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풋볼] 김병학 기자= 전쟁 중에도 꽃은 피어난다. 이번 월드컵에서 한국 축구의 '위기'를 재확인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희망'이 보였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2018 국제축구연맹(FIFA) 러시아 월드컵은 이제 본격적인 시작을 알렸지만, 한국의 여정은 마무리됐다. 돌아보면 참으로 다사다난했던 월드컵이었다. 평가전부터 쭉 이어져 오던 비난은 월드컵 예선에서 기어코 터졌다. 스웨덴과 멕시코전의 연이은 패배로 한국 선수들은 고개를 떨궜다.

비난이 밀물처럼 밀려오던 순간, 한국은 '세계 1위' 독일을 2-0으로 완파하는 저력을 선보이며 극적 회생했다. 전 세계가 한국을 조명했고, 팬들도 "잘 싸웠다"며 아낌없는 격려와 박수를 보냈다. 4년 전 호박엿이 뿌려졌던 해단식은 꽃다발로 가득 찼다.

바뀌어야 할 점은 분명히 있다. 박지성 SBS 해설위원의 말대로 한국 축구는 이번 일을 계기로 분명 더 발전해야 한다. 하지만 다른 부문들을 다 제외하고, 선수단만 놓고 봤을 땐 저절로 함박웃음이 지어진다. '세대교체'가 착실하게 잘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 '흥'나는 91~92년 라인, 이젠 대표팀의 '핵심'

이번 러시아 월드컵을 끝으로 한 세대가 저물어 간다. 주장 기성용은 시작 전부터 마지막 월드컵이 될 것임을 알렸고, 구자철도 '대표팀 은퇴'를 고심 중이다. 2012 런던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따내며 국민들에게 기쁨을 알렸던 그 세대의 주역들이 하나둘씩 떠날 채비를 하고 있다.

더 이상 믿음직스러웠던 선수들을 대표팀에서 못 볼 수도 있다는 소식에 가슴이 아프다. 하지만 걱정은 덜하다. 손흥민을 중심으로 91~92년생 라인이 선배들의 빈자리를 든든하게 채워 줄 준비를 하고 있으니 말이다.

단연 차기 주장과 에이스로 손흥민이 주목받고 있다. 비록 대표팀은 조별 예선에서 탈락했지만, 손흥민의 저력만큼은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멕시코와 독일을 상대로 홀로 두 골을 넣으며 팀의 공격을 진두지휘했다. 평가전에서는 두 차례나 주장 완장을 착용하며 '캡틴 손흥민'도 문제없음을 알렸다.

공격에 손흥민이 있다면 후방에는 이재성과 조현우가 있다. 이재성은 경기 때마다 10km 정도 뛰는 활동량으로 팀의 윤활유 역할을 자처했다. 독일전에서는 무려 12km의 활동량을 기록해 승리의 숨은 공신으로 꼽히기도 했다. 조현우의 발견도 커다란 수확이다. 월드컵 첫 출전임에도 불구하고 완벽한 안정감으로 골문을 든든하게 지켰다. 이운재를 이을 '최고의 골키퍼'라는 찬사가 쏟아지는 이유다.

2022 카타르 월드컵에는 91~92년생인 세 선수가 대표팀의 중심이 될 전망이다. 92년생인 손흥민과 이재성은 만 29세, 한 살 많은 조현우는 만 30세가 된다. 축구선수로서는 실력과 경험이 적절하게 잘 어우러진 시점이다.  

# 월드컵 경험치 먹은 이승우, 무럭무럭 자랄 이강인-백승호

팬들은 이번 월드컵에서 이승우의 재기발랄한 플레이에 환호를 보냈다. 최종 23인 명단에 극적으로 합류한 이승우는 초반 평가와 달리 투지 있는 모습으로 대표팀에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비록 월드컵 본무대에서는 많은 기회를 받지 못했지만, 경험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

이승우는 대표팀 경험을 가득 맛봤으니 이젠 백승호와 이강인 차례다. 이승우와 함께 '바르샤 듀오'로 뛰었던 백승호는 현재 페랄라다-지로나B에서 활약하며 빅리그 도약 준비에 한창이다. 윙포워드와 미드필더 등 복수의 포지션에서 뛰며 좋은 모습을 보이고 있는 사실도 기대감을 높이는 이유 중 하나다.

이강인의 저력은 지난 5월 프랑스에서 열린 툴롱컵을 통해 다시 한 번 확인했다. 공격형 미드필더로 출전해 센스있고 깔끔한 플레이로 기대감을 증폭시켰다. 스페인의 명문팀 발렌시아도 그의 재능을 알아보고 초대형 계약을 맺는 등 벌써부터 '에이스'감으로 점찍었다.

97년생 백승호, 98년생 이승우 그리고 2001년생 이강인. 지금은 한국의 특급 유망주이지만, 4년 뒤에는 각각 만 25세, 24세, 21세로 한창 기량이 만개할 시점으로 접어든다. 이 셋이 대표팀의 유니폼을 입고 나란히 서있는 모습을 상상만 해도 벌써 행복에 젖어든다. 

# 부상에 고개 떨군 권창훈-김민재...카타르에선 훨훨 날길

월드컵에서 대표팀은 '부상'이라는 적과 치열하게 싸워야 했다. '괴물 신인'이라 불렸던 김민재는 종아리뼈 부상으로 일찌감치 자신의 첫 월드컵 꿈을 접어야 했고, 많은 기대를 모았던 권창훈은 직전에 아킬레스건 파열로 낙마했다. 

대표팀의 패배가 쌓여갈수록 두 선수에 대한 아쉬움은 더욱 짙어졌다. 신태용 감독 역시 "조심스러운 답변이지만, 부상 선수가 너무 많았다. 권창훈의 부상이 특히 아쉽다. 권창훈이 있었다면 손흥민이 더 많은 걸 보여줬을 것"이라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월드컵에서 허용한 3실점 중 두 개가 수비진의 실수에서 비롯된 페널티킥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김민재의 부상도 아쉽다. 신태용 감독은 월드컵 준비 기간 때부터 김민재를 꾸준히 기용하며 플랜A로 뒀지만 갑작스러운 이탈로 인해 플랜B를 가용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부상만 없다면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는 김민재와 권창훈이 나서 그때의 아쉬움을 지워줄 전망이다. 4년 뒤 둘의 나이도 각각 만 25세와 27세로 대표팀의 주요 일원으로 성장하기에 손색이 없을 시기다. 앞서 말한 대로만 흘러간다면, 분명 가장 성공적인 '세대교체'가 될 것임이 분명하다. 한국 축구의 위기 속에서 피어나고 있는 작은 희망이다.  

사진= 윤경식 기자, 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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