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풋볼] ‘택배기사’ 데이비드 베컴(38, 파리 생제르맹)의 은퇴 선언에 축구계가 술렁인 가운데 FIFA까지 이를 집중조명하고 있다.

데이비드 베컴이 16일(현지시간) 은퇴를 선언하자 같은 날 FIFA는 ‘베컴 최고의 순간 7가지’라는 제목으로 그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시절부터 은퇴까지의 일대기를 전했다.

1996년 8월

배컴은 1996/1997시즌 10번 유니폼을 입게 되었다. 그는 프리미어리그 개막전이었던 8월 17일 윔블던FC전에서 놀라운 장면을 연출했다. 경기 중 하프라인에서 골키퍼의 키를 넘기는 롱 슛을 시도했고 이것이 골대 안으로 빨려 들어간 것이다. 더욱 놀라운 점은 그가 그날 신었던 축구화가 원래 자신이 아닌 찰리 밀러를 위해 준비된 축구화였다는 점이다. 이 골로 베컴의 유명세가 시작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99년 5월

당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리그 우승을 차지하기 위해 마지막 리그전을 반드시 이겨야 했다. 토트넘을 홈으로 불러들인 경기에서 0-1로 뒤지던 전반 42분 베컴은 동점골을 성공시키더니 후반 2분에는 앤디 콜의 역전골을 이끌어 내며 2-1 역전승을 거뒀다. 결국 맨유는 승점 1점차로 리그 우승을 확정 지었다. 6일 뒤 베컴은 뉴캐슬과의 FA컵 결승전에도 나서 2-0 승리를 이끌며 FA컵 우승을 차지했다. 또한 바이에른 뮌헨과의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도 나서 승리를 이끌며 맨유의 트레블의 위업달성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2001년 10월

잉글랜드 대표팀은 2002한일월드컵 본선직행을 위해선 그리스와의 홈경기에서 최소한 비겨야만 했다. 하지만 경기는 뜻대로 흘러가지 않았고 후반 추가시간 경기 스코어는 1-2로 잉글랜드의 패색이 짙었다. 종료 직전에 잉글랜드에 프리킥 찬스가 주어졌다. 마지막 찬스. 약 28미터 지점에서 베컴이 공 앞에 섰다. 휘슬이 울리고, 베컴의 발을 떠난 공은 아름다운 궤적을 그리며 골대 상단 구석에 빨려 들어갔다. 관중들이 환호성이 울렸던 경기장은 바로 맨유의 홈 구장, 올드 트래포드였다.

2007년 6월

레알 마드리드에 있던 2007년 1월, 베컴이 연장계약을 거부하고 미국 LA갤럭시와 7월부터 시작되는 5년짜리 계약을 맺자 파비오 카펠로 감독은 그를 경기에 내보내지 않을 거라 했다. 하지만 성실하고 열심히 연습하는 그의 모습에 카펠로 감독은 2월 선발명단에 베컴을 다시 넣었다. 꾸준히 출장하던 그는 시즌 마지막 경기였던 마요르카전에도 출전하여 3-1 승리에 공헌했고, 레알은 2위 바르셀로나와 승점동률, 골득실 차에서 앞서며 간신히 프리메라리가 우승을 차지했다.

2012년 12월

지난 2011년 미국 메이저리그사커(MLS)에서 우승을 차지했던 그는 2012년 MLS 결승전을 앞두고 팀을 떠날 것이라고 발표했다. 계약기간이 남아 있었던 상황이었지만 그는 크리스마스 이후로 자신의 행선지를 밝힐 거라고 알렸고 이후 출전한 결승전에서 3-1 승리를 이끌며 2연속 MLS 우승에 큰 공헌을 했다. 결승전에서 후반 추가시간까지 뛰던 그는 경기 종료 직전 교체됐다. 그러자 경기장에 있던 수많은 관중들은 모두 기립박수를 보냈다.

2013년 1월

차기 행선지를 정하지 못했던 그는 아스널에 합류해 훈련을 같이 하기도 했다. 1월 말에 그는 파리 생제르맹으로의 이적을 깜짝 발표한다. 모두가 예상하지 못했던 행선지였기에 파장은 상당했다. 그는 파리 생제르맹으로부터 받는 모든 급여를 지역 어린이들을 위해 기부하겠다고 했다. ‘대단한’ 선수가 ‘대단한’ 행동을 한 것이다.

2013년 5월

이번 시즌, 베컴은 파리 생제르맹에서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이는 그의 인생에서 열 번째 리그 우승 타이틀이었다. 그리고 이번 우승으로 잉글랜드인으로서 처음으로 4개 나라에서 우승을 차지한 최초의 인물로 역사에 남게 되었다.

왕찬욱 기자

사진=BP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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