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풋볼=도쿄(일본] 유지선 기자= 마르첼로 리피 감독의 강펀치에 한국이 또 한번 중심을 잃고 휘청였다. 신태용 감독과 리피 감독, 두 여우의 만남은 무승부로 마침표를 찍었지만, 경기의 향방을 바꿔놓은 리피 감독의 전술 변화가 신태용호의 허를 찔렀다.

신태용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대표팀은 9일 오후 4시 30분 일본 도쿄 아지노모토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7 동아시아축구연맹(EAFF) E-1 챔피언십(동아시안컵) 첫 경기 중국전에서 김신욱, 이재성의 연속골이 나왔지만 유다바오에게 실점을 허용하며 2-2 무승부를 거뒀다.

공한증은 이제 옛말이 됐다. 한국은 이날 무승부를 거두면서 2경기 연속 중국에 승리를 거두지 못했다. 가장 최근 중국에 거둔 승리는 지난 2015년 안방에서 기록한 3-2 승리다. 그러나 그때 거둔 승리도 통쾌한 승리와는 거리가 멀었다. 중국의 공세에 막바지까지 쫓기면서 겨우 안도의 한숨을 쉰 기억이 뚜렷하다.

이번만큼은 중국에 잠시 잊고 있는 ‘공한증’을 일깨워주겠다고 다짐했지만, 오히려 간극이 좁혀졌다는 사실만 재확인하는 시간이 되고 말았다. 월드컵을 바라보며 팀을 만들어가는 과정에 있지만, 상대가 중국이라는 점에서 분명 쓰라린 무승부다.

# 중국, 22세 이하만 ‘6명’...방심하다 당했다

이날 경기서 중국은 예고했던 대로 어린 선수들 위주로 선발 라인업을 꾸렸다. 11명 중 무려 6명이 22세 이하 선수였고, 그중 A매치 데뷔전을 치르는 선수만 총 4명이었다. 경기를 앞두고 인터뷰에 응한 중국 기자는 “어린 선수들 위주로 구성됐지만, 내용으로만 만족하겠단 분위기는 아니다. 승리를 기대하고 있다”며 중국 내 분위기를 전했다

지난 3월 한국전 승리로 생긴 ‘충분히 해볼 만하다’는 자신감과 어린 선수들을 향한 신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리피 감독도 경기 종료 후 “(22세 이하인) 6명의 선수들은 오늘 능력을 증명해보였다. 젊고 능력이 확실한 선수들이다. 이들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 이 선수들을 뽑았다는 건 실력을 갖췄다는 뜻”이라며 강한 믿음을 내비쳤다.

대회 개막 전 공식 기자회견에서 양 팀 감독의 멘트는 확연한 차이를 보였다. 중국은 선수들의 어린 나이를 언급하며 ‘실험성’이 짙다는 것을 강조했고, 반면 한국은 대회 첫 2연패를 목표로 하며 강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앞서 울산 전지훈련에서의 성과가 만족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울산 전지훈련을 통해 끌어올린 전술 완성도를 확인하는 시간이 될 줄 알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것을 확인하는 쪽에 오히려 무게가 실렸다.

# 스리백 전환한 리피, 대처 미흡했던 한국

출발은 불안했지만, 이후 분위기를 뒤엎는 과정은 꽤 만족스러웠다. 중국이 전반 초반부터 라인을 끌어올려 공세를 펼쳤고, 전반 8분 A매치 데뷔전을 치르게 된 위시하오에게 선제골을 허용했다. 그러나 상대를 적극적으로 압박하며 주도권을 가져왔고, 전반 12분과 전반 19분 김신욱과 이재성이 각각 서로의 골을 도우면서 역전에 성공했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순식간에 승부를 뒤집는 저력과 압박을 통한 공격전개, 마무리 능력 모두 훌륭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호락호락 당하고 있을 리피가 아니었다. 후반전 시작과 동시에 리쉐펑을 투입한 중국은 스리백으로 전환하며 김신욱을 옭아맸고, 측면을 집요하게 흔들면서 반격에 나섰다.

리피 감독도 “후반전엔 전술을 바꿨다. 수비에 더 집중한 것”이라고 밝히며, 전술 변화의 효과를 인정했다. 이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했던 한국은 전반전과 같은 흐름을 보여주지 못했고, 또다시 측면에서 크로스를 허용하고 말았다. 첫 번째 실점 장면과 비슷한 상황에서 또다시 한방을 얻어맞은 것이다.

이재성 역시 “중국이 포백을 쓸 걸 생각하고 나왔는데, 후반전에 갑자기 스리백으로 변화를 주더라. 그러면서 선수들이 움직임에 혼란이 왔고, 후반에 좋은 장면을 만들지 못했다”며 이날 경기의 패인을 정확하게 짚어냈다.

신태용 감독과 리피 감독은 모두 꾀가 많고 영리하다는 의미로 ‘여우’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러나 이날 승부에서만큼은 좀 더 재빠르고 교묘했던 리피 감독이 한수 위였다. 공식적인 성적표는 2-2로 같았지만, 판정승은 리피의 몫으로 돌아간 이유다. 

사진= 윤경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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