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풋볼] 서재원 기자= 한국 선수들의 활약으로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EPL)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그러나 우리가 EPL을 볼 수 있는 부분은 TV 위성 중계에 잡힌 모습이 전부다. 두 시즌동안 모 일간지 EPL 현지 통신원 역할을 수행한 필자의 경험을 통해, TV에서는 볼 수 없는 EPL 뒷이야기를 매주 '서재원의 EPL通'에서 풀어내고자 한다.[편집자주]

전원 EPL 선수로 구성된 잉글랜드 대표팀은 이번 유로 2016에서 자존심을 세울 수 있을까? 그들의 성적에 EPL을 포함한 잉글랜드 프로축구리그의 운명이 달렸다.

EPL은 끝났지만, 유로 2016이 시작된다. 이번 유로 2016에는 24개국의 552명의 선수가 참가하는데, 이중 EPL은 약 20%에 해당하는 103명의 선수를 배출했다. 영국 '스카이스포츠'는 9일(한국시간) “103명의 EPL 선수들이 유로 2016에 참가한다. 유럽 리그 중 EPL이 유로 2016에 가장 많은 선수들을 내보낸다”고 보도했다.

EPL의 영향력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비록 최근 유럽대항전에서의 성적은 기대에 못 미치지만, 막대한 자금력을 보유한 EPL은 성적을 떠나 유럽 축구에 지대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었다. 잉글리시 챔피언십(2부 리그)의 선수도 31명이나 명단에 포함돼, 사실상 잉글랜드 프로축구에서 139명의 선수가 대회에 참가한다고 볼 수 있다.

독일 분데스리가는 57명을 배출해 2위를 기록했고, 이탈리아 세리에A(52명), 터키 슈퍼리그(36명), 스페인 프리메라리가(34명), 러시아 프리미어리그(32명)이 그 뒤를 이었다. 프랑스 리그앙은 챔피언십(31명)보다 적은 22명의 선수가 이번 대회에 참가한다.

# ‘100% 자국리그 출신’ 잉글랜드

그 중 잉글랜드의 명단은 유독 독특하다고 볼 수 있다. 잉글랜드 대표팀 최종 명단 23인에 포함된 인원 전원이 자국리그 출신이기 때문이다.

잉글랜드는 유로 2016에 참가하는 24개국 중 유일하게 자국리그 출신들로만 명단을 구성했다. 러시아의 경우, 분데스리가 샬케 소속의 수비수 로만 노이슈테더가 명단에 포함돼 아쉽게 이 타이틀(?)을 놓쳤다.

다른 팀들과 확연히 비교되는 부분이다. 대회 개최국이자 강력한 우승후보로 평가받는 프랑스의 경우, 자국리그 출신 선수가 5명밖에 되지 않으며, 북아일랜드, 아이슬란드, 아일랜드 등은 아예 전원 해외파 선수들로 대표팀이 꾸려졌다.

그러나 대표팀을 전원 자국리그 선수로 꾸리는 것은 잉글랜드 입장에선 특별한 경우는 아니었다. 지난 2010 남아공 월드컵과 유로 2012에서도 잉글랜드는 100% 자국리그 선수들로 나섰고,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선 프레이저 포스터(당시 셀틱)을 제외한 22명의 선수가 EPL 출신이었다.

# 국제대회와 인연 없는 잉글랜드, EPL 때문?

지금까지 줄곧 자국리그 선수들로 대표팀을 꾸려온 잉글랜드의 국제대회 성적은 그닥 좋지 못했다. ‘축구종가’를 자부하는 잉글랜드지만, 월드컵과 유로 등 메이저대회에서 그들이 우승을 차지한 때는 지난 1966년 자국에서 치러진 월드컵이 유일하다.

유로에서의 성적은 더욱 참혹하다. 지금까지 14번의 대회가 치러졌지만, 우승은 물론, 결승에 진출한 때는 단 한 번도 없었다. 역대 최고 성적은 역시 자국에서 열린 유로 1996에서의 4강이다. 당시 앨런 시어러, 테디 셰링엄, 스티브 맥마나만, 데이비드 시먼 등이 출전한 잉글랜드는 4강에서 독일을 만났고, 승부차기에서 가레스 사우스게이트(현 잉글랜드 U-20팀 감독)가 실축하며 결승행에 실패했다.

최근 유로에서의 성적도 실망스러웠다. 유로 2008에선 크로아티아, 러시아에 밀려 본선 진출에 실패했고, 지난 대회인 유로 2012에선 8강전에서 이탈리아에 무릎을 꿇었다.

국제대회에서 연이어 고배를 마시자, 잉글랜드 축구에 위기론이 불거졌다. 그리고 그 이유 중 하나가 EPL 때문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FA컵, 리그컵 등을 동시에 소화해야 하는 EPL의 살인적인 스케쥴이 선수들의 체력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견해였다.

과거 잉글랜드 대표팀을 이끌었던 감독들도 같은 주장을 펼친 바 있다. 2002 한일 월드컵과 2006 독일 월드컵에서 잉글랜드를 지휘했던 스벤 예란 에릭손 감독은 지난 2010년 영국 ‘BBC’와 인터뷰에서 “잉글랜드는 유럽에서 겨울 휴식기가 없는 유일한 나라다. 국제대회에서 잉글랜드가 부진을 겪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고 말했고,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 지휘봉을 잡았던 파비오 카펠로 감독도 2013년 인터뷰에서 “EPL에 겨울 휴식기가 없는 점은 잉글랜드 대표팀에도 악영향을 끼친다”고 주장했다.

EPL 전 현직 감독들도 이에 동의했다. 이번 시즌까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이끌었던 루이스 판 할 감독은 지난해 10월 영국 ‘텔레그라프’를 통해 “휴식기가 없는 점은 잉글랜드 축구문화 중 가장 최악인 부분이다. 이는 클럽뿐 아니라 대표팀에도 악영향을 끼친다”고 비판했고, 리버풀의 위르겐 클롭 감독도 지난해 12월 ‘BBC’와 인터뷰에서 “EPL 경기수가 줄면 잉글랜드가 유로 2016에서 우승할 수 있을 것”이라고 EPL의 일정에 문제를 지적했다.

# 변화의 움직임...유로 2016 결과가 불붙일까?

위기론이 계속되자 EPL을 비롯해 잉글랜드 프로축구(풋볼리그)도 변화의 움직임을 보였다.

잉글랜드 대표팀과 더불어 EPL 팀들이 연이어 유럽대항전에서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하자 잉글랜드 축구협회(FA)도 그동안 지켜왔던 전통을 포기했다. FA는 지난달 26일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2017 에미레이츠 FA컵 8강전에서는 재경기를 치르지 않는다. FA컵 진행방식에 대해 재검토한 결과 다음 시즌부터 8강전은 재경기가 아닌 단판 승부로 승자를 가리게 됐고, 이는 2017년 3월부터 도입된다"며 FA컵 8강전 재경기 폐지를 공식 발표했다.

그러나 FA컵 재경기 폐지가 리그 일정 축소에 도움이 될지는 미지수다. FA컵 8강전 재경기를 폐지 한다하더라도, 실질적인 경기 수는 줄어들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일각에선 경기 일정을 줄이기 위해 리그컵을 폐지한 뒤, 겨울 휴식기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계속되고 있다.

따라서 이번 유로 2016에서 잉글랜드 대표팀의 성적이 중요해졌다. 만약 잉글랜드가 이번 대회에서 조차 실망스러운 성적을 낸다면, EPL과 잉글랜드 프로축구에 대한 본질적인 문제가 다시 부각될 게, 불 보듯 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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