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풋볼] 윤경식 기자= 22년 동안 아스널을 이끈 아르센 벵거 감독이 팀을 떠난다.

벵거 감독은 20일(한국시간) 성명을 통해 “많은 생각을 비롯해 구단과 논의한 결과 이번 시즌이 마지막이 될 것이라는 것을 결정했다”라고 작별을 발표했다.

[벵거의 아스널, 황금기로 접어들다]

지난 1996년 9월 아스널 지휘봉을 잡은 벵거 감독은 어느덧 부임한 지 22년이 됐다. 당시 벵거 감독 선임은 굉장히 파격적인 시도였다. 낭시와 AS 모나코를 지휘한 것이 유럽서 감독 경험의 전부였고, 직전 일본의 나고야 그램퍼스 감독직을 수행한 감독에게 지휘봉을 맡기는 일은 쉽지 않았다. 또한, 아스널이 창단한 지 110년 만에 처음 선임한 외국인 감독이었기 때문에 우려의 시선이 있었다.

하지만 벵거 감독은 팀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1996년 10월 지휘봉을 잡은 벵거 감독은 수비적인 축구를 하던 아스널을 완벽하게 개조했다. 빠른 공격을 하는 팀으로 바꾸어 놓았고, 유망주 육성으로 1998 아스널을 잉글랜드 최강 팀으로 만들었다.

벵거 감독의 아스널은 1997-98시즌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 우승과 함께 FA컵까지 우승하며 이들의 시대를 알렸다. 이후 2001-02시즌에도 리그와 FA컵을 모두 우승하는 저력을 보여줬다.

그리고 2003-04시즌 절정의 시간이 찾아왔다. 바로 무패 우승이다. 티에리 앙리, 데니스 베르캄프, 파트릭 비에이라, 로베르트 피레스, 콜로 투레 등을 앞세운 아스널은 26승 12무의 성적으로 전무후무한 리그 무패우승의 위업을 달성했다.

프레스턴 노스엔드가 1888-89 시즌 무패 우승을 달성한 바 있지만, 발전한 리그의 상황과 더 많은 경기를 고려했을때 아스널의 위업과 비교하기 힘들다.

벵거 감독은 무패 우승과 함께 이 기세를 다음 시즌까지 몰아가며 49경기 무패 기록까지도 세웠다.

[재정 압박,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스널은 2005-06 시즌을 끝으로 하이버리를 떠나 지금의 에미레이트 스타디움으로 둥지를 옮겼다.

이 가운데 재정적 압박이 아스널에 엄습했다. 벵거 감독은 이를 지혜롭게 이겨내려 했지만 이후 우승과 거리가 멀어졌다. 로만 아브라모비치가 인수한 뒤 천문학적인 금액을 쏟은 첼시와 탄탄한 재정을 밑바탕으로 과감한 투자를 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따라가기 힘들었다.

그러나 벵거 감독의 지도력과 유망주 육성 정책이 명가 유지의 원동력이 됐다. 앙리마저 2006-07 시즌을 끝으로 팀을 떠났고, 거액 지출이 힘든 가운데, 2005-06 시즌부터 꽃을 피운 세스크 파브레가스와 가 팀을 이끌었다. 또한, 로빈 판 페르시 역시 잦은 부상에도 불구하고 벵거 감독의 믿음을 져버리지 않았다.

물론, 파브레가스, 판 페르시, 엠마뉴엘 아데바요르 등 위기를 넘기게 해준 구성원은 마찰음을 내며 떠났다. 하지만 벵거 감독은 꾸준히 재정적 안정을 구축함과 동시에 알짜배기 선수 영입으로 20시즌 연속 4위 진입이라는 대업을 달성했다.

[퇴임의 결정타가 된 16-17시즌]

20시즌 연속 4위 자리를 유지하며 ‘4위 과학’이라는 단어까지 탄생시켰지만, 우승에 목마른 팬들은 서서히 벵거 감독의 퇴진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높였다. 이 목소리는 2015-16시즌 레스터 시티와 우승 경쟁을 할 당시 잦아들었지만 우승 경쟁에서 무너지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다시금 커졌다.

그리고 지난 시즌 처참한 성적이 기름을 부었다. 아스널은 2016-17시즌 메수트 외질과 알렉시스 산체스를 앞세워 다시 정상에 도전했다. 그러나 달라진 것은 없었다. 오히려 부진이 이어졌고, 바이에른 뮌헨과 챔피언스리그 16강전에서 1,2차전 합계 10-2의 패한 것이 아스널 팬들에게 큰 실망감으로 다가왔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4위 진입마저 실패한 것이다. 아스널은 지난 시즌 23승 6무 9패 승점 75로 리버풀에 승 1 차 5위로 시즌을 마무리했다. 비록 FA컵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지만 4위 진입 실패를 하지 못한 것의 충격을 덮을 수 없었다.

팬들은 ‘변화의 시간, 벵거 아웃’을 외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스널은 FA컵을 우승한 벵거 감독을 여전히 신임했고, 시즌 종료 후 2년 계약을 연장했다.

그러나 벵거 감독은 반전을 만들지 못했다. 이번 시즌에도 순위가 6위까지 밀려났다. 남은 유로파리그에서 우승에 실패한다면, 사실상 2년 연속 챔피언스리그에 초대받지 못하게 되는 셈이다.

[다가온 이별의 순간, 쏟아지는 경의의 표시]

결국 변화의 순간을 인정한 벵거 감독이었다. 벵거 감독은 "구단과의 논의 과정 등 향후 진로에 대해 심사숙고한 끝에 올 시즌을 끝으로 물러나는 것이 적절하다는 판단이 들었다. 팀을 위해 봉사할 잊지 못할 여러 시즌을 보낼 수 있었던 것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한다. 나는 헌신적으로 그리고 성실히 클럽을 관리했다. 이 클럽을 특별하게 만든 데 대해 선수들과 스태프들 그리고 구단 관리자들에게 고마움을 표하고 싶다. 나의 시랑과 지지는 영원할 것"이라며 작별을 알렸다.

최고의 자리에서 떠나 못한 아쉬움이 있다. 하지만 벵거 감독은 찬사를 받기에 충분했다.

‘애제자’ 앙리는 ‘스카이스포츠’를 통해 “만감이 교차한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라면서 “비록 몇 경기가 남았지만 내게는 위대한 사람이 팀을 떠나는 것을 보게 된 슬픈 날이다. 그러나 벵거 감독은 최근 힘들었기에 여기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 벵거 감독을 볼 수 있어 약간의 행복함도 있다”라고 슬퍼했다. 파브레가스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라면서 “벵거 감독은 위엄과 품격을 보여준 사람이다. 난 그의 보호와 지원, 지도, 조언을 절대 잊지 못할 것이다. 그는 첫 날 부터 내게 믿음을 줬고, 난 많은 빚을 졌다. 벵거 감독은 언제나 최고가 되길 바라는 아버지와 같은 사람이었다”라고 감사의 말을 전했다. 판 페르시 역시 “많은 시간 내게 자신감을 안겨준 벵거 감독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다. 당신은 매우 특별한 사람이며 최고의 감독이다. 분명 역사상 최고 중 한 명이다”라고 동참했다.

라이벌 관계도 없었다. 맨유 역시도 “믿을 수 없는 22년의 경력이었다. 남은 시즌 동안 행운을 빈다”라고 했으며, 개리 네빌 역시도 “1998년 그의 팀은 최고였다. 벵거 감독은 수 년 동안 우리를 힘들게 만들었다. 가장 위대한 경쟁자였다”라며 “벵거 감독은 우리의 플레이 방식을 바꿨다”라고 찬사를 보냈다.

벵거 감독을 경험한 타팀 감독들 역시 이에 동참했다. 벵거 감독과 라이벌 관계였던 맨체스터 유나티드의 알렉스 퍼거슨 전 감독은 “벵거 감독의 선택에 기쁘다. 난 그를 대단히 존중한다. 벵거의 재능과 프로정신, 결단력은 훌륭했다. 그의 사랑이 22년 동안 아스널에 헌신할 수 있게 만들었다”라고 전했다.

이어 “감독직은 오직 한 시즌 내지 두 시즌일 때가 있다. 아스널과 같은 구단에서 이처럼 오래 지휘할 수 있다는 것은 그가 이뤄낸 성과를 보여주는 것”이라며 “의심의 여지 없이 EPL 최고의 감독 중 한명이다. 난 벵거와 같은 위대한 사람이 라이벌이자 친구였다는 사실이 자랑스럽다”라며 벵거 감독에게 찬사를 보냈다.

 

리버풀의 위르겐 클롭 감독은 “벵거 감독은 90년대 중반과 2000년대를 지배했다. 독일에 있을 때 그는 롤 모델이었다. 난 벵거 감독에게 좋은 일만 가득하길 소망한다”라고 말했다. 바이에른 뮌헨의 유프 하인케스 감독 역시 “무엇보다 그는 위대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 벵거 감독은 20년이라는 시간을 아스널을 위해 썼다. 위대한 성공의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매력적인 축구를 했다. 그는 유럽 최고의 감독 중 한 명이다”라며 경의를 표했다.

또한, '앙숙' 주제 무리뉴 감독은 "벵거 감독이 기쁘다면 나도 기쁘며, 슬프다면 나도 슬프다"라며 "난 벵거 감독이 존중을 받을 만한 자격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가 은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벵거의 아스널 22년 기록, 총 1228경기]

EPL 우승 3회 : 1997-98, 2001-02, 2003-04
FA컵 우승 7회 : 1997-98, 2001-02, 2002-03, 2004-05, 2013-14, 2014-15, 2016-17
커뮤니티 실드 7회 : 1998, 1999, 2002, 2004, 2014, 2015, 2017
LMA(리그 감독 협회) 선정 올해의 감독상 2회 : 2001-02, 2003-04
EPL 이달의 감독상 수상 15회
잉글랜드 축구 명예의 전당 헌액 2006년

EPL 기록 : 823경기(역대 최다) 473경기 199무 151패 / 승률 57.5%

사진= 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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