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풋볼] 이현호 기자= 한국의 ‘러시아 월드컵’은 끝났다. 하지만 ‘축구’가 끝난 것은 아니다.

신태용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 대표팀은 지난 27일(이하 한국시간) 러시아 카잔 아레나에서 열린 2018 국제축구연맹(FIFA) 러시아 월드컵 F조 조별리그 3차전에서 김영권, 손흥민의 극적인 연속골에 힘입어 세계 최강 독일에 2-0 완승을 거뒀다. 비록 16강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선수단은 성적보다 값진 교훈을 얻으며 금의환향했다.

비싼 대가를 치르고 교훈을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축구의 포커스는 여전히 ‘4년 뒤’에 맞춰져 있다. 멀어도 너무 멀다. 4년 뒤에 치러지는 2022 카타르 월드컵에 출전할 수 있다는 보장도 없다. 기약 없는 다음 월드컵에서 활짝 웃고 싶다면, 4년 동안 땀 흘리고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한국 축구는 그러지 못했다. 4년이라는 과정에 관심을 갖지 않고, 4년 주기로 돌아오는 월드컵에서 결과만을 원했다. 그리고 평가했다.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4년이란 정해진 기간에 얽매이지 말고, 매년, 매달, 매주 축구 그 자체를 바라보고 관심 가져야 한다.

결국은 K리그부터가 시작이다. 이번 러시아 월드컵에 출전한 23인의 선수들 대부분이 과거 K리그 소속이었거나, 현재 K리그 소속이다. 이들은 K리그에서의 활약을 발판 삼아 해외 진출과 대표팀 승선의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 출발선은 항상 우리 곁에 있었다.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한국 축구의 밝은 미래를 바란다면, 4년 뒤 지구 반대편이 아닌, 지금 여기, 우리를 먼저 바라봐야 한다. 그동안 우리 곁에서 묵묵히 땀흘려 왔지만 주목받지 못했던, 이번 러시아 월드컵에서야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K리거들을 살펴봤다. 

# ‘대구의 데 헤아’ 조현우

러시아 월드컵을 통해 가장 눈부시게 스타덤에 오른 조현우(26, 대구FC)는 반짝 스타가 아니다. 조현우는 하루아침에 지금의 실력을 가진 것이 아니라 원래 잘했다. 하지만 아무도 관심이 없었고, 있었다 하더라도 ‘그들만의 골키퍼’로 치부한 채 흘려듣기 바빴다.

91년생의 조현우는 U-20(20세 이하) 대표팀과 U-23 대표팀에 발탁되어 아시아 축구연맹(AFC) 챔피언십에 출전한 경험이 있고, 일찌감치 한국 축구를 이끌 대목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관심이 덜한 대구FC의 원클럽맨으로서 골문을 지키는 동안 우리는 그를 외면했다. 조현우는 K리그2(챌린지) 베스트11에 2시즌 연속으로 선정되며 팀을 1부로 승격시켰고, 승격 첫 시즌에는 K리그1(클래식) 베스트11에 선정됐다.

# ‘월미도 아자르’ 문선민

대표팀 공격에 신선한 활력을 넣어준 문선민(26, 인천유나이티드) 역시 마찬가지다. 92년생의 문선민은 U-17 대표팀에 발탁된 적이 있으며, 나이키 풋볼 아카데미와 스웨덴 리그를 거쳐 K리그의 인천에 정착했다. 문선민은 인천에서 꾸준히 스탯을 쌓으며 금세 자리를 잡았다. 또한 개성 있는 세레머니로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그래도 그들만의 유명인일 뿐, 문선민의 태극마크를 기대한 사람은 드물었다. 그랬던 문선민이 러시아 월드컵 예비 명단 28인에 발탁됐을 때, 많은 이들은 충격을 받았다. 기대보다는 걱정 속에서 A매치 데뷔전을 치렀고, 그 경기서 A매치 데뷔골까지 넣은 문선민은 ’그래도 최종 명단 발탁은 어렵겠지’라는 평을 받았다. 하지만 문선민은 당당하게 러시아행에 올랐고, 그곳에서 보란 듯이 자신의 가치를 증명했다.

# ‘윤 장군’ 윤영선

세계 최강 독일의 공격진을 꽁꽁 묶은 윤영선(29, 성남FC)은 늦게 핀 꽃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늦게 ‘발견된’ 꽃이다. 윤영선은 진작부터 꽃이었지만, 자신이 꽃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리게 됐다. 그것도 월드컵 조별리그 3차전에서 독일을 상대로 말이다.

윤영선은 군복무를 제외하면 성남(성남일화 시절 포함)에서만 활약했다. 원클럽맨 윤영선은 성남 팬들로부터 ‘윤장군’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다부진 피지컬로 몸을 던지는 플레이 스타일 덕분에 얻은 별명이다. 윤영선은 프로 데뷔 시즌 2010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시작으로 2011, 2014 FA컵 우승을 경험했다. 클럽 커리어는 화려하지만 대표팀과는 거리가 멀었다. 다행히도 이번에는 부쩍 가까워졌다.

# 이용, 홍철, 주세종

오른쪽 풀백 이용(31, 전북현대)은 한국의 조별리그 3경기를 모두 풀타임으로 출전한 6명 중 1명이다. 준수한 실력과 함께 독일전에서 보여준 부상 투혼으로 이름을 알린 이용은 K리그에서 잔뼈가 굵은 선수다. 이용은 소속팀 전북의 붙박이 주전 최철순(31)과의 경쟁을 통해 한층 더 성장했고, 지난 2014 브라질 월드컵에 이어 2회 연속으로 월드컵에서 한국 수비의 한 축을 맡았다.

기존 왼쪽 풀백 자원들의 줄부상으로 멕시코전, 독일전에 출전한 홍철(27, 상주상무)은 현재 육군 병장이다. 홍철의 ‘병장축구’는 월드컵 디펱딩 챔피언 독일을 상대로도 통했다. 독일전에서 홍철은 레온 고레츠카를 스피드로 눌렀고, 킴미히를 가볍게 턴으로 제치며 명장면을 선사했다. 비록 월드컵에서는 보여주지 못했지만, 홍철은 코너킥으로 골을 기록할 만큼 날카로운 왼발킥도 자랑한다.

독일의 골키퍼 마누엘 노이어를 제친 후 손흥민에게 장거리 어시스트를 선사한 주세종(27, 아산무궁화)은 월드컵에서 자신의 역할을 다해냈다. 부산아이파크와 FC서울 시절부터, 정확한 양발 중장거리 패스가 일품이었던 주세종은 독일이 지친 틈을 타 왼발로 일침을 가했다. 이 장거리 일침은 손흥민에게 전달됐고 독일 축구사에 평생 치욕으로 남게 될 것이다.

'K리그에 관심을 갖자'는 말은 항상 반복되는 ‘잔소리’와도 같았다. 4년 뒤를 막연히 기약하는 것보다 찾기 쉬운 주변부터 살펴보는 것은 어떨까. 언제 어디에서 제2의 조현우, 문선민, 윤영선이 우리의 눈길을 사로잡을지 모른다. 2022 카타르 월드컵에 다다를 땐, 지금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우리 곁에 있는 K리그에 매료돼 있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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