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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훈의 HIS-tory] ‘알제리 이민자’ 지단, 위대한 마에스트로가 되다

[인터풋볼] 세상에 사연 없는 사람은 없다. 세계적인 축구 스타들도 마찬가지. 현재는 가장 화려한 삶을 살고 있는 스타지만 모두가 꽃길만을 걸어온 것은 아니고, 시련을 이겨내 세계적인 스타로 성장한 경우가 많다. 그래서 축구 전문 언론 '인터풋볼'이 준비했다. 꼭지명은 역사를 영어로 한 'HIS-tory'. 즉 그 사람(His)의 이야기(Story)로 해석할 수 있다. 우리가 몰랐던 슈퍼스타들의 숨겨진 이야기를 독자 여러분들에게 소개한다. [편집자주]

한 마디로 레알 마드리드 천하였다. 레알 마드리드가 2016-17시즌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와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동시에 차지하면서 세계 최고의 클럽으로 다시 한 번 우뚝 섰다. 레알은 리그에서 ‘숙명의 라이벌’ 바르셀로나를 승점 3점차로 따돌리며 무려 5년 만에 우승을 탈환했고, 챔피언스리그에서는 2시즌 연속 우승을 차지하며 새로운 역사를 썼다.

새로운 기록들이 쏟아져 나왔다. 레알은 이번 챔피언스리그 우승으로 우승 횟수를 통산 12회로 늘렸는데 이는 챔피언스리그 역사상 가장 많은 우승이다. 여기에 현재의 챔피언스리그로 개편된 이후 2년 연속 우승을 차지한 유일한 팀이 됐고, 챔피언스리그 역사상 최초로 팀 통산 500호 골도 레알의 차지였다. 또한, 레알의 에이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는 5시즌 연속 득점왕을 차지하며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

이 중심에는 2년 차 감독 지네딘 지단이 있었다. 지단 감독은 지난해 1월 라파엘 베니테스 감독의 뒤를 이어 레알의 지휘봉을 잡았고, 위험한 도박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지만 레알을 빠르게 수습하며 초보 감독답지 않은 지도력을 보였다. 특히 지단 감독은 첫 시즌부터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차지하며 성과를 냈고, 그동안 레알의 문제였던 공수 밸런스를 제대로 해결했다.

두 번째 시즌은 더욱 놀라웠다. 지단 감독은 2016-17시즌을 앞두고 알바로 모라타를 복귀시킨 것 외에는 특별한 영입을 하지 않았는데 당시 많은 사람들이 지단의 영입에 의구심을 보였다. 그러나 지단 감독은 이미 스타들이 가득한 상황에서 선수단 장악에 중점을 뒀고, 결국 압도적인 성적으로 더블 우승을 차지했다.

선수와 감독으로 모두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차지한 지단. 이 특별한 성공을 허락받은 사람은 지단을 포함해 오직 7명(미겔 무뇨스, 지오반니 트라파토니, 카를로 안첼로티, 요한 크루이프, 프랑크 레이카르트, 펩 과르디올라, 지단) 뿐이다. 감독과 선수로 챔피언스리그를 지배한 위대한 마에스트로 지단의 어린 시절부터 현재까지를 독자 여러분들에게 소개한다.

# 알제리 이민자 집안에서 태어난 프랑스 영웅 지단

프랑스 축구의 영웅 지단은 1972년 6월 23일 프랑스 마르세유에서 태어났다. 프랑스에서 태어났지만 그의 혈통은 프랑스가 아닌 알제리의 베르베르족 출신이다. 지단의 부모는 1968년에 알제리의 카빌리야 지역 아게몬 마을에서 파리로 이주했다가 마르세유로 옮겼고, 이때 지단이 태어났다. 한 마디로 지단은 알제리 이민자 집안에서 태어났고, 어린 시절 가난 속에서 성장했다.

지단의 부모는 1960년대 알제리 독립 전쟁이라는 피의 수난을 겪은 뒤 마르세유에 정착했는데 항구 도시 마르세유는 프랑스에서 살고 있는 모든 인종의 터미널 같은 곳이었다. 이런 이유로 많은 인종이 함께 했고, 그 중에서도 알제리 이민자들은 힘겨운 삶을 살아야 했다. 지단의 아버지도 백화점 야간 경비, 창고 관리인, 야간열차 직원 등 마르세유의 가장 낮은 자리에서 먹고 살아야 했고, 지단을 비롯한 5명의 형제로 구성된 가족을 책임졌다.

자연스레 지단의 삶도 풍족하지 않았다. 아니, 극심한 가난 속에서 성장했다. 특히 지단은 어린 시절 마르세유 내에서도 가장 가난하고, 위험한 동네로 알려진 마르세유 북부 카스텔란 지역에서 살았다. 어린 시절 지단은 가난한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다른 소년들처럼 동네에서 공을 차면서 성장했고, 일찌감치 축구 선수로 두각을 드러냈다.

지단은 당시를 회상하며 “집 근처에는 많은 상가가 있었고, 어른 들은 바쁘게 일을 하고 있었다. 어린 아이들도 함께 집을 옮겼고, 그에 대한 보상으로 캐러멜, 초콜릿, 약간의 돈을 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우리는 축구 외에는 그런 일을 했고, 당시 나는 그곳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다양한 인종의 가난한 사람들은 정말 최선을 다해 살았고, 나는 지금도 그곳을 잊지 않는다. 그리고 내게는 축구가 전부였다”고 전했다.

# 가난했던 지단...축구는 친구이자, 희망이었다!

지단의 말대로 가난했던 지단에게 축구는 친구이자, 희망이었다. 지단은 5세 때부터 공을 가지고 놀며 축구를 익혔는데 지단이 살던 카스텔란에는 제대로된 축구장이 많지 않았고, 지단은 광장에서 친구들과 축구를 했다. 당시 지단은 마르세유의 장 피에르 파핀, 엔조 프란세스콜리 등을 우상으로 삼으며 축구 선수로 성장했고, 어린 시절부터 축구에 대한 재능을 드러냈다.

지단은 어린 시절부터 광장에서 공을 차며 개인 기술을 익혔는데 선수시절 지단이 아름다운 컨트롤과 감각적인 터치를 보일 수 있었던 것도 어렸을 때부터 시장에서 드리블을 하며 자랐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지단은 10세 때 처음으로 축구 선수의 길에 접어들었는데 당시 지역 클럽인 AS포레스타를 거쳐 US 생앙리에서 정식으로 축구를 배웠다. 지단의 성장세는 엄청났다. 이미 지역에서 최고로 인정받은 지단은 코치의 강력 추천으로 12세 때 SO 세프템레바용에 입단했다.

지단의 명성은 곧바로 프랑스 전역으로 알려졌다. 세프템레바용에서 맹활약을 펼치던 지단은 프랑스 축구 연맹에서 만든 축구 프로그램에 참가했고, 유스 대표 선수들이 선발된 챔피언십에서 맹활약하며 자신의 실력을 알렸다. 전국 대회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지단은 AS칸의 스카우트에 눈에 들어 16세의 나이에 AS칸에 입단하며 프로 선수가 되기 위한 준비를 마쳤다.

당시 AS칸의 코치는 지단을 향해 “프랑스 최고의 선수가 될 자질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했을 정도로 동 나이에서는 최고의 실력을 자랑했다. AS칸에서 축구 선수로 성장한 지단은 프랑스 U-17, U-18 대표를 거치면서 프랑스의 기대주로 자리 잡았고, 17세 때는 프로 데뷔전을 치르기도 했다. 또한, 1991년 2월 8일 프로 데뷔골을 터트리며 구단 회장으로부터 선물을 받기도 했다.

가난한 소년이 프랑스가 기대하는 축구 선수로 성장했다. 이에 대해 지단은 “내 인생에서 축구를 빼놓을 수 없다. 축구로 태어난 인생이고, 끝까지 축구와 동료들과 함께 한다. 축구는 예술로 시작하고, 우정으로 끝난다. 축구는 가난했던 내게 소중한 친구였고, 항상 내 곁에 있었다”며 자신에게 축구는 친구이자, 희망이었다고 말했다.

# 유벤투스로 이적한 지단, 월드컵 챔피언이 되다

AS칸에서 맹활약한 지단은 1992-93시즌을 앞두고 지롱댕 드 보르도로 이적했다. 이때부터 지단의 전설이 시작됐고, 그가 보르도에 있던 4시즌 동안 1995년 UEFA 인터토토컵 우승, 1995-96 시즌 UEFA컵 준우승을 차지하며 전 유럽에 자신의 가치를 알렸다. 특히 지단은 1995-96시즌 UEFA컵에서 엄청난 활약을 펼쳤는데 AC밀란과 8강 1차전에서 0-2로 패배 탈락이 유력했지만 2차전에서 지단이 3골에 모두 관여하며 기적적인 3-0 승리를 이끌었고, 결국 결승에 진출했다.

UEFA컵에서의 활약으로 인해 지단은 1996년 세리에A의 명문 클럽 유벤투스로 이적했고, 세계 최고의 선수로 자리 잡았다. 지단은 유벤투스에서 공격형 미드필더로 활약하며 두 시즌 연속 세리에A 우승(1996-97, 1997-98), 챔피언스리그 2시즌 연속 준우승(1996-97, 1997-98)을 이끌며 전성기를 맞이했고, 1997년과 2001년에는 세리에 A 올해의 외국인 선수상을 받았다.

클럽에서의 활약도 좋았지만 지단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바로 1998 프랑스 월드컵이다. 알제리와 프랑스 국가대표를 놓고 고민하다 프랑스 대표팀을 선택한 지단은 1994년 A매치 데뷔전을 치렀고, 이후 레블뢰(Les Bleus) 군단의 핵심 미드필더로 맹활약했다. 특히 1995년 에메 자케 감독은 쿵푸킥을 날리며 물의를 일으켰던 에릭 칸토나 대신 지단에게 팀의 중추적인 역할을 맡겼고, 유로 96을 거쳐 자국에서 열린 1998 프랑스 월드컵에 등번호 10번을 달고 참가했다.

사실 대회전 프랑스를 우승 후보로 꼽는 전문가는 그리 많지 않았다. 그 이유는 호나우두 등이 버티고 있는 브라질이 있었기 때문. 그러나 지단을 중심으로 한 프랑스는 승승장구하며 조별리그에서 3연승을 기록했고, 파라과이, 이탈리아, 크로아티아를 차례로 꺾고 결승에 진출했다. 이 과정에서 지단은 사우디아라비아와의 조별리그 2차전에서 보복 행위로 레드카드를 받아 프랑스 국가대표팀 사상 처음으로 월드컵 본선에서 2경기 출전 정지 처분을 받기도 했다.

결승 상대는 예상했던 대로 브라질이었다. 당시 브라질은 호나우두, 히바우두, 둥가, 카푸 등 세계적인 스타들이 버티고 있었고, 강력한 우승 후보였다. 그러나 경기 양상은 예상과 달랐다. 지단의 활약은 눈부셨다. 지단은 중원에서 아름다운 터치와 압도적인 경기 조율 능력을 보이며 맹활약했고, 전반에만 2골을 터트리며 리드를 잡았다. 특히 지단의 두 번째 골은 압도적인 차이를 보여줬고, 결국 프랑스가 프티의 추가골로 3-0 완승을 거두며 월드컵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이때 지단은 결승전에서 브라질을 상대로 압도적인 활약을 펼치며 프랑스의 사상 첫 월드컵 우승을 이끌었고, 결국 1998년 발롱도르를 차지하며 세계 최고의 선수로 인정받았다.

당시 프랑스 대표팀의 자케 감독은 지단을 향해 “지단은 천재적인 시야를 갖고 있다. 그리고 그의 컨트롤은 정확하고 영리하다. 지단은 그가 원하는 대로 볼을 컨트롤할 수 있고, 경기를 지배한다. 한 마디로 100% 축구 그 자체다. 지단은 특별한 선수였고, 1998년 월드컵 당시에는 펠레나 마라도나 같은 존재였다”며 찬사를 보냈다.

# ‘역대 최고 이적료’ 지단, 전설이 되다

월드컵 챔피언이 된 지단을 노리는 팀은 많았다. 특히 갈락티코 정책을 쓰던 레알 마드리드가 적극적인 러브콜을 보냈고, 결국 2001년 7500만 유로라는 세계 최고의 이적료를 기록하며 레알의 유니폼을 입었다. 당시 레알은 루이스 피구 등 스타 선수들을 모으며 갈락티코 정책을 펼치고 있었고, 여기에 지단까지 합류하며 지구 방위대라는 별명을 얻었다.

세계 최강의 전력을 갖춘 레알의 목표는 챔피언스리그 우승이었다. 지단은 곧바로 기대에 부응했다. 지단 등이 버티고 있는 레알은 창립 100주년을 맞이하는 2001-02시즌 챔피언스리그 결승에 진출했고, 지단은 레버쿠젠을 상대로 환상적인 발리 슈팅으로 결승골을 뽑아냈다. 이 골은 챔피언스리그 역사에 있어서 가장 아름답고, 극적인 결승골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레알의 갈락티코 정책은 아주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그러나 지단 만큼은 빛났다. 차원이 다른 볼터치, 패싱력을 무기로 레알의 중원을 진두지휘했고, 2002-03시즌 레알의 프리메라리가 우승을 이끌었다. 이에 지단은 통산 세 번째로 FIFA 올해의 선수에 선정됐고, 2004년에는 유럽축구연맹 창립 50주년 기념으로 실시된 투표에서 지난 50년 (1954년 ~ 2003년)동안 가장 뛰어난 활약을 펼친 유럽 선수로도 뽑히기도 했다.

이미 전설이 된 지단이 2006 독일 월드컵을 끝으로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당시 레알의 팬들은 지단의 은퇴를 만류했지만 지단의 결심은 확고했고, 마지막이 될 월드컵에 출전했다. 당시 프랑스 대표팀은 우승 전력이 아니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지단은 현역의 마지막을 불태웠고, 특히 스페인과 16강전에서 1골 1도움을 기록하며 최고의 활약을 펼쳤다. 여기에 브라질과 8강전에서 1998 월드컵 결승전 당시의 활약을 재현했고, 준결승전에서도 결승골을 터뜨리며 프랑스는 결승전으로 이끌었다.

결과적으로 결승전은 프랑스와 이탈리아가 아닌 지단과 마테라치의 대결이 됐다. 지단은 결승전에서 페널티킥을 성공시키며 총 3골로 바바, 펠레, 제프 허스트와 함께 FIFA 월드컵 결승전 최다골 타이를 이루게 됐지만 마테라치에게 동점골을 내줬다. 월드컵 결승 역사에 남을 장면이 나왔다. 연장 후반 지단은 말다툼 끝에 이탈리아 수비수 마테라치의 가슴을 머리로 들이받는 행동으로 퇴장을 당했고, 프랑스는 승부차기 끝에 패배했다.

당시 지단은 골든볼을 수상했는데 이 박치기로 논란이 됐고, 자신의 마지막 월드컵에서 조금은 아쉬움을 남겼다. 이후 지단은 “어머니가 병상에서 위독한 상황이었는데 마테라치는 몇 번이고 어머니를 모욕하는 발언을 입에 담았다. TV로 당시 경기를 지켜보던 어린이들에겐 진심으로 사과의 말을 전하고 싶다. 하지만 마테라치에겐 사과할 생각이 추호도 없다”고 전했지만 지단과 마테라치가 구체적으로 어떤 말을 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 최고의 선수가 최고의 감독으로...새로운 역사를 쓰다

최고의 선수에서 최고의 감독이 되기는 쉽지 않다. 화려한 선수 시절을 보내고 호기롭게 감독에 도전했지만 실패한 사례는 너무나도 많다. 그러나 지단은 달랐다. 세계 최고의 선수라는 타이틀을 내려놓은 지단은 2009년 레알의 기술 고문으로 임명되며 지도자의 길을 준비하기 시작했고, 팀의 정책 결정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며 다시 레알로 돌아왔다. 이후 지단은 2010년 신임 감독 주제 무리뉴를 도와 코치직을 수락했고, 객원코치로 무리뉴 감독 밑에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지도자 생활을 하면서 지단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준 인물은 카를로 안첼로티 감독이었다. 안첼로티 감독은 선수와 감독으로 모두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차지한 인물로 지단과 많은 것이 닮아 있었다. 지단은 레알의 사무총장, 카스티야 감독을 거쳐 2013년 안첼로티 감독 밑에서 수석코치 역할을 담당했다. 이때 레알은 라 데시마(10번째 챔피언스리그 우승)를 달성했는데 지단은 안첼로티 감독 밑에서 많은 것을 배우며 성장했다.

드디어 기회가 왔다. 2016년 1월 4일 라파엘 베니테스 감독이 좋지 못한 성적으로 경질되자 흔들리는 팀을 잡아줄 구원 투수로 지단 감독이 투입됐다. 우려가 있었다. 아직까지 정식으로 감독직을 수행한 적이 없는 지단이 레알이라는 거대한 클럽을 맡을 수 있을까는 의구심이 있었다. 그러나 예상과는 달랐다. 레알의 지휘봉을 잡은 지단 감독은 압도적인 카리스마로 선수단을 장악했고, 전술적으로도 탁월한 능력을 보이며 승승장구했다. 특히 지단 감독은 호날두 등 스타플레이어들의 확고한 신임을 얻으며 레알은 한데 묶었고, 결국 부임 첫 시즌부터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차지하며 라운 데시마를 달성했다.

감독 지단의 능력은 엄청났다. 그는 두 번째 시즌인 2016-17시즌 더 발전된 모습을 보이며 레알을 이끌었고, 결국 리그와 챔피언스리그 더블 우승을 차지하며 챔피언스리그 역사상 처음으로 2연패를 이끌었다. 특히 지단은 리그와 챔피언스리그를 병행하면서 로테이션을 적극적으로 활용했고, 바르셀로나,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등 강팀과의 경기에 집중해 승리를 따내며 명장의 반열에 올랐다.

# ‘위대한 마에스트로’ 지단의 영향력과 그를 향한 찬사

위대한 마에스트로. 흔히 지단을 부를 때 사용하는 수식어다. 지단은 마에스트로가 오케스트라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피치 위에서 증명했고, 그라운드 위에 있는 지단은 그야말로 아트사커였다. 부드러운 터치, 유연한 움직임, 정교한 패싱력, 넓은 시야 그리고 결정적인 한방까지. 지단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처럼 엄청난 득점력을 갖추지는 않았지만 경기를 지배하는 것만큼은 그 어떤 선수도 따라 잡을 수 없었다.

지단의 영향력은 축구 산업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레알 마드리드는 지단을 영입하기 위해 천문학적인 금액을 사용했는데 축구 산업적인 측면으로 봤을 때 그 금액이 전혀 아깝지 않았다. 지단은 레알에서 등번호 5번을 부여받았는데 당시 루이스 피구가 먼저 10번을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지단하면 10번이 먼저 떠오르지만 당시 5번이 적힌 레알의 유니폼을 엄청난 판매량을 보였고, 지단을 후원하던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 ‘아디다스’는 지단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특히 지단의 은퇴무대였던 2006 독일 월드컵때는 지단을 위한 ‘금색 축구화’가 특별하게 제작되기도 했고, 축구 용품 산업에서 ‘시그니처 축구화’의 시작을 알리기도 했다.

-플로렌티노 페레스 레알 마드리드 회장: “지단은 레알 마드리드를 넘어 세계 최고의 선수다. 그리고 레알의 역사 자체다. 우리에게 준 모든 것에 고맙다. 지단 감독은 세계 최고의 선수였고, 이젠 세계 최고의 사령탑이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세계 최고의 선수.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다. 그리고 세계 최고의 감독이다. 지단 감독은 경기를 읽으며 지배하고 있고, 우리는 그를 믿는다.”

-요한 크루이프: “지단이 최고의 선수인 이유는 그가 볼을 갖고 여러 가지 마법을 부릴 수 있기 때문만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갖고 있는 기술을 언제나 올바른 타이밍에 활용할 줄 안다는 점이다.”

-미셸 플라티니: “내가 생각하기에 지단은 경기를 지배하는, 그리고 축구의 가장 근본적인 것에서 왕이다. 그의 볼 컨트롤, 패스워크 등 볼을 컨트롤하거나 받을 때 그와 대적할 선수는 없다.”

-비센테 리자라쥐: “지단의 영향력은 엄청나다. 같이 뛰어본 사람은 안다. 경기 중 어디로 패스해야 될지 모를 때 지단에게 주면 된다. 그러면 경기가 풀린다.”

# 지단의 위대한 커리어

-선수 시절

보르도: UEFA 인터토토컵 우승(1995), UEFA컵 준우승(1995-96)

유벤투스: 세리에A 우승 (1996-97, 1997-98), 준우승(1999-2000, 2000-01),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우승 (1997), UEFA 챔피언스리그 준우승(1996-97, 1997-98), UEFA 슈퍼컵 우승(1996), UEFA 인터토토컵 우승(1999), 인터콘티넨털컵 우승(1996)

레알 마드리드: 프리메라리가 우승 (2002-03), 준우승(2004-05, 2005-06),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 우승(2001, 2003),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2001-02), UEFA 슈퍼컵 우승(2002), 인터콘티넨털컵 우승(2002)

프랑스 국가대표: 유로 우승(2000), FIFA 월드컵 우승(1998), 준우승 (2006)

-감독 시절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2015-16, 2016-17), UEFA 슈퍼컵 우승(2016), FIFA 클럽 월드컵 우승(2016), 프리메라리가 우승(2016-17)

-개인상

리그 앙 올해의 유망주상 : 1994

리그 앙 올해의 선수상 : 1996

세리에 A 올해의 외국인 선수상 : 1997, 2001

UEFA 클럽 풋볼 어워드 : 최우수 미드필더상 (1997-98)

월드 사커 올해의 선수상 : 1998

레퀴프 올해의 선수 : 1998

프랑스 올해의 선수상 : 1998, 2002

FIFA 월드컵 올스타 팀 : 1998, 2006

ESM 올해의 팀 : 1998, 2002, 2003, 2004

발롱도르 : 1위 (1998), 2위 (2000), 3위 (1997)

FIFA 올해의 선수 : 1위 (1998, 2000, 2003), 2위 (2006), 3위 (1997, 2002)

옹즈도르: 1998, 2000, 2001

20세기 최고의 축구 선수 100인 : 1999

UEFA 유럽 축구 선수권 대회 올스타 팀 : 2000, 2004

UEFA 유럽 축구 선수권 대회 MVP : 2000

세리에 A 올해의 선수상 : 2001

프리메라리가 최고의 외국인 선수상 : 2002

FIFA 월드컵 드림팀 : 2002

UEFA 올해의 클럽 축구 선수 : 2001-02

UEFA 올해의 팀 : 2001, 2002, 2003

FIFA 100 : 2004

지난 50년 (1954년 ~ 2003년) 동안 가장 뛰어난 활약을 펼친 유럽 선수 : 2004

FIFPro 월드 베스트 XI : 2005, 2006

FIFA 월드컵 골든볼 : 2006

IFFHS 선정 최고의 플레이메이커 : 2006

마르카 전설 : 2009

평생 공로상 : 2011

UEFA 궁극의 올해의 팀 (후보) : 2015

UEFA 유로 역대 최고 XI : 2016

프랑스 올해의 축구 감독 : 2016

글=정지훈 기자

사진=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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