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풋볼] 유지선 기자= 한국이 세계 랭킹 1위 독일을 꺾고 세계를 놀라게 했다. 가시밭길처럼 험난한 여정 속에서 이뤄낸 값진 승리였다.

신태용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 대표팀은 27일 오후 11시(이하 한국시간) 러시아 카잔에 위치한 카잔 아레나에서 열린 독일과의 2018 국제축구연맹(FIFA) 러시아 월드컵 F조 조별리그 3차전 경기에서 김영권과 손흥민의 극적인 골에 힘입어 2-0으로 승리했다.

이날 승리로 한국은 이번 대회 첫 승을 올리며 유종의 미를 거뒀고, 디펜딩 챔피언 독일은 1승 2패로 탈락의 쓴잔을 마셨다. 또한, 한국은 독일을 밀어내고 조 3위로 마감했다.

# ‘트릭 논란’ 비난과 조롱 견뎌야 했던 신태용호 

신태용호의 항해는 출발 전부터 험난했다. 월드컵 개막 전부터 김민재와 김진수, 권창훈, 이근호 등 부상자가 속출했고, 평가전도 부진했다. 잦은 전술 변화까지 도마에 올랐다. 신태용 감독은 “상대 팀에 혼란을 주기 위한 트릭”이라고 해명했지만, 1차전서 스웨덴에 패하며 신 감독의 ‘트릭’ 발언은 오히려 조롱거리가 되고 말았다.

설상가상으로 선수들은 매 경기 눈물을 쏟았다. 1차전에 이어 멕시코와의 2차전까지 두 경기 연속 실수로 페널티킥을 허용하면서 아쉬운 패배를 당했기 때문이다. 1차전에서는 태클로 페널티킥을 허용한 김민우가 눈물을 쏟았고, 2차전에서는 핸들링 반칙으로 페널티킥을 내준 장현수가 그라운드 위에서 목 놓아 울었다.

신태용호를 향한 비난의 강도도 거세졌다. ‘3전 전패를 당하고 올 것’이란 비아냥거림을 뒤집지 못할 수도 있다는 불길한 예감이 강해졌고, 통쾌한 반란도 이대로 물거품이 되는 듯 싶었다. 손흥민은 굵은 눈물 방울을 흘리며 카메라 앞에서 연신 “죄송하다”를 반복했다.

# 이 악문 한국, 디펜딩 챔피언에 ‘쇼크’ 안겼다

그러나 패배가 무섭다고 도망갈 수는 없는 법, 신태용호는 다시 이를 악물었다. 멕시코전에서 최악의 하루를 보냈던 장현수도 “축구 인생에서 그렇게 깊게 고민한 날은 처음이었다. 내가 독일전을 뛰지 않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다음날 팀원들을 보니 내가 무책임하단 생각이 들었다. 이겨낼 생각을 하지 않고 피하려고 한 것이다. 위기를 이겨내고 독일전을 꼭 승리해야겠다고 다짐했다”며 멕시코전 다음날을 회상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었다. 한국은 단단히 벼르고 독일전에 나섰다. 김영권과 윤영선이 지킨 센터백은 견고했고, 포어리베로라는 막중한 임무를 맡은 장현수도 심기일전했다. 최전방에서부터 적극 수비에 가담했으며, 최후방에서는 ‘거미손’ 조현우가 든든하게 버텨줬다.

90분 내내 독일의 공세를 막아낸 한국은 결국 후반 추가시간 김영권의 선제골과 손흥민의 추가골이 잇달아 터지면서 독일에 비수를 꽂았다. 불과 3분 만에 독일의 골망을 두 차례나 흔든 것이다. 1%의 희망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었다. 같은 시각 열린 스웨덴과 멕시코 경기(스웨덴 3-0 승)에서 멕시코가 승리했다면 16강 진출도 가능한 상황이었다.

# ‘먹구름 걷어냈다’ 16강 티켓보다 값진 승리

수문장 조현우는 “경기 종료 직후에는 우리가 16강에 올라간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정말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눈물이 났다”며 16강 진출이 좌절된 것에 진한 아쉬움을 내비쳤다. 그러나 16강 티켓보다 값진 승리였다. 덕분에 패배 의식이 팀 안팎으로 짙게 깔려있던 상황에서 검은 먹구름을 걷어냈기 때문이다.

“우리가 준비한 부분을 하나하나 이야기할 수 없는 상황이 속상하고 힘들기도 했다”며 그간의 마음 고생을 털어놓은 신태용 감독은 “결과적으로 16강 진출에 실패해 아쉽지만, FIFA 랭킹 1위 독일을 이기면서 한줄기 희망을 본 것 같다”고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손흥민도 같은 생각이었다. 두 번째 월드컵에서 또다시 눈물을 흘린 손흥민은 눈물을 훔치면서 “4년 전과 비교했을 때 후회 없는 경기를 했다”면서 “우리 선수들도 능력 있는 선수들이다. 조별리그 탈락으로 동료들의 능력을 전세계에 더 보여주지 못해 아쉽다”며 4년 전과 비교해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물론 세계의 높은 벽도 실감했다. 그러나 ‘필사즉생 필생즉사’의 정신으로 뛴 신태용호는 거센 비난에도 꿋꿋하게 마지막 꽃망울을 터뜨렸다. 적장도 감탄했다. “공간이 없었고, 한국이 아주 훌륭한 경기력을 보여줬다. 한국을 꺾지 못한 것에 쇼크를 먹었다”면서 독일의 요아힘 뢰브 감독도 선수들의 투지에 혀를 내두른 것이다.

한국은 1승 2패라는 성적표를 받아들며 2018 러시아 월드컵에 마침표를 찍었다. ‘트릭’으로 시작해 ‘쇼크’로 막을 내린 한국의 월드컵. 독일에는 두 번 다시 떠올리기 싫은 쇼크였지만, 한국에는 두고두고 간직하고 싶은, 아주 기분 좋은 쇼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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