정한 선수 선발을 했다고 선수들이 신뢰를 보냈기 때문이다. 벨 감독이 나이에 관계없이 실력만 선발 기준으로 본다는 것을 선수들이 직접 느끼면서 동기부여가 됐다는 것. 실제로 벨 감독은 부임 후 첫 대회라는 부담에도 불구하고 두 번째 경기인 대만전서 전하늘과 추효주가 데뷔전을 치르는 등 1차전서 뛴 선발 전원을 바꿔 선수단 전체를 활용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장슬기는 “이제 어떤 선수가 들어가더라도 그 선수가 베스트라는 생각이 많이 생겼다. 진짜 팀 같은 기분도 들곤 한다”고 말한 데 이어 심서연도 “감독님이 동기부여를 확실히 주신다. 나이에 관계없이 공정하게 (기회를) 주시니까 팀 분위기가 확실히 살아나는 것 같다”면서 입을 모았다.

축구적으로도 선수들의 만족감은 커졌다. 벨 감독은 이미 선수들이 능력을 갖췄지만 소극적인 플레이를 하는 부분에 대해 지적을 한 바 있었고 이번 대회를 통해 전진 패스나 적극적인 드리블을 하는 장면을 많이 만들어냈다. 적어도 수비적인 축구를 구사하지 않았다.

장슬기는 “경기를 하고나서 수비만 해서 힘들었던 게 아니라 경기를 해서 힘들었다는 기분을 많이 받았다. 발전을 하고 있는 기분이 든다”면서 “전에는 수비적으로 경기를 했기 때문에 지금 힘들었던 것보다 더 힘들었다. 이제는 ‘내가 공격 나가면 누군가 내려서겠지’ 하는 믿음이 생기면서 공격적으로나 수비적으로나 개인적으로 더 발전하는 것 같다”면서 벨 감독의 축구에 지지를 보냈다.

팀을 맡은 지 2개월 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벨 감독의 리더십이 뿔뿔이 흩어졌던 팀이 하나로 뭉쳐지는 모양새다. 선수들은 인간적으로 다가서면서도 짚을 건 확실히 짚는 벨 감독으로부터 하나하나 다시 배워가고 있었다. 가장 중요한 선수 선발에 있어 공정한 모습을 본 선수들은 벨 감독에게 신뢰를 보냈고 ‘새로운 스토리’를 써 나갈 동력을 얻을 수 있었다.

사진= 윤경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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