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풋볼=구리] 정지훈 기자= ‘원 클럽 맨.’ 말 그래도 한 팀에서만 뛴 선수를 말한다. K리그 등 프로 무대에서 한 팀에서만 뛴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고, 꾸준하게 기량을 유지하며 팬들에게 사랑을 받아야만 가능하다. 그만큼 ‘원 클럽 맨’이라는 단어는 특별하고, 특히 현대 축구에서 나오기 어려운 수식어가 됐다.

그런데 자신의 별명을 ‘원 클럽 맨’이라 자처하는 선수가 있다. 바로 FC서울에서만 15년 동안 뛴 ‘미드필더’ 고요한이다. 지난 2004년 토월 중학교를 중퇴하고 서울에 입단해 일찌감치 프로 무대에 진출한 어린 소년이 이제는 서울의 살아있는 레전드로 불리고 있고, K리그를 대표하는 ‘원 클럽 맨’으로 자리 잡았다.

그동안 고요한은 서울에서 주연이 아닌 조연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달라졌다. 그 누구보다 서울에서 빛나고 있고, 그 누구보다 서울 팬들에게 사랑을 받는 선수가 됐다. 어느 덧 서울에서만 15년. ‘원 클럽 맨’ 고요한의 꿈은 무엇일까?

-어느덧 서울에서만 15년이다. 이제는 서울의 레전드라는 말이 잘 어울린다. 돌아보면?

우스갯소리로 아내에게 이제는 눈감고도 출퇴근을 할 수 있다고 했다.(웃음) 어렸을 때 서울에 와서 좋은 선수로 성장할 수 있었다. 서울이라는 팀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저한테는 특별하고, 남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서울에서 더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고, 많은 도움을 받았기 때문에 골도 많이 넣고 싶다. 그러나 선수들마다 역할이 있다. 팀이 필요로 하는 선수가 되고 싶고, 그렇게 성장하고 싶다.

-이제 서울 외에는 다른 팀을 생각할 수 없지 않나?

사실 국내에서는 서울 말고는 생각할 수 없다. 벗어날 수 없다. (Q. 왜 국내라는 한정이 붙나?) 네? 아니다. 외국은 갈 수가 없다.(웃음) 그냥 K리그만 보면 전북 현대가 워낙 강하고, 울산 현대가 강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더 좋은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지금은 이런 것만 생각하고 있다.

-당연히 서울에서 은퇴를 꿈꿀 것 같다

그렇다. 제 목표가 처음에는 서울에서 20년을 함께 하는 것이었다. 계속 노력하다 보니 이제 4~5년 남았다. 계속 좋은 모습을 보인다면 서울에서 은퇴식을 해주지 않을까?

-근데 특별한 별명이 없다. 서운하지 않나?

별명이 없다고 서운하지는 않다. 이제는 정해져있다. ‘원 클럽 맨’이라는 인식이 강하고, 팬들도 기억해주시는 것 같다. 이 기억 속에서 좋은 선수로 남는 것이 제 임무다.

-이청용, 기성용, 고명진 등과 서울의 전성기를 함께 했다. 기억에 남는 선수가 있다면?

사실 워낙 좋은 선수들이 많았다. 청용이도 기억에 남는다. 어렸을 때 청소년 대표에서 많이 마주친 선수는 아니었다. 갑자기 훅 들어왔는데 너무 잘했다. 우리 팀에 온다는 소식을 듣고 기뻤다. 함께 해보니 축구를 정말 잘했다. 축구 지능이 워낙 좋은 선수고, 신체조건도 좋았다. 사실 주영이형도 기억에 남는다. 워낙 많은 관심을 받을 때 우리 팀에 입단했다. 거의 신드롬이었다. 사실 조금 신기하기도 했고, 속으로는 얼마나 잘하겠어? 라는 생각이 있었다. 어차피 한국 선수인데...그런데 와서 훈련을 해보니 깜짝 놀랐다. 스피드, 드리블, 헤더, 점프력, 득점력 등 모든 것을 갖춘 선수였다. 이런 선수들과 함께 하면서 저도 성장할 수 있었다.

-박주영을 직접 보면서 천재라는 생각이 들었나?

그렇다. 두말하면 입이 아프다. 처음 봤을 때 워낙 잘하는 선수였다. (Q. 그럼 이제는 조금 만만해졌는가? 최근에 화도 내던데?) 하하. 아니다. 만만해진 것은 절대 아니다. 서울에서 오래 함께 했고, 많이 편해졌다. 예전에는 말도 붙이기 어려웠고, 어려운 선배였다. 지금은 주영이형이랑 많은 이야기도 하고, 조언도 많이 해준다. 편해진 것이다. 절대 만만해진 것이 아니다.(웃음) 화를 낸 것도 아니다.

-개인적으로 친한 선수가 궁금하다

개인적으로는 또래인 이웅희랑 가깝게 지내고 있다. 후배로는 윤주태랑 친하게 지내고 있다. 웅희랑 주태는 군 복무를 마치고 왔는데 그 친구들이 힘들 때 많은 이야기를 한 것 같다. 2018년 힘들 때도 이 친구들과 버틴 것 같다. 우리 팀은 훈련을 하고, 삼삼오오 모여서 같이 식사를 한다. (Q. 박주영의 맛집 탐방이 팬들 사이에서 화제다) 워낙 주영이형이 맛집을 많이 알고, 후배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사준다. 몸에 좋은 것을 사준다. 선수들이 많이 따를 수밖에 없다.

# FC서울의 감독을 꿈꾸는 고요한, 그가 말하는 ‘은사’ 최용수 감독

고요한의 인터뷰를 하고 있는 도중 최용수 감독이 ‘슥’ 지나갔다. 그러면서 최용수 감독은 고요한을 보며 ‘확.마. 또 자기 자랑하는구만...’이라면서 익숙한 비속어를 무심하게 던졌다. 고요한은 웃었고, 그런 고요한을 보면서 최용수 감독도 웃었다. 말은 거칠었지만 서로를 향한 애정이 느껴졌고, 서로에 대한 믿음이 숨어 있었다.

최용수 감독에게도 고요한은 특별한 제자다. 2006년 최용수 감독이 K리그 무대로 복귀했을 때 고요한은 신입생이었고, 당시 최용수 감독은 엄청난 스타플레이어였다. 이후 최용수 감독은 플레잉 코치, 수석 코치, 감독 대행을 거쳐 2011년 정식 감독이 됐다. 최용수 감독은 고요한을 적재적소에 활용하며 서울의 전성기를 이끌었고, 이 가운데 고요한은 다양한 포지션에서 제몫을 해주며 서울의 소금 같은 역할을 했다.

이제 최용수 감독과 고요한은 다시 한 번 서울의 전성기를 꿈꾸고 있다. 고요한의 위상은 이전과 많이 달라졌다. 더 이상 조연이 아니고, 빛나는 주연이다. 그러나 최용수 감독은 고요한에게 여전히 ‘겸손’을 강조하고 있고, 조연이 돼서 더욱 빛났으면 하는 마음을 전했다. 그렇다면 고요한에게 최용수 감독은 어떤 의미일까?

-최용수 감독도 빼놓을 수 없다. 어떤 감독인가?

제가 프로에서 경기를 많이 뛰게 된 것도 감독님 덕분이고, 그 시절에 주전으로 올라설 수 있었던 것 같다. 전성기를 함께 했다. 감독님이 제가 더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계셨기 때문에 더 강하게 채찍질을 하신 것 같다. 감독님과 함께 하면서 매해 발전할 것 같다. 정말 감사하다.

-어떤 조언이 기억에 남나?

감독님께서 주연이 되지 말고, 조연이 되라고 하셨다. 더 빛날 수 있다고 하셨고, 조연 역할을 충실히 하면 나중에 다 가져갈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사실 아직도 조연이 되라고 말씀하신다.

-아니, 이제 최용수 감독이 있을 때와는 위상이 많이 달라졌다. 당당하게 주연이 되고 싶다고 표현해봤나?

아니다. 저는 주연이 아니다. 2018년에는 공격 포인트가 많았지만 얻어걸린 것이 더 많다. 저는 앞으로도 조연 역할을 할 것이다. 그렇게 해야만 서울이 발전할 수 있고, 제 스타일도 조연이 맞다. 지금도 감독님께서 겸손하게 하라고 말씀하신다.

-최용수 감독은 서울의 레전드다. 처음에는 다가가기 힘들었을 것 같다

제가 서울 1년 차 때는 선수였고, 이후에는 플레이 코치도 하셨다. 사실 그때는 말도 걸지 못했다. 무서웠다. 가끔 간식 사먹으라고 용돈도 주셨던 것 같다. (Q. 족발 심부름은 없었나?) 없었다. 제가 너무 어렸다. 다가가기 너무 어려웠다. 주영이형도 어려웠는데 감독님은 더 어려웠다.

-최용수 감독이 고요한에게 애정이 많은 것 같다. 애정이 담긴 욕설도 화제가 됐는데

방금도 인터뷰를 하는데 그 표현 그대로 하셨다.(웃음) 아무래도 오래 함께 하다 보니 편해진 것 같다. 사실 제가 감독님의 제자다. 저도 감독님과 함께 하면서 발전했다. 앞으로도 함께 성장했으면 좋겠다. 그래도 돌아오고 나서 많이 부드러워졌다. 스윗하시다.

-최용수 감독이 오고 나서 분위기는 달라졌다

사실 성적이 안 나오면 감독님도, 선수들도 예민해질 수밖에 없다. 특히 모든 것을 책임지는 감독님은 더 그렇다. 감독님께서 오시고 기강을 확실하게 잡아주시고 있고, 풀어주실 때는 확실하게 풀어주신다. 그런 것을 잘하시는 것 같다. 사실 감독님이 중국으로 떠나시고 나서 선수들 사이에서는 ‘감독님이 정말 밀당을 잘하시는구나’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고요한의 롤모델이 정말 갑자기 궁금해졌다. 꼭 최용수 감독이라고 말을 하지 않아도 좋다

국내에서는 박지성 선배가 롤 모델이다. 저도 신체조건이 좋지 않지만 많은 활동량을 가져가는 선수다. 주연보다는 조연이 어울리는 선수다. 박지성 선배가 롤 모델이었다. 팀을 위해 많이 뛰면서도 공격 포인트도 만들 수 있는 선수다. 공격 포지션에서 뛰지만 수비형으로 뛰는 선수가 바로 박지성 선배다. 경기를 보면서 롤 모델로 삼았다. 경기 영상을 정말 많이 봤다.

-최용수 감독과 오랜 시간 함께 했는데 고요한의 위치가 과거와는 달라졌다. 한 마디 하고 싶은 게 있다면?

(웃음) 사실 감독님이 오셔서 저한테 ‘네가 우리 팀 최다 득점자라며?’고 어색하게 말씀하셨다. 그러시더니 ‘나는 이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 저도 조금 욕심을 부리면 골을 넣을 수 있는 선수라는 것을 말하고 싶다. 그리고 많은 골은 아니지만 감독님이 계셨을 때도 중요한 골을 넣었다. 믿고 기용해주셨으면 좋겠다. 그리고 잘 따르겠다.(웃음)

-고요한에게 서울이란?

너무 할 말이 많다. 서울은 가족이다. 가족 같은 팀이다. 솔직하게 부모님 밑에서 성장해 결혼도 했다. 물론 아내도 있고, 아이도 있고, 제 가족이 있다. 그러나 축구 선수로 보면 서울에서 성장했고, 명성을 얻었다. 서울에서 결혼도 해 아이까지 얻었다. 모든 것을 서울에서 함께 했다. 이제는 가족이다. 이곳에서 더 발전하고 싶다. 어떻게 보면 가족들보다 더 이곳에 오랜 시간 함께 한다.

-서울에서 감독의 꿈?

지도자 자격증을 따려고 준비는 했다. 올해 들어가려고 했는데 승강 플레이오프 때문에 들어가지 못했다. 2019년에는 지도자 자격증을 따려고 한다. 언젠가는 서울에서 감독을 하는 꿈도 꾸고 있다.

-고요한의 전성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을까?

오히려 나이를 먹어가면서 조금씩 축구에 대한 눈이 떠진 것 같다. 여기서 조금 더 떠서 진짜 전성기를 맞이하고 싶다. 아직 오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체력 관리다. 젊었을 때는 잘 먹고 잘 자면 체력이 회복됐는데 이제는 관리를 해야 한다. 약도 잘 안 챙겨 먹었는데 이제는 먹는다.(웃음) 확실히 30대는 다르다.

사진=윤경식 기자, FC서울, 한국프로축구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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