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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원의 EPL通] 'EPL 선배' 김두현, 후배들에게 ‘영국사람’이 되라고 한 까닭은?

[인터풋볼] 서재원 기자 = 한국 선수들의 활약으로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EPL)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그러나 우리가 EPL을 볼 수 있는 부분은 TV 위성 중계에 잡힌 모습이 전부다. 두 시즌동안 모 일간지 EPL 현지 통신원 역할을 수행한 필자의 경험을 통해, TV에서는 볼 수 없는 EPL 뒷이야기를 매주 '서재원의 EPL通'에서 풀어내고자 한다.[편집자주]

지난 칼럼에서도 잠시 소개했듯이 김두현(34, 성남FC)의 2008-09 시즌 EPL 데뷔전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기자가 한국 선수의 EPL 경기를 직접 관전했을 때, 가장 큰 인상을 남겼던 김두현의 EPL 도전. 그의 8년 전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이제 8년 전의 이야기가 됐다. 지금은 많이 잊혀졌다. 오래 전부터 축구를 보지 않은 팬이라면 김두현이 프리미어리거였다는 사실 조차 모르는 이가 많다. 그러나 그는 박지성, 이영표, 설기현, 이동국 등에 이어 5번째로 잉글랜드 땅을 밟았다. 그것도 이동국에 이어 K리그에서 EPL로 직행한 두 번째 선수였기에 그 의미가 컸다.

2008년 8월 16일, 한국인 프리미어리그 역사에 한 획을 긋는 경기가 치러졌다. 웨스트 브로미치 알비온(WBA) 소속의 김두현이 영국 런던에 위치한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에서 열린 2008-09 EPL 개막전 아스널과의 경기에 선발 출전한 것이다.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에서 김두현의 이름이 불러지는 순간, 그 감동은 기자 개인적으로도 잊을 수 없는 기억이었다.

경기 전, 경기장 앞에서 구매한 공식 ‘매치데이 프로그램(소식지)’엔 상대팀인 WBA에 대한 정보가 실려 있었고, 그 중에 김두현도 있었다. 당시 아스날은 김두현에 대해 “아시아의 폴 스콜스로 불리는 김두현은 지난 시즌 중반 성남 일화에서 WBA로 임대됐고, 여름에 55만 파운드(약 10억원)에 완전 이적했다.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 멤버로 2004 아테네 올림픽, 2006 독일 월드컵에서 활약했다”고 설명했다. 기자가 영국 축구여행을 떠났던 2008년은 김두현 때문에 더욱 특별했다.

# 김두현에게 들은 8년 전의 기억

김두현의 EPL 데뷔전은 충격 그 자체였다. 비록 그의 소속팀 WBA는 전반 4분 만에 터진 사미르 나스리(現 맨체스터 시티)의 결승골로 0-1로 패했지만 김두현 만큼은 최고의 활약을 펼쳤다. 4-4-1-1 포메이션에서 처진 스트라이커로 출전한 김두현은 경기 내내 날카로운 패스를 선보였고, 전반전엔 기습적인 왼발 슈팅으로 아스날 마누엘 알무니아 골키퍼를 깜짝 놀라게 했다. 후반 추가시간엔 마르세유 턴에 이은 스루패스로 현지 팬들에 강한 인상을 남기기도 했다. 김두현은 EPL 데뷔전임에도 전혀 긴장하지 않았고, 자신감 있는 플레이를 펼쳤다. 경기 후 영국 ‘스카이스포츠’는 김두현에 “전반전 가장 돋보였던 선수”라며 팀 내 최고 평점인 8점을 부여했다.

아스널의 팬들도 김두현의 활약에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당시 동행한 친구와 함께 아스날의 일반석에서 경기를 관전하던 기자는 김두현을 마음 놓고 응원할 순 없었다. 괜히 김두현을 응원하다, 아스널 팬들에 공격을 당하지 않을까하는 걱정이 앞섰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두현의 움직임에 움찔움찔 반응해서인지, 누가 봐도 한국 사람임이 티가 났나보다. 경기가 끝나고 경기장을 빠져나가려는데 뒤쪽에 앉아있던 아스날의 한 팬이 말을 걸었다. 그는 “WBA의 14번이 너희 나라에서 왔느냐? 그가 오늘 경기 최고였다”며 엄지손가락을 추켜올렸다. 같은 한국인으로서 그만한 감동은 또 없었다.

8년 가까이 지났지만 아직도 생생한 기억. 그렇기에 기자는 김두현을 만나 프리미어리거 시절에 대해 꼭 묻고 싶었고, 지난 16일 순천에서 전지훈련 중인 김두현과 만나 잠시 동안 그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기자가 당시 그의 개막전을 팬으로서 직접 관전했다고 말하자 김두현은 매우 반가워했고, 당시의 이야기를 하나 둘 씩 꺼냈다. 당시 전혀 긴장하지 않은 모습이었다고 말하자, 김두현은 “솔직히 나는 (개막전 때) 전혀 긴장된 부분이 없었다. 오히려 그렇게 잘하던 동료들이 아스널을 만나니까 오히려 더 긴장을 해 안타까웠다. ‘원래 이런 친구들이 아닌데’, ‘왜 이렇게 긴장을 하지’라고 생각했다”고 당시 개막전에 대해 회상했다.

김두현이 긴장을 하지 않았던 이유는 이미 챔피언십(2부 리그)를 경험했기 때문이다. 2007년 성남을 정규리그 우승(포스트시즌 준우승)에 올려놓은 김두현은 챔피언십 WBA의 부름을 받고 영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시즌 중반에 팀에 합류했지만 금세 팀에 녹아들었고, WBA의 챔피언십 우승과 EPL 승격에 기여했다. 이에 김두현은 “챔피언십(2부 리그)부터 시작해 EPL로 승격했는데, 그 과정에서 상당한 자신감을 느꼈다. 무엇보다 그 안에서 훈련하면서 ‘여기서도 잘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우선 선수들에게 신뢰를 느낄 수 있었고, 당시 토니 모브레이 감독이 나를 중심으로 전술을 짰다”며 팀의 신뢰를 한 몸에 받았던 당시를 설명했다.

# 결과적으로 실패로 끝난 EPL 도전기

시작은 좋았지만 김두현의 EPL 도전은 실패로 끝났다. 김두현이 직접 밝힌 것처럼 그는 EPL에서도 팀 내 확고한 주전 자리를 차지했다. 그러나 그의 발목을 잡은 것은 부상이었다. 2008년 9월 27일 미들즈브러 원정경기에 나선 김두현은 경기 시작과 동시에 무릎 부상으로 쓰러졌다.

그의 EPL 도전이 꼬이기 시작한 때는 그 때부터였다. 약 5주 만에 부상에서 복귀해 리버풀전에 나섰고, FA컵 번리전에서 프리킥 골을 터트렸지만 컨디션을 완전히 끌어올릴 때까진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팀은 그를 기다려줄 여유가 없었다. WBA는 계속해서 경기에서 패배했고, 강등권을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김두현은 “승격 이후 감독님과 코칭스태프들이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팀이 강등권에서 빠져나오지 못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K리그에서도 항상 최고의 자리에만 있던 김두현에게 ‘강등권’이란 단어는 생소할 수밖에 없었다. 김두현은 “동료들은 강등권에 있지만 정말 열심히 훈련했다. ‘진 것은 진 거다’는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신기했다. 패배 후 경기를 준비하는 자세, 태도 등에서 또 다른 배움을 얻었다”며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WBA가 강등권을 벗어나지 못하자 김두현의 출전 시간도 점차 줄어들었다. 결국 팀은 시즌을 리그 최하위로 마치고 다시 강등됐고, 감독은 로베르토 디 마테오 감독으로 교체됐다. 감독 교체 이후 다음 프리시즌에 김두현에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고, 국내 복귀를 선택하게 된다.

그렇게 김두현의 EPL도전은 실패로 끝났다. 하지만 그가 국내 복귀를 선택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군대문제 때문이었다. 김두현은 “군대만 없고 시간만 있었다면...”이라고 입을 열었다. 이어 “국내 복귀는 군대라는 점이 상당히 컸다. 결과적으로 실패라는 꼬리표가 붙게 됐다”며 EPL 도전이 실패로 끝나버린데 아쉬움을 드러냈다.

그러나 김두현 본인은 8년 전 EPL도전을 실패라 단정 짓지 않았다. 그는 “주변에서 모두 실패라고 말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정말 값진 시간이었고, 축구를 생각하는 폭이 넓어졌던 기회였다. 내 스스로에 대해 계속해서 생각하는 시간이었고, 그 때의 기억을 통해 축구를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는지 내 자신에게 질문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됐던 것 같다”며 EPL 도전이 현재 자신의 선수생활에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했다고 평가했다.

# 한국인 5호 프리미어리거의 조언...“영국사람이 돼라”

기자도 과거 통신원 시절 영국에서 생활했지만, 타지에서의 생활은 정말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었다. 영국 생활에 대해 김두현은 “경기를 뛰고 팀이 승승장구했다면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되고 생활적인 부분에 신경을 썼을 텐데, 나는 당시 그런 입장이 아니었다. 축구적으로 안 풀리니까 생활에서 스트레스를 받을 여유가 없었다”고 말했다.

현재 손흥민(24, 토트넘 핫스퍼), 기성용(27, 스완지 시티), 이청용(27, 크리스탈 팰리스) 등이 EPL에서 활약하고 있다. 선배로서 이들에게 조언할 부분이 없냐는 질문에 김두현은 “다른 리그로 가게 되면, 흔히 말하는 ‘용병’이 된다. 현지 선수보다 잘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다. 정말 잘해야 한다. 하지만 스스로를 ‘용병’이라고 단정 짓고 생활한다면 발전하기 힘들다. 핑계만 늘어나게 된다. 경기뿐만 아니라 생활적인 부분에서도 자신을 ‘영국사람’이라고 생각하는 편이 낫다. ‘한국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모든 것을 임하게 된다면 고립되기 마련이다”고 EPL에서의 노하우를 전했다.

김두현은 축구에 대한 ‘집중’을 강조했다. 그는 “경기가 안 풀리게 되면, 축구적인 것뿐만 아니라 주변에서 들려오는 이야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축구 이외의 것들을 신경 쓰면 한도 끝도 없다. 다른 부분을 신경 쓰지 않아야 자기만의 플레이가 나온다. 다른 것에 좌지우지되면 실패할 확률이 크다”며 후배들에게 축구에만 전념하고 집중할 것을 당부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약 팀에 가서 많은 출전시간을 보장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강등권에서 뛰다보면 아무리 공격수라도 공격적인 부분보다는 수비적으로 신경을 써야한다. WBA에서 뛰는 것과 아스널에서 뛰는 것 중 어디에서 뛰는 게 골을 더 많이 넣겠나”며 “영국에서 뛸 때, 리버풀의 스티븐 제라드, 첼시의 프랭크 램파드의 플레이에 감명 받긴 했지만, 그 동료들이 부러웠다. 좋은 선수들과 함께해야지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며 출전 시간에만 집중해 팀을 고르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신이 배울 수 있는 선수가 많은 팀에서 살아남으라고 후배들에게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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