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풋볼] 윤경식 기자= 대한축구협회 정몽준 명예회장이 CAS 평결 이후 첫 공식 일정으로 러시아월드컵 대한민국과 스웨덴전을 참관하며 지아니 인판티노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과 20여분간 환담을 나눴고 다음과 같이 입장을 발표했다.

[이하 전문]

나의 FIFA 투쟁 기록 - 정몽준

2018년 6월 21일

축구를 사랑하고 성원해주시는 여러분들께 감사 드립니다.

지난 4년간 저는 국제축구연맹(FIFA)을 상대로 지리한 법정투쟁을 벌였고 금년 2월에는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CAS)의 판결을 받아냈습니다. 제가 그 동안 국제 축구 계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이유입니다. 이번에 러시아에 오니 많은 지인들이 지난 4년 동안 FIFA와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어보길래 별일 없었다고 대답은 했지만 매번 구두로 설명하는 것이 번거로워서 간략하게 그 과정을 정리해 봤습니다. 이는 결코 특정인물들을 비방할 목적이 아니라 사실만을 정확히 전달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4년 전, FIFA 윤리위원회(FEC)는 저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습니다. 그 이후로 저는 허위사실에 기반한 인신공격, 계속되는 부당한 처리와 절차 지연으로 고통 받아야 했습니다. FEC가 의도한대로, 저는 이 일에 엄청난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 부어야 했고, 몸과 마음이 많이 지쳤습니다.

FIFA와의 법정투쟁은 끝이 나지 않을 것처럼 오래 지속되었지만 제가 윤리 규정을 위반했다는 FEC의 주장이 얼마나 터무니 없는지를 보여 주기 위해 인내하고 버텨냈습니다.

FIFA윤리위의 조사와 그 이후의 제재 결정은 절차나 내용면에서 모두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이었습니다. 제 사건의 개요는 다음과 같습니다. 인용문으로 표시된 문구는 대부분 CAS 결정문을 인용한 것입니다.

절차적으로 봤을 때 이번 사건은 법리적으로든 상식적으로든 용납될 수 없을 정도로 지연되었습니다. CAS가 결정문에서 밝힌 바와 같이, 저는 “CAS 중재위원들(Panel)이 합당하다고 여긴 기간보다 더 긴 시간을 자격 정지 상태로 있어야만 했는데,” 이것은 FIFA의 “지나치고 부당한 지연(excessive and unjustified delays)” 때문이었습니다.

사실, 저는 “합당한(warranted)” 기간보다 13개월이나 더 제재를 받아야 했습니다. CAS는 2018년 2월 결정에서 FIFA가 가한 5년의 제재 기간을 1년 3개월로 줄이면서 제재가 2017년1월7일로 이미 만료되었다고 밝혔습니다.

FEC 심판국장 한스 에커트와 FIFA 항소위원회의 위원장 래리 무센든은 이 같은 지연에 대해 직접적인 책임이 있습니다. 저는 CAS에 중재를 요청하기 위해 가능한 한 빨리 “결정 이유서(Reasoned Decision)”를 보내 달라고 이들에게 수 차례 편지로 요청했지만, 도저히 납득할 수 없을 정도로 늦게서야 결정 이유서를 보내줬습니다. 에커트와 무센든은 공개적으로 저에게 사과를 해야 합니다.

이들은 저에 대한 제재 결정을 먼저 통보하고, 7개월 후에나 결정 이유서를 보내왔습니다. 그 후 항소 결정 이유서는 9개월 후에나 받을 수 있었습니다. 제재의 근거를 보내주는 데 도합 16개월이나 걸린 것입니다. CAS 중재위원들의 말대로 “비양심적인(unconscionable)” 처사였습니다. 이는 마치 판사가 사형선고를 내리고 이미 사형이 집행된 16개월 후에야 사형선고의 근거를 발표하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CAS 중재위원들은 결정문에서 “FIFA가 이 민감한 사안의 처리를 이렇게 오래 지체한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지체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플라티니와 블래터의 경우는 제 경우와 극명하게 대비됩니다. 이들은 항소위원회의 결정 이후 약 일주일 만에 결정 이유서를 받았습니다. 블래터는 항소위원회 단계에 있을 때 결정 이유서를 불과 8일만에 받았습니다. 플라티니도 9 일만에 결정 이유서를 받았습니다. FIFA의 위원회는 자신들이 원하면 얼마든지 효율적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기구입니다. 다만 제 경우만 의도적으로 예외로 삼았던 것입니다.

FIFA 내부가 정확히 어떻게 움직이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달리 이해할 방법이 있을까요?

내용면에서 봤을 때도 FEC가 애초에 저에 대한 혐의를 제기한 것부터가 잘못된 것입니다.

저에 대한 “조사”가 시작되기 1년 전인 2014년 3월 FIFA 윤리위의 보벨리 부위원장은 한승주 한국 월드컵 유치위원회 위원장을 만나 “당신이나 당신의 팀에 대해 아무런 혐의도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2015년 1월, 제가 FIFA 회장 선거를 준비하고 있을 때, FEC는 저에게 FIFA의 윤리 규정을 심각하게 위반한 “명백한(prima facie)” 증거가 있다고 주장하면서 조사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조사”라는 것이 시작되자마자 조사의 타깃이 저라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2015년 7월, 저는 벤쿠버에서 열린 여자 월드컵 결승전을 보러 갔습니다. 제가 7월 3일 금요일에 도착하자, 저보다 이틀 먼저 와 있던 정몽규 대한축구협회 회장이 매우 충격적인 이야기를 전해주었습니다. 제가 벤쿠버에 오기 전, 정회장이 FIFA의 부회장 한 명을 만났는데, 그 부회장이 말하기를 만약 제가 FIFA 회장 후보에 출마하면, FEC가 저를 저지하기 위해 제재를 가할 것이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제가 사실여부를 확인하려고 그 부회장을 만났는데, 그는 저에게 동일한 얘기를 해주었습니다. 저는 FIFA가 그렇게까지 정치적으로 부패했다고 믿고 싶지 않다고 했습니다.

3주 후, 7월 24 일부터 26일까지, 저는 골드컵 결승전을 보기 위해 필라델피아에 있었습니다. 그 당시 함재봉 박사도 동행했는데, 함박사는 CONCACAF(북중미카리브축구연맹)를 대표하는 로펌의 변호사와 점심을 한 이후에 같은 이야기를 저에게 전해주었습니다. 변호사 역시 제가 FIFA 회장 후보로 나오면, FEC가 저에게 제제를 가할 것이라는 소문을 들었다고 함박사에게 말했습니다.

7월 30일, 로이터 통신의 서울 특파원은 함박사에게 전화해서 취리히에서 FIFA를 취재하는 대부분의 기자들이 FEC가 제가 FIFA 회장에 출마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제재를 가하려 한다는 소문을 들었다는데 함박사가 이 부분을 확인해 줄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그러던 중 8월 1일, 제가 FIFA회장 선거를 위하여 말레이시아에 도착한 날 Inside World Football에 저에 대한 기사가 실렸습니다. “대체로 믿을만한 소식통에 의하면, 정 부회장은 앞으로 내려질 FEC 결정에서 몇 가지 윤리 규정 위반 문제에 직면할 것이고, 아마도 이 문제들이 정 부회장이 FIFA 회장 선거에 출마하는 것을 막게 될 것이다.”라는 내용의 기사였습니다.

당시 언론에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Inside World Football은 블래터의 전 특별 고문이었던 홍보 컨설턴트 피터 하지테이가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한 보도는 "하지테이가 이제 제프 블래터가 부분적으로 지원하는 스위스의 이상한 온라인 뉴스 매체 Inside World Football을 장악했다. 하지테이는 'Inside Insight'라는 이름으로 말도 안 되는, 때로는 매우 해로운 칼럼을 써대고 있다.”라고 밝혔습니다.

블래터 자신도 2015년 12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지금 윤리위원회에 있는 사람들은 내가 모두 거기에 집어 넣었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저의 평판을 깎아 내리려는 시도는 계속되었습니다. 블룸버그 뉴스와 같은 언론 매체에 제가 과거에 아이티의 지진 피해자들과 파키스탄의 홍수 피해자들을 위해 기부한 것에 문제가 있어서 조사를 받고 있다는 허위 기사들이 실렸습니다. 2010년 지진으로 아이티에서는 3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사망하였고, 150만 명이 삶의 터전을 잃었습니다. 파키스탄에서는 홍수로 1000명 이상이 사망하였고, 2000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하였습니다. 피해 복구를 위해 저는 아이티에 20만 달러를 기부하였고, 파키스탄에도 20만 달러를 기부하였습니다. 1990년대부터 저는 국내외에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꾸준히 기부를 해왔습니다. 제가 FIFA 부회장으로서 받은 연봉도 자선 단체에 기부했습니다. 그러나 언론 보도들은 저의 기부를 뇌물인 양 몰아갔습니다. 이 보도들은 저를 흠집내기 위해서 “정치적인 의도”로 언론에 흘린 정보를 그대로 반영했습니다.

FEC가 저에 대하여 제기한 소위 "윤리 규정 위반"은 ‘투표 담합(vote trading)’이나 ‘이익 제공(appearance of offering benefits)’과 같이 상당히 심각한 혐의였습니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FEC는 “조사”의 일환으로 저에게 세 차례에 걸쳐 질문을 보냈습니다. 2014년 4월 14일에는 69개 항목, 2015년 2월 13일에는 50개 항목, 2015년 3월 17일에는 19개 항목의 질문을 보냈습니다. 2015년 2월 저에게 보낸 질문 중 하나는 “영국의 2018월드컵 유치위원장이었던 톰슨이 당신이 2018년 개최국으로 영국에 투표해주면 영국이 2022년 유치국으로 한국을 찍겠다고 ‘투표 담합’을 인정하였는데 톰슨의 진술로 사실이 밝혀져 당신은 놀라지 않았는가?”라는 질문이었습니다. 근거 없는 것으로 밝혀졌지만, 당시 FEC는 분명 저에 대한 결정적인 증거를 잡았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증거”를 가지고 저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습니다.

이들이 주장한 소위 ‘투표 담합’은 2010년 12월 1일, 제가 영국 집행위원 제프 톰슨과 함께 영국의 윌리엄 왕자의 초청으로 취리히의 보르 오 락(Baur Au Lac) 호텔에 있는 왕자의 스위트 룸을 찾아가 함께 만난 자리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이날은 2018/2022 월드컵 개최지 결정 바로 하루 전날이었습니다. 제가 분명히 기억하기로, 그 호텔방에는 캐머런 영국 총리도 있었습니다. 주영 대사를 지낸 이홍구 전 총리도 함께 자리에 있었습니다.

요컨대, FEC의 주장은 제가 투표 하루 전날 윌리엄 왕자와 캐머런 영국 총리를 만난 자리에서 톰슨과 ‘투표 담합’을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FEC에 윌리엄 왕자와 캐머런 총리도 투표담합 혐의로 조사하는지를 물었습니다. 더욱이, 마이클 가르시아 당시 윤리위원장과 톰슨 간의 대화록에 의하면, 톰슨은 저와 본인, 캐머런 총리가 ‘투표담함’에 합의했다고 주장한 바로 그 자리에 정작 윌리엄 왕자가 있었는지는 기억하지 못한다고 말했습니다.

더 어처구니 없는 점은 이것입니다. FEC 조사국은 톰슨과 가르시아의 대화록을 첫 번째 질문 문항들에 대한 첨부 자료로 저한테 보내왔습니다. 그들은 이것이 투표 담합에 대해 반박의 여지가 없는 확실한 증거라고 생각하고 저에게 보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대화록의 같은 부분을 인용하여, 톰슨의 기억에 의문을 제기하고, 일관성이 없다고 지적을 하자 그들은 제가 대화록을 어떻게 입수했느냐고 오히려 저에게 물어 왔습니다!

제가 영국과 투표 담합을 했다는 것이 터무니 없는 주장이라는 것을 입증할 또 다른 근거가 있습니다. 2010년 11월 아시아축구연맹(AFC) 본부가 있는 쿠알라룸푸르에서 제레미 헌트 영국 문화부장관, 앤디 앤슨 영국 유치위원회 위원장, 폴 엘리엇 영국 대사, 톰슨 등으로 꾸려진 영국 월드컵 유치위원회 팀이 2018년 월드컵 유치를 위한 프리젠테이션을 했습니다. 공식적인 발표를 마친 뒤 사적으로 대화를 나누면서 저는 영국 유치위원회 위원들에게 미국이나 호주와의 역사적, 정치적 유대 관계를 감안해서 영국은 2022년 월드컵 개최지로 한국보다는 미국이나 호주에 투표하지 않겠냐고 물었습니다. 그들은 주저 없이 그렇다고 말했습니다.

“이익 제공”에 대한 FIFA의 주장은 제가 한국 2022월드컵 유치위원회의 “국제축구기금(GFF)” 제안을 설명하는 편지를 동료 FIFA 집행위원들에게 보낸 것이 문제라는 것이었습니다.2010년 10월 한승주 당시 한국 유치위원장은 런던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제축구기금(GFF) 공약을 발표했습니다. 저는 그 이후에 동료 집행위원들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제가 편지에 쓴 내용은 이미 New York Times와 같은 언론사 보도를 통해 충분히 공개된 내용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GFF는 전혀 특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FIFA가 모든 유치 신청국에 요구하는 “축구 발전” 프로그램에 맞추어 제안한 것이었습니다.1995년 한국이 2002년 월드컵을 유치할 당시에도 이러한 맥락에서, 월드컵 예상 수익 3억달러를 FIFA에 발전 기금으로 내놓을 것을 약속했던 바 있습니다. 한국은 월드컵을 개최한다는 자체만도 이미 충분한 영광이라고 생각했고, 따라서 월드컵 경기를 통한 수익을 세계 축구 공동체와 함께 나누고자 했던 것입니다.

영국의 2018월드컵 유치위는 ‘Football United’ 기금을 제안하면서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현재 FIFA가 축구 발전을 위해 쓰는 재정규모에 필적하는 새로운 기금을 만들 수 있는 특별한 기회…이것이 당신의 대륙연맹에 의미하는 바를 상상해 보라.”

2022년 월드컵 유치를 신청한 카타르는 "태국과 나이지리아의 축구 풀뿌리 및 영재 발굴 프로그램", "네팔과 파키스탄의 16개 학교에 축구를 통한 지원", "어려운 나라에 22개의 모듈화 스타디엄 건설" 등을 제안했습니다. 영국의 기금 규모는 GFF의 몇 배는 됐을 것입니다. 카타르의 계획도 실현되면 물론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투표 담합”이나 “이익 제공”을 입증할 아무런 단서도, 논리도 찾지 못하자 “투표 담합” 혐의는 조사국에서 철회되었고, “이익 제공” 혐의는 심판국에서 철회되었습니다. 이것은 FEC가 조사를 할 때 쓰는 전형적인 수법입니다. 아무런 실체도 없이 일단 조사를 시작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FEC는 애초부터 근거 없는 잘못된 주장이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수사를 중단하고 사건을 일괄 종결하기는커녕 다른 지엽적인 문제들을 물고 늘어졌습니다. FEC는 2010년 집행위원들에게 보낸 편지가 ‘이익 제공’에 해당된다고 몰아가려다 실패하자, FIFA 편지용지를 사용한 것을 문제 삼았습니다. FIFA 부회장 자격으로 한국에 대한 지지를 요청하는 편지를 쓴 것이 부적절했다는 것입니다.

FEC가 주장하는 것처럼, FIFA의 편지용지를 사용해 편지를 보낸다고 해서 FIFA가 자동으로 편지 내용을 "승인"하거나 "보증"하는 것은 아닙니다. 블래터는 FIFA회장용 편지용지를 사용해서 수많은 편지를 보냈습니다. 하지만 FIFA가 그 내용을 "승인"하거나 "보증"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았습니다. 사실 FIFA 편지용지를 사용하여 생일, 휴가 및 여러 행사에 대한 축하 메시지를 주고 받는 것은 집행위원들 사이에서 널리 퍼져있는 관행입니다. 이것을 문제 삼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예를 들어, 2007년 10월 4일에 저는 FIFA 편지용지를 사용하여 동료 집행위원들께 골프 라운드 중 "홀인원"을 기록했다는 편지를 보냈습니다. 집행위원들은 나에게 축하 편지를 보내 왔는데, 그 중 일부 위원들은 공식 FIFA 편지용지를 사용했고, 일부는 대륙연맹의 공식 편지용지를 사용했습니다.

FEC는 별 효과가 없어 보이자, 이번엔 “조사” 과정에서 제가 절차 위반을 했다는 트집을 잡았습니다.

제가 블래터에게 조사의 부당함에 항의하는 편지를 쓰자, FEC는 저에게 “비밀 준수” 위반으로 “조사”를 계속할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심판국은 결정 이유서에 “FIFA의 모든 임직원은 문제가 있다고 느끼면 회장에게 편지를 쓸 권리가 있다. (Every official of FIFA has the right to write to the President if he feels that there is a problem that needs to be addressed.)”라고 밝히면서도 제가 블래터에게 보낸 편지들을 문제 삼아 “조사”를 연장했습니다. 이후, CAS는 FEC 주장의 모순을 지적하면서 “신청인(Appellant)은 자신이 보기에 부당하고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생각되는 절차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려고 했을 뿐”이라고 결론 내렸습니다.

저를 끌어내리기 위한 FEC의 허망한 시도는 계속 되었습니다. 저에 대해 당초 15년 제재를 구형했던 FEC는 명예훼손을 이유로 4년 제재를 추가 구형했습니다. 모두 19년 제재를 구형한 것입니다! 제가 FIFA회장 출마를 선언하면서 “윤리위원장 후보를 FIFA회장의 추천(nomination)이 아니라 독립된 별도의 위원회에서 추천토록 하자”는 제안을 선거홍보물에 게재했더니 윤리위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것입니다.

만일 이것이 FEC의 주장처럼 "명예 훼손”에 해당된다면, 에커트 심판국장은 이 사안의 직접적인 이해 당사자가 되는 것이고, 결정에 참여해서는 안되었습니다. 그러나 에커트는 저의 제척 요청을 무시한 채 1심을 주재했습니다. FEC와 에커트는 공정한 사법 절차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도 지키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FEC도 이처럼 터무니 없는 혐의들을 계속 우길 수는 없었습니다. 결국 “비밀 준수 위반”과 “명예 훼손”혐의는 모두 취하되었습니다. 이것은 저에 대한 조사가 “정치적 동기”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명백한 증거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FEC는 제가 조사에 “비협조적”(failure to cooprate)이었고, FEC에 답변을 늦게 보냈다면서 문제를 삼았습니다.

당시 저는 새누리당 서울시장 후보로 출마하여 치열한 경선과 본선을 치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2014년 4월, 비극적인 세월호 침몰 사고로 인해 한국은 정치적, 사회적 공황상태에 빠졌습니다. 304명의 희생자 중 대부분은 수학여행을 가던 고등학생들이었습니다. 국가적 비극 사태 속에서 개인적인 문제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습니다.

이것이 제가 FEC가 보낸 69개의 매우 상세한 질문에 대한 답변을 기한보다 15일 늦게 제출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였습니다. 그러나, FEC는 답변이 늦었다는 이유로 저에게 5년의 제재를 가했습니다.CAS는 결정문에서 “정 전 부회장이 서면 답변 기한을 약간 넘긴 것은 그보다 훨씬 오랜 기간 동안 이토록 중요한 절차를 지연시킨 FIFA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라면서 “이는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라는 격(The pot cannot fairly call the kettle black, especially when it itself is blacker)”이라고 밝혔습니다. 여기서 잠시 악명 높은 ISL사건에 대해 말씀 드릴까 합니다. ISL사건은 FEC가 어떻게 고의적으로 FIFA내부의 노골적인 부패 사건을 덮으려고 했는지를 보여 주는 사례입니다.

1997년, 블래터가 사무총장으로 있을 당시, 주앙 아벨란제 회장이 인터내셔널 스포츠 앤드 레저(ISL)로부터 월드컵 마케팅 권리와 TV 중계권 판매 권리를 부여하는 대가로 뇌물을 받았는데, 블래터는 이를 눈감아 주었습니다. ISL은 150만 스위스 프랑을 FIFA의 은행 계좌로 이체했고, 수신인은 아발란제였습니다. 이것은 ISL측의 실수였습니다. ISL로부터 받은 뇌물인 이 돈은 FIFA사무 총장인 블래터가 아닌 아발란제에게 직접 보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블래터는 이 뇌물을 신고하거나 조사를 시작하는 대신, 돈을 그저 ISL에 돌려주기만 했습니다. 게다가, ISL의 임박한 파산에 대해 사전에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블래터는 FIFA 집행위원회에 이를 즉시 알리지 않았고 심지어 “ISL의 파산이 FIFA재정에 미칠 영향의 정도와 범위를 축소하기까지 하였습니다.”

1년 후인 1998년에, 블래터는 FIFA회장으로 출마하였고 아벨란제의 전폭적인 지지로 당선되었습니다. 선거 당시 블래터 측의 선거부정에 대한 수많은 언론 보도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FEC는 언론보도와 스위스 사법당국의 조사에도 불구하고 블래터에 대한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습니다. 스위스 사법당국은 2005년 FIFA 본부를 압수수색하고 ISL뇌물사건과 관련하여 계속하여 수사하였습니다. 수사 결과 블래터 사무총장이 ISL로부터 FIFA에 잘못 입금된 뇌물에 대해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스위스 당국은 수사과정에서 아벨란제와 그의 사위, 테세이라 브라질 축구협회장이 1992년부터 2000년 사이에 ISL로부터 수천만 불의 뇌물을 받았다는 증거를 확보하게 됩니다. 아벨란제와 블패터 측의 집요한 방해가 있었지만, 스위스 대법원은 2012년 이 문서들을 공개하도록 결정했습니다.

2013년, 스위스 사법당국의 수사가 종결된 지 1년 후에야 FEC는 마지못해 ISL 뇌물 사건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FEC는 블래터가 “서툴렀다(clumsy)”는 결론을 내며, 부패에 대한 블래터의 책임을 면해주었습니다. ISL의 엄청난 뇌물사건을 뻔뻔하게 덮으려 하는 FEC의 시도와 날조된 혐의와 사소한 문제로 저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는 FEC의 모습은 너무도 확연하게 대비됩니다.

2015년 7월에 열린 미 상원 청문회에서, 리차드 블루멘탈 상원의원이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지금까지 드러난 것만 봐도 이번 사건은 스포츠계에서 벌어진 마피아 스타일의 조직적인 범죄입니다. 다만 FIFA를 마피아에 비유하는 것을 주저하게 되는 단 한가지 이유는 그런 비유는 오히려 마피아를 모욕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피아도 이렇게 노골적이고 뻔뻔하게 부패를 저지르지는 않습니다.”

2015년 9월, New York Times는 FEC에 대해서 “‘FIFA’와 ‘윤리(ethics)’라는 단어는 가장 큰 모순(oxymoron)”이라고 비판하기도 하였습니다.

제가 동료 집행위원들에게 편지를 보냈다는 이유로 5년의 제재를 받았다면 블래터는 얼마나 더 긴 제재를 받아 마땅할까요?

2017년 11월 공판 이후 CAS는 2018년 2월 판결을 내렸습니다. 판결문에서 CAS는 FIFA의 주장을 거의 다 기각하고, 저에 대해서 가해졌던 제재들이 “명백하게 그리고 극도로 균형감각을 상실한 것(evidently and grossly disproportionate)”이라고 밝혔습니다. 5년의 제재를 15개월로 줄였고, 이미 2017년 1월부로 저에 대한 제재가 종료되었다고 하였습니다. FIFA가 “비양심적으로” 저에게 부과한 벌금 5만 스위스 프랑도 취소했습니다.

FEC의 조사국이 저에게 19년의 제재를 부과하려고 했으나, CAS에 의해 15개월로 경감되었습니다. 물론 CAS는 제가 조사관들과 좀 더 긴밀하게 협력할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했지만, 그렇지 않았다고 해서 “결정적인 문제(major infraction)”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밝혔습니다.FIFA의 태만과 지연 행동으로 저는 13개월이나 추가로 제재를 받아야 했습니다. FIFA는 이에 대해 윤리적 책임을 져야 할 것입니다.저에 대한 FIFA의 부당한 행위들은 블래터가 이끈 낡은 FIFA 속에서 자행된 것들입니다. 저는 FIFA가 블래터의 어두운 유산을 청산하고 새로운 FIFA로 거듭나기를 바랄 뿐입니다. 과거의 FIFA 때문에 고통 받았던 저의 시련을 조금이나마 이해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 CAS가 진실을 밝혀낸 것을 저와 함께 기뻐해주시기 바랍니다.

낡은 FIFA때문에 고통 받았지만, FIFA에 대한 저의 존경과 애정은 변함이 없습니다. 이제 고통의 기억들을 뒤로 접어두려 합니다.

제 사건을 보다 명확히 설명하려다 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글이 길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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