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풋볼] 2012년은 제주유나이티드가 창단된 지 꼬박 30년이 되는 해다. 프로축구 출범이 임박했던 1982년 12월 유공 코끼리라는 이름으로 탄생했다. 국내 프로축구팀 1호는 할렐루야지만 지금은 내셔널리그팀으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어 제주유나이티드는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프로구단이다. 는 그동안 수 많은 축구 스타를 배출하고 한국 축구의 저변 확대에 힘을 써온 제주유나이티드의 발자취를 되돌아 보는 코너다.

국내 최고(最古)의 프로축구단 제주유나이티드는 1982년 12월 17일 유공 축구단이라는 명칭으로 창단됐다. 당시 전두환 대통령은 프로축구 창설에 큰 힘을 쏟고 있었다. 민주화를 요구하는 국민들의 불평불만을 분산시키기 위한 수단의 하나로 프로 스포츠를 손꼽은 그는 대기업에 프로축구단 창설을 제의했다. 하지만 유공 축구단의 창설은 한국 축구의 중흥을 위해 프로축구의 개척과 정착이 중요하다고 뜻을 모았던 유공 본사 차원의 의지가 컸다.

창단 멤버는 이종환 감독과 김정남 코치를 비롯해 당대 스타플레이어들이 총망라된 18명의 선수단으로 구성됐다. 무려 10명이 국가대표 1진 '화랑' 출신이었으며 나머지 8명도 국가대표 2진인 '충무' 또는 대학 선발 대표 출신인 그야말로 초호화 군단이었다. 홍콩 프로리그에서 활약했던 쌍둥이 링커 김강남•성남 형제가 팀의 중심을 잡았고 공격진에는 이강조, 박윤기, 황석근, 김석원 등이 포진했으며 수비에는 최경식, 최기봉, 이장수 등이 주축을 이뤘다. 골커퍼는 한양대를 졸업한 유망주 오연교가 맡았다.

유공 축구단은 전례 없는 수당 지급제를 도입해 화제를 뿌렸다. 승리 수당은 12만원, 무승부 수당은 8만원이며 득점 선수에게는 1골당 6만원, 골키퍼나 수비수가 결정적인 실점 위기를 막아내면 선방 수당으로 5만원을 지급했다. 어시스트 선수에게도 3만원의 수당이 붙었고 승부차기 대결에서 골을 성공시킨 선수에게는 2만원씩 책정했다. 프로에 대한 개념조차 명확하지 않던 당시 수당제 도입은 선수단의 사기 진작과 함께 '유공=맹공'이라는 등식을 만들어냈다.

그래서일까? 유공 축구단은 프로 원년부터 화끈한 공격력으로 위용을 떨쳤다. 1983년 슈퍼리그 원년에 26득점으로 할렐루야(28골)에 이어 최다득점 2위를 차지했다. 슈팅성공률에서는 0.159(26골/164슈팅)로 최고를 기록했다. 하지만 실점 관리(22실점)에 소홀했고 3위라는 성적으로 첫 시즌을 마감하는 아쉬움을 남겼다.

당시 유공 축구단의 강력한 라이벌은 할렐루야였다. 유이한 프로팀 간의 자존심 대결이기도 했던 양 팀의 만남은 매번 치열한 접전을 거듭했다. 1983년 5월 8일 슈퍼리그 개막전에서 할렐루야와 1-1 무승부를 거둔 유공 축구단은 이후 3차례 맞대결에서 3-3, 2-2, 2-2라는 팽팽한 스코어를 기록했다. 유공 축구단이 할렐루야를 상대로 승리를 거둔 것은 슈퍼리그가 아닌 대통령배 국제축구 진출 티켓이 걸린 일종의 장외 대결에서였다. 이날 유공 축구단은 박윤기와 신문선의 연속골로 할렐루야에 2-0 완승을 거두며 지긋지긋한 무승부 행진의 종지부를 찍고 대통령배 진출권을 획득했다.

유공 축구단의 간판 스타는 박윤기였다. 청소년대표를 거치고 서울시청에서 활약했던 박윤기는 크게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유공 축구단에서 프로 선수로 거듭나면서 빛을 보기 시작했다. 특히 박윤기는 슈퍼리그에서 9골을 터트리며 득점왕에 오르며 프로축구 원년 최고의 스타로 등극했다. 슈퍼리그 개막전에서 선제골을 뽑아내며 한국 프로축구 최초의 득점 선수가 된 박윤기는 9월 22일 국민은행과의 경기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하는 등 최고의 골잡이로 폭발적 인기를 끌었다. 스피드가 뛰어나지 않았고 체격(174cm, 64kg)도 왜소했지만 문전 앞 마무리가 기가 막혔다는 후문이다. 그를 지도했던 김정남 코치는 "드리블, 볼 컨트롤, 찬스 포착이 훌륭한 두뇌 플레이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192cm의 '꺽다리' 김용세 역시 타팀의 경계대상 1호로 손꼽힌 공격수였다. 장신임에도 스피드와 센스가 뛰어나 박윤기, 김명관과 함께 전반기 1급 선수로 선정된 유공 축구단의 보배였다. 김용세는 슈퍼리그에서 4개의 도움을 기록, 박창선(할렐루야)에 이어 도움 2위에 올랐다. 주장 이강조도 링커와 최전방 공격수를 오가며 원조 멀티 플레이어로서 명성을 떨쳤다. 특히 이강조는 최기봉과 함께 전 경기를 출장하는 기염을 토했다.

글=이경헌 에디터

사진=제주유나이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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