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풋볼=수원] 유지선 기자= 일주일 전 문수구장에서 깊은 한숨을 내쉰 수원 삼성이 빅버드를 무대로 극적인 ‘8강행 드라마’의 주인공이 됐다.

수원은 16일 오후 8시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울산과의 2018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ACL) 16강 2차전 경기에서 3-0으로 승리했다. 이로써 수원은 1, 2차전 합계에서 3-1로 앞서면서 극적으로 8강행 티켓을 손에 거머쥐었다.

간절함으로 똘똘 뭉친 결과였다. 서정원 감독은 8강 진출을 확정 지은 뒤 기자회견에서 “선수들, 코칭스태프와 함께 오늘 경기에서 간절함이 어떤 것인지 보여주자고 했다”고 밝혔다. 실제로 수원은 그라운드 위에서 간절함의 힘을 보여줬다. 모든 선수들이 누구랄 것 없이 한발 더 뛰었고, 울산에 악착같이 맞섰다.

서정원 감독도 “콤팩트한 플레이를 펼치자고 했고, 세컨드 볼은 무조건 다 따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런 부분에서 선수들의 살아있는 모습을 봤다. 세컨드 볼을 모두 땄고 그로인해 볼 소유를 할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모두가 열심히 뛰는 바람에 누구를 벤치로 불러들여야할 지 고민될 정도였다. “교체를 해야 하는데 모두가 열심히 뛰어줘서 누구를 교체해줘야 할지 고민되더라”며 새어나오는 웃음을 숨기지 못하던 서정원 감독은 “좋지 않은 모습을 보여준 선수가 없었다. 지도자 생활을 하면서 이런 경험은 처음 있던 일”이라고 흡족해했다.

경기 종료 후 스포트라이트는 입대를 앞둔 김건희를 향했다. 입대 전 마지막 홈경기를 치른 김건희는 이날 전반 26분과 전반 31분 차례로 득점에 성공하면서 ‘골’이 절실했던 수원에 두 골 차 리드를 안겨줬다. 후반전 신화용 골키퍼의 페널티킥 선방과 바그닝요의 쐐기골도 인상적이었지만, 김건희에게 스포트라이트가 향한 이유다.

수원의 유스(매탄고) 출신으로 큰 기대를 받으며 입단한 김건희는 2016시즌 프로 무대에 데뷔했지만, 이후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주지 못했다. 일찌감치 입대를 결심한 이유이기도 하다. 서정원 감독은 이전부터 김건희의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어리고 기대가 큰 선수인데 기회를 많이 주지 못했다. (김)건희가 그동안 굉장히 힘들어했다”며 가슴아파했다.

드라마처럼 마지막 홈경기에서 팬들에게 완벽한 작별 선물은 건넨 김건희는 “(입대 전) 빅버드에서 치르는 마지막 홈경기였다. 잘하자는 생각보다는 경기 결과에 상관없이 후회가 없도록 모든 걸 쏟아보자고 생각했고, 수원이라는 팀을 보여주고 싶었다”며 경기에 나서는 각오가 남달랐다고 소개했다.

특별한 경기인 만큼 개인적인 각오가 남달랐겠지만, 심지에 불을 지핀 건 베테랑의 한마디였다. 김건희는 “어제 밤 선수들끼리 모여서 미팅을 했다. (조)원희 형이 수원이라는 팀이 어떤 팀이고, 어떤 의미가 있는지 이야기해줬다. 수원이 예전부터 강한 DNA를 가지고 있는데, 그걸 보여주자고 했다. 그런 부분이 오늘 경기에서 나왔던 것 같다”고 귀띔했다.

때로는 옆에서 함께 동고동락하는 동료의 말 한마디가 감독의 말보다 더 진하게 다가올 때가 있다. 중요한 일전을 앞두고 꺼낸 조원희의 이야기가 어린 선수들에겐 딱 그러했다. 조원희를 비롯해 염기훈 등 오랜 기간 수원의 역사와 함께한 선수들이 중심을 잡고 버텨주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서정원 감독은 “조원희는 어린 선수들이 본받을만한 선수다. 지난 주말 대구전을 마친 뒤 저녁식사를 하고 집에 돌아가는데, (조)원희는 숙소에 남아 냉탕과 온탕을 오가면서 다음 경기를 준비하더라. 어린 선수들도 다 봤을 것이다. 선배들이 어린 선수들의 마음이 헤이해지지 않도록 좋은 본보기가 돼주고 있다”며 실제로 베테랑 선수들이 어린 선수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건희도 “(수원이란 팀에 대한 애정을) 형들 옆에서 보고 배웠고, 형들을 닮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탄탄한 유스 시스템을 기반으로 성장한 어린 선수들과 솔선수범하고 끌어주며 ‘닮고 싶은 선배’가 된 베테랑 선수들, 온갖 풍파를 겪고도 꿋꿋하게 제자리를 찾아가는 수원의 ‘진짜 힘’이다. 

사진= 윤경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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