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풋볼=인천] 유지선 기자= ‘레골라스’ 남준재가 안데르센 표 잔류 동화의 마지막 페이지를 화려하게 장식했다. 다사다난했던 한해 그리고 해피엔딩까지, 묘하게 닮아있는 인천 유나이티드와 남준재다.

인천은 1일 오후 2시 인천축구전용경기장에서 열린 전남과의 KEB 하나은행 K리그1 2018 38 라운드 최종전에서 3-1로 승리했다. 4연승을 기록한 인천은 승점 42점을 기록하며 9위로 시즌을 마무리했고, 자력으로 잔류를 확정지었다.

# ‘잔류 동화’ 마지막 씬의 주인공이 된 남준재

전반 초반 좋은 흐름을 탄 쪽은 오히려 전남이었다. 전체적인 주도권을 잡은 전남은 좌우 측면을 공략하며 인천 수비진을 흔들었고, 페널티박스 근처에서 공간이 생기면 지체 없이 슈팅을 날렸다. 그러나 흐름은 이내 인천 쪽으로 기울었다.

해결사로 나선 건 ‘베테랑’ 남준재였다. 남준재는 전반 26분 세트피스 이후 뒤로 빠진 공을 깔끔한 논스톱 슈팅으로 마무리해 선제골을 터뜨렸다. 전남의 상승세에 찬물을 끼얹은 것이다. 3분 뒤에는 페널티박스 모서리 부근에서 페널티킥을 얻어냈고, 키커로 나선 무고사가 골로 마무리했다. 남준재가 2득점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한 셈이다.

선제골로 연결된 발리 슈팅은 그야말로 일품이었다. 경기 종료 후 믹스트존에서 취재진과 만난 남준재는 “운이 좋았다”고 겸손해하면서 “오늘 같은 골은 제 축구인생에서 볼 수 없었고, 앞으로도 볼 수 없을 것 같다. 신기했다”며 아직도 믿겨지지 않는다는 듯한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단순히 ‘운’이라는 단어만으로 표현할 수 없는 골이었다. 그 뒤에는 진통제 투혼을 발휘하는 등 남준재의 숨은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날 남준재는 오른팔에 붕대를 감은 채 65분간 그라운드를 누볐다. 지난 서울전에서 손등이 다시 골절되는 부상을 당했지만 고통을 참고 마지막 경기를 소화한 것이다.

“서울전 때 (손등이) 다시 부러졌다”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 웃어보이던 남준재는 “이젠 수술을 바로 들어가야 할 것 같다. 사실 많이 아팠는데 마지막 경기에 너무 뛰고 싶더라. 그래서 약을 먹으며 참고 뛰었다”고 털어놓았다. 자력으로 확정지은 K리그1 잔류와 “두 번 다시 나오긴 힘들 것”이라던 멋진 득점, 이 모든 것은 결국 ‘간절함’의 결과였다.

# ‘이정도면 부부 사이!’ 남준재와 인천의 각별한 인연

인천과 남준재의 인연은 각별하다. 프로 무대에 데뷔한 곳인 동시에 힘들 때마다 품어준 곳이기이기 때문이다. 남준재는 지난 2010년 신인 드래프트 1순위로 인천에 입단하면서 처음 프로 무대를 밟았다. 그러나 이후 인천과 만남과 이별을 반복했다. 2011년 인천을 훌쩍 떠나 전남 드래곤즈, 제주 유나이티드에 새로 둥지를 틀었고, 2012년 인천에 다시 돌아와 세 시즌을 소화했지만 2015년 성남 FC로 이적했다.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한 끝에 성사된 세 번째 만남, ‘천생연분’이라 불리는 연인 사이에서도 보기 드문 상황이다. 남준재도 인천과의 궁합을 언급하자 “이 정도면 궁합을 떠나 거의 부부 사이처럼 느껴진다”면서 “놀랍다는 말밖에 할 수가 없다. 어떤 말로도 표현되지 않는다”며 혀를 내둘렀다.

‘부부는 닮는다’는 말처럼 묘하게 닮아있기도 하다. 인천은 올해 유독 힘든 한해를 보냈다. 매 시즌 강등 위기를 겪은 탓에 생존 경쟁도 이젠 어느 정도 익숙하지만, 올 시즌처럼 오랜 기간 꼴찌에 머물며 강등위기를 체감한 적은 없었다.

남준재도 마찬가지다. 올해는 남준재에게도 개인적으로 유독 힘든 한해였다. 지난해 말 성남 구단과 갈등을 빚으면서 올해 초 어느 때보다 힘든 시간을 보냈고, 지난해 11월 15일 경기를 마지막으로 240일 가까이 경기에 나서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다사다난한 한해를 보낸 인천과 남준재는 약속이라도 한 듯 고생 끝에 마지막엔 꽃을 활짝 피웠다.

홀가분한 표정의 남준재는 “지난 2012년 인천에 돌아왔을 땐 후반기에 충분히 반전시킬 수 있다는 분위기가 형성돼있었고, 선배들도 많아 내가 잘 따라가면 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올해 돌아왔을 땐 내가 이끌어야한다는 느낌도 받았고, 스스로 무너지면 안 되겠단 생각을 많이 했다. 위기의식을 더 가진 것 같다. 선수들 모두 그런 간절함을 가지고 있었고, 위기를 극복하는 힘이 됐다. 인천은 간절하고 끈끈한 팀이다. 그런 부분에서는 다른 팀에 훨씬 앞서있다고 생각한다”며 인천이 올 시즌도 잔류할 수 있었던 비결을 설명했다.

“남준재, 활시위를 당겨줘 우리에게. 기억해, 준재 넌 이 씬의 주인공”

이날 인천축구전용경기장에는 남준재가 힘들 때마다 돌려듣는다는 남준재를 향한 팬들의 ‘콜 송’이 여러 차례 경기장에 울려 퍼졌고, 남준재도 팬들의 뜨거운 성원에 화답하듯 득점 이후 팬들을 향해 힘차게 활시위를 당겼다.

우여곡절 끝에 성사된 세 번째 만남, 남준재는 이제 인천과 더 오랜 시간을 함께하길 고대하고 있다. “모두가 알다시피 프로선수라는 것이 뜻대로 모두 이뤄지지 않는다. 그러나 난 항상 인천에 남아 팬들과 함께하고 싶다. 영원히 함께하고 싶은 마음인데, 미래는 어떻게 될지 모르니 내가 더 잘 준비하겠다”

사진= 인천 유나이티드, 한국프로축구연맹, 인터풋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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