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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훈의 HIS-tory] 삼류 선수에서 ‘스페셜원’이 된 남자, 주제 무리뉴

[인터풋볼] 세상에 사연 없는 사람은 없다. 세계적인 축구 스타들도 마찬가지. 현재는 가장 화려한 삶을 살고 있는 스타지만 모두가 꽃길만을 걸어온 것은 아니고, 시련을 이겨내 세계적인 스타로 성장한 경우가 많다. 그래서 축구 전문 언론 '인터풋볼'이 준비했다. 꼭지명은 역사를 영어로 한 'HIS-tory'. 즉 그 사람(His)의 이야기(Story)로 해석할 수 있다. 우리가 몰랐던 슈퍼스타들의 숨겨진 이야기를 독자 여러분들에게 소개한다. [편집자주]

스스로를 ‘삼류 선수’였다고 말하는 남자가 있다. 그만큼 현재에 자신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 현재의 그는 주위에 널려 있는 시시한 감독들과 비교하지 말라며 스스로를 ‘스페셜 원’이라고 부른다. 그 주인공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주제 무리뉴 감독이다.

축구계에서 스타플레이어 출신은 위대한 명장이 되기가 어렵다는 속설이 있다. 물론 최근에는 펩 과르디올라, 지네딘 감독 등이 등장하면서 속설이 깨지고 있지만 대표적으로 디에고 마라도나의 사례만 봐도 스타플레이어가 감독으로 성공을 보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평범하기 그지없던 선수가 종종 위대한 감독으로 거듭나곤 하는데 항상 첫 번째 사례로 꼽히는 인물이 바로 무리뉴 감독이다.

화려한 지도자 커리어를 가지고 있다. 2000년 벤피카의 사령탑에 오르며 지도자 길을 걸은 무리뉴 감독은 FC포르투, 첼시, 인터 밀란, 레알 마드리드 등의 지휘봉을 잡으며 수많은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이번에는 잉글랜드 최고의 명문 클럽 맨유다. 지난 시즌을 앞두고 맨유의 지휘봉을 잡은 무리뉴 감독은 우승 청부사라는 별명답게 유로파리그 우승과 리그컵 우승을 차지하며 맨유를 챔피언스리그 무대로 복귀시켰다.

이제는 맨유 2년차다. 흔히들 무리뉴 감독의 2년차를 ‘믿고 본다’고 말한다. 이 말은 무리뉴 감독이 한 팀의 지휘봉을 잡고 2년차에 가장 강력한 모습을 보인다는 점에서 나온 말이다. 그만큼 많은 기대를 받고 있는 무리뉴 감독. 그의 어린 시절부터 현재까지를 독자 여러분들에게 소개한다.

# ‘삼류 선수’ 무리뉴, 최고의 지도자를 꿈꾸다

무리뉴는 1963년 포르투갈 세투발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포르투갈 대표팀에서 활약했던 골키퍼 펠릭스 무리뉴고, 어머니는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했다. 이런 이유로 무리뉴는 어린 시절부터 비교적 유복한 가정환경에서 자랐고, 축구 선수인 아버지를 따라 축구 선수를 꿈꿨다. 축구는 어린 무리뉴의 삶에 있어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다. 어린 시절 무리뉴는 프로 팀의 감독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여러 도시를 돌아다니며 축구 경기를 직접 관람했고, 10대 때부터 상대팀의 약점을 잘 찾아내며 유능한 스카우트의 자질을 보였다.

무리뉴는 자신의 선수시절을 회상하며 ‘삼류 선수’였다고 말한다. 그러나 축구에 대한 열정은 남달랐다. 무리뉴는 10대 때부터 아버지를 따라 상대 팀을 분석하며 좋은 성과를 냈고, 축구 선수 무리뉴도 꽤나 좋은 평가를 받았다. 과거 무리뉴와 함께 했던 주제 페세이로(전 스포르팅 감독)는 “기술이 넘치는 선수였지다. 다만 전투적이지는 않았다”며 무리뉴의 선수시절을 평가했다.

무리뉴는 아버지 펠릭스처럼 훌륭한 축구 선수가 되고 싶었다. 이에 무리뉴는 세투발과 벨레넨세스에서 유스 시절을 보내고, 아버지가 감독으로 있던 히우 아브에 입단해 프로 축구 선수를 꿈꿨다. 무리뉴는 주로 중앙 수비수나 수비형 미드필더로 활약했는데 공식 경기에는 거의 출전하지 못했다. 실제 클럽의 자료에도 그가 1군으로 출전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 이후 무리뉴는 세심브라와 코메리쿠 인두스트리아에서 축구 선수 생활을 했는데 부상 등의 이유로 일찌감치 현역에서 은퇴했다. 무리뉴는 자신의 현역 시절을 회상하며 “난 내가 프로선수가 되기에 필요한 능력이 없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난 2군에나 어울리는 삼류 선수였다. 그래서 나는 전술과 지도 방식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다”며 일찌감치 현역 은퇴를 선언한 이유를 밝혔다.

축구 밖에 모르던 무리뉴에게 선택의 순간이 왔다. 초등학교 교사였던 어머니는 무리뉴가 축구보다는 공부에 집중하기를 원했고, 무리뉴 스스로도 프로 축구 선수가 되기 위해서는 기술, 피지컬, 주력, 파워 등이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무리뉴의 결단력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았다. 축구 선수로 성공할 수 없다고 생각한 무리뉴는 어머니의 바람대로 경영대학에 입학했지만 축구에 집중하는 것이 더 낫다고 판단해 하루 만에 자퇴했다. 이후 무리뉴는 최고의 지도자가 되기 위해 스포츠과학을 공부하겠다는 결심을 했고, 리스본 공과대학에 진학해 체육교육을 전공하며 우수한 성적으로 학위를 받았다.

무리뉴는 평범한 지도자가 아닌 최고의 축구 지도자를 꿈꿨다. 이에 무리뉴는 체육교사가 아닌 축구 지도자 길을 걷기 위해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축구협회가 주관하는 코치 연수 프로그램에 참가했는데, 전 스코틀랜드 감독이던 앤디 록스버그는 무리뉴의 연수과정을 세심하게 지켜보며 좋은 평가를 내렸다. 당시 무리뉴는 선수들의 동기부여와 심리적 테크닉을 경기 지도론에 접목시키며 참신한 결과물을 만들었고, 이때 록스버그를 비롯한 많은 감독들이 무리뉴의 지도 방식을 주목했다.

# ‘평생의 스승’ 보비 롭슨을 만난 무리뉴, 지도자의 길을 걷다

무리뉴의 언어적인 재능은 천부적이었다. 영국에서 지도자 수업과 영어 공부에 매진한 무리뉴는 어느새 유창하게 영어를 구사할 수 있게 됐고, 전술에 대한 지식도 풍부했다. 특히 무리뉴는 선수들의 심리를 잘 파악했고, 이를 꿰뚫는 언어적인 스킬은 대단했다. 이에 무리뉴는 일찌감치 고향인 세투발에서 유소년팀 감독을 맡게 됐고, 빠르게 성장해 아마도라의 부감독으로 부임했다.

이때 일생일대의 기회이자, 무리뉴 인생의 전환점이 찾아왔다. 무리뉴가 영국에서 지도자 연수를 받은 것이 계기가 돼 1992년 잉글랜드의 전설 바비 롭슨 감독의 통역으로 일할 기회가 생겼다. 당시 롭슨 감독은 포르투갈 스포르팅 리스본의 지휘봉을 잡았는데 축구와 영어에 능통한 통역관을 찾았고, 결국 무리뉴가 통역관으로 동행하게 된다. 무리뉴는 통역관으로 롭슨의 신뢰와 총애를 받았는데 롭슨은 무리뉴의 전술적인 해박함에 놀라움을 표현했고, 점차 전술적인 부분도 무리뉴에게 맡기기 시작했다.

통역관이 아닌 코치에 더 가까웠다. 롭슨 감독과 무리뉴는 상호보완적인 관계였는데, 롭슨 감독이 공격적인 전술에 집중하면 무리뉴는 수비적인 전술에 집중했다. 롭슨 감독의 완벽한 신임을 얻은 무리뉴는 이후 FC포르투와 바르셀로나에서도 통역관과 코치 역할을 하며 롭슨 감독을 보좌했다. 이때 무리뉴는 롭슨 감독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고, 어떻게 하면 선수단을 올바르게 지휘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또한, 무리뉴는 롭슨 감독 밑에서 상대 분석, 전술, 훈련 계획, 선수 심리 등에서 발군의 능력을 보여주며 점차 감독의 역량을 키워나갔다.

무리뉴는 야망이 있는 남자였다. 롭슨 감독은 바르셀로나를 떠났지만 무리뉴는 구단으로부터 신임을 얻으며 부감독으로 남았다. 이후 무리뉴는 루이스 판 할 감독으로부터 네덜란드 감독 특유의 섬세한 코칭 기술을 전수받았고, 독자적으로 발전시켰다. 훗날 무리뉴는 바르셀로나의 감독직에 지원하기 위해 엄청난 양의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했지만 펩 과르디올라 감독에게 밀려 뜻을 이루지는 못했다.

무리뉴에게 롭슨 감독은 평생의 은인이자, 축구 인생의 스승이었다. 이에 대해 무리뉴는 “나는 롭슨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 가장 중요한 것은 팀이 졌을 때 선수 탓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며 스승에 대한 존경심을 표했고, 롭슨도 무리뉴의 과거를 회상하며 “무리뉴가 있어서 문제가 없었다. 무리뉴는 정말로 총명했고, 신중했으며, 지적이었다.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느낌과 의도를 완벽하게 전달했다”며 무리뉴를 극찬했다.

# ‘스페셜원’ 무리뉴, 유럽 무대를 정복하다

묵묵하게 지도자의 길을 걸은 무리뉴에게 기회가 왔다. 무리뉴는 2000-01 시즌을 앞두고 포르투갈 명문 클럽 벤피카의 지휘봉을 잡으며 감독으로 경력을 쌓기 시작했다. 당시 벤피카의 수뇌부는 부감독으로 페레이라를 원했지만 무리뉴는 “당나귀가 30년 일했다고 말이 될 수 없는 법이다”며 강단 있게 거절했다. 결과적으로 무리뉴는 벤피카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도 파벌과 내분으로 인해 자진 사임했다. 훗날 벤피카의 수뇌부는 무리뉴를 놓친 것을 두고 "그때로 돌아간다면 반대의 결정을 내릴 것이다"며 후회했다.

벤피카에서 인상적인 지도력을 보인 무리뉴는 2001-02시즌 우나이앙 데 레이리아의 감독으로 취임해 19경기에서 9승 7무 3패 리그 4위의 좋은 성적을 거뒀다. 이에 포르투갈 최고의 명문 클럽 FC포르투가 시즌 도중 무리뉴 감독에게 지휘봉을 맡겼고, 무리뉴 감독은 기대에 부응하며 15경기 11승 2무 2패라는 최고의 성적을 내며 팀 순위를 3위까지 끌어올렸다. 당시 무리뉴는 “중위권에 만족 못한다. 다음 시즌에는 포르투를 챔피언으로 끌어올리겠다”고 약속했며 다음 시즌을 기대하게 만들었다.

무리뉴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무리뉴는 포르투의 지휘봉을 잡고 자신의 축구에 맞는 선수들을 대거 영입하는 동시에 과학적인 훈련 시스템을 도입해 우승의 토대를 만들었다. 특히 강력한 압박과 날카로운 역습으로 무장한 포르투는 막강했고, 리그에서 적수가 없었다. 결국 무리뉴의 포르투는 2002-03시즌 27승 5무 2패의 기록으로 리그 우승을 차지했고, 유럽 무대에서도 승승장구하며 UEFA컵을 차지했다. 당시 유럽 언론들은 ‘미치광이 젊은 명장’이 나왔다며 무리뉴를 주목했다.

무리뉴의 시대가 시작됐다. 무리뉴는 2003-04시즌 더 압도적인 성적으로 리그 2연패를 달성했고, ‘별들의 잔치’ 챔피언스리그 무대에서도 인상적인 경기력을 보여줬다. 브레이크가 없었다. 무리뉴의 포르투는 16강에서 맨유를 제압하더니 8강에서 올림피크 리옹, 4강에서 데포르티보를 가볍게 격파하며 결승전에 진출하였다. 결승 상대는 AS모나코. 무리뉴 감독이 이끄는 포르투는 결승에서 모나코를 3-0으로 완파했고, 17년 만에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끌었다.

스페셜 원의 탄생이었다. 포르투에서 최고의 성적을 거둔 무리뉴 감독은 2004-05시즌 명문 클럽으로 도약을 노리는 첼시의 지휘봉을 잡았다. 당시 극성맞기로 유명한 영국 언론들은 무리뉴 감독을 깎아내리기 바빴고, 특히 무리뉴 감독의 보잘 것 없는 선수시절을 자주 언급했다. 이에 무리뉴 감독은 “내가 존경하는 감독님은 ‘최고의 기수가 되기 위해 말이 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나는 최고의 감독은 아니지만, 나보다 더 훌륭한 감독을 본적이 없다. 내가 거만하다고? 나는 유럽 챔피언이다. 그리고 나는 내가 특별한 존재(Special One)라고 생각한다”며 일침을 날렸고, 이때부터 영국 언론들은 무리뉴 감독을 스페셜원이라 불렀다.

# 세계 최고의 명장이 된 무리뉴, 퍼거슨의 후계자가 되다

포르투를 성공적으로 이끈 무리뉴 감독은 첼시에서도 승승장구했다. 러시아 갑부인 로만 아브라모비치 구단주의 지원을 등에 업은 무리뉴 감독은 디디에 드로그바 등 자신의 축구 철학에 맞는 선수들을 대거 데려오며 첼시를 개혁했다. 무리뉴 매직이었다. 무리뉴 감독은 부임 첫 시즌은 2004-05시즌부터 최다 클린시트(25경기), 최소 실점(15실점), 최다 승리(29승), 최다 승점(95점) 등 새로운 역사를 쓰며 리그 우승을 차지했고, 2005-06시즌에도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리그 2연패를 달성한 무리뉴 감독은 시상식에서 메달을 관중석에 던지는 퍼포먼스를 보였는데 그는 "이미 받은 메달은 또 필요하지 않다"고 말하며 팬들의 뜨거운 반응을 일으켰다.

첼시의 새로운 역사를 쓴 무리뉴 감독이지만 아브라모비치 구단주와는 사이가 그리 좋지 않았다. 무리뉴 감독은 직설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었고, 영입, 구단 운영 등에 있어서 구단주와 자주 충돌했다. 이에 첼시의 수뇌부는 2007년 10월 무리뉴 감독과 상호합의하에 계약을 해지한다고 발표했지만 사실상 경질과 다름이 없었고, 리그 2연패, 리그컵, FA컵 우승 등 5개의 우승트로피를 들어 올린 무리뉴 감독을 내쫓았다.

당연히 첼시 팬들과 선수들은 반발했다. 특히 무리뉴 감독과 사이가 좋았던 드로그바, 램파드 등은 공개적으로 이적을 요구하기도 했고, 무리뉴 감독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알렉스 퍼거슨, 아르센 벵거 등 EPL 감독들도 “무리뉴 감독의 사임은 잉글랜드 축구계의 손해다”고 한 목소리를 냈다. 특히 무리뉴 감독과 치열한 경쟁을 펼쳤던 퍼거슨 감독은 “무리뉴의 축구는 훌륭했고, 첼시를 훌륭하게 이끌었다. 정말 실망스럽다”며 아쉬워했다.

이후부터는 모두가 아는 이야기다. 첼시는 클럽 역사상 최고의 감독을 내쫓았고, 자신들의 결정을 후회하며 2013년 6월 다시 지휘봉을 맡긴다. 첼시로 복귀하기 전까지 무리뉴 감독은 인터 밀란, 레알 마드리드를 맡았는데 인터 밀란에서는 역사적인 트레블을 달성했고, 레알 마드리드에서도 역대 최강이라 불렸던 바르셀로나를 상대로 밀리지 않으며 2011-12시즌에는 100승점을 기록해 프리메라리가 최다 승점 신기록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비록 챔피언스리그에서 우승을 하지 못해 레알을 떠났지만 무리뉴 감독의 성과는 분명했다.

첼시와는 해피엔딩을 꿈꿨던 무리뉴 감독이지만 세드엔딩으로 마무리됐다. 무리뉴 감독은 레알과 결별 후 2013년 6월 다시 첼시의 지휘봉을 잡았고, “나는 오늘만큼은 스페셜원이 아닌 해피원이다”고 말하며 첼시 팬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았다. 이후 무리뉴 감독은 약해진 첼시의 스쿼드를 강화시켰고, 2014-15시즌 8년 만에 리그컵 우승을 차지했다. 여기에 리그에서도 승점 87점으로 우승을 이끌며 우승 청부사라는 별명이 아깝지 않았다. 그러나 무리뉴 감독은 2015-16시즌 갑작스런 성적 부진, 선수단과의 불화 등으로 첼시와 결별했다. 당시 영국 현지에서는 무리뉴 감독의 지도방식이 올드하다고 비난했고, 많은 이야기들이 나왔지만 무리뉴 감독은 침묵을 지켰다.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 ‘푸른 피’가 흐르던 무리뉴 감독의 선택은 ‘붉은 피’ 맨유였다. 무리뉴 감독은 2016-17시즌을 앞두고 맨유의 지휘봉을 잡았고,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폴 포그바, 에릭 바이 등을 영입하며 맨유를 과감하게 개혁했다. 당시 무리뉴 감독은 “지난 3년은 잊고 역사 속의 맨유를 생각해야 한다. 그때의 맨유가 지금 내 손에 있는 거대한 클럽이다. 완벽한 시기에 맨유를 맡게 됐고, 맨유에게는 최고의 감독이 필요하다. 나는 맨유라는 거대한 구단을 맡을 준비가 돼있고, 더 이상 말로만 이긴다고 하지 않겠다”며 맨유의 명성을 되찾겠다고 선언하며 맨유 팬들을 뜨겁게 만들었다.

돌고 돌았지만 결국에는 ‘위대한 명장’ 퍼거슨의 후계자가 됐다. 무리뉴 감독은 EPL에서 수많은 감독들과 설전을 벌이면서도 단 한 사람에 대한 존경심은 잊지 않았는데 그 주인공은 바로 퍼거슨 감독이었다. 퍼거슨 감독 역시 무리뉴가 자신의 후계자가 되기를 원했는데 결국 무리뉴 감독이 맨유의 사령탑에 오르면서 첫 시즌부터 리그컵과 유로파리그 우승을 거두며 맨유를 챔피언스리그 무대로 복귀시켰다.

# 무리뉴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들

-완벽주의자 그리고 꽃미모

무리뉴 감독은 완벽주의자다. 그는 감독이 되겠다고 결심한 이후부터 줄곧 메모하는 습관을 가졌고, 그의 노트는 한권의 축구 지도서라는 말이 있다. 무리뉴의 어머니는 “어렸을 때부터 완벽주의자였다. 무리뉴는 5세 때부터 모든 것을 완벽하게 정리하고 생활했다”고 전했다. 또한, 무리뉴는 축구 선수 생활을 마치고 체육교사를 잠깐 했는데 워낙 잘생겨서 여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았다고 전해진다. 당시 여학생들은 무리뉴가 하는 수업에 빠진 적이 없을 정도.

-천부적인 언어 재능 그리고 심리학

보통 무리뉴 감독을 달변가라 부른다. 그는 벵거, 과르디올라 등 라이벌 감독들과 설전에서 진 적이 거의 없는데 얄미울 정도로 상대의 약점을 파고 든다. 여기에 무리뉴 감독은 천부적인 언어적 재능을 가지고 있는데 영어뿐 아니라 프랑스어, 스페인어, 이탈리아아 등 6개 국어에 능통했고, 그는 선수단 미팅 때에는 반드시 해당 리그의 모국어로 훈시한다. 또한, 무리뉴 감독은 선수들의 심리를 잘 파악하는 것으로 유명하고, 대학 때 이것에 대한 연구를 했다고 한다. 결국 무리뉴 감독을 잘 따라는 선수들(즐라탄, 마테라치, 드로그바 등)은 무리뉴의 지도 방식을 최고라 평가하고 있고, 드로그바는 그를 ‘아빠’라 부른다.

-무리뉴의 가족

무리뉴 감독은 아내 마틸데 파리아를 10대 시절에 만나, 26세 때 결혼했다. 슬하에는 1남 1녀를 두고 있다. 무리뉴의 아내는 남편의 잘생긴 외모 때문에 불안해한 적이 있다고 털어놨지만 그는 생각 이상으로 애처가다.

-승부욕

무리뉴 감독의 승부욕은 어마어마하다. 그는 2004년 챔피언스리그 바이에른 뮌헨과의 경기에서 출전 정지를 받았는데 당시 선수 라커룸에 몰래 들어가 작전을 지시했다고 한다. 이후 무리뉴 감독은 라커룸을 빠져 나올 때 세탁차를 이용했다고 한다.

-무리뉴와 스페셜원

포르투갈에서는 무리뉴 감독에 관한 만화가 TV에 방영되기도 했다. 제목은 무리뉴와 스페셜원이다. 이 만화는 한 젊은 선수가 무리뉴 감독으로부터 발탁돼 세계적인 스타로 성장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설전

무리뉴 감독은 다양한 감독들과 설전을 펼쳤다. 가장 치열한 설전을 펼쳤던 인물은 아스널의 벵거 감독이다. 만날 때마다 으르렁 거렸다. 역사가 깊다. 시작은 2005년. 벵거 감독이 무리뉴 감독의 수비 축구를 지적하자, 무리뉴 감독은 “벵거는 관음증 환자다”고 받아치며 전쟁이 시작됐다. 이후 벵거 감독은 “무리뉴는 도를 넘었고, 무례한 사람이다”고 말하며 맞받아쳤지만 무리뉴 감독은 벵거 감독에게 “14년 동안 우승하지 못한 실패 전문가”라 부르며 최악의 관계가 됐다.

-당당한 일침

2009년 8월 8일 베이징에서 열린 이탈리아 슈퍼컵 기자 회견에서 중국 기자들이 쓸데없는 질문을 하자 "중국 축구가 왜 쓰레기인지 이제 알았다. 중국은 그 동안 올림픽에서 많은 금메달을 차지해 왔지만 축구는 아니다. 그 이유는 선수, 감독은 물론이고 기자들마저 쓰레기이기 때문이다"며 중국 기자들의 수준 낮은 행동에 일침을 놓았다.

# ‘스페셜원’ 무리뉴 감독의 스페셜한 커리어

-우승 경력

FC 포르투: 리그 우승(2002-03, 2003-04), 슈퍼컵(2003), 포르투갈컵(2002-03), UEFA컵(2002-03), UEFA 챔피언스리그(2003-04)

첼시: 리그 우승(2004-05, 2005-06, 2014-15), 리그컵(2004-05, 2006-07, 2014-15), FA컵(2006-07), 커뮤니티실드(2005)

인터 밀란: 리그 우승(2008-09, 2009-10), 이탈리아 슈퍼컵(2008), 코파 이탈리아(2009-10), UEFA 챔피언스리그(2009-10)

레알 마드리드: 리그 우승(2011-12), 코파 델 레이(2010-11),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2012)

맨유: 커뮤니티실드(2016), 리그컵(2016-17), UEFA 유로파리그(2016-17)

-개인 수상 경력

FIFA 발롱도르 최고의 감독 : 2010

UEFA 올해의 팀 최고의 감독(2): 2002-03, 2003-04, 2009-10

월드 사커 매거진 최고의 감독(2): 2003-04, 2004-05, 2009-10

IFFHS 올해 최고의 감독(2): 2004, 2005, 2010

BBC 선정 올해 최고의 감독: 2004-05

포르투갈 리가 최고의 감독(2): 2002-03, 2003-04

프리미어리그 최고의 감독(2): 2004-05, 2005-06

세리에A 최고의 감독(2) : 2008-09, 2009-10

International Sports Press Association 최고의 감독: 2009-10

프리미어리그 최고의 감독(3): 2004년 11월, 2005년 1월, 2007년 3월

프리메라리가 최고의 감독(1): 2010-11

글=정지훈 기자

사진=게티 이미지, 사커 바이블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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