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풋볼=수원월드컵경기장] 최한결 기자= 빅버드에서 한 여름밤의 드라마가 펼쳐졌다. 82번째 슈퍼매치는 명성 대로 흥미진진했다. 경기장의 열기는 뜨거웠고, 경기 내용은 시원시원했다. 

수원 삼성과 FC서울은 12일 오후 7시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KEB하나은행 K리그 클래식 26라운드, 슈퍼매치를 벌였다. 이날 승리는 원정팀 서울이 차지했다. 후반 19분 수원의 곽광선이 자책골을 기록했고, 서울은 올 시즌 슈퍼매치 무패행진을 이어갔다.

반전 드라마 같은 슈퍼매치였다. 예측대로 흘러간 것이 단 하나도 없었다. 팽팽한 공방전은 눈을 사로잡았고, 승부는 전혀 엉뚱한 곳에서 갈렸다. 경기 시작 전부터, 종료 이후까지 새로운 스토리가 계속해서 쓰였다.

# 두 시간 전부터 가득 찬 관중석, '26,581명'의 응원전

경기 시작 전부터, 슈퍼매치를 둘러싼 열기가 뜨거웠다. 염기훈과 윤일록은 슈퍼매치 사전 기자회견에서 "수원 원정에 서울 팬들이 많이 안 오신다. 이번 경기에는 많이 오셨으면 좋겠다"며 팬들의 응원을 촉구했다

홈팀 수원의 분위기는 대단했다. 지정석이 대부분 매진됐고, 이에 수원은 N석과 E석의 2층 통천을 걷었다. N석 2층 통천을 걷어낸 것은 통천 설치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경기 당일, 빅버드는 두 시간 전부터 인산인해를 이뤘다. 경기장 주변의 도로는 수원 팬들의 차량으로 혼잡했다. 도로에 차를 세워놓고 경기장으로 향하는 팬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경기장 내부도 마찬가지였다. 수원의 1층은 물론, E석과 N석의 2층마저 팬들이 가득 메웠다. 이후 서울 팬들도 하나, 둘 모여들었다. 염기훈과 윤일록의 부름에 반응한 듯했다. 서울 팬들은 수원측이 기존에 준비한 원정석을 넘어, 그 옆자리까지 채웠다.

킥오프 시간이 다가오자 분위기는 최절정에 달했다. 양 팀 서포터들은 목이 터져라 함성과 응원가를 외쳤다. 경기장은 쩌렁쩌렁 울렸다. 하이라이트는 수원 서포터의 카드 섹션이었다. 서정원 감독을 뜻하는 'SEO'라는 카드 섹션을 선보이며 분위기를 달궜다.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릴 때까지 서포터들의 응원전은 계속됐다. 이날 관중 집계수는 26,581명. 수원 평균 관중 수의 세 배를 웃도는 숫자였다. 서포터들의 응원전과 함께 빅버드는 오랜만에 뜨거운 열기로 가득했다.

# 선발부터 변화무쌍, 승부는 엉뚱한 곳에서

경기는 반전의 연속이었다. 킥오프부터 종료 휘슬까지 예측 가능한 것이 단 하나도 없었다. 선발 명단부터 기존 예상과 달랐다. 두 감독이 치열한 지략 대결을 펼쳤다.

우선 수원의 서정원 감독은 고차원을 선발로 내보내며 승부수를 던졌다. 서 감독은 "고차원이 최근 들어 컨디션이 아주 좋았다. 준비도 잘했다. 지켜보다 선발을 결정했다"며 이유를 설명했다.

이에 맞선 황선홍 감독은 수비라인에 변화를 줬다. 평소와 달리 이규로, 김원균, 황현수, 신광훈으로 포백을 꾸렸다. 황 감독은 "적극적인 경기를 위해서다. 라인을 앞으로 올리겠다"면서 공격적인 경기를 약속했다. 윤일록을 오른쪽에 두고, 코바를 왼쪽에 배치한 것도 눈에 띄었다.

한 점차의 경기 결과와 달리 내용 자체는 시원시원했다. 수원과 서울은 시작부터 슈팅을 쏟아부었다. 경기 시작과 동시에 수원이 염기훈과 조나탄을 중심으로 먼저 포문을 열었다. 이에 맞선 서울은 코바와 데얀, 윤일록 조합으로 반격했다. 이날 두 팀의 공방은 조금의 쉴 틈도 없이 계속됐다.

다만 양 팀의 골키퍼의 엄청난 선방에 많은 골이 터지지 않았을 뿐이다. 신화용과 양한빈은 신들린 선방으로 골에 가까운 여러 슈팅을 막아냈다. 두 선수가 보여준 놀라운 선방쇼는 대단했다. 경기 종료 후, 수원과 서울이 기록한 슈팅은 각각 16개와 14개였다. 유효 슈팅도 9개와 7개에 달했다. 그만큼 골만 없었을 뿐, 역설적으로 가장 시원한 경기가 펼쳐졌다.

승부는 전혀 엉뚱한 곳에서 갈라졌다. 경기 전부터 큰 관심을 모았던 염기훈과 윤일록의 도움왕 경쟁도, 조나탄과 데얀의 득점왕 대결도 나오지 않았다. 조나탄은 전반 40분에 부상으로 쓰러졌고 전반 45분 산토스와 교체됐다. 염기훈과 윤일록도 공격포인트를 올리지 못 했다.

승패는 단 한 번의 실수에서 나뉘었다. 팽팽하던 후반 16분, 고요한이 올린 크로스가 곽광선의 발을 맞고 자책골이 됐다. 그리고 더 이상의 골은 터지지 않았다. 더군다나 아이러니하게도 이 경기는 곽광선이 수원에서 치른 100번째 경기였다. 

말 그대로 82번째 슈퍼매치는 반전의 연속이었다. 기대했던 득점왕과 도움왕 경쟁도 없었고 그렇다고 다득점이 나온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팬들은 오히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승부에, 경기 내내 일희일비하며 즐거움을 느꼈다.

# 친정 찾은 이상호, 서포터석에서 날아온 물병

경기 종료 휘슬이 82번째 슈퍼매치 드라마의 끝은 아니었다. 오히려 경기가 종료 뒤, 가장 드라마 같은 장면이 연출됐다. 친정에 처음으로 방문한 이상호가 수원 서포터석을 향해 걸어갔다.

이상호는 작년까지만 해도, 수원에서 헌신적인 플레이를 펼쳤다. 7년간 수원 소속으로 활약하며 팬들에게 '블루소닉'이라는 애칭을 얻었다. 슈퍼매치가 있을 땐, 그 누구보다 서울에 강하게 맞서기도 했다.

그랬던 그가, 이젠 서울의 유니폼을 입고 빅버드를 찾았다. 수원 서포터들은 인사하려고 다가오는 이상호를 향해 거친 말을 쏟아냈다. 그리고 서포터석에서 물병이 여러 개 날아왔다. 이상호에 대한 배신감의 표시였다.

이상호는 담담했다. 날아든 물병을 집어들고 뚜껑을 연 뒤, 자연스레 물을 마셨다. 그리곤 수원 서포터들을 향해 인사했다. 친정을 향한 복잡 미묘한 감정이 그대로 느껴졌다. 대부분의 팬들이 이상호를 향해 적대심을 드러냈지만, 이들을 말리는 소수의 팬들도 있었다.

이에 대해 이상호는 "당연한 도리라고 생각했다. 부정적인 반응은 어느 정도 예상했다"면서 "상위 스플릿에서 수원과 다시 한번 대결하고 싶다. 그 땐 골을 넣겠다. 세리모니는 하지 않는 것이 맞는 것 같다"며 수원과의 다음 만남을 고대했다. 

흥미진진한 한 편의 드라마였다. 시작부터 양 서포터의 뜨거운 열기가 분위기를 달궜고 경기 내내 두 감독의 지략 대결이 펼쳐졌다. 시원시원한 내용 속에 수문장들의 선방쇼는 눈을 떼지 못하게 했다. 전혀 엉뚱한 곳에서 갈린 승부는 반전 포인트였다. 경기 종료 직후, 이상호와 수원 서포터의 만남은 대본 속 헤어진 연인을 보는 듯했다.

시작부터 끝까지 빼놓을 것이 단 하나도 없었다. 한 여름밤을 뜨겁게 달군 '슈퍼매치' 드라마는 그렇게 또다시 새로운 이야깃거리를 잔뜩 만들며 막을 내렸다.

사진=윤경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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