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풋볼] 서재원 기자= 한국 선수들의 활약으로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EPL)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그러나 우리가 EPL을 볼 수 있는 부분은 TV 위성 중계에 잡힌 모습이 전부다. 두 시즌동안 모 일간지 EPL 현지 통신원 역할을 수행한 필자의 경험을 통해, TV에서는 볼 수 없는 EPL 뒷이야기를 매주 '서재원의 EPL通'에서 풀어내고자 한다.[편집자주]

“우리는 과거의 실수들을 또 다시 반복했다”(아이슬란드전 패배 이후 스티븐 제라드의 영국 ‘텔레그래프’ 칼럼 중)

잉글랜드 대표팀의 결과는 또 실패였다. ‘축구종가’ 잉글랜드는 자국에서 열린 1966 월드컵 우승 이후 50년 동안 그 어떤 메이저대회에서도 우승컵을 가져오지 못했다.

잉글랜드는 지난 28일 프랑스 니스에 위치한 스타드 드 니스에서 열린 아이슬란드와의 유럽축구연맹(UEFA) 유로 2016 16강전에서 아이슬란드에 1-2 역전패를 당했다. 이 패배로 인해 잉글랜드는 유로 2016에서 물러나야 했고, 50년 만에 메이저대회 우승이란 꿈을 접어야 했다.

유로 2016 탈락으로 잉글랜드가 크나큰 충격에 빠졌다. ‘주장’ 웨인 루니를 중심으로 ‘EPL 득점왕’ 해리 케인, ‘인생역전의 주인공’ 제이미 바디 등 역대 최강의 스쿼드라 평가받으며 내심 우승 후보로까지 손꼽혔던 잉글랜드였지만, 16강 진출국 중 최약체라 평가받던 아이슬란드에 패했다.

현지 언론에선 이를 두고 ‘잉글랜드 역사상 최악의 경기’라 평가했다. 더 나아가 아이슬란드의 인구(약 33만명), 아이슬란드 선수들의 직업과 연봉, 아이슬란드의 축구 인프라, 심지어 프로축구 선수(120명)보다 많은 화산의 수(126개) 등을 거론하며 잉글랜드를 깎아 내렸다.

# ‘축구 종가’ 잉글랜드, 같은 실수의 반복

제라드의 말처럼, 잉글랜드는 과거의 실수들을 또 다시 반복했다. 잉글랜드와 메이저대회의 인연은 없었고, 1966 월드컵 이후 50년 만에 노린 우승은 실패로 끝이 났다.

항상 그랬다. ‘축구 종주국’이란 타이틀이 무색하게도 잉글랜드는 지금까지 메이저대회에서 단 하나의 우승컵 밖에 가져오지 못했다. 잉글랜드는 매번 실패를 거듭했고, 그 실패를 딛고 다시 일어서지 못했다.

물론 ‘불운’했다고도 볼 수 있다. 1986 멕시코 월드컵 8강전에선 디에고 마라도나의 ‘신의 손’ 사건으로 탈락했고, 1990 이탈리아 월드컵 4강 이탈리아전, 1998 프랑스 월드컵 16강 아르헨티나전에선 각각 승부차기에서 패하며 무릎을 꿇었다.

그러나 이는 일부분이었고, 그들의 입장에서 변명일 수 있다. 위에서 언급한 대회를 제외하곤 잉글랜드는 대부분 자신들의 실수와 무능으로 실패했고, 반복된 역사를 만들었다. 결국 잉글랜드는 어디까지나 ‘축구 종가’로 남았지, ‘챔피언’은 되지 못했다.

이번 대회에서 잉글랜드의 실패 원인을 두고 다양한 분석과 의견이 나오고 있다. 로이 호지슨 감독의 선수 기용, 전술 문제를 시작으로 잉글랜드 축구의 구조, 문화 등도 그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그중 제라드는 자신의 칼럼을 통해 ‘두려움의 문화’가 잉글랜드의 탈락 원인이라 밝혔다. 지난 50년 동안의 무관, 이에 따른 심리적 압박이 잉글랜드의 실패 원인이라는 뜻이었다.

# 두려움의 문화? 가장 큰 문제는 변화에 대한 두려움

그러나 필자가 생각하는 잉글랜드의 실패 원인은 제라드와는 다른 의미에서의 두려움이고, 그것은 바로 ‘변화에 대한 두려움’이다.

영국인들은 전통을 중시한다. 그 전통을 기반으로, 자신들과 자신들의 것에 대한 자부심은 세계 그 어느 나라보다 높다고 알려져있다. 그들이 세계 최고의 국가로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그 전통과 민족성이 있었다.

그러나 이 전통은 반대로 그들의 보수성과 고집을 뜻하기도 한다. 필자가 영국에서 거주하면서 보고 느꼈던 영국인들, 실제로 만나 이야기를 나눠본 영국인들도 그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전통을 고수하다보니 자연스레 변화와 도전에 대한 두려움이 존재했다.

잉글랜드의 축구에서도 이 보수성과 고집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잉글랜드 축구의 문제점으로 항상 지적되는 부분 중 하나가 과도한 일정과 겨울 휴식기의 부재다. 이는 잉글랜드 대표팀이 메이저대회에서 실패를 거듭할 때마다 지적되는 부분이기도 했다. EPL의 수많은 관계자들이 한 목소리를 냈음에도 그들은 자신들의 전통을 강조하며 변화를 주지 않았다. FA컵 8강전 재경기 폐지가 그들이 시도할 수 있는 가장 큰 변화였다.

지금까지의 잉글랜드 대표팀도 마찬가지였다. ‘축구 종가’라는 자부심, ‘EPL이 세계 최고’라는 생각으로 그들 스스로를 과대평가했고, 변화를 꺼려했다. 전술적으로도 4-4-2 또는 킥 앤 러시(물론 지금은 그 때에 비해 많이 진보했다 볼 수 있다) 등을 너무나도 오랫동안 고수했고, 세계 축구의 흐름에는 무관심한 반응을 보였다. 이로 인해 잉글랜드의 축구는 고립될 수밖에 없었고, 진보하지 못했다. 

감독 선임에 있어서도 상당히 보수적이었다. 2016-17 시즌을 앞둔 EPL의 경우, 20개 팀 중 무려 13팀의 감독이 비영국인일 정도로 ‘외국인 감독 선호 현상’이 강하지만, 대표팀 역사에서 외국인 감독은 스벤 고란 에릭손(2001-2006), 파비오 카펠로(2008-2012) 등 단 두 명뿐이었다.

# 호지슨 감독도 넘지 못한 ‘변화에 대한 두려움’

이번 대회에서도 잉글랜드는 변화를 두려워했다. 정확히 말해 호지슨 감독은 변화를 생각했음에도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지 못했다.

호지슨 감독이 변화를 생각했다는 것은 대회 최종 명단에서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어쩌면 그가 발표한 명단은 기존의 방식과 비교하자면, 파격적이었다고 할 수 있었다. 비록 한창 물이 오른 대니 드링크워터 등을 선발하지 않은 것은 논란이 됐지만, 예선 막바지에 대표팀에 승선한 제이미 바디, 델레 알리 등을 비롯해 예선에 1경기도 출전하지 않은 마르커스 래쉬포드가 선발된 점은 변화를 알리는 듯 했다.

그러나 호지슨 감독은 정작 본선에선 변화를 두려워했다. 예선에서 중용했던 케인과 스털링을 조별리그 두 경기 연속 신임했고, 실망스러운 경기력으로 그의 고집은 논란이 됐다. 결국 아이슬란드와의 경기에서도 바디가 아닌 케인과 스털링을 투입했고, '잉글랜드 역사상 가장 치욕적인 패배'를 당했다. 그의 선택과 고집은 실패였고, 이는 변화에 대한 두려움을 넘어서지 못한 결과였다. 

결국 잉글랜드는 이번 대회에서도 똑같은 실수를 반복했다. 지난 50년 동안 잉글랜드가 우승을 차지하지 못한 이유는 변화를 두려워했기 때문이고, 그들은 아직도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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