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풋볼= 화성] 서재원 기자= 27일 서정원 감독을 만나기 위해 수원 삼성의 클럽하우스를 찾았다. 사실 그와 인터뷰 약속을 잡은 게 한 달 전 일이었는데, 통 연락이 닿지 않아 만남이 늦어졌다. 유럽 출장 전후로 연락이 끊겼다. 수원의 동계 훈련이 시작되고 나서야 그와 연락이 다시 닿았다.

“감독님 안녕하시죠?” 안부를 먼저 물을 수밖에 없었다. 안녕하지 못할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서정원 감독의 답 역시 “뭘 알면서 그래~”였다.

“아니 왜 이렇게 연락을 안 받으셨어요?”라고 운을 뗐다. 최근 화제가 된 이모티콘, ‘눈물이 주륵’은 무엇이냐고도 물었다. 서정원 감독은 “그럼 웃을 수는 없잖아”라고 유쾌하게 받아쳤다. 그랬다. 울 수도, 웃을 수도 없는 게 현재 서정원 감독의 상황이었다.

사실 수원의 2017년 한해도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좋은 소식보다는 안 좋은 소식이 더 많았다. 시작부터 꼬였다. 리그 첫 승까지 7경기나 걸렸다.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ACL)에서도 부진은 계속됐다. 그 사이에도 팀을 둘러싼 잡음은 늘 따라왔다.

서정원 감독도 몇 번을 넘어졌다. ‘세오(SEO) 아웃’이라는 팬들의 퇴진 구호도 들어야 했다. 실제로도 지난 4월 스스로 지휘봉을 내려놓으려고도 했다. 코치진과 프런트, 선수들의 만류가 없었다면 지금의 서정원 감독은 수원과 남이 됐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서정원 감독은 다시 일어섰다. 꿋꿋이 자신의 길을 갔다. 다시 쎄오를 외치는 팬들이 늘었다. 결과적으로 최종 순위 3위와 ACL 플레이오프 진출이란 나름의 성과를 거두며 2017년을 마쳤다. 

- 2017년은 유독 힘드셨죠.

“제가 6년째 수원을 맡고 있어요. 해마다 안 힘들 때가 없었던 것 같아요. 매년 더 어려워지죠. 이는 모든 팀들의 고민이라 생각해요. 수원 같은 경우 시즌 초반 ACL과 맞물려 어려움이 컸어요. FA컵에서도 과부화가 걸린 게 사실이고요. 한 두 해 문제가 아니에요. 만약 선수층에 여유가 있으면 효율적인 운영도 가능하겠지만, 현실적인 부분을 인정해야 해요.”

- 유난히 이번 시즌 표정이 어두웠던 것 같아요. 화도 느셨고요.

“경기 끝나고 항상 후회하는 부분이에요. 그러지 말아야지 하는데 제어가 잘 안됐던 것 같아요. 더 배워야 할 부분이죠.”

- 사실 시즌 전까지는 상당히 희망적이었잖아요. 염기훈 선수도 우승을 말할 정도였으니까요.

“선수들도 말한 부분이지만 전지훈련 성과가 너무 좋았어요. 무엇보다 수준 높은 팀들과 연습 경기에서 승리하니 자신감이 높았던 것 같아요. 저 역시도 놀랄 정도였으니까요. 유로파리그 8강 이상 가는 팀(크라스노다르)이 찾아와 한 경기만 더 해달라고 사정했어요. 하루 더 머물 비용을 전액 지원해준다면서 말이죠. 그런 경험을 하고 오니 팀 분위기가 좋을 수밖에 없었어요. 아마 ‘누구와 상대해도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컸던 것 같아요.”

- 이번 시즌은 못가지만 스페인 전지훈련을 항상 강조하셨잖아요.

"이번 시즌은 일정상 스페인에 가지 못하는 아쉬움이 커요. 아무리 동계훈련을 일찍 시작했다고 해도 한 달밖에 준비 기간이 남지 않았네요. 하지만 수원이 매년 무리하게 스페인에 가는 이유가 있어요. 바둑도 고수와 둬야 실력이 는다고 하잖아요. 저수랑만 두면 발전하지 못해요. 비용은 많이 드는 게 사실이지만 얻는 부분이 훨씬 많아요. 이는 저뿐만 아니라 선수들 모두가 동감하는 부분이에요."

- 그런데 동계훈련의 자신감이 시즌 초반 오히려 독이 된 걸까요.

"자신감은 컸지만 시즌 초 스케쥴을 감당할 능력이 안됐던 것 같아요. 매년 반복되는 부분인 것도 잘 알아요. 수원은 항상 시즌 초 힘들었거든요. 피로도, 컨디션 조절 등에서 어려움을 극복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ACL이나 어느 한 대회에서 탈락해서야 남은 대회 성적이 좋아지곤 했죠. 제 능력이 부족한 부분도 있지만 스쿼드의 한계인 것 같기도 해요."

- 그래도 감독님이 목표했던 것은 달성한 시즌이지 않았나요.

"1년을 돌아보면 아쉬움은 당연히 있을 수밖에 없어요. 이는 매 시즌 마찬가지죠. 잘 된 것보다는 안 된 것이 더 생각나요. 사실 만족할만한 부분이 없어요. 만족해서도 안 되고요. 감독이라는 자리가 그런 거라 생각해요."

- 조나탄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것 같아요.

"아쉽죠. 아쉽지만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에요. 팬들도 마찬가지겠지만 감독인 나도 붙잡고 싶어요. 하지만 프로스포츠에서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부분은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구단이 잡을 수 없는 선수임을 인정해야 해요."

"대신 그 대체자를 열심히 준비하고 있어요. 물론 그만한 선수를 찾는 건 힘들죠. 그래도 나간만큼 보강해달라고 구단에 요청했어요. 구단 역시 적극적으로 도와준다고 약속했고요."

- 혹시 수원이 가장 어려울 때 감독직을 맡아 억울한 부분은 없으신가요.

"두 가지 생각이 드는 것 같아요. 물론 억울한 감정이 없다면 거짓말이죠. ‘왜 하필 내가 맡을 때 이러나’라는 생각도 했어요.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나니 배우는 점이 많은 것 같아요. 힘들었지만 그만큼 값어치가 있었다고 생각해요. 반대로 돈이 여유롭고 좋은 선수들이 많았다면 기쁨도 있겠지만 어두운 면을 느끼지 못했을 거예요."

- 4월에도 그만 두려고 하셨잖아요. 개인적으로 감독님이 재계약 하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도 있었어요.

"저와 가까운 사람들은 모두 반대했죠. 제 아내도 그렇고 아이들도 재계약을 하지 말았으면 한다고 말했어요. 옆에 있는 사람들은 너무 힘들어하는 게 보였나 봐요. 여러 가지 생각도 맞물렸어요. 스스로도 ‘이것뿐이 안 되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죠. 그래서 그만둬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 같아요."

- 그런데 왜 재계약을 하셨나요.

"선수들이 잡았어요. 그 누구한테도 제 속마음에 대해 이야기 안했는데, 선수들이 제 표정 보고 낌새를 알아차린 것 같아요. 어떻게 알고는 염기훈 선수를 시작으로 노장 선수들이 줄줄이 찾아오더라고요. 그러더니 ‘감독님만 믿고 힘들 때 함께 했는데 그만두는 게 어디 있냐. 그만두지 마시라’라고 붙잡더라고요. 제가 나가면 자신들도 나가겠다는 선수도 있었어요."

"나중에는 모든 선수들이 그러니 그들과 약속했던 것. 미안하고 고마웠던 것들이 생각나더라고요. 사실 매년 힘들었거든요. 그럴 때마다 오히려 선수들이 희생했어요. 자신의 연봉을 줄여가면서 팀을 만들었어요. 이런 선수들을 놔두고 저 혼자 도망가서는 안 되겠다고 마음을 고쳐먹었죠." 

- 선수시절도 그렇고, 지도자가 돼서도 그렇고, 어떤 양 갈래 길에서 항상 수원을 선택하게 된 것 같아요. 왜 이런 운명이 됐을까요.

"하...그 이야기는 참 긴데요(실제로 정말 길었다). 선수 시절 K리그로 복귀했을 때는 큰 의미는 없었어요. 사실 수원을 택했기 보다는 당시 해외 진출만을 생각했던 것 같아요. 수원은 해외 진출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준다고 했거든요. 계약도 2년이었고요." 

"해외 진출에 대한 꿈이 클 수밖에 없었어요. 스트라스부르에서 느낀 점과 아쉬움이 참 많거든요. 첫 경기에서 골을 넣었고 금세 팀의 주축 선수가 됐어요. 자랑이 아니라 시내 대형 전광판에 제 얼굴로 광고를 할 정도였어요. 동양인이라는 점에서 파격적인 일이었죠. 정말 인기가 좋았습니다. 하하."

"그런데 감독이 바뀐 뒤, 새로 온 감독이 저를 안 쓰는 거예요. 전반기 끝나고 10명의 선수가 나갔어요. 저도 외국인 선수니 새 팀을 만드려는 감독 입장에서 눈엣가시일 수밖에 없었죠. 요즘 사람들은 잘 모르는데, 그 때 쎄오라는 별명이 붙었어요. 감독이 저를 기용하지 않으니, 후반만 되면 전 관중이 ‘쎄오’를 계속해서 외쳤거든요. 그러니 감독도 어쩔 수 없이 저를 투입하곤 했어요."

"그럼에도 감독이 저를 선발로 기용하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아 이제 그냥 돌아가야겠다’고 마음먹고 수원과 계약을 했죠. 그런데 계약서에 사인하고 나니 마지막 경기에서 뒤늦게 바이에른 뮌헨에서 관심을 표하더라고요."

- (스트라스부르 이야기에 상당한 시간이 흘렀다)

"아! 그래서 수원으로 돌아와서도 계속해서 해외 진출을 알아봤어요. 수원 이적 후에도 컨디션도 좋았고 이적 제의도 계속해서 있었죠. 그런데 한창 좋을 때 십자인대가 딱 끊어지더라고요. 힘들었어요. '다 끝났다'고 생각했죠. 그 때 수원에서 5년 재계약 제안을 하더라고요. 정말 고마웠어요. 수원과 운명은 그렇게 시작된 거라 생각합니다." 

- 아직 못다한 질문이 많은데 시간이 아쉽네요. 마지막 질문입니다. 수원의 스리백에 대해 평가해주세요.

"전에도 말했듯이 스리백은 제가 오래 전부터 구상한 전술이었어요. 매년 유럽 출장을 통해 배운 부분이었죠. 2017년은 선수 구성상 어쩔 수 없이 스리백을 택한 점도 있었지만, 세계적 흐름에 따라갔다고도 평하고 싶어요. 한 팀에 새로운 전술을 입히는 게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거든요." 

"한 가지는 분명해요. 수원의 스리백 정착은 나름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해요. 전북과 최종전에서는 다시 포백으로 나서 승리까지 거뒀죠. 그럼 수원은 스리백과 포백이 모두 가능한 팀이 됐다고 평가하고 싶어요. 제가 2018년에 자신하는 부분이예요. 이 두가지 무기를 어떻게 활용할지 기대해볼만 하다고 생각해요." 

사진= 윤경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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