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풋볼=구리] 정지훈 기자= 어느 덧 FC서울 15년 차 베테랑이 됐다. 지난 2004년 토월 중학교를 중퇴하고 서울에 입단해 일찌감치 프로 무대에 진출한 어린 소년이 이제는 서울의 살아있는 레전드로 불리고 있고, K리그를 대표하는 ‘원 클럽 맨’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고요한에게 2018년은 천국과 지옥을 오간 해였다. 개인적으로는 2018 러시아 월드컵에 출전하며 최고의 순간을 맞이했지만 소속팀 서울은 구단 역사상 처음으로 하위 스플릿으로 내려간 것도 모자라 승강 플레이오프까지 치르는 굴욕을 맛봐야 했다. 결과적으로 부산 아이파크를 제압하고, K리그1에 잔류했지만 K리그의 명문 클럽이라 자부했던 서울의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은 해였다.

서울에서만 15년을 뛴 고요한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동안 고요한은 서울의 ‘검붉은’ 유니폼을 입고 3번의 K리그 우승(2010, 2012, 2016), FA컵 우승(2015), 2번의 리그컵 우승(2006, 2010),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준우승(2013) 등을 차지하며 서울의 전성기를 누렸다. 그만큼 고요한에게 2018년 서울의 모습은 낯설었고, 더욱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그래도 고요한이 있었기 때문에 버틸 수 있었다. 서울의 상황은 최악이었지만 고요한 만큼은 투혼을 발휘하며 서울 선수단을 진두지휘했고, 그라운드에서 그 누구보다 헌신하며 서울이 최악의 상황으로 가는 것을 막았다.

이제는 많은 것이 달라져야 한다. 다시 한 번 서울이 전성기의 모습을 찾으려면 많은 것이 바뀌어야 한다. 고요한도 이를 잘 알고 있었고, 최용수 감독과 함께 서울의 부활을 꿈꾸고 있었다.

# 최악을 경험했던 2018년의 FC서울

-2018년에 많은 일들이 있었다. 휴식기 동안 어떻게 지냈는가?

올 한해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많이 힘들었다. 부모님도 찾아뵙고, 개인적으로 충전의 시간을 가졌다.

-최악과 최상을 모두 경험한 2018년이다. 서울은 부진했지만 개인적으로는 ‘커리어 하이’를 찍었는데

2018년을 돌아보면 개인적으로는 어떤 해와도 바꿀 수 없다. 국가대표로 월드컵에 출전하며 개인적인 꿈을 이뤘고, 프로 선수로서 두 자릿수 공격 포인트도 기록했다. 그러나 2018년을 준비하면서 리그 우승과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진출을 목표로 했는데 이루지 못했다. 개인적인 목표는 반 정도 이룬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정말 좋은 한해였지만 팀 적으로 봤을 때는 많이 부족한 한 해였다.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한다.

-최악이라는 표현이 잘 맞는다. 서울의 2018년을 돌아보면?

서울이 항상 시즌 초반에는 부진했다. 슬로우 스타터다. 지난 시즌 초반도 부진했는데 선수들은 당연하게 올라갈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괜찮다는 생각으로 안일했다. 계속해서 힘든 경기를 치렀고, 생각하지도 못한 하위 스플릿을 경험했다. 마지막 두 경기 중에 한 경기만 비겼어도 승강 플레이오프를 경험하지 않아도 됐다. 경험하지 않았어야 할 경기였다. 그래도 떨어지지 않아 다행이고, 이런 경험들이 약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월드컵 이후 ‘초사이어인’으로 변신하며 개인적으로는 좋았는데 서울은 계속 부진했다. 그때 선수단의 분위기는?

개인적으로 느꼈을 때 월드컵 가기 전에는 ‘괜찮다’는 분위기가 있었는데 월드컵 이후에도 계속 부진하자 선수단의 분위기 처져있었고, 불안감 속에서 경기를 했다. 끝도 없이 빠져들어 갔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경기를 치르다보니 경기력이 좋지 않았다.

-서울에서 오래 뛰며 이제는 ‘고참’ 선수가 됐다. 어떤 말을 해주었는가?

경기장에서 선수들에게 고함도 치고, 어린 선수들에게 여러 이야기를 해줬다. 사실 제가 아는 서울은 이런 팀이 아니었다. 답답한 마음은 제가 더 컸을 것이다. 저 역시 화도 많이 났고, 선수들을 다그치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어린 선수들은 기가 더 많이 죽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나중에는 어떤 말보다는 많이 뛰고 그라운드에서 보여주고 싶었다.

-서울의 전성기 때와 지금의 역할은 많이 다르다

서울이 전성기 때는 사실 제 역할이 수비적이었고, 윙백에서도 뛰었다. 저는 많이 뛰면서 볼을 가로채 연결만 하면 위에서 데얀, 몰리나 등 워낙 좋은 선수들이 알아서 해결해줬다. 그때는 별 생각 없이 경기를 뛰었는데 이제는 부담이 많이 된다. 경기장에서 솔선수범하려고 노력했고, 공격 포인트도 욕심을 냈다. 경기장에서 보여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부담이나 책임감이 없다면 거짓말이다. 자신감은 있었지만 후반기를 갈수록 저도 위축이 됐다.

-답답함도 있었던 것 같다. 경기장에서 화를 내는 모습은 처음 봤는데

정말 답답했다. 전성기 때는 축구다운 축구를 했는데 지금은 10개 중에 한 두 개만 잘했다. 경기력적인 측면에서 많이 답답했고, 화도 났다. 그럴 때마다 팀을 위해 희생하려고 했다. 이제는 받쳐주는 역할이 아닌, 이끌어야 하는 역할이었다.

# 황선홍, 이을용 그리고 최용수, 가까스로 살아남은 서울

 

서울은 이번 시즌을 앞두고 대대적인 리빌딩을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데얀, 오스마르, 윤일록, 김치우 등 핵심 선수들이 대거 빠지고, 에반드로, 안델손, 김성준, 정현철 등 새로운 선수들이 들어오면서 완전하게 새로운 팀이 됐다. 황선홍 감독은 자신감을 가지고 리빌딩을 진행했지만 서울의 색깔을 확 바꾸는 것은 어려웠고, 오히려 이것이 독이 되며 시즌 초반부터 아쉬움을 남겼다.

최악을 향해 갔다. 서울은 황선홍 감독 체제에서 리그 9위까지 내려갔고, 결국 경질이라는 칼을 꺼낼 수밖에 없었다. 일단 서울은 급한 불을 끄기 위해 서울을 잘 아는 지도자가 필요했고, 강력한 리더십을 가진 한국 축구의 전설 이을용 감독 대행에게 지휘봉을 맡기며 반전을 노렸다.

그러나 반전은 없었다. 경기력은 살아났지만 계속해서 결과를 만들지 못했고, 10월 6일 전남전에서도 패배하며 9경기 연속 무승이라는 최악의 성적표를 받아들어야 했다. 이에 서울은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 했고, 서울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독수리’ 최용수 감독을 소방수로 투입하는 승부수를 던졌다.

확실히 팀 분위기는 살아났다. 하지만 한 번 침체된 분위기는 쉽게 회복되지 않았고, 최용수 감독이 돌아왔음에도 결과를 만들지 못했다. 특히 마지막 두 경기를 남겨둔 상황에서 무승부만 거둬도 잔류에 성공하는 상황이었지만 인천, 상주에 연달아 패배하며 사상 첫 승강 플레이오프라는 굴욕을 맛봤다.

그래도 살아남았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었던 최용수 감독과 서울의 선수단은 최악을 피하기 위해 싸웠고, 결국 부산과 승강 플레이오프에서 1승 1무로 승리를 거두며 잔류에 성공했다. 이 과정에서 팀을 이끌었던 선수는 ‘캡틴’ 고요한이었고, 1차전에서 결승골을 터뜨리며 서울의 잔류를 이끌었다.

고요한은 2018년 12월을 잊지 못했다. 서울이라는 구단에 어울리지 않은 12월, 한 겨울의 경기였고, 그만큼 서울의 겨울은 유독 혹독했다.

-시즌 초반 황선홍 감독 체제에서 리빌딩을 시도했다. 이 과정에서 데얀, 오스마르, 윤일록 등 핵심 선수들이 떠났는데

사실 선수들이 잘해서 더 좋은 곳으로 가면 응원을 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사실 많은 선수들이 떠났고, 좋은 선수들이 떠났기 때문에 걱정은 됐다. 물론 김성준 등 좋은 선수들이 들어왔지만 새로 들어온 선수들이 부상으로 나오지 못하는 상황도 있었다. 시즌 초반 전력에 대해 걱정은 있었다.

-개인적으로 푸른 데얀을 보면서 어땠나?

사실 잘 안 어울렸다.(웃음) 데얀이 수원으로 가면서 우리 팬들이 실망도 많이 하셨고, 그런 상황에서 슈퍼매치를 해야 했다. 데얀에게 골을 먹지 않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러나 역시 데얀은 킬러 본능이 있었고, 우리를 상대로 득점도 기록했다. K리그에 하나의 스토리가 생겼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고 넘겼다. 물론 마음은 아팠지만...

-한 시즌에 3명의 감독을 경험했다. 흔치 않은 경험이었을 것 같다. 어려움은 없었나?

축구를 하면서 처음 경험했다. 황선홍 감독님이 원하시는 축구를 하다가, 중간에는 이을용 감독님의 스타일에 맞춰야 했다. 그럼에도 분위기가 살지 않아 최용수 감독님이 오셨다. 제 개인적으로는 최용수 감독님이랑 오래 했기 때문에 편하다. 감독님이 카리스마가 있으시기 때문에 경기장에서 제 플레이에 집중할 수 있었다.

-황선홍 감독 체제에서 왼쪽 측면 공격수로 뛰다가, 이을용 감독 체제에서는 중앙 미드필더로 뛰기도 했다. 혼선이 있었을 것 같다. 솔직한 생각이 궁금하다

당연히 혼선이 있었다. 그래도 어렸을 때부터 여러 포지션을 뛰었던 것이 장점이 된 것 같다. 팀 적으로 봤을 때는 장점이 될 수 있지만 개인적으로 봤을 때는 아쉬운 면도 있다. 안 좋게 보면 스페셜함이 사라진다는 생각도 있다. 특히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는 단점이 확 드러난다. 저도 계속 고민하고 있다. 여러 포지션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지 못하면 살아남지 못할 수도 있다는 고민이 있다.

-어디가 제일 편한가?

사이드는 다 편하다. 아무래도 최근에는 공격적으로 뛰는 것이 편하다. 윙백도 볼 수 있지만 윙백은 워낙 활동량이 많아야 한다. 젊은 친구들이 있으니 이제는 공격적으로 뛰고 싶다.(웃음)

-돌아보면 서울의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이었나? 옆에 앉아 있는 프런트의 눈치는 안 봐도 된다

(웃음) 사실 문제는 선수들한테 있는 것 같다. 여러 감독님이 오셨는데 제가 봤을 때는 선수들이 부족했던 것 같다. 누가 오셨더라도 힘들었을 것 같다. 선수들이 준비가 되지 않았다. 선수들이 준비를 잘했으면 좋은 결과가 나왔을 것 같다.

-이번 시즌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을 꼽아준다면?

제일 기억에 남는 것은 승강 플레이오프다.

-아무래도 승강 PO 1차전이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부산 원정에서 결승골을 뽑았다. 당시 기억은?

선수들도 그렇고, 제 개인적으로도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팀 분위기도 좋지 않았다. 경기를 딱 시작했는데 부산 선수들의 컨디션이 좋다고 느껴졌다. 그 정도일지는 몰랐는데 막상 해보니 힘들었고, 기세가 있었다. 상당히 역동적이었고, 파이팅이 있었다. 솔직하게 많이 당황했던 것 같고, 선제골을 내줬다. 사실 속으로는 힘들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경기를 하다 보니 우리가 페이스를 찾았고, 상대의 퇴장 변수가 나오면서 우리가 경기를 편하게 했다. 사실 10명을 상대해도 골을 넣는 것이 쉽지 않다. 3골까지 넣고 나서는 편하게 2차전을 맞이했다. 1차전이 이번 시즌 가장 기억에 남는다. 개인적으로도 골을 넣고 싶었다. 하늘이 도왔다고 생각하고, 우주의 기운이 몰렸다고 생각한다. 솔직하게 경기가 다 끝나고 팬들이 제이름을 불러주셨는데 감사하면서도 죄송한 마음이 컸다.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렸다. 정말 올해는 팬들에게 죄송한 마음이 크다.

-서울 팬들의 고요한 콜을 알고 있나? 올해 8골 4도움으로 팀 내 최다 득점이자, 최다 공격 포인트다. 많은 콜을 들었는데 어땠나?

개인적으로는 골을 넣고 승리할 수 있어서 기뻤지만 팀 적으로 봤을 때는 제가 득점을 많이 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저보다는 다른 선수들이 주목받아야 한다. 아쉬움이 남았다. 팬 분들도 제가 아닌 다른 공격수들이 잘했으면 했을 것이다. 죄송한 마음이 크다.

# 30세가 되고 나서 한 단계 더 성장한 고요한, 2018 월드컵을 이야기하다

사실 고요한의 축구 인생은 주연보다는 조연에 가까웠다. 서울이 전성기를 누리던 시절에 주전 선수였지만 데얀, 몰리나, 박주영, 차두리 등 스타플레이어들을 지원 사격하는 역할이었고, 왕성한 활동량과 투쟁심을 바탕으로 헌신의 아이콘으로 통했다.

그러나 2018년은 달랐다. 지난 2017년부터 서울의 에이스로 자리 잡은 고요한은 서울의 공격을 진두지휘하며 서울이 부진에 빠졌을 때도 제몫을 해주며 팬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았다. 그동안 고요한이 조연이었다면 2017년과 2018년에는 확실한 주연으로 올라섰고, 리그에서 8골 4도움을 기록하며 팀 내 최다 득점자이자, 최다 공격 포인트를 만든 선수로 이름을 올렸다.

국가대표로도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특히 2017년 11월 10일 콜롬비아와 평가전에서 상대팀의 에이스인 하메스 로드리게스를 꽁꽁 묶으며 주목받았고, 이후 12월에 열린 동아시안컵에서도 우승의 주역이 됐다. 자연스레 신태용 감독은 고요한을 2018 러시아 월드컵 대표로 선발했고, 독일전에서 교체 출전하며 월드컵이라는 꿈의 무대를 밟았다.

고요한에게는 꿈같은 시간이었다. 비록 서울의 시즌은 아쉬웠지만 고요한 개인에게 2018년은 최고의 한 해였고, 축구 선수로서 경험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경험한 한 해였다.

-고요한의 2018년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월드컵이다

사실 제가 월드컵이라는 큰 대회를 꿈은 꿨지만 기대는 하지 않았던 선수다. 국가대표에서 꾸준히 활약했던 선수가 아니었기 때문에 사실 생각은 하지 않았다. 신태용 감독님이 처음으로 불러주셨을 때 첫 도전이라는 생각을 했고, 열심히 준비했다. 그래서 기회를 주신 것 같다.

-월드컵을 앞둔 콜롬비아전이 인상 깊었다. 특히 하메스를 꽁꽁 묶었는데?

네. 아무래도 그 경기가 가장 기억에 남고, 월드컵에 대한 마음을 조금이나가 가질 수 있게 됐다. 신태용 감독님께서 중앙 미드필더로 기용하셨고, 하메스를 막으라는 지시를 했다. 월드컵을 가기 위해 제 장점을 보여준 경기였다.

-그러나 이후 월드컵 조별리그 1,2차전에 출전하지 못했다

선수로서는 월드컵 무대에 뛰고 싶었다. 정말 열심히 잘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감독님께서 선수기용에 대한 생각이 확고하셨고, 새로운 전술로 스웨덴을 상대했다. 저는 계속 경기를 준비하면서 기회를 기다렸다.

-한국이 1,2차전을 모두 패배했는데...내가 뛰었으면 하는 생각은 없었나?

저도 저에 대한 기사를 많이 봤다. 기자 분들 중에서는 제가 뛰어야 한다는 기사를 내주시기도 했다. 내심 저도 기대는 했고, 기회가 오면 잘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사실 선수들이 멕시코전에는 잘했다. 스웨덴전은 선수들이 긴장도 했고, 워낙 1차전이 어렵다. 2차전은 선수들이 준비를 잘했고, 좋은 경기를 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멕시코 선수들이 워낙 페이스가 좋았다. 벤치에서 보면서도 선수들이 힘들어하는 것을 느꼈다. 경기를 지켜보는 제가 힘들 정도였다. 그래도 독일과 3차전에서는 선수들이 힘을 모아 좋은 경기를 했다. 다행이다.

-그래도 독일과 3차전에 출전했다. 선수 입장에서는 특별했던 기억으로 남았을 것 같다

몸을 풀고 있으면 교체를 위해서는 코칭스태프들이 불러주셔야 한다. 한 번만 뛰자는 생각이 간절했다. 러시아까지 왔는데 꼭 뛰고 싶었다. 첫 번째 카드로 희찬이가 들어갔고, 두 번째로 세종이가 들어갔다. 사실 그때 승우처럼 공격적인 선수가 들어갈 것이라 생각했고, 기대를 접었다. 그런데 갑자기 저를 불러주셨다. 스태프가 저를 보고 손짓했을 때, 그리고 경기장의 분위기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교체를 위해서 서있을 때 소름이 돋았다. 영화같이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고, 지금도 소름이 돋는다.

-세계 랭킹 1위 독일을 잡고도 16강 진출에 실패했다. 아쉬운 마음이 컸을 텐데?

사실 우리 분위기는 우승을 한 줄 알았다. 그리고 경기장에서 뛰었던 선수들은 16강에 올라 간줄 알았다. 멕시코가 질 줄은 몰랐다. 그러나 끝나자마자 벤치에 있던 선수들은 결과를 알고 수고했다고 말해줬다. 그때 모든 선수들이 눈물을 흘렸던 것 같다. 그 경기는 제가 축구를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가 될 것 같고, 가장 짜릿한 경기라는 생각이 든다. 다시 또 있을까? 이런 생각이 든다. 많은 경기를 해왔고, 앞으로도 경기를 해야하지만 가장 짜릿하고, 행복했던 경기다.

-3차전 독일전 추억, 서울 팬과 유니폼 교환이 화제가 됐다

사실 제가 첫 월드컵이었고, 독일전을 나가서 승리했다. 사실 저한테는 의미가 있는 유니폼이었다. 팬들에게 인사를 하러 갔는데 딱 서울 유니폼이 보였다. 안 보였으면 아마 그냥 들어갔을 것이다. 저도 모르게 드리고 싶었다. 그냥 많은 관중들 중에서 서울 유니폼이 유독 보였다. 시야가 딱 선명해졌다. 여기까지 응원해주신 팬 분이기 때문에 유니폼을 드렸다. (Q.혹시 아깝지는 않았나? 후회하거나?) 후..후회하지 않는다. 말을 더듬는 것이 아니다.(웃음) 사실 경기를 뛰면 두 벌의 유니폼이 나온다. 한 벌은 제가 소장하고 있기 때문에 아깝지 않다. 선수들 사인 다 받아서 집에 걸어 놨다.

-월드컵은 천국이었다면 서울의 시즌은 지옥과도 같았다. 고요한에게 2018년의 의미는?

정말 모든 경험을 다한 시즌이다. 모든 것을 다 주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좋은 경험을 했지만 나쁜 경험도 있었다. 그래도 힘내면 좋은 결과가 나온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게 있어서 월드컵은 최고의 목표이자, 도착지였다. 월드컵을 뛰기 위해 프로에 왔고, 살아남아야 국가대표가 될 수 있다. 그리고 또 살아남아야 월드컵에 갈 수 있다. 잘한다고 아무나 월드컵을 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번 월드컵에서도 기훈이형이나 창훈이도 부상으로 월드컵에 나가지 못했다. 운도 따라야 한다. 제게 있어서 월드컵은 행운이었다. 다음 월드컵까지 3년이 남았는데 또 한 번 꿈꾸고 싶다.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고, 제가 늘 국가대표로 활약했던 것은 아니다. 포기하지 않고 잘 준비하고, 운이 따른다면 한 번쯤 더 해보고 싶다. 다음 월드컵도 경험해보고 싶다. 한 번 해보니까 또 욕심이 난다.

사진=윤경식 기자, 한국프로축구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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