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풋볼] 유지선 기자= 마음은 여리지만 참 단단하다. 4년 전 아쉬움의 눈물을 쏟던 ‘울보 막내’에서 이제는 한국 축구 대표팀의 ‘대들보’로 훌쩍 성장한 손흥민(26, 토트넘)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신태용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 대표팀은 조별리그 3경기서 1승 2패라는 성적표를 받아들며 2018 러시아 월드컵을 마쳤다. F조 3위로 대회를 마무리하며 16강 진출이 좌절됐지만, 독일과의 3차전에서 선수들이 보여준 투혼은 박수를 받기에 충분했다.

물론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도 많았다. 전술적 아쉬움부터 일을 그르친 실수들, 그리고 단기간에 팀을 완성시켜야 하는, 또 그러길 강요하는 고질적인 병폐들까지 하나 둘 수면 위로 떠올랐다. 그러나 소득이 전혀 없는 대회는 아니었다. 그동안 실종됐다고 지적받던 ‘투지’를 그라운드 위에 다시 끌어냈고, 팬들의 실망을 기대로 바꾸며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었다.

손흥민의 성장도 의미 있었다. 손흥민은 월드컵을 앞두고 열린 출정식에서 “월드컵이란 곳이 무섭다”며 솔직한 심정을 밝혔다. 4년 전의 아픔이 아직도 생생했기 때문이다.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팀의 막내로 함께한 손흥민은 첫 출전한 월드컵에서 1골을 기록했다.

그러나 한국은 1무 2패로 H조 최하위를 기록하며 16강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자신감으로 똘똘 뭉쳐있던 노란 머리 소년 손흥민은 그때 당시 그라운드 위에서 눈물을 펑펑 쏟았다. 손흥민은 그때를 회상하며 “월드컵은 자신감만으로 통하는 무대가 아니더라. 정말 철저하게 준비해야 한다”고 4년 전과 달라진 마음가짐을 내비쳤다.

팀 내 존재감도 달라졌다. 이제는 팀 전술의 핵심이자, 후배들을 끌어줘야 하는 입장이 된 것이다. 사실 손흥민은 그동안 소속팀에서의 활약과 달리, 대표팀에만 오면 부진하다는 꼬리표가 따라다녔다. 실제로 A매치에서 손흥민이 답답함을 토로하는 장면이 잦았고, 적잖은 마음고생을 해야 했다.

하지만 이제는 대표팀의 어엿한 기둥이 됐다. ‘손흥민 살리기’가 신태용호 전술의 핵심으로 떠올랐고, 2차전 멕시코전과 3차전 독일전에서는 중요한 순간마다 골을 터뜨리며 마음의 짐을 훌훌 털어냈다. 대표팀에 오면 부진하다는 논란을 씻어낸 것이다.

차기 주장으로 손색이 없다는 평가까지 받고 있다. 실제로 손흥민은 지난달 국내에서 열린 온두라스와의 평가전서 기성용을 대신해 처음으로 주장 완장을 찼다. “꿈같은 일이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분”이라던 손흥민은 “더 책임감이 느껴지더라. (기)성용이 형의 무게감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며 캡틴 역할을 맡은 소감을 밝혔다. 

손흥민은 실전에서도 멋지게 주장 역할을 소화해냈다. 신태용 감독은 기성용이 부상으로 결장한 독일과의 3차전에서 손흥민에게 다시 한 번 완장을 채웠다. 손흥민은 누구보다 이를 악물고 뛰며 솔선수범했고, 끝까지 포기하지 말자며 그라운드 위에서 선수들의 기를 북돋았다.

‘원 팀’을 만들기 위한 노력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자신을 향한 스포트라이트에 우쭐할 법도 하지만, 손흥민은 항상 ‘우리’를 외쳤다. 김민우와 장현수 등이 거센 비난을 받을 땐 방패막이를 자처했고, “어린 선수들이 정말 잘해주고 있다. 내가 저때 저만큼 했나 싶을 정도”라며 새로 합류한 선수들의 기를 살려주기도 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손흥민은 “1, 2차전 결과로 실망했을 국민들의 마음을 잘 알고 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드리는 것 또한 우리가 해야하는 역할”이라며 팬들의 마음을 헤아렸고, “신태용 감독님이 정말 마음고생을 많이 했다”며 수차례 화살을 맞은 수장까지 적극 감쌌다.

짐을 싸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우리 선수들은 모두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다. 동료들의 능력을 더 이상 보여줄 수 없다는 것이 너무 아쉽다”며 팀 동료들을 치켜세웠다. 실력은 물론이며, 팀 전체를 아우르는 모습, 태극마크를 달고 경기에 임하는 자세까지 한층 성숙해진 모습이다.

기성용도 “손흥민은 앞으로 주장 역할을 해야 하는 선수다. 저의 뒤를 이어 주장역할을 소화할 선수”라면서 “(손)흥민이라면 한국 축구를 잘 이끌어줄 것”이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 4년간 한 뼘 더 성장한 손흥민, 한국의 2018 러시아 월드컵은 일찌감치 막을 내렸지만 4년 후가 더 기대되는 이유다. 

사진= 윤경식 기자, 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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