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풋볼] 서재원 기자 = 한국 선수들의 활약으로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EPL)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그러나 우리가 EPL을 볼 수 있는 부분은 TV 위성 중계에 잡힌 모습이 전부다. 두 시즌동안 모 일간지 EPL 현지 통신원 역할을 수행한 필자의 경험을 통해, TV에서는 볼 수 없는 EPL 뒷이야기를 매주 금요일 '서재원의 EPL通'에서 풀어내고자 한다.[편집자주]

상상했던 일이 현실이 됐다. 지난 2주 동안 우리는 손흥민(23, 토트넘 홋스퍼)을 통해 희망을 봤고, 손흥민으로 웃을 수 있었다.

손흥민이 이렇게 빨리 적응할지 몰랐다. 불과 일주일전, 공식 홈 데뷔전이었던 카라바흐와의 UEFA 유로파리그 조별리그 1차전 경기에서 멀티골을 기록하더니, 지난 20일(한국시간) 크리스탈 팰리스와의 EPL 6라운드, 자신의 리그 두 번째 경기에서 데뷔골까지 터트렸다. 토트넘은 손흥민의 결승골에 힘입어 팰리스를 1-0으로 꺾고 리그 홈경기 첫 승을 기록했다.

경기 후 손흥민에 대한 극찬이 쏟아졌다. 당일 한국 포털사이트가 모두 손흥민의 기사로 도배가 됐지만, 이는 한국만의 일이 아니었다. 영국 'BBC', ‘스카이스포츠’ 등 주요 언론을 포함해 ‘미러’, ‘데일리 메일’ 등 대다수의 매체들이 손흥민의 득점 소식을 앞 다퉈 메인으로 소개했다. 특히 ‘스카이스포츠’의 경우 경기 종료 후 리뷰기사에 “토트넘의 슈퍼 ‘손’데이(Super Son-day for Spurs)"라고 말하며 손흥민에 평점 8점을 부여하고 MOM(Man of the match)로 선정했다.

이어진 아스널전은 다소 아쉬웠다. 24분밖에 소화하진 못한 손흥민은 제대로 공을 잡을 기회조차 없었고, 팀은 1-2로 패하며 16강 진출에 실패했다. 하지만 역으로 토트넘 구단과 현지 팬들에 손흥민의 선발 이유와 필요성을 증명한 경기였다. 손흥민이 없던 토트넘은 이렇다 할 기회를 잡지 못했고, 손흥민이 교체 투입되자 ‘손샤인’을 바라는 관중들의 환호가 이어졌다.

# ‘손에 SON 잡은’ 토트넘-손흥민, 환상의 짝꿍이 됐다

이보다도 궁합이 잘 맞을 수가 없다. 부푼 꿈을 안고 손흥민을 영입한 토트넘은 예상치 못한 그의 빠른 적응과 활약에 제대로 수지맞았다.

손흥민을 활용한 토트넘의 계획은 분명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빨리 진행될 줄 몰랐다. 손흥민을 영입했을 당시 만해도 토트넘은 매우 조심스러웠다. 지난 칼럼을 통해 밝혔듯이 토트넘 홍보 담당자인 사이먼 펠스테인은 손흥민의 이적 당일, 기자와 손흥민의 활용법에 대해 의견을 주고받았다.

당시 사이먼에게 토트넘의 계획에 대해 묻자 “이미 토트넘은 손흥민을 활용한 방안을 생각해왔고, 조금만 기다리면 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구체적인 내용을 밝히진 않았지만 사이먼의 말에서 묘한 자신감을 볼 수 있었다.

이후 토트넘은 그 준비 과정을 하나씩 꺼내보였다. 한국 미디어를 대상으로 한 손흥민의 공식 기자회견 및 훈련장 소개를 시작으로 공식 홈페이지, SNS 등의 한글화 작업 등을 진행했다. 최근엔 한국 팬들을 대상으로 ‘손흥민 사인 유니폼’ 증정 이벤트까지 진행 중이다. 이 사이 손흥민은 엄청난 활약을 펼쳤고, 토트넘은 한국시장 공략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현지 팬들에게 손흥민을 알리는 홍보도 놓치지 않았다. 지난주 주중에 있었던 카라바흐전에 발행된 구단 소식지, ‘매치데이 프로그램(The official matchday programme)’ 표지를 손흥민으로 장식하더니, 아스널전 발행된 소식지는 손흥민으로 도배를 해 놨다. 아스널전 발행된 소식지의 페이지수는 총 100페이지로, 이중 집중 인터뷰, 한식제공 소식, 각종 화보 등 손흥민이 나온 페이지가 15페이지가 됐다.

특히 ‘빅 인터뷰’ 코너에서 손흥민의 인터뷰만 8페이지를 차지했다. 손흥민은 이 인터뷰에서 “토트넘의 모든 부분이 마음에 든다. 꿈이 이루어졌다. 현재 리그에 더 적응해야 한다. 모든 경기에서 골을 기록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항상 골을 넣을 수 있도록 100% 최선을 다하겠다”며 팬들에게 앞으로의 활약을 약속했다.

# 손흥민의 활약에 런던에 다시 휘날린 태극기

손흥민의 팰리스전은 축구 팬들에게 잊지 못할 순간으로 남게 됐다.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짜릿함이었다.

과거 박지성(34)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퀸즈파크 레인저스(QPR)로 이적했을 때 이후 런던이 이렇게 뜨거웠던 적은 처음인 것 같다. 중계 화면에서도 토트넘 경기장 곳곳에 태극기가 보였는데, 지난해까지 런던에서 거주한 기자에게도 생소한 장면이었다.

손흥민이란 존재로 런던 한인들이 다시 EPL 경기장을 찾고 있다. 사실 지난 몇 년간 런던엔 이렇다 할 한국인 선수가 없었다. 런던 올림픽 직후, 박지성이 2012-13 시즌 QPR로 입단하면서 런던 한인들의 축구열기가 잠시 달아오르긴 했지만, 잠시 뿐이었다.

그러나 손흥민으로 그 열기가 다시 살아났다. 런던 소재의 한 대학교에서 유학생활 중인 이민곤(25, 대학생)씨는 “정말 많은 학생들이 손흥민의 경기에 관심을 갖고, 팰리스전을 보러 갔다”며 현지의 뜨거운 분위기를 전했다.

이어 “사실 주변 친구들이 손흥민의 골과 성공을 바라고 간 것은 아니다. 단순히 손흥민이란 선수를 보러갔다. 손흥민은 영국 특히 런던에서 생활하고 있는 한국인들에게 남의 나라사람의 축구가 아닌 한국인의 축구를 볼 기회를 줬다”며 손흥민의 존재 자체가 런던 한인들에게 큰 힘이 된다고 주장했다.

# ‘슈퍼 손데이’를 만든 손흥민, 진정한 문화외교관이 되길

1년 전까지 런던에서 거주했던 기자는 손흥민의 존재가 현지에 있는 한국인들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될 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사실 기자가 통신원 활동을 시작한 2012-13시즌은 ‘한국인 프리미어리거’의 암흑기라 불렸다. QPR로 이적한 박지성은 시간이 지날수록 신뢰를 잃어갔고, 스완지 시티에서 첫 시즌을 보내던 기성용도 입지가 단단하진 않았다. 당시 현지의 한인들도 EPL에 무관심해졌다.

특히 QPR에서 박지성의 실패는 충격이었다. 시즌 초반만 해도 QPR의 7번을 달고 주장완장을 찬 박지성에 모습을 보기위해 수많은 한국인들이 경기장을 방문했다. 기자도 그 열기에 놀라웠다. 한 경기에 100여명에 가까운 한국 팬들이 몰리기도 했다. 그러나 점차 박지성의 입지가 좁아졌고, 점점 경기장을 찾는 발길도 하나 둘씩 끊겨갔다.

이렇듯 한국 선수의 활약은 한인사회 분위기에 직접적 영향을 끼친다. 한국 선수의 활약에 따라 영국인들이 한국인을 대하는 분위기 자체가 달라진다. 기자는 2008-09시즌 맨체스터를 방문했을 땐 한국인이란 이유 하나로 과한 환영을 받았던 경험이 있다. 반면 2012-13시즌 런던에서, 특히 QPR에선 당당할 수 없었다. 때로는 한국인이란 이유로 현지 팬들에 무시 아닌 무시를 받아야 했다. 박지성의 잘못이 아니었지만, 그가 활약하길 누구보다 바랐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손흥민이 등장했고, 다시 런던 한인사회는 EPL이란 콘텐츠의 일부가 되고 있다. 분위기는 박지성의 맨유 시절과 비슷하다. 당시 박지성의 활약정도에 따라 한국이란 브랜드가 영국에 널리 알려졌고, 이제 손흥민이 그 바통을 이어받았다.

손흥민의 어깨가 더 무거워졌다. 어느덧 손흥민이 런던에서 한국인을 대표하는 대명사가 됐기 때문이다. 그의 활약에 따라 한국의 이미지, 한인들의 분위기가 자연스레 영향을 받게 된다. 이러한 이유로 기자 개인적으로도 손흥민의 ‘슈퍼 손데이’가 매주, 매 시즌 이어지길 바라며, 그가 성공적인 문화외교관의 역할을 해내길 기대해본다.

사진= 게티이미지코리아, 토트넘 공식 SNS, 토트넘 공식 매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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