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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HERO] '축구 황제' 펠레, '브라질=축구'를 만든 월드컵의 지배자

[인터풋볼] 영웅은 사라지지 않는다. 축구계에는 지금은 은퇴했지만, 한때 전설적인 활약을 펼쳐 사람들의 마음에 깊이 자리 잡은 선수들이 존재한다. [InterHERO]에서는 이미 은퇴한 후에도, 인기 축구 게임 <피파온라인> 시리즈 안에서 변함없이 활약 중인 영웅들의 일대기를 조명해보려고 한다. [편집자주]

2018 러시아 월드컵이 성황리에 종료됐다. 이번 월드컵에서는 우승팀 프랑스의 킬리안 음바페가 19살의 나이로 4골을 기록하며 펠레 이후 가장 충격적인 월드컵 데뷔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렇다면 펠레의 월드컵 활약은 어땠을까? 펠레는 단순히 월드컵에서 최고의 데뷔를 치른 것을 넘어, 월드컵 역사상 최고의 선수였다.

# 펠레, 9살이 되던 해 월드컵 우승을 다짐하다

펠레는 축구선수였던 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펠레의 아버지는 프로선수는 아니었고, 때문에 부업을 하며 가계를 도왔다. 펠레의 아버지는 펠레가 세계적인 축구선수가 되기를 원했고 펠레에게 여러 가지 자신만의 노하우를 전수해줬다.

펠레가 9살이 되던 해 열린 1950 브라질 월드컵에서 브라질은 우루과이에 1-2로 역전패하며 우승을 놓쳤다. ‘마라카낭의 비극’이라 불리는 이 경기는 펠레에게 큰 영향을 주게 된다. 펠레는 이날 아버지가 눈물을 흘리는 것을 봤고, 브라질을 월드컵에서 우승시킬 것을 맹세했다.

이후 친구들과 팀을 만들어 축구에 전념하던 펠레는 브라질의 축구클럽인 산투스의 유소년 팀에 입단했다. 왜소한 체격을 가졌던 펠레는 처음에는 적응에 힘겨워했지만, 산투스의 코치 지브리투의 지도를 받으며 착실히 성장해나갔다.

# 1958 스웨덴 월드컵, 펠레의 전설이 시작되다

1957년 펠레는 만 16세의 나이로 아르헨티나와의 A매치에서 브라질 대표팀 데뷔전을 치렀다. 곧 펠레는 1958 스웨덴 월드컵에 출전했고, 만 17세의 펠레는 자신의 첫 월드컵에서 전설을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소련, 잉글랜드, 오스트리아와 한 조에 속한 브라질은 조 1위로 8강 토너먼트에 진출했다. 펠레는 8강에서 웨일스를 상대로 자신의 월드컵 첫 번째 득점이자 결승골을 기록했다. 이는 당연히 지금까지도 월드컵 역사상 최연소 득점으로 남아있다. 이후 펠레는 4강에서 프랑스를 만나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브라질의 5-2 승리를 이끌었다.

브라질의 결승전 상대는 개최국 스웨덴이었다. 스웨덴은 리에드 홀름의 선제골로 앞서나갔지만, 곧바로 펠레가 2골을 퍼부으며 브라질은 첫 번째 월드컵 트로피를 차지했다. 펠레는 이 대회에서 총 6골을 넣었고 이는 팀 내 득점 1위이자 전체 득점 2위(1위는 13골의 쥐스트 퐁텐)에 해당하는 기록이었다. 또한 펠레는 월드컵 실버볼을 수상하며 대회를 마무리했다.

다음 월드컵이었던 1962 칠레 월드컵에서 펠레는 첫 경기에서 1골 1도움을 기록하며 활약을 이어갔다. 하지만 곧바로 2차전에서 부상을 당하며 대회 내내 쉬게 됐다. 펠레의 공백은 컸지만, 브라질은 가린샤가 공격을 이끌며 끝내 두 번째 월드컵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 펠레의 악몽, 1966 잉글랜드 월드컵

1966 잉글랜드 월드컵은 펠레에게 가장 힘든 시기였다. 펠레는 1965년 산투스에서 47골을 넣는 맹활약을 선보이며 월드컵을 준비 중이었다. 하지만 브라질 대표팀은 당시 감독이 자주 교체되는 등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브라질의 사정과는 상관없이 월드컵은 시작됐고 브라질은 포르투갈, 헝가리, 불가리아와 같은 조에 속했다.

펠레는 불가리아와의 1차전에서 1골을 넣으며 2-0 승리를 이끌었지만, 이 경기에서 부상을 당했고 2차전에 나설 수 없게 됐다. 브라질은 2차전에서 헝가리에 1-3으로 패했고 3차전에 포르투갈과의 경기에서 펠레를 무리하게 내보냈다. 펠레는 확실히 제 컨디션이 아니었고 브라질은 에우제비오가 이끄는 포르투갈에 1-3으로 패하며 조별예선 탈락이라는 충격을 맛봤다.

펠레는 이 대회에서 유럽 선수들의 거친 플레이에 매우 분개했다. 당시에는 선수 교체 제도가 없었고, 1명이 나가면 그대로 10명이 경기를 치러야했다. 이 때문에 펠레와 같은 슈퍼스타들은 상대팀 선수들의 먹잇감이 되기 일쑤였다. 결국 펠레는 대회가 끝난 후 브라질 대표팀 은퇴를 선언했다.

# 펠레, 1970 멕시코 월드컵에서 ‘축구 황제’로 등극하다

펠레를 그리워하는 팬들은 전 세계적으로 많았다. 시간이 흐르며 1970 멕시코 월드컵이 가까워졌고, 그사이 국제축구연맹(FIFA)은 선수 교체와 카드 제도를 도입하는 등 선수 보호를 위한 대비책을 마련했다. 그러자 펠레도 마음이 바뀌었고 1969년 월드컵 예선을 통해 브라질 대표팀에 복귀했다.

이후 찾아온 1970 멕시코 월드컵. 어느덧 30살이 가까워진 베테랑이 된 펠레는 이제 팀의 정신적 지주로서 월드컵을 맞이했다. 잉글랜드, 체코슬로바키아, 루마니아와 같은 조에 편성된 브라질은 조별예선 전승을 거두고 8강에 진출했다. 브라질은 8강에서 전 브라질 국가대표였던 지지 감독이 이끄는 페루를 4-2로 제압했다. 

브라질의 4강 상대는 우루과이였다. 펠레에게는 의미가 큰 경기였다. 어린 시절 겪은 마나카랑의 비극을 자기 손으로 복수할 기회였기 때문이다. 펠레는 이날 히벨리누의 쐐기골을 어시스트하며 브라질의 3-1 완승을 이끌었다.

브라질은 결승전에서 이탈리아를 만났다. 이탈리아는 당시 브라질과 마찬가지로 월드컵에서 2번이나 트로피를 획득했던 팀이었다. 하지만 브라질은 1골 2도움을 기록한 펠레의 활약에 힘입어 이탈리아에 4-1로 격파했다.

1970 멕시코 월드컵에서 브라질의 위용은 대단했다. 브라질은 이 대회에서 월드컵 역사상 유일하게 조별예선부터 전승을 거둔 팀이 됐다. 펠레는 여기서 월드컵 골든볼을 수상하며 최고의 선수로서 확실히 자리매김했다. 또한 이 대회는 최초로 컬러로 중계된 월드컵이었고, 덕분에 사람들은 펠레의 눈부신 플레이를 더 직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었다.

이후 펠레는 서서히 커리어를 정리했다. 펠레는 1971년 브라질 대표팀에서 은퇴한 후 1974년 18년간 활약한 산투스에서도 유니폼을 벗었다. 펠레는 1975년 미국에 축구 열기를 전파하기 위패 뉴욕 코스모스에 입단했고, 1977년 온전히 축구화를 내려놓았다.

글=오승종 기자

그래픽=김병학 기자

사진=게티 이미지, 펠레 페이스북, 피파 온라인4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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