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풋볼] 대~한민국! 짝짝~짝짝짝! 온 국민을 대통합으로 이르게 하는, 마법의 구호입니다. 축구 하나로 모든 국민이 하나로 뭉친다는 건 참으로 대단한 일입니다. 한국축구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축구를 사랑하고 함께해 주시는 여러분 덕이기도 하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흐른 땀의 역할도 큽니다. 안타깝게도, 그사이에는 전해지지 못한 수 많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국축구가 더 나아가기 위해선 이 땀의 주인공들과 여러분 사이에 연결고리가 필요합니다. 매주 화요일 왕찬욱의 연결고리로 그 사이를 이어 드리겠습니다. [편집자주]

"해설을 1년 했는데 아직도 비슷한 상황에서 똑같은 말을 하고 있구나. 정체되었구나. 이런 생각이 들은 거죠. 스트레스가 엄청났어요. 그 뒤로 '내 삶이 100% 축구로 가득 채워져야겠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죠."

김태륭 KBS 해설위원(이하 김 위원)과의 대화는 커피잔을 사이에 두고 계속됐다. 자신이 정체됐다고 느낀 시절을 기억 속에서 꺼낸 그는 삶을 축구로 가득 채우기 위해 어떤 결심을 하고 어떻게 실행에 옮겼는지를 차분히 풀어 나갔다.

[김 위원] 모든 걸 다 비우고 오자는 심정으로 2014년 3월에, 한 3주정도 유럽에 다녀왔어요. 그리고 KBS 해설위원을 하게 되면서 다른 일들 다 정리하고 해설에만 집중하기 시작했어요. 그때가 월드컵 준비 기간이라, 공부를 엄청나게 했죠. 32개국 대표팀 선수들이 한 둘이 아니잖아요.

[기자] 23명씩 32개국. 736명이나 되네요. 다 파악하려면 밥 먹을 시간도 없겠는데요?

[김 위원] 선수 한 명 한 명 다 자료 만들어서 화장실 벽에다가 다 붙여 놓고 공부했어요. 또 집에 축구방이 따로 있어요. 조그마한 작업방인데, 문 닫으면 완전 독방, 감방 같아요. 4, 5월에 거기서 살다시피 했는데, 와이프가 그 근처를 지나가기만 해도 살기가 느껴진다고 할 정도였어요. 이어폰을 끼고 있으니까 불러도 모르고. 그때는 누구 이름만 들어도 어디 소속이고 올 시즌 활약이 어땠으며 포지션은 어디이고 이런 디테일들을 다 외웠어요. 코치들도 다 알아야 하고, 참가국 평가전도 다 챙겨 보고. 지금은 조금 까먹었죠(웃음). 두 달 넘게 그렇게 빠져 살았어요.

김태륭 KBS 해설위원의 브라질 월드컵 준비 자료 일부 김태륭 KBS 해설위원의 브라질 월드컵 준비 자료 일부

김태륭 KBS 해설위원의 축구방 모습 김태륭 KBS 해설위원의 축구방 모습

[기자] 그렇게까지 치열하게 공부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김 위원] 저는 EPL을 중계하든 어디 말레이시아 리그 중계를 하든 아무 상관이 없어요. 해설을 하면서 축구를 느끼고 공부하고 이런게 좋은 거지, 반드시 유명한 리그를 해야 한다 이런 욕심은 없어요. 딱 하나가 있다면 바로 월드컵. 그것 만큼은 하고 싶었어요. 제가 선수로서 월드컵을 못 갔기 때문에 로망이 있죠.

[기자] 로망이라. 결과적으로 선수로 못 가본 월드컵을 해설로 누비셨어요.

[김 위원] 그때 미디어 신청이 늦어 져서 저는 브라질에 못 가고 한국에서 15경기인가를 맡았어요. 아, 정말 브라질 어떻게 해서든 갔었어야 했어요(웃음). 아쉬워라. 아무튼, 한국에서 일 많이 했어요. 새벽 경기 다 보고 분석하고 자료 준비해서 월드컵 분석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열심히, 즐겁게 했죠.

[기자] 그때 16강전 오심 발언 해프닝이 있었잖아요?

[김 위원] 그리스하고 코트디부아르가 치른 16강에서요. 제 스타일이, 파울이면 파울이라고 정확히 짚어요. 어느 팀 입장에서는 조금 아쉽겠는데요 이런 말 보다는 이게 오심이다 아니다 정확하게 이야기를 해요. 리플레이를 두 세 번 보니까 당연히 정확하게 짚어 주는 것이 해설위원의 의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문제가 터졌죠. 당시 상황이, 후반 추가시간에 PK가 선언됐고 리플레이를 한 각도에서 한번 보여 줬어요. 그 각도에서는 접촉이 없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에 제가 잘못된 판정이라고 단언했어요. 그리고 PK 차고, 들어가고 그대로 끝나 버렸어요. 그런데 나중에 다른 각도 리플레이를 보니까 아뿔싸. 접촉이 있었던 거에요. 바로 SNS 통해서 발언에 대해 정정하면서 '죄송합니다', '잘못 봤습니다' 라고 사과하고 그랬었죠.

[기자]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어쨌든 그렇게 로망을 이루시고. 월드컵 이후에도 엄청 바쁘게 활동하셨잖아요?

[김 위원] 2014년 기준으로 대한민국 해설위원 중에서 제가 해설을 제일 많이 했어요. 총 113경기. 작년 10월이 정말 정점이었는데, 한달에 24경기를 했어요. 세리에A, A매치, K리그, 챔피언스리그, 유로파리그까지. 사람이 하게 되더라구요.

[기자] 해설 3년 하셨는데도 월드컵부터 챔피언스리그, A매치, EPL 등등 안 해본 경기가 없으시네요.

[김 위원] 그런데도, 해설을 하면 할 수록 두려움이 있어요. 축구는 정답이 없는 거잖아요. 또 경기를 보는 사람 중에는 현역 프로축구선수도, 감독님들도 있을 텐데. 나보다 축구를 훨씬 더 잘 아는 사람도 있을 텐데 감히 내가 단정을 지을 수 있나. 이런 생각에 잘난 척을 못해요. 또, 조금 기가 산다 싶으면 한준희 사부가 눌러 줘요(웃음). (한준희 KBS 해설위원이) 저한테는 사부님인데, 저를 해설로 이끌어 주신 스승님이에요. 그래서 저는 사부님이라고 불러요.

[기자] 한준희 해설위원님과 얽힌 사연도 엄청 많겠네요.

[김 위원] 제가 2012년 3월 SBS에서 첫 중계를 들어갈 때, 사부님이 장문의 문자를 보내 주셨어요, '데뷔전을 앞둔 네가 해설을 하면서 반드시 기억하고 지켜야 할 것'이라고요. 첫째, 반드시 아는 것만 말할 것. 둘째, 튀려고 하지 말 것. 셋째, 경기 주인공은 해설자가 아닌 경기 자체이니, 경기 상황에 집중할 것. 넷째, 집에서 유행어 만들어 오지 말 것. 이런 것들이에요. 아직도 저의 철칙이에요. 축구에도 룰이 있듯이 저에겐 이게 룰인 거죠. 요즘에도 새벽에 중계하고 있으면 중간에 문자가 와요. 잘하고 있을 때는 칭찬해주시고, 못하면 혼나요. 가끔씩 제가 잘난척 하고 그러면 '너는 해설 내용 자체가 훌륭한데, 왜 굳이 튀려고 하냐. 괜히 개인기 부리지 말고 경기에 집중해라.' 이런 식으로 짚어 주셔요. 사부니까요. 너무나 고맙죠.

김태륭 KBS 해설위원(우)과 '사부' 한준희 KBS 해설위원(좌) 김태륭 KBS 해설위원(우)과 '사부' 한준희 KBS 해설위원(좌)

[기자] 김 위원님이 갖고 있는 해설 철학에 대해 듣고 싶네요.

[김 위원] 제가 생각하기에, 좋은 해설이란 시청자와의 이해와 공감을 만들 수 있는 해설이에요. 여기에 감동까지 추가되면 완벽하죠. 그렇게 보면 저는 절대로 메인이 될 수 없어요. 제 한계를 잘 알아요. 저는 감동을 주면서 해설하기는 힘들 거에요.

[기자]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감동은 정확히 어떤 걸 이야기 하는 건가요?

[김 위원] 이게 무슨 이야기냐 하면, (이)영표 형을 예로 들게요. 방송국에 운전하면서 갈 때 영표 형이 중계하는 거를 틀어 놓고 소리만 듣고 있었어요. 볼 수는 없으니까 들으면서 상상하면서 가죠. 그러다 보면 두 세 번씩 '아 이런 게 있었구나', '이렇게도 생각할 수 있겠네?' 하는 말들이 있어요. 프랑스에서 앙리나 피레스, 리자라주가 해설하는 거를 보다 보면 마찬가지로 그런 게 있어요. 제가 공부를 하는 거나 질적으로 좋은 자료를 습득하는 거에 있어서는 밀린다고 생각 하지 않아요. 그런데, 자료와 지식을 습득해서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작업은 절대로 못 따라가요. 제가 공부를 지금의 2배를 해도 안돼요. 그게 감동이에요. 결국은 커리어에서부터 차이가 나는 거죠. 해설의 본질은 축구잖아요? 못 따라가요. 넘사벽('넘을 수 없는 4차원의 벽'을 줄인 신조어)이에요.

[기자] 경기인 출신 사이에서도 그런 차이가 있다는 말씀이시군요. 안 그래도 경기인 출신과 비 경기인 출신 사이에 어떤 차이점이 있을 지가 궁금했거든요.

[김 위원] 2000년대 중반까지는 데이터에 의거한 해설이 마치 교과서처럼 여겨 졌죠. 그런데 인터넷도 빨리 보급되고 매니아들의 수준이 높아지면서, 이제는 데이터보다는 경기 상황, 선수의 움직임, 전술 같은 경기 내적인 부분으로 넘어왔어요. 비 경기인 출신 해설자들이 공부를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잘 하시죠. 방송 스킬도 좋으신 분들이니까. 근데 문제는, 경기 중에 꼭 두 세 장면이 이론적으로 듣기만 했을 때는 맞는데 그 상황에는 안 맞는 말을 하실 때가 있어요. 이론과 실제가 다른 부분은 분명히 있으니까요. 아예 틀린 말을 하시는 분도 가끔 있어요. 디딤발로 프리킥 방향을 속인다던가. 분명 다른 선택지가 있었는데 태클 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던지.

[기자] 변화의 흐름에 따라 앞으로 해설위원 자리에는 경기인 출신들이 점점 많이 올라오겠네요.

[김 위원] 한준희 사부가 했던 말이 정확히 그거에요. 제 경쟁자는 기존에 있는 사람들이 아니에요. 영표 형 이런 사람들은 가히 '신' 급인데. 제 경쟁자들은 저보다 두 세 살 어린 현역 프로 베테랑 선수들이 될 거에요. 앞으로는 경기인 출신들이 많이 올라올 거기 때문이죠. 제가 선수를 할 때보다 좋은 교육, 훈련을 받은 사람들이 많거든요. 커리어가 좋은 친구들도 많고. 교육을 받은 경기인들이 치고 올라온다면 엄청나겠죠.

[기자] 비 경기인 출신과 경기인 출신의 차이점은 극복할 수 없는 부분인가요?

[김 위원] 그런건 아니에요. 제가 지금 있는 회사(스포츠구루)의 분석가 팀원을 보면, 경기인 출신이 아닌데 그런 흐름을 짚어내는 친구들이 있어요. 어떻게 이런걸 알았을까? 알고 보니까 이 친구들도 동호회를 나간다던가 하면서 축구를 꾸준히 하고 있는거에요. 그러니까, 책상 앞에 앉아만 있는 게 아니고, 필드에서 몸으로 뛰는거죠. 그게 축구인이고 경기인이죠. 그 전엔 선입견이 좀 있었는데, 다 깨졌어요. 편견 가져서 미안하다고 사과도 했고요.

흘러간 시간 만큼이나 많은 생각과 이야기를 꺼낸 김태륭 KBS 해설위원. 100% 축구로 채워진 삶을 살겠다던 다짐대로 그는 올 한해도 '축구 번역'을 위해 부단히 땀을 흘리고 있다.

사진=인터풋볼/김태륭 KBS 해설위원 제공

[인터풋볼] 왕찬욱 기자 reporter_1@interfootball.co.kr

Copyright ⓒ 인터풋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인터풋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