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풋볼] 정지훈 기자= 당한 입장에서는 억울한 ‘하이재킹’이겠지만 반대로 말하면 그냥 ‘영입 실패’다. 우선 협상권을 가지고 있었기에 영입에 있어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고 있었지만 아마추어적인 행정력과 안일한 생각으로 영입에 실패했고, 이것을 ‘치졸한 행위’ 등 원색적인 표현과 함께 ‘남 탓’을 하고 있다. 이 주인공은 바이오 영입에 실패한, K리그에서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전남 드래곤즈다.

전남은 지난 1994년 창단한 K리그 전통의 명가다. 비록 K리그1에서 우승 경력은 없지만 FA컵 3회 우승, 1997년 K리그1 준우승 등을 차지했고, 전남 지역에서 꾸준하게 사랑을 받은 클럽이다. 이런 이유로 전남이 K리그에서 차지하고 있는 비중은 꽤 크고, 2018시즌 K리그2 무대로 강등됐음에도 여전히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그런 전남이 2월 3일 K리그에서 보기 쉽지 않은 입장문을 발표했다. 아니 K리그2 무대에서 경쟁하는 한 팀을 규탄하는 ‘규탄문’이었다. 전남은 최근 프로야구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재미있게 풀어내 인기를 얻고 있는 드라마 ‘스토브리그’의 내용을 인용해 ‘신뢰와 동업자 정신을 져버린 대전하나시티즌의 비도덕적인 바이오 영입 추진을 규탄한다’면서 시민구단에서 기업구단으로 재창단한 대전하나시티즌을 직접적으로 저격했다.

# 전남이 대전을 저격한 이유, ‘바이오 하이재킹’

전남이 대전을 직접적으로 저격한 이유는 분명했다. 입장문이 나온 날 대전이 영입했던 외국인 공격수 바이오 때문이었다. 전남의 입장은 이렇다. 바이오는 지난여름 이적 시장 전남에 합류해 16경기에서 10골을 기록하며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다. 이런 이유로 ‘임대생’ 바이오는 전남 입장에서는 K리그1 승격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공격수였고, 전남은 지난 해 10월부터 바이오의 완전 영입을 자신했다.

특히 조청명 전남 대표이사는 12월 초에는 한 대학 강연에서 바이오를 완전 영입했다고 알렸고, 여러 채널을 통해 전남 팬들을 안심시켰다. 전남이 바이오 영입을 확신한 이유는 있었다. 전남은 바이오를 임대 영입하면서 원소속팀과 ‘우선협상권’을 가지고 있었고, 지난해 11월부터 원소속팀에 바이오를 완전 영입하고 싶다는 의향을 직간접적으로 밝혔다.

당시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 바이오도 한국 생활에 만족했고, 전남 역시 바이오를 원했다. 그러나 지난해 말부터 구단에 조금씩 문제가 생겼다. 2019시즌 좋지 않은 성적에 팬들은 분노했고, 구단, 수뇌부, 프런트의 입지는 자연스레 좋지 않게 흘러갔다. 여기에 구단 고위급 직원의 횡령·배임 사건이 드러나면서 문제는 더 심각해졌다.

여러 문제가 발생했다. 특히 전남은 브루노뿐만 아니라 다른 외국인 선수 닉 안셀(호주)과 계약 과정에서도 아마추어적인 행정력을 보여줬다. 전남은 지난 1월 8일 안셀과 재계약을 발표했는데 불과 12일 뒤에 경남FC가 안셀 영입을 했다고 밝혔다. 초유의 사태였다. 안셀은 애초 전남과 1+1 계약을 맺었고, 구단과 선수 모두 재계약에 동의했다. 그러나 전경준 감독은 부상과 몸상태를 이유로 들어 안셀을 동계 전지훈련에 합류시키지 않았고, 이에 반발한 안셀이 계약해지를 요구했다. 애초에 전남의 코치진은 안셀과 동행할 의지가 없었지만 구단이 재계약 과정에서 코치진의 의중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이었다.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전남은 여러 문제가 발생하자 기존 사무국장을 해임했고, 이 과정에서 구단의 많은 일들이 ‘올스톱’ 됐다. 이후 같은 모기업을 둔 포항 스틸러스의 한 직원이 새 사무국장으로 내정됐지만 가장 중요한 겨울 이적 시장에서 제대로 보낼 수 없었다.

이에 대해 K리그의 한 관계자는 “전남이 지난해 말부터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사무국장이 해임되는 과정에서 업무 공백이 심하게 일어났고, 제대로 일처리가 된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전남의 프런트 사이에서도 이런 문제를 인식하고 있고, 많은 잡음이 나오고 있다”고 전하기도 했다.

# ‘치졸한 행위’, ‘돈질’ 등 원색적인 표현...전남의 무능함만 보여준 ‘규탄문’

전남은 이번 입장문을 발표하면서 ‘치졸한 행위’, ‘돈질’ 등 원색적인 표현을 서슴지 않았다. 특히 허정무 대전 이사장, 김진형 단장 등 특정인을 직간접적으로 겨냥했고, 대전의 모기업의 기업 이념까지 언급했다.

대전 입장에서는 억울함을 넘어선 분노다. 대전도 처음 전남의 서운함을 전해 듣고 좋은 방향으로 해결하려 했고, 전남의 입장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노골적인 비난까지 감수할 이유는 전혀 없었고, 바이오 이적 과정을 보면 대전이 얼마나 전남을 배려했는지 알 수 있다. 여기에 축구 이적 시장에서 이런 ‘하이재킹’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것이고, 오히려 대전은 전남의 사정을 고려해 상당히 뒤늦게 바이오 영입전에 뛰어들었다.

자세한 이적 과정을 전하면 이렇다. 일단 우선협상권이 있는 것은 맞다. 이런 이유로 전남과 원소속팀은 지난해 11월 말 완전 이적에 합의했다. 그러나 문제는 전남이 ‘입장문’에서 밝힌 ‘공식 레터’란 합의서가 아닌 영입 의향서였다. 영입 의향서는 그야말로 두 구단의 의지가 있다는 것을 밝힌 것이지 이적에 합의됐다는 말은 아니다.

문제는 계속됐다. 당시 전남은 바이오의 완전 이적을 알렸지만 사실 합의된 것은 명확하게 없었다. 특히 전남의 내부 사정, 원소속팀과 브라질 현지 에이전트의 지분 문제 등이 명확하게 해결되지 않으면서 양 구단과 선수의 공식적인 합의문서는 차일피일 미뤄졌고, 결과적으로 전남은 의향서만 주고받은 것이었다.

사실 전남이 바이오를 완전 영입하려고 했다면 지난해 12월에도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이미 구단 간의 합의가 있었고, 선수만 적극적으로 설득해 공식적인 계약을 체결했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전남은 우선협상권에 대해 맹목적으로 믿고 있었고, 시간을 허비했다. 결국 바이오의 마음이 바뀌었고, 오히려 바이오 측에서 대전과 접촉했다. 결과적으로 바이오는 전남 완전 이적을 거절한 것이었고, 대전의 비전, 연봉 등 다양한 조건을 보고 대전 이적을 결심했다. 물론 전남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 있지만 프로의 세계에서 ‘새치기’, ‘시장질서’, ‘돈질’, ‘치졸한 행위’, ‘비도덕적’, ‘동업자 정신’ 등의 말을 꺼내는 것은 전남의 무능함을 스스로 보여준 셈이 됐다.

한 마디로 영입실패였다. 오히려 대전은 이 과정에서 전남을 배려했다. 대전은 지난 1월 창단식을 하고 바이오의 국내 에이전트를 통해 바이오의 영입 의사를 밝혔지만 전남과 협상 중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포기했다. 그러나 바이오의 현지 에이전트 쪽에서 반대로 대전에 연락이 왔다. 그 에이전트는 바이오가 대전으로 가고 싶다는 의향을 전했고, ‘전남과 그 어떤 합의도 없었고, 오퍼도 받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 과정에서 대전은 계속해서 체크를 했다. 그러나 바이오가 전남으로 이적하겠다고 계약한 것은 아무 것도 없었고, 결국 대전은 반나절 만에 이적을 마무리했다. 대전은 전남과 계약된 것이 없다는 것을 재차 확인한 후 빠르게 일처리를 했고, 곧바로 공식적인 합의서를 주고받았다. 결과적으로 대전이 바이오를 공식적으로 영입한 순간이었고, 전남 역시 법적인 절차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스스로 밝혔다.

이후 전남이 강하게 반발했다. 대전 역시 이를 인지하고 있었다. 전남은 대전에 직접적으로 연락해 항의했고, ‘동업자의 상도덕이 없다’며 아쉬움의 목소리를 전했다. 그러자 대전은 반대로 ‘선수가 전남으로 가겠다는 사인을 한 문서가 있는가?’라고 되물었고,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이에 대전은 ‘바이오가 전남에 가겠다고 하면 우리도 영입할 이유가 없다. 상식적으로 행동하라’라고 답변했다.

이 과정에서 전남은 이 이적 문제를 언론에 공표하겠다는 이야기까지 했다. 특히 대전의 허정무 이사장이 과거 전남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인물이기에 항의는 더 거세졌다. 그러자 대전의 허정무 이사장은 ‘전남의 입장을 고려해 언제까지 접촉하지 말자’면서 친정팀인 전남의 사정을 배려하기도 했다. 당연히 대전의 실무진들은 반대 의사를 표했지만 허정무 이사장은 여러 가지 사정을 고려했다.

하지만 전남의 무리한 요구는 계속됐다. 전남은 대전에 구단 명의로 바이오 영입을 포기한다는 문서를 요구했다. 두 구단 대표자들의 구두 합의도 믿지 못한 것이었고, 대전 입장에서는 무례하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결국 대전은 바이오를 영입하기로 결정했고, 빠르게 일을 진행했다. 전남이 3개월 넘게 걸린 일을 대전은 약 2주 만에 마무리한 것이다.

이에 대해 K리그 관계자는 “사실 이런 일은 이적 시장에서 비일비재하다. 과거 전남은 마그노를 놓고 이런 일이 있었다. 구두로 합의한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축구계에서 이런 일은 정말 많다. 대전 역시도 최근 진행하고 있던 한 선수가 행정 처리가 늦어져 다른 구단으로 임대를 간 것으로 알고 있다. 전남만 억울한 것이 아니다. 대전도 최근 비슷한 일이 있었고, 이것이 프로다. 이번 규탄문을 보면서 전남의 변명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했고, 인신공격이라는 생각도 들어 아쉬웠다”며 아쉬움의 목소리를 냈다.

전남은 이번 겨울 이적 시장에서 프랜차이즈 스타인 김영욱과 한찬희를 다른 팀으로 보내면서 팬들로부터 많은 비난을 받았다. 여기에 외국인 선수 이적 과정에서 여러 잡음이 발생했다. 그러나 이 모든 문제를 ‘남 탓’으로 돌릴 수 없다. 전남이 입장문에서 밝혔듯이 대전은 동업자기도 하지만 ‘경쟁자’이기도 하다. 축구를 흔히 ‘전쟁’으로 비유하는데 전쟁터에서 동업자라는 말을 꺼낼 수 있을까? 오히려 그들의 무능함을 스스로 보여준 셈이고, 이적 시장에서 ‘새치기’는 없다. 그냥 전쟁이다.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대전하나시티즌, 전남드래곤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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