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풋볼] 대~한민국! 짝짝~짝짝짝! 온 국민을 대통합으로 이르게 하는, 마법의 구호입니다. 축구 하나로 모든 국민이 하나로 뭉친다는 건 참으로 대단한 일입니다. 한국축구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축구를 사랑하고 함께해 주시는 여러분 덕이기도 하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흐른 땀의 역할도 큽니다. 안타깝게도, 그사이에는 전해지지 못한 수 많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국축구가 더 나아가기 위해선 이 땀의 주인공들과 여러분 사이에 연결고리가 필요합니다. 매주 화요일 왕찬욱의 연결고리로 그 사이를 이어 드리겠습니다. [편집자주]

세상은 작아졌다. 안방에 앉아 치킨을 뜯으며 유럽축구를 실시간으로 즐길 수 있다. 유럽뿐만이 아니라 호주, 브라질 등 전 세계 그 어디의 축구라도 볼 수 있다. 영국에서 보도된 소식은 몇 분만 지나면 한국포털사이트에서 한국어로 볼 수 있다. 세상이 작아 진만큼 축구계 종사자들은 더 바빠졌다.

그중에서도, 오늘은 김태륭 KBS 해설위원과의 연결고리를 잇는다. 그는 팬들이 경기를 더 깊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축구 번역기'와 같은 역할을 하여 한국 축구 발전에 이바지하고 있다.

아직 가시지 않은 2월의 겨울, 우리는 추위를 이기기 위해 점심 메뉴로 순두부찌개와 보쌈을 골랐다. 따듯한 뚝배기 한 그릇에 몸이 절로 뜨끈해진다. 그러니 본격적으로 수다에 시동이 걸린다. 뚝배기는 식어 갔지만, 우리는 축구 열정으로 점점 달아올랐다.

[김태륭 KBS 해설위원(이하 김 위원)] 많고 많은 사람 중에 하필 저를, 그것도 첫 회에 단독으로 인터뷰를 하시다니요(웃음).

[기자] (웃음) 지금까지는 어떻게 살아왔고, 축구선수는 어떻게 했고, 이런 부분이 조명됐는데 오늘은 '해설위원 김태륭'에 대해 집중 분석하려고 왔습니다. 이제 또 바쁘게 활동할 타이밍이죠?

[김 위원] UEFA 챔피언스리그(이하 UCL) 주간이 돌아왔죠. 일정이 좀 빠듯할 것 같아요. 화요일(17일)엔 FC서울하고 하노이(베트남) AFC 챔피언스리그 경기가 있고요, 설 연휴인 수-목-금에는 UCL이랑 유로파리그까지 쭉 하고, 토요일은 세리에 중계가 있어요.

[기자] 새벽 내내 일하면 체력적으로 힘드시겠어요. 이것저것 많이 챙겨 드셔야겠어요.

[김 위원] 몸 관리도 잘 하고 이제 적응도 다 되어서 새벽 중계라도 힘들지 않아요. 그 늦은 시간에 방송국 가러 운전할 때도 완전히 쌩쌩하니까요. 새벽에 일하다 보면 간식거리 같은 걸 많이 먹게 되잖아요. 저도 그랬었는데 요즘 몸 관리하느라 자제하고 있어요. (숟가락을 내려놓으며) 식사량도 줄이고 있죠(웃음). 해설이 체력도 받쳐 줘야 되는 일이라 살이 찌면 그만큼 더 힘들어지거든요. 그래서 다이어트도 다시 시작하고, 운동도 열심히 하고 있죠.

[기자] 요즘 맡으시는 UCL이나 세리에는 다 새벽 4시가 넘어가서야 시작하잖아요. 예전에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EPL) 하실 때는 그래도 시간대가 그리 늦지 않은 편이었는데요.

[김 위원] EPL을 계속했어야 했는데(웃음). 농담이고요.

[기자] 말 나온 김에 EPL 이야기를 좀 해볼까요? 그게 본격적인 해설위원 활동 시작이었죠?

[김 위원] 네. 지금도 SNS에서 하루에 10통 넘게 메시지가 와요. 어떻게 하면 해설위원 할 수 있느냐고. 근데, 뚜렷한 방법이 없어요. 저는 운이 좋았던 게, 처음엔 내셔널리그 해설을 했었어요. 당시에는 그냥 막 했죠. 그러다가 2011년 가을 쯤이었나, SBS ESPN에서 해설자를 모집한다는 공고가 나왔어요. 그때 지원해서 마지막 테스트까지 갔죠. 그게 또 재미있는 게, 저랑 또 다른 한 명이 최종 테스트까지 갔어요. 근데 그 사람이 누구냐면 제가 17세 이하 월드컵 조직위원회에서 일할 때 선배였어요.

[기자] 묘한 인연이네요. 그렇게 힘든 테스트를 거쳐서 최종 합격하고 해설위원이 되셨어요. 기분 굉장히 좋으셨겠는데요?

[김 위원] 그렇죠. 제가 EPL 중계를 세 시즌 했어요. 처음 한 경기가 2012년 3월. 시즌 거의 끝나 갈 때쯤이었죠. 그때는 당연히 처음이니까, 생중계보다는 녹화가 많았어요. 얼굴 안 나오는 녹화 해설 있잖아요. 초심자에게 생중계를 맡기진 않잖아요? 한 달에 한 번 정도 FA컵, 청소년 대회나 여자 축구 생중계가 잡히면 정말 미친 듯이 좋아하고 열심히 했죠. 그때 도핑방지위원회 일도 같이 하고 그랬는데, 정말 쉬는 날이 없었어요. 거의 2년 반 동안 휴가 2~3일 빼고는 하루에 3시간 이상 자본 기억이 없네요. 그때 많이 늙었어요(웃음).

[기자] 굉장히 치열하게 달리셨어요.

[김 위원] 그때가 제일 치열하게 살았을 때죠. 그런데 그렇게 힘들게 달려도, 방송국에 딱 도착해서 계단을 올라가면 힘이 솟아요. 중계석에 앉아서 마이크 차고 준비 할 때의 그 긴장감. 해설이 제 천직이라고 느끼죠. 저는 해설위원을 정말 오래오래 하고 싶어요.

[기자] 정말 잘 맞는 옷이네요. 그렇게 시작한 해설위원, 어떤 일이 있었나요?

[김 위원] 묵묵히 해설활동 하면서 EPL도 맡게 되고, 그러니 지명도도 조금씩 오르고, 오늘 반응이 좋았다는 피드백도 받았고요 두 번째 시즌을 하다 보니 조금씩 인정을 받았어요. 그러다 2013년 8월에 2013-2014시즌 EPL 개막전 생중계를 하게 됐어요.

[기자] EPL 개막전을요. 2년차가 되셨는데 EPL 개막전 생중계를 하신 거네요?

[김 위원] 그게 아마 리버풀하고 스토크시티 경기였을거에요. 2012년 3월에 해설위원을 시작했는데 2013년 8월에 개막전을 준다는 거는 정말, 너무 가슴 뛰는 일인 거죠. 그런데 하필, 그날 중계를 하다가 갑자기 멘붕(멘탈붕괴, 당황스럽고 정신이 없음을 이르는 신조어)이 왔어요.

[기자] 그 중요한 순간에 멘붕이요? 어떤 것 때문에요?

[김 위원] 후반전에 어떤 상황에서 어떤 멘트를 했어요. 그런데, 그 멘트를 딱 하고 나서 생각 해보니까 '어, 이거 내가 이런 상황에서 맨날 하는 말인데?'라는 생각이 드는 거에요. 그러니까, 내가 지금 해설을 1년 했는데도 아직도 비슷한 상황에서 똑같은 말을 하고 있구나. 정체되었구나. 이런 생각이 들은 거죠. 스트레스가 엄청났어요. 그래서 고민한 게, 내 삶이 100% 축구로 가득 채워져야겠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할 수 있을까 고민했죠.

- 2편에서 계속됩니다.

사진=인터풋볼/김태륭 KBS 해설위원 제공

[인터풋볼] 왕찬욱 기자 reporter_1@interfootbal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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