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풋볼] 오승종 기자= 남미가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 유럽에 완패했다. 펠레, 마라도나, 호마리우, 호나우두 등 월드컵을 지배했던 선수들을 수차례 배출했던 ‘축구의 대륙’ 남미는 이제 옛말이 돼버렸다.

# 유로 2018? 12년 만에 찾아온 유럽의 독무대

남미는 유럽과 함께 유이하게 월드컵 트로피를 보유한 대륙이다. 유럽이 12회, 남미가 9회 월드컵을 제패한 바 있다. 이번 월드컵에서도 리오넬 메시, 네이마르, 루이스 수아레즈 등 최고의 스타들이 출격을 대기하고 있었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예전의 남미가 아니었다. 러시아 월드컵 최종 순위에서 남미 팀이 기록한 최고 순위는 5위에 머문 우루과이였다. 남미는 2006 독일 월드컵 이후 12년 만에 한 팀도 4강에 진출시키지 못했다. 결승전에서도, 3·4위전에서도 유럽 국가들끼리 붙으며 말 그대로 유럽 축구의 독무대가 펼쳐졌다. 개최국도 러시아인지라 이 대회가 유로인가 하는 착각이 들게끔 만들었다.

범위를 확대해도 마찬가지였다. 러시아 월드컵 최종 순위에서 상위 10개 팀 중 3개 팀만이 남미 출신이었다. 나머지는 모두 유럽 국가가 차지했다.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4개의 남미 팀이 최종 10위 안에 들었고, 북중미 국가인 멕시코와 코스타리카를 포함하면 총 6개의 팀들이 이름을 올렸다. 이에 비하면 이번 월드컵은 남미가 유럽의 독주를 전혀 저지하지 못한 셈이었다.

개인 기록도 시원치 않았다. 남미 선수들 중 최다 득점자는 3골을 기록한 에딘손 카바니와 예리 미나였다. 4골 이상 득점한 선수가 6명에 달했던 유럽에 비하면 씁쓸한 결과였다. 남미 팀들 모두 경기를 8강까지밖에 치르지 못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결과였다.

상 역시 유럽이 싹쓸이했다. 골든 볼은 루카 모드리치(크로아티아), 골든 부트는 해리 케인(잉글랜드)이 수상했고 골든 글러브는 티보 쿠르투아(벨기에)가 받았다. 베스트 영 플레이어는 킬리안 음바페(프랑스)가 차지했고 페어 플레이 팀은 스페인이었다. 남미 선수들은 실버 볼, 브론즈 볼, 실버 부트, 브론즈 부트 어디에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 남미, 축구보다 구설수가 기억에 남다

이번 월드컵에서 남미는 축구보다 구설수가 더 큰 주목을 받았다. 그 중심에는 1986 멕시코 월드컵의 영웅 마라도나가 있었다. 마라도나는 대회를 치르는 동안 이해할 수 없는 기행으로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마라도나의 기행은 자국의 조별예선 1차전이었던 아르헨티나-아이슬란드전부터 시작됐다. 마라도나는 이 경기에서 자신의 이름을 연호한 한국팬에게 인사한 후 뒤를 돌아 눈을 찢는 인종차별 제스처를 취했다. 또한 마라도나는 금연구역인 경기장에서 담배를 피우는 모습이 포착돼 논란을 빚었다.

마라도나의 기행은 계속됐다. 마라도나는 아르헨티나-나이지리아전에서 마르코스 로호의 극적인 골이 터지자 흥분을 제어하지 못하고 중지를 치켜들어 손가락 욕설을 퍼부었다. 잉글랜드-콜롬비아전을 관전한 후에는 “심판이 축구를 전혀 몰랐다. 콜롬비아가 승리를 도둑맞은 것처럼 보였다”고 말하며 국제축구연맹(FIFA)으로부터 “부적절한 발언”이라는 비판을 들었다.

마라도나가 기행으로 과거의 영광을 무색하게 했다면, 네이마르는 그라운드에서의 행동 때문에 현재의 평가에 부정적인 그림자가 드리웠다. 네이마르는 멕시코와의 16강전에서 1골 1도움으로 최고의 활약을 펼쳤음에도 어이없는 행동 때문에 비판을 받았다.

네이마르는 멕시코전에서 1-0으로 앞서던 후반 26분 미겔 라윤에게 발을 밟혔고, 크게 고통을 호소하며 드러누웠다. 통증이 그렇게 심하게 보일 상황은 아니었지만 네이마르는 발을 밟혔다는 것을 어필하기 위해 과장된 액션을 취하며 오랜 시간 누워있었다. 이에 영국 '가디언'은 "네이마르가 러시아 월드컵에서 눕거나 굴러다닌 시간을 합하면 13분 50초나 된다"는 기사를 내보내기도 했다.

# 축구의 대륙? 팬들도 망신살에 한몫했다

남미는 러시아 월드컵에서 성적과 스타들의 기행뿐 아니라, 팬들의 행동으로도 전 세계 앞에서 망신을 당했다.

먼저 콜롬비아가 몰상식한 팬들 때문에 축구계의 공분을 샀다. 일부 콜롬비아 남성들은 자국이 일본과의 조별예선에서 1-2로 패한 후 한 일본 여성에게 스페인어로 “나는 매춘부다. 나는 징그럽다”라는 말을 유도했다. 그들은 이를 SNS에 올리며 전 세계인들에게 거센 비난을 받았다. 일본팬들이 경기가 끝나고 쓰레기를 모두 청소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후라 더욱 비교됐다.

아르헨티나는 팬들의 폭력적인 행동이 구설수에 올랐다. 아르헨티나가 조별예선에서 크로아티아에 0-3으로 패한 후 일부 아르헨티나팬들이 경기장 통로에서 크로아티아팬을 폭행한 것이다. 현장을 촬영한 영상이 SNS에 올라왔고, 이후 러시아 경찰이 문제를 일으킨 7명의 아르헨티나인을 붙잡아 조사 중이라는 보도가 전해졌다.

자국 스타를 향한 무분별한 비난도 있었다. 브라질 미드필더 페르난지뉴는 벨기에전에서 불운의 자책골을 기록한 후 곤욕을 치렀다. 8강 벨기에전이 1-2 패배로 종료되자 일부 몰지각한 브라질팬들이 페르난지뉴의 SNS에 선을 넘은 비난을 날린 것이다. 페르난지뉴의 가족들 SNS까지 공격을 받았으며, 이중에는 페르난지뉴를 '원숭이'라고 부르는 등 인종차별과 관련된 내용까지 있었다.

언제나 축구계 최고의 스타들을 배출했던 남미는 축구에 대한 열정만큼은 세계 어느 곳보다도 크다는 소리를 듣는다. 하지만 남미 축구는 이번 월드컵에서 다양한 측면에서 이름값을 하지 못했다. 우리가 알던 축구의 대륙은 적어도 러시아에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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