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풋볼=광양] 이현민 기자= 5월 5일 인천 유나이티드전(0-0 무승부)이 끝난 후 공식 기자회견에서 전남 드래곤즈 노상래 감독은 취재진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이제는 제 거취 문제를 결정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전남으로 돌아가 구단과 상의해 결정해야 할 문제지만, 개인적으로 99% 마음을 먹은 상태다. 구단과 팬 성원에 보답하지 못했고,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이다”라며 사퇴를 암시하는 발언을 했다. 

이에 전남은 오히려 우리에게 되물었다. '진짜냐?'고. 며칠 후 입장을 표했다. “아직 정해진 게 없다”고.

폭탄선언 직후 전남 사무국에는 엄청난 전화가 쏟아졌다. 이 발언과 관련해 명확한 답을 듣고 싶었기 때문이다. 전남 박세연 사장은 노상래 감독과 면담을 했다. 확고했다. 이 자리에서 박세연 사장은 “함께 하자”였다. 현 상황, 성적이 어떻든 끝까지 가자는 이야기를 건넸다. 노상래 감독 입장에서도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고심 끝에 99%가 아닌 1%를 선택했다. 물론 경솔한 측면도 있었다. 잔류를 선택하기 전까지. 사전에 교감을 나눈 게 아닌 혼자만의 생각이었다.

뭔가 변화의 조짐이 보일 것 같았다. 하지만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축 처졌다. 제주 원정에서 0-3 참패를 당했고, 야심 차게 준비한 순천 홈 이전경기에서도 전북에 1-2로 졌다. 서울 원정, 포항과 홈경기는 2연속 무승부에 그쳤다.

누구나 손에 들고 있는 건 스마트폰이다. 선수들이 이를 모를 리 없었다. 안팎에서 전남을 향한 우려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심지어 구단 직원들조차 집과 사무국만 오가는, 눈치 보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우려를 안고 15일 울산 현대를 안방으로 불러들였다. 최근 6경기 무승(3무 3패), 울산전 3연패에 빠져있었다. 게다가 순위도 12팀 중 11위(현재는 10위로 상승)였다. 울산이 3연승을 달리고 있었다. 대부분 사령탑이 인정할 만큼 울산은 극단적인 수비 전술로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고 있었다. 이에 노상래 감독은 경기 전 “충분히 이해 간다. 선제골이 승패의 열쇠가 될 것이다. 어떻게든 골문을 열어야 하지 않겠냐”고 출사표를 던졌다.

사실 의문이 갔다. 아무리 부진하다고 한들 스테보와 유고비치가 대기명단으로 빠져있었다. 전방에 배천석, 2선에 오르샤-한찬희-안용우가 나섰다. 무게감이 떨어졌다. 이는 계산된 전략이었다. 막상 뚜껑을 열자 강한 전방 압박을 통한 세찬 공격이 위력을 더했다. 전반 3분 김영욱의 강력한 슈팅이 김용대의 자책골로 연결됐다. 전반 26분 박성호에게 실점을 내줬지만, 물러서지 않았다. 전반 42분 오르샤가 상대 아크 대각에서 강력한 오른발 프리킥으로 골망을 흔들었다. 후반 16분에는 오르샤와 2대1 패스를 주고받은 양준아가 정교한 왼발 슈팅으로 승부의 마침표를 찍었다. 90분 내내 전남 특유의 압박과 공격진의 세밀함, 마무리까지 어우러지며 마침내 홈 첫 승을 신고했다.

그토록 기다리던, 홈 7경기 만에 홈 팬들에게 첫 승을 선물한 전남이다. 팬들과 함께 기쁨을 만끽하기 위해 선수단은 경기장을 돌며 인사를 건넸다. 이때 노상래 감독은 벤치에 앉아있었다. 혼자 훌쩍였다. 아니, 눈물을 흘렸다. 그간의 설움, 죄송했던 마음이 복받쳤다. 그는 90분 내내 테크니컬에어리어에서 목이 쉬어갈 정도로 선수들을 독려했다. 셔츠는 땀에 흠뻑 젖었다. 공식 기자회견에 모습을 드러낸 그는 이미 녹초였다. 승리의 모든 공을 선수들에게 돌렸다. 이내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계속 같은 말을 반복했다. 3, 4, 5를 지나 6월 중순이 되어서야 홈에서 첫 승을 맛봤다. 관중석에서 지켜본 가족들도 크게 동요하지 않았지만, 가장을 향해 박수를 보냈다.

그가 울었다는 걸 대부분 사람은 모른다. 그런데 그의 눈물은 많은 걸 의미한다. 단순히 승리, 승점 3점이 아니다. 감독도 사람이다. 상황에 따라 흔들린다. 이를 절제하고 냉정함이 필요한 자리다. 때로는 사심이 들어갈 수 있다. 뭔가 터질 것 같은 그런 선수, 계속 데리고 가는 이유이기도 하다.

노상래 감독의 가장 큰 장점이자 단점은 목적 없이 순수하고 현실에 충실하다. 그래서 때로는 손해를 보는 측면도 많다. 그저 현실에 안주하고 단기간 성과에 집착한 사령탑이 아닌, 이곳에서 선수 시절을 보냈고, 많은 사랑을 받았던 만큼 되돌려 주고픈 그런 마음이다. 팬들도 레전드를 놓치고 싶지 않은 건 매한가지다. 선수, 코치, 수석코치, 감독에 올라 누구보다 애착이 많다. 선수들은 모를 수밖에 없다. 시간이 지나면 어느 정도 느끼겠지만.

이제 단 2승 째다. 자신부터 팀을 위하고, 더 소통하겠단다. 시작이다. 전남의 질주, 늦게 터졌지만 기대된다. 예사롭지 않다.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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