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풋볼] 채태근 기자= ‘진출 당했다’는 냉소 속에 축하 받지 못한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 본선. 하루 사이 역사 속 메시아를 부활시켜 구원 받아야 한단다. 

‘차라리 탈락해야 한다’던 월드컵을 절실하게 만들어준 슈퍼CEO 히딩크 등판설에서 대한민국 사회의 축소판이 엿보인다. 대체 왜 찾고, 어떻게 모든 상황을 비틀어서라도 용납할 수 있다는 것인가.

어느덧 15년이 지난 2002 FIFA 한일월드컵 4강 진출이라는 ‘기적’의 아이콘 거스 히딩크 전 축구국가대표팀 감독. 그가 원한다면 ‘모셔와야 한다’는 여론은 이미 축구계를 넘어 일반인들에게도 “히딩크가 다시 온다?”며 흥미를 끄는 소재가 됐다.

일말의 가능성에 즉각 반응을 보이는 건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그만큼 앞뒤 따져 보지 않고 무조건을 외칠 만큼 실망이 크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이미 ‘신의 귀환’라는 주제 하에 많은 축구전문가들과 대중들의 의견이 나온 상황. 과연 무엇(월드컵 성공?)을 바라며 해야 하는 일을 하고 있는지. 그것을 위해 올바른 절차를 밟고 있는지 돌이켜봤다. 

# 우리가 히딩크에게 원하는 건? 소탐대실 하지 말자

무엇을 원하는가? 단도직입적으로 ‘4강’을 기대하는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히딩크 축구라면 2002월드컵 16강전 연장 혈투 끝 이탈리아에 극적인 역전승을 거두며 8강 진출을 달성한 후 내뱉은 “I’m still hungry”로 대변된다. 

투혼이 깃든 압박전술 등을 바탕으로 상대에게 도전하며 끝까지 경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와 같은, 대한민국 사람들이 원하는 화끈한 축구를 이번 최종예선에서는 전혀 보여주지 못했다. 거꾸로 아시아의 상대 팀을 우리를 그렇게 요리했다.

‘히딩크 전설’을 직접 겪은 이라면 신화 재현이 쉽지 않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 것이다. 이 답답한 속을 명쾌하게 풀어줄 영웅의 귀환을 꿈꿀 수 밖에 없지만 15년 전의 방식(=히딩크 감독)을 쓰는 것은 해야 할 일이 아니다. 똑같은 방식이 100%의 결과를 보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그때와 같은 전폭적인 지원이 불가능하다. 

# 히딩크는 부활을 위한 카드가 아니라 성공의 징표로 남겨둬야

체계적인 시스템 보다는 차범근, 홍명보 등 이름값에 기대 이상을 바라다 실패의 올가미를 덮어씌운 우리의 과거를 부끄럽게 돌이켜 볼 시점이다. 

히딩크는 월드컵 본선까지 약 9개월 동안 가능성에 명운을 걸고 소비시킬 자산이 아니다. 느끼고 있지 않은가. 그의 이름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설렘을 느끼고 그때 그 시절의 추억에 잠기며 ‘다시 할 수 있다’고 힘을 얻고 있는가. 

지금은 그 폭발력을 일회성으로 써버리기엔 촉박하다. 만에 하나 히딩크 체제로 월드컵에서 성공한다 한들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역시 히딩크? 

기적의 재연을 기대하기 보다는 ‘히딩크 없이’ 높은 꿈을 꿀 수 있는 한국축구를 만들어가야 한다. 2002월드컵의 발자취는 한국축구의 몇 되지 않은 성공사례로 보유하는 게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 ‘소방수’로 땜질 해온 대한축구협회, 허송세월로 보낸 15년 비판 마주해야

(15년 전에) 증명된 성공방정식을 왜 꺼내 들지 않냐고 들불을 들고 일어날 때. 할 수 있는 건 지나온 과거에 대한 직시다. 히딩크 복귀설에 “일정 대응하지 않겠다”는 KFA의 원칙론이 비난을 받는 이유는 월드컵을 앞두고 명망 높은 소방수로 땜질 처방을 반복해온 선례가 있기 때문이다. 

2010남아공월드컵을 제외하고는 여러 이유로 장기 플랜을 이어가지 못했다. 2005년에 딕 아드보카트를, 2013년에 홍명보를 월드컵 1년 앞두고 감독으로 선임해 결국 실패했다. 이번에도 ‘소방수 전문’ 신태용 감독에게 키를 맡겼지만 불안한 대중들은 이왕이면 더 큰 이름을 찾기 마련이다. 

팬들도 지난 15년의 시행착오를 남은 9개월 히딩크와 함께 만회할 수 있을지 냉정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 KFA는 더 이상 ‘예외’를 두지 않고 원칙을 강조했으면 그들 스스로 지켜야 한다. ‘갑질’은 별 게 아니다. 계약서 대로 지켜주는 것부터 시작이다.

# ‘슈퍼맨 신드롬’ 뒤 숨어 있는 열망 응집시켜야 할 축구계

축구계는 이번 이슈와 관련한 모든 사안을 ‘당장 때우고 넘어가고 말지’에서 그치면 안 된다. 이 놀라운 (비판 속에 담긴) 에너지를 자양분 삼아 공통된 비전으로 이끌어가야 한다.

‘히딩크가 오면 다 해결된다.’ 어디서 많이 들어 본 말 아닌가. ‘미국이 지켜줘야 국방이 된다’, ‘누가 대통령 되면 경제가 발전한다’ 등. 더 이상 2002년의 추억과 히딩크라는 브랜드 파워에 흔들리지 않는 자립이 일순위로 보인다. 

4년 마다 돌아오는 현실에서 다시는 신화에 기대지 않았으면 한다. 히딩크라는 변칙을 기대하는 이 시기가 제2의 히딩크, 제3의 새로운 카드를 키워야 한다는 자극제가 되길 빌어 본다.

사진=대한축구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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