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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훈의 HIS-tory] ‘154경기 출전’ 기성용은 역대 최고의 미드필더다

[인터풋볼] 세상에 사연 없는 사람은 없다. 세계적인 축구 스타들도 마찬가지. 현재는 가장 화려한 삶을 살고 있는 스타지만 모두가 꽃길만을 걸어온 것은 아니고, 시련을 이겨내 세계적인 스타로 성장한 경우가 많다. 그래서 축구 전문 언론 '인터풋볼'이 준비했다. 꼭지명은 역사를 영어로 한 'HIS-tory'. 즉 그 사람(His)의 이야기(Story)로 해석할 수 있다. 우리가 몰랐던 슈퍼스타들의 숨겨진 이야기를 독자 여러분들에게 소개한다. [편집자주]

파울루 벤투 감독이 이끄는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이 2019 아시아축구연맹(AFC) UAE 아시안컵 8강전에서 카타르에 0-1로 패했다. 이로써 한국은 4강 진출에 실패하며, 59년만의 우승 도전도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아쉬움이 남는 결과였다. 그리고 한 시대가 저물었다. 2012 런던 올림픽 동메달 신화의 주역 기성용과 구자철이 아시안컵 이후 정든 태극마크를 반납하며 사실상 ‘2012년 황금 세대’가 막을 내렸다. 기성용과 구자철은 박지성과 이영표가 은퇴한 뒤 한국 대표팀의 중심을 잡아주며 약 10년의 시간을 함께 했고, 지난 아시안컵을 마지막으로 국가대표 동반 은퇴를 발표했다.

기성용과 구자철은 마지막 메이저 대회인 2019 아시안컵에서 유종의 미를 거두지 못하며 많은 비판을 받아야 했다. 그러나 두 선수가 한국 축구에 남긴 것을 무시해서는 안 되고, 한국 축구를 위해 헌신한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런 이유로 이번 ‘정지훈의 HIS-tory'에서는 한국 축구의 ’두‘ 캡틴 기성용과 구자철의 이야기를 소개하려고 한다. 2편은 태극마크를 달고 무려 154경기를 뛴 기성용이다.

# 기성용의 등장: 당돌한 아이, 대형 미드필더의 등장을 알리다

기성용의 어린 시절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당돌한 아이’였다고 말한다. 그리고 재능과 승부욕만큼은 형들과 비교해도 절대 뒤지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만큼 어린 시절부터 실력을 인정받았고, 결국 2001년 차범근축구상 대상을 받으며 ‘대형 유망주’라는 평가를 받았다. 무엇보다 기성용의 아버지가 윤정환, 고종수 등 한국 최고의 미드필더를 키웠던 기영옥(현 광주FC 단장)이었기 때문에 기대감은 더 컸다.

기성용은 남들과 다른 길을 걸었다. 축구명문 광양제철중을 다니다가 1학년 때 호주로 축구 유학을 떠났고, 무려 4년 반 동안 호주에서 축구 선수로 성장했다. 이때 기성용은 자유로운 축구 문화를 습득했고, 영어도 배우면서 훗날 유럽 진출의 밑거름이 됐다. 호주에서 돌아온 기성용은 금호고를 졸업하고 곧바로 FC서울에 입단했다. 그야말로 센세이션했다. 2007년 FC서울의 지휘봉을 잡은 세놀 귀네슈 감독은 서울의 미래라 불리던 기성용, 이청용 등을 적극적으로 기용했고, 기성용은 믿음에 보답하며 K리그 최고의 미드필더로 성장했다. 2008시즌에는 서울의 주전 자리를 꿰찼고, 19세의 나이로 K리그 시즌 베스트11에 선정되며 K리그 최연소 베스트11 기록(1998년 고종수, 당시 20세)을 경신했다.

대표팀 발탁은 당연했다. 이미 2006년에 17세의 나이로 U-20 대표팀에 발탁됐고, 결국 2007년 국제축구연맹(FIFA) U-20 월드컵에 참가하며 주목을 받았다. 여기에 2008년에는 무려 4살을 월반해 2008 베이징 올림픽에 참가하며 모처럼 대형 미드필더가 나왔다는 찬사를 받았다. A매치 데뷔는 2008년 9월 5일 요르단전이었다. 당시 허정무 감독은 K리그와 연령별 대표팀에서 맹활약하는 기성용을 눈여겨봤고, 만 19세의 나이로 데뷔전을 치렀다. 이후 2008년 9월 10일 북한과의 월드컵 예선에서 2경기 만에 A매치 데뷔골을 기록하며 한국 축구를 책임질 미드필더가 등장했음을 알렸다.

# 기성용의 비상: 기성용이 돕고, 구자철이 넣고...한국 축구의 역사를 쓰다

기성용은 이미 20세 때부터 대표팀의 핵심 미드필더로 자리 잡았다. 허정무 감독은 박지성, 이영표가 팀의 중심을 잡고, 기성용을 중원에서 활용하며 신구조화를 이루게 했다. 이에 기성용은 2010 남아공 월드컵에 팀 내 최연소(당시 21세)로 참가해 모든 경기에 주전으로 활약했고, 김정우와 함께 대표팀의 중원을 구축하며 월드컵에서 사상 첫 원정 16강이라는 새로운 역사를 썼다. 특히 기성용은 그리스전과 나이지리아전에서 두 번의 프리킥으로 이정수의 골을 도우며 월드컵 무대에서 화려하게 데뷔했다.

2011 카타르 아시안컵에서는 ‘영혼의 단짝’ 구자철과의 호흡이 빛났다. 조광래 감독은 구자철을 공격형 미드필더로, 기성용을 수비형 미드필더로 기용했고, 기성용은 유럽 무대에서 터득한 강한 압박, 터프한 수비를 바탕으로 중원을 장악했다. 여기에 정교한 롱패스와 전진 패스를 무기로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다. 둘의 호흡은 바레인과 조별리그 1차전부터 빛났다. 구자철이 선제골을, 기성용이 도움을 기록하며 맹활약했다. 물론 기성용이 일본과의 준결승전에서 페널티킥 선제골을 넣고 일본을 도발하는 세리머니를 펼쳐 논란이 됐지만 그가 보여준 플레이는 분명 인상적이었고, 앞으로 한국 축구를 이끌어갈 ‘기(성용)-구(자철) 라인’이 탄생한 것은 분명했다.

기성용이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은 무대는 2012 런던 올림픽이었다. 구자철이 주장을 맡고, 기성용이 중원의 핵심 역할을 맡으며 홍명보호는 엄청난 기대를 받았다. 기성용의 플레이는 압도적이었다. 정교한 롱패스, 안정적인 볼 배급, 왕성한 활동량, 터프한 수비, 강력한 슈팅, 날카로운 킥 등을 바탕으로 중원을 장악했고, 무엇보다 ‘탈아시아급’ 피지컬을 보여주며 런던 올림픽 최고의 미드필더로 평가받았다.

또 한 번의 역사를 쓴 기성용이다. 기성용이 중원을 책임진 홍명보호는 승승장구하며 ‘개최국’ 영국을 8강에서 제압했고, 동메달 결정전에서 일본까지 누르며 ‘동메달 신화’를 이룩했다. 특히 기성용은 영국전에서 조 앨런, 톰 클레벌리, 애럼 램지 등 EPL 무대에서 활약하는 톱 미드필더들과 경쟁에서 밀리지 않으며 엄청난 찬사를 받았고, 승부차기에서는 마지막 키커로 나서 깔끔하게 마무리하며 4강 진출을 이끌었다. 여기에 엄청난 승부욕과 투지를 보이며 선수단을 이끌었고, 상대가 거친 파울을 범하면 물러서지 않고 맞서 싸웠다. 이후 영국 현지에서는 기성용에 대한 찬사가 이어졌고, 결국 스완지 시티로 이적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 기성용의 전성기: 여러 논란 이후 성숙해진 ‘캡틴 KI’, 슈틸리케호의 대체불가 ‘에이스’

런던 올림픽 이후 유럽 무대에서도 성공적인 커리어를 이어가던 기성용은 대표팀의 핵심이었다. 그러나 경기 외적인 문제 때문에 잦은 구설수에 올랐고, 특히 최강희 감독과 불화설을 겪으면서 이미지가 크게 하락했다. 그래도 기성용은 대표팀에 없어서 안 되는 미드필더였고, 최강희 감독에게 사과의 뜻을 전하면서 논란은 조금씩 사그라졌고, 2013년 8살 연상 ‘배우’ 한혜진과 결혼을 하면서 더욱 성숙해진 모습을 보였다.

여러 가지 의미에서 기성용에게 2014 브라질 월드컵은 매우 중요했다. 박지성과 이영표가 은퇴를 하면서 대표팀의 중심축이 기성용에게 옮겨졌고, 홍명보 감독의 절대적인 신임을 받았기 때문에 책임감이 막중했다. 여기에 여러 논란이 있었기 때문에 실력으로 잠재울 수밖에 없었다. 결과적으로 한국 대표팀은 1무 2패라는 최악의 성적으로 탈락했고, 기성용 역시 고군분투했지만 비난을 피할 수 없었다. 그러나 영국을 비롯한 유럽 언론들로부터는 좋은 평가를 받았고, 2014 월드컵에서 저평가 받은 미드필더로 꼽히기도 했다.

두 번째 월드컵에서 실패 후 기성용은 절치부심했다. 축구화 끈을 다시 동여맨 기성용은 월드컵 이후 치러진 베네수엘라, 우르과이와 A매치 2연전에서 엄청난 활약을 펼치며 자신의 클래스를 유감없이 발휘했고, 울리 슈틸리케 감독 체제에서 ‘대체 불가’ 미드필더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증명했다. 무엇보다 성숙해진 태도와 탁월한 리더십을 바탕으로 선수단을 하나로 모으는 역할을 해냈고, 결국 구자철에 이어 주장으로 임명됐다.

주장으로 참가한 첫 번째 메이저대회인 2015 호주 아시안컵에서 활약은 눈부셨다. 소속팀 스완지에서도 매 경기 출전해 제대로 쉬지 못한 상황에서 기성용은 슈틸리케호의 주장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며 ‘에이스’ 손흥민과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다. 특히 기성용은 공수 모두에서 빼어난 활약을 펼치며 ‘슈틸리케호의 전술이 곧 기성용’이라는 극찬을 받기도 했고, 결국 준우승을 이끌며 국민들의 박수를 받았다. 결과적으로 기성용은 실력으로 모든 논란을 잠재웠고, 비난을 찬사로 바꿨다.

# 기성용의 은퇴: 3번째 월드컵과 아시안컵, 기성용은 역대 최고의 미드필더다

슈틸리케호에서 기성용의 입지는 절대적이었다. 기성용이 없으면 중원 장악력이 확 떨어진다는 이야기가 나왔고, 그가 경기에 출전하면 중원에서 안정감이 넘쳤다. 특히 슈틸리케호가 고전을 거듭했던 월드컵 최종 예선에서 기성용은 구군분투하며 손흥민과 함께 대표팀을 이끌었고, 공수 모두에서 대체 불가한 미드필더였다.

주장의 품격도 남달랐다. 2016년 10월 11일에 열린 이란과의 월드컵 최종예선 A조 4차전에서 0-1로 무기력하게 패배하며 모든 비난이 대표팀을 향했다. 특히 수비진에서 아쉬움을 보이며 ‘중국화’라는 이야기가 나왔고, 설상가상으로 슈틸리케 감독은 경기 후 “안타깝게도 우리 팀에는 카타르의 소리아 같은 스트라이커가 없어서 패배했다”며 패배의 원인을 ‘선수 탓’으로 돌렸다.

그러나 기성용은 달랐다. 그는 “주장인 나부터 반성해야 한다. 팀을 잘 이끌지 못해 아쉽다”면서 “선수들이 고개를 숙일 필요는 없다. 경기가 아직 남아있고 올라갈 수 있는 기회는 있다. 포기할 필요는 없고, 고비를 넘겨야 한다. 어느 한 사람만의 책임이 아니다. 이날 패배가 감독님만 책임이 있는 것도 아니고, 선수도 책임이 있고, 전체적으로 선수단 전체가 책임이다. 누가 잘못하고 책임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선수단을 격려했다. 마지막으로 기성용은 현장에 있는 취재진을 향해 “선수들이 ‘중국화’ 이런 기사가 나오면서 많이 힘들어 했다. 비록 패배하기는 했지만 너무 안 좋은 이야기는 조금만 자제해주셨으면 좋겠다. 잘 부탁드린다”며 끝까지 선수들을 보호했다.

대표팀이 부진을 거듭하자 슈틸리케 감독이 경질되고, 신태용 감독이 소방수로 투입됐다. 하지만 기성용의 입지는 변화가 없었고, 2018 러시아 월드컵을 앞둔 11월 평가전에서 콜롬비아를 상대로 엄청난 경기력을 보여주며 ‘역시 기성용’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여기에 기성용은 2018년 6월에 열린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와 평가전에서 중앙 수비수로 선발 출격하며 A매치 100경기에 출전했고, 대한민국 선수 중 14번째로 센추리 클럽에 가입했다.

무려 3번째 월드컵이었다. 기성용은 주장 완장을 차고 2018 러시아 월드컵에 출전했고, 스웨덴, 멕시코전에서 필사적으로 뛰며 승리에 대한 의지를 보였다. 그러나 팀은 2패를 기록했고, 기성용도 멕시코전에서 부상을 당하며 독일과의 3차전을 뛰지 못했다. 이후 한국은 기성용이 없는 상황에서 당시 랭킹 1위였던 독일을 2-0으로 격파했고, 벤치에서 선수들을 격려하던 기성용은 경기 후 선수들을 한 명씩 안아주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그렇게 기성용의 마지막 월드컵이 마무리됐다.

# 기성용의 작별사: 기성용은 떠나는 순간까지 ‘한국 축구’를 걱정했다

 

사실 기성용은 2018 월드컵을 끝으로 대표팀을 떠나려고 했다. 그러나 새로 부임한 파울루 벤투 감독의 설득 끝에 2019 UAE 아시안컵까지 함께 하기로 했고, 59년 만에 우승을 통해 유종의 미를 거두려고 했다. 기성용의 경기력은 여전했다. 벤투 감독 부임 후 대표팀은 무패행진을 달렸는데 기성용은 정확한 롱패스와 노련한 경기 운영을 통해 대체 불가 자원임을 다시 한 번 증명했고, 여전히 대표팀에 필요한 선수라는 것을 보여줬다.

그러나 마지막 메이저대회였던 2019 아시안컵은 아쉬움이 가득했다. 기성용은 필리핀과의 조별리그 1차전에서 선발 출전했지만 전체적으로 몸이 무거웠고, 햄스트링 부상으로 남은 경기에 출전할 수 없게 됐다. 이에 손흥민, 황희찬, 황인범, 김진수 등 후배들은 바레인전에서 기성용을 위해 세리머니를 펼치며 축구 팬들에게 감동을 줬다. 이후 기성용은 후배들에게 고마움을 표현했고, 후배들은 기성용을 위해 우승을 약속했다. 하지만 벤투호는 카타르와 8강전에서 충격적인 패배를 당했고, 기성용의 공백을 메우지 못했다.

이것이 마지막이었다. 기성용은 아시안컵 이후 정든 태극마크를 반납했고, 구자철과 함께 동반 은퇴를 선언했다. 이후 기성용은 “2019 AFC 아시안컵을 마지막으로 국가대표라는 큰 영광과 막중한 책임을 내려놓으려고 합니다”라며 은퇴를 공식화했고, “축구인생에서 국가대표는 무엇보다 소중했습니다. 그동안 많은 사랑과 응원을 보내주신 팬 여러분께 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라고 소회를 밝혔다.

이어 기성용은 “지난 아시안컵에서 팬들의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으로 대표팀이 어려운 시기를 맞고 있지만 벤투 감독님의 지도 아래 동료들과 후배들이 힘을 모아 극복하리라 믿고 있습니다. 대표팀을 응원하는 축구팬의 한사람으로 돌아가 한국 축구가 승승장구하는 모습을 누구보다 기원하겠습니다”며 벤투호를 끝까지 응원했다.

누가 뭐래도 기성용은 한국 축구 역대 최고의 미드필더였다. 유상철, 김남일 등 위대한 중앙 미드필더들이 있었지만 기성용만큼 유럽 무대와 대표팀에서 확실한 커리어를 남긴 미드필더는 그리 많지 않다. 기록이 말해준다. 기성용은 A매치 110경기에 출전해 10골을 기록했는데, 이는 차범근(136경기), 홍명보(136경기), 이운재(133경기), 이영표(127경기), 유상철(124경기), 김호곤(124경기), 조영증(113경기)에 이어 역대 대표팀 최다 출전 기록 8위에 해당한다. 여기에 연령별 대표까지 포함하면 총 154경기에 출전해 16득점을 올렸고, 유럽 무대에서도 가장 꾸준한 활약을 펼친 미드필더다.

한 마디로 역대 최고의 미드필더다. 그리고 기성용은 떠나는 순간까지 한국 축구를 걱정했다. 기성용은 “그동안 함께 했던 모든 선배님들 친구들 그리고 후배들까지 함께해서 너무 즐거웠고 행복했습니다. 그리고 선수들이 마음껏 경기장을 누빌 수 있도록 뒤에서 묵묵히 헌신해주신 모든 지원 스태프 여러분들께도 정말 진심으로 감사 하다는 말씀 전하고 싶습니다”면서 “마지막으로 한국 축구대표팀이 2022년 월드컵 까지 잘 성장 하고 발전 할 수 있도록 많은 격려 부탁드립니다”는 말을 남긴 채 대표팀과 작별했다.

글=정지훈 기자

사진=윤경식 기자, 게티이미지, 대한축구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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