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풋볼=신문로] 정지훈 기자= “수비를 하되, 볼 없이 뛰는 것보다 볼을 갖고 수비하는 방법을 고민했다. 이론적으로 우리가 공을 가지면 수비를 할 필요가 없다. 주도권을 갖기 때문이다.” K리그를 강타한 ‘병수볼’은 수비적인 고민에서 시작됐고, 김병수 감독의 확고한 축구 철학이 결국 ‘병수볼’을 만들었다.

한국프로축구연맹은 14일 오전 11시 서울 종로 신문로에 위치한 축구회관에서 2020년 1월 3주차 K리그 주간 브리핑을 열었다. 이번 주간 브리핑은 ‘2019 테크니컬 리포트 발간’을 주제로 잡았고, 지난 시즌 역대급 순위 경쟁, 병수볼 등 테크니컬 토픽, 기록 분석 등 흥미로운 점들을 소개했다.

이번 K리그 주간 브리핑에서 가장 흥미로운 주제는 역시 ‘병수볼’이었다. 강원FC는 이번 시즌 김병수 감독과 함께 세밀한 패스 축구로 인상적인 경기력을 보여줬고, K리그 팬들은 ‘병수볼’이라는 애칭까지 붙이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런 이유로 한국프로축구연맹의 경기평가위원회에서도 ‘병수볼’ 강원의 축구를 자세하게 분석했고, 다양한 기록을 소개했다.

핵심은 볼 점유율과 패스였다. 테크니컬 리포트에 나온 기록에 따르면 강원은 볼 점유율 58%, 볼을 가지고 플레이 한 시간 평균 32분 57초, 패스 시도 경기당 572회, 공격 패스 성공률 81%, 단거리 패스 경기당 139회, 중거리 패스 경기당 401회 등을 기록하며 공격 관련 팀 수치에서 모두 1위를 기록했다. 분 당 패스에서도 14.8개를 기록하며 포항(14.9)에 이어 2위를 차지했고, 패스 길이는 18.4m로 K리그1 구단에서 12위를 기록했다.

결과적으로 강원은 짧은 패스 축구로 볼을 점유했고, 최대한 볼을 가지고 플레이를 한 시간이 많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 공격적으로 패스를 시도해 높은 성공률을 자랑했고, 전체 움직임 횟수(골을 포함한 모든 종류의 슈팅, 패스, 경합, 가로채기, 드리블 등 유의미한 동작을 합친 횟수)도 1위를 차지하며 상당히 공격적인 축구를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김병수 감독은 공격보다는 수비를 강조했다. 김병수 감독은 ‘병수볼’을 정의해달라는 요청에 “출발은 수비였다”는 다소 의외의 대답을 내놨다. 이유는 이렇다. 객관적인 전력상 강원은 도전적인 축구를 시도하기 어려운 상황이었기 때문에 강등되지 않으려면 수비 조직을 견고하게 다듬어야 했다.

여기까지는 일반적인 현실 인식이다. 다만 김병수 감독의 대응책은 달랐다. 김병수 감독은 “수비를 하되, 볼 없이 뛰는 것보다 볼을 갖고 수비하는 방법을 고민했다. 이론적으로 우리가 공을 가지면 수비를 할 필요가 없다. 주도권을 갖기 때문이다. 수비진에서 볼을 소유하는 움직임이 어느 정도 이뤄지니까 그 다음에는 공격적으로 나서는 게 가능해졌다”며 자신의 철학을 설명했고, 수비를 위해 볼 점유율을 높였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네덜란드의 ‘전설’ 요한 크루이프의 축구 철학을 떠올리게 한다. 그는 “볼은 하나다. 그러니 볼을 가져야 한다”면서 점유율, 패스 축구에 대한 철학을 밝히기도 했는데 김병수 감독은 이런 크루이프의 신념에 영감을 얻은 지도자이기도 하다. 실제로 김병수 감독은 크루이프의 축구 철학을 K리그와 강원에 가져왔고, 인상적인 경기력을 보여주며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병수볼’에서 또 중요한 것은 선수들이다. 김병수 감독은 강원에 부임한 후 자신의 축구 철학에 맞는 선수들을 영입하거나, 기존 선수들에게 명확한 ‘롤’을 부여하며 강원의 축구를 발전시켰다. 대표적인 선수가 한국영과 신광훈이다. 팀 내 패스 1위 한국영(2822회), 2위 신광훈(2156회)이 ‘병수볼’을 주도했고, 패스 성공률도 각각 92%와 86%였다. 여기에 신광훈은 키패스(56회)에서도 팀 내 1위를 기록했다.

이에 대해 연맹 경기평가위원회는 “한국영을 기점으로 미드필드에서 빌드업 과정이 이뤄진 것이 주효했다”고 전했고, 이슬기 강원 코치는 “한국영이 제몫을 못했다면 공격형 미드필더가 내려와서 그를 보조해야 했을 것이고, 그러면 전력상 불필요한 소모가 생긴다. 한국영은 그런 염려를 없애주는 선수”라며 한국영을 극찬하기도 했다.

이제 ‘병수볼’은 시즌 2로 향한다. 김병수 감독은 새 시즌을 앞두고 임채민, 김승대, 고무열, 신세계, 이범수, 김영빈 등 자신의 축구에 맞는 선수들을 데려왔고, 더 업그레이드된 ‘병수볼’을 에고하고 있다. 이것이 새 시즌 강원의 축구를 기다리는 이유다.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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