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풋볼] 서재원 기자=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EPL)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그러나 우리가 EPL을 볼 수 있는 부분은 TV 위성 중계에 잡힌 모습이 전부다. 두 시즌동안 모 일간지 EPL 현지 통신원 역할을 수행한 필자의 경험을 통해, TV에서는 볼 수 없는 EPL 뒷이야기를 '서재원의 EPL通'에서 풀어내고자 한다.[편집자주]

지난해 12월 토트넘 홋스퍼의 홈경기장인 화이트 하트 레인을 방문했다. 3년 전 통신원 활동 중 방문할 때와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고요하게만 느껴졌던 경기장 주변은 시끌벅적했다.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었고 경기장을 들어가는 입구와 통로는 안전벽을 경계로 구불거렸다.

토트넘의 숙원이었던 새 경기장 건설. ‘노섬벌랜드 디벨로먼트 프로젝트(Northumberland Development Project)’를 통해 토트넘은 2018-19 시즌부터 6만석이 넘는 대규모 홈경기장을 갖게 된다. 이로 인해 118년 간 함께했던 화이트 하트 레인은 이번 시즌 끝으로 철거가 결정됐다.

그 역사의 마지막이 다가왔다. 이제는 기록으로만 남게 될 화이트 하트 레인의 마지막 경기. 화이트 하트 레인은 15일 오전 0시 30분(한국시간) 토트넘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2016-17 EPL 37라운드를 끝으로 문을 닫는다. 118년, 토트넘의 역사와 함께 숨을 쉰 화이트 하트 레인은 그렇게 역사 속으로 사라질 예정이다.

# 118년 전, 화이트 하트 레인의 시작

화이트 하트 레인은 영국의 수도 런던, 그 중 북쪽에 위치했다. 토트넘과 팬들 사이에선 ‘더 레인’이라는 약칭으로 불린다. 1888년에 건설돼 1889년 9월 토트넘의 홈 경기장으로 개장됐다. 토트넘이 1882년 창단됐으니, 공식적인 첫 홈 경기장이라 할 수 있다.

1889년 9월 4일 월요일. 화이트 하트 레인의 개장 첫 경기는 노츠 카운티와 친선 경기로 치러졌다. 당시 토트넘은 4-1로 승리했고, 첫 경기에는 약 5천 명의 관중이 찾았다. 그러나 주말에 치러진 퀸즈 파크 레인저스(QPR)과 서던 리그에는 1만 1천여 명의 관중이 몰렸다.

화이트 하트 레인은 영국의 여느 경기장과 마찬가지로 증축과 보수를 지속해왔다. 현재의 틀을 갖추게 된 시기는 1909년으로 영국(스코틀랜드)의 유명 건축가 아치볼드 리치(Archibald Leitch)가 설계했다. 참고로 리치는 안필드(리버풀), 하이버리(전 아스널), 크레이븐 코티지(풀럼), 구디슨 파크(에버턴), 힐스보로(셰필드), 올드 트래포드(맨유), 셀허스트 파크(C. 팰리스), 스탬포드 브릿지(첼시), 빌라파크(애스턴 빌라) 등 영국의 내놓으라하는 축구 경기장을 설계한 인물이다.

화이트 하트 레인의 규모는 점차 커졌고, 1910년대에 5만 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경기장이 됐다. 1938년 선덜랜드와 FA컵 경기에는 75,038명의 관중이 입장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이후 영국의 대표 경기장으로 사용됐다. 1948년 런던 올림픽의 축구 예선 일부가 개최되기도 했다. 그러나 1989년 힐스보로 참사 후 전 경기장 좌석제를 도입하면서 최대 관중 3만 6천명(36,284)을 수용하게 됐다.

# 화이트 하트 레인의 한계, 새 경기장의 필요성

토트넘은 100년이 넘는 역사 동안 아스널이란 북런던 라이벌에 가려져왔다. 물론 시작은 토트넘이 먼저였다. 토트넘은 1882년 홋스퍼FC라는 이름으로 창단돼 북런던에 터를 잡았다. 반면 아스널은 런던 남부에서 그 역사를 시작했고, 1910년에야 홈 경기장을 하이버리로 이전하면서 북런던에 자리하게 됐다.

이후 토트넘과 아스널의 운명은 극명히 갈리게 된다. 1919-20 시즌, 세계대전 후 5년 만에 리그가 재개되면서 토트넘은 2부로 밀려나게 된다. 반대로 아스널은 1부로 승격했다. 그 과정에서 아스널의 부정이 밝혀졌고, 이후 두 팀의 라이벌 관계는 더욱 극심해졌다.

토트넘은 1950년대 아더 로위 감독의 지휘 속에 황금기를 맞이하긴 했지만 대부분의 역사에서 아스널보다 밑에 위치했다. 특히 EPL 출범 이후 지난 시즌까지 토트넘이 아스널보다 위에 있었던 적은 1992-93시즌(토트넘 8위, 아스널10위)과 1994-95시즌(토트넘 7위, 아스널 12위)이 유일했다.

EPL의 인기는 영국을 넘어 전 세계적으로 팽창했다. 아스널은 그에 발맞춰 몸집 불리기에 나섰다. 아스널은 2006년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을 건설하면서 6만 명(60,432) 수용의 대규모 경기장을 보유하게 됐다. 이로 인해 토트넘과 아스널의 표면적 격차는 더욱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비단 이뿐만아니라 경기장 신축은 불가피한 사안이었다. 100년이 넘었기에 시설이 상당히 낙후됐기 때문. 이는 취재석만 봐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워낙 TV 중계 화면에 자주 잡히는 부분이기도 하지만, 테이블과 좌석 모두 성인 한 사람이 앉기에는 비좁기 그지 없다. 1열에 약 7개좌석씩 배치돼 있는데, 맨 끝에 앉은 사람이 나가려면 한 열 전원이 일어나야 한다. 물론 이는 단편적인 예에 불과하며, 화장실을 비롯한 대부분의 편의 시설이 영국 전통의 그것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토트넘도 도약을 위해 대규모 경기장이 필요했다. 3만 6천명 수용의 화이트 하트 레인으로는 재정적 수입에 한계가 있었다. 이에 토트넘도 2007년 화이트 하트 레인을 대신할 새 경기장을 신축하기로 결정했고 10년이 지난 지금, 그 결실을 맺게 됐다.

# 토트넘의 도약을 이끌 새 경기장, ‘뉴 화이트 하트 레인’

경기장 건설이 한창이다. 화이트 하트 레인이 철거에 들어가면, 그 속도는 더욱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 2018-19 시즌 시작에 맞춰 개장할 예정이니 이제 약 1년여 밖에 남지 않았다. 정확히 말해 1년 3개월이다.

아스널을 의식한 대규모 경기장이다. 최초 계획은 56,250석었지만 최종적으로 61,000석으로 확장이 결정됐다. 약 4억 파운드(약 5천 8백억 원)이 투자되는 대규모 프로젝트다. 이 계획에는 경기장 주변 600가구 규모의 아파트 건설도 포함돼 지역 경제 발전에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토트넘의 레비 회장은 지난 시즌 중 성명을 통해 “우리는 주변 지역을 활기가 넘치는 곳으로 만들겠다. 우리는 이곳을 레저 허브로 만들 계획이다. 단순히 EPL과 NFL에 한정된 것이 아니다. 우리의 계획에는 익스트림 스포츠 시설 등 다양한 활동들도 포함되어 있어, 주요 관광 명소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경기장 건설 계획을 설명했다.

레비 회장의 말처럼 토트넘의 새 경기장 건설은, 축구에서만 끝나는 것은 아니었다. 레비 회장은 “이를 통해 수많은 일자리가 창출되고, 10~15년 후에는 지방 자치 단체와의 협력을 통해 토트넘 경기장 주변의 교통 체계와 거주 지역도 개발, 정비될 것이다”고 지역 발전의 기대감을 표했다.

실제로 토트넘 주변은 런던의 타 지역에 비해 낙후돼 있는 것이 사실이다. 아스널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에 비해 관광객의 접근성도 떨어진다. 만약 토트넘의 계획대로 노섬벌랜드 프로젝트가 성공적이 된다면, 토트넘과 북런던 지역의 동반 성장은 충분히 기대할 요소가 크다. 

사진= 서재원 기자, 게티이미지코리아, 토트넘 홋스퍼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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