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풋볼] 세상에 사연 없는 사람은 없다. 세계적인 축구 스타들도 마찬가지. 현재는 가장 화려한 삶을 살고 있는 스타지만 모두가 꽃길만을 걸어온 것은 아니고, 시련을 이겨내 세계적인 스타로 성장한 경우가 많다. 그래서 축구 전문 언론 '인터풋볼'이 준비했다. 꼭지명은 역사를 영어로 한 'HIS-tory'. 즉 그 사람(His)의 이야기(Story)로 해석할 수 있다. 우리가 몰랐던 슈퍼스타들의 숨겨진 이야기를 독자 여러분들에게 소개한다. [편집자주]

원 클럽 맨. 과거에는 쉽게 이런 말을 들을 수 있었지만 축구가 전 세계적인 스포츠가 되면서, 상업적으로 발전을 하면서 ‘원 클럽 맨’이라는 말은 어느새 특별한 의미를 가지게 됐다. 그리고 이 ‘원 클럽 맨’이라는 말에 가장 잘 어울리는 위대한 전설이 있다. 바로 AS로마의 원 클럽 맨 프란체스코 토티(41)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로마는 역사적으로도, 세계적으로도 특별한 도시인데 이 로마와 통째로 비견되는 남자가 바로 토티다. ‘로마는 곧 토티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로마에 있어서 토티는 매우 특별한 축구 선수고, 로마에서 가장 사랑받는 두 인물을 꼽자면 교황과 토티가 곧바로 떠오른다.

그런 토티가 28년간 입은 로마의 유니폼을 벗었다. 토티는 지난 달 28일 이탈리아 로마 올림피코 스타디움에서 열린 제노아와 2016-17 이탈리아 세리에A 38라운드에서 후반 9분 모하메드 살라를 대신해 그라운드를 밟았고, 스타디오 올림피코에서 마지막 경기를 치렀다.

사실 축구 선수가 팀을 떠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고, 특별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로마에서만 28년 뛴 ‘원 클럽 맨’ 토티라면 이야기가 달라지고, 그의 마지막을 보기 위해 모든 로마 사람들의 눈과 귀가 한 곳으로 몰렸다. 28년간 로마에서만 뛰면서 로마의 왕자에서 황제가 된 토티. 로마의 위대한 전설 토티의 어린 시절부터 현재까지를 독자 여러분들에게 소개한다.

# 로마와 토티는 운명, 전설의 시작

로마와 토티는 운명이었다. 토티는 1976년 9월 27일 이탈리아 로마에서 태어났는데 이후에도 로마에서 성장하며 축구 선수로도 로마에서 뛰었다. 토티의 어린 시절은 90% 이상이 축구다. 축구를 빼고 설명할 수 없다. 토티는 일찌감치 축구를 시작했고, ‘원조 로마의 왕자’이자 주장이었던 주세페 지아니니를 보고 축구 선수로 성장했다.

토티의 재능은 엄청났다. 8세 때 유스팀에서 축구를 시작한 토티는 항상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형들과 축구를 했을 정도로 축구 실력이 뛰어났고, 곧바로 스카우트들의 관심을 받았다. 흥미로운 일화가 있다. 토티의 재능을 알아본 AC밀란이 어린 토티를 영입하려고 했지만 토티의 부모는 “토티를 로마 밖으로 데려갈 수 없다”며 단 번에 밀란의 제의를 거절했다.

당시 밀란은 이탈리아를 넘어 세계 최고의 클럽이었기에 토티 부모의 이런 결정은 계속해서 화제가 됐다. 밀란의 아드리아노 갈리아니 부회장은 당시를 회상하며 “우리는 어린 시절 토티를 영입하려고 했지만 그 계획은 성공하지 못했다. 우리는 진심으로 영입을 원했지만 토티를 로마 밖으로 떠나게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다. 결국 우리는 포기했다”고 고백했다.

흥미로운 일화는 또 있다. 토티는 어린 시절 로마 지역의 유스 팀인 로지아니 칼시오에서 활약했는데 당시 클럽은 토티를 로마의 지역 라이벌인 라치오에 팔려고 했다. 그러나 로마 유스 팀의 코치인 길도 지아니니는 토티의 재능을 알아봤고, 토티의 부모를 설득해 1989년 로마의 유스팀으로 토티를 데려왔다. 로마 팬들에게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 일어날 뻔했지만 결국 토티는 로마의 유니폼을 입었고, 이것이 전설의 시작이었다.

# 로마의 등번호 10번 토티, 최연소 주장이 되다

로마 유스 팀에 입단한 토티는 빠르게 성장하며 곧바로 유스 팀의 중심이 됐다.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1989년 13세의 나이로 로마의 유스 팀에 입단 토티는 3년 만인 1992년, 16세의 나이로 1군으로 올라섰다. 세리에A 데뷔전도 빠르게 치렀다. 1993년 3월 28일 브레시아전. 당시 부야딘 보슈코프 감독은 토티에게 데뷔전을 치를 기회를 줬고, 결국 로마는 이 경기에서 2-0 승리를 거뒀다. 당시 토티는 데뷔전을 치른 후 “몸 푸는 시간은 10초면 된다. 데뷔전이 끝이 아니다. 더 출전하고 싶다”며 패기를 드러냈고, 이후 출전 시간을 늘리며 로마의 전설을 써내려가 갔다.

데뷔 시즌을 치른 토티는 카를로 마조네 감독 밑에서 폭풍 성장한다. 마조네 감독은 공격형 미드필더 또는 처진 공격수 자리에서 창의적인 플레이를 펼치던 토티에게 더 많은 기회를 제공했고, 결국 1994년 9월 데뷔골을 터트렸다. 이후 토티는 1995년 19세의 나이로 완전한 주전 자리를 꿰찼고, 많은 골들을 기록했다. 당시 마조네 감독은 “토티는 특별하다. 상당히 창의적인 선수고, 그의 재능은 환상적이다”고 극찬했다.

힘든 시기가 없지는 않았다. 1996년 마조네 감독이 경질되고, 팀의 핵심인 지아니니가 떠나면서 토티를 중심으로 팀이 개편될 것으로 예상됐지만 새로운 감독인 카를로스 비안치의 생각은 달랐다. 당시 바인치 감독은 토티의 수비력 부족을 지적했고, 주전에서 밀린 토티는 1997년 1월 삼프도리아 임대를 결심하기도 했다. 그러나 로마의 회장은 이적을 막았고, 토티에게 힘을 실어줬다. 결국 토티는 로마에 남았고, 비안치 감독은 팀을 떠났다.

시련을 극복한 토티는 거침이 없었다. 로마에 부임한 제만 감독 밑에서 토티는 신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성숙해졌고, 기술적으로도 최고의 시기를 보냈다. 당시 토티는 공격형 미드필더 뿐만 아니라 왼쪽 측면 윙어로도 활약하며 많은 공격 포인트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결국 토티는 1997-98시즌에만 리그 30경기에 출전해 13골을 기록했고, 1998년 세리에A 최우수 선수에게 수여하는 ‘Guerin d'Oro’를 받았다. 또한, 토티는 로마의 등번호 10번을 달고 그라운드를 누볐고, 1998년 10월 31일 공식적으로 로마의 캡틴이 됐다. 당시 토티의 나이는 22세였고, 이것은 로마 역대 최연소 기록이었다.

# 교황과의 약속 지킨 토티, 로마의 우승 이끌다

토티는 어린 시절 교황인 요한 바오르 2세에게 “세계 최고의 선수가 되겠다”고 맹세했다. 로마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두 인물이 만난 것이고, 토티는 이 말을 되새기며 결국 세계 최고의 선수가 됐다. 로마의 주장이 된 토티는 2000-01시즌 파비오 카펠로 감독과 함께 승승장구했다. 플레이는 더욱 날카로워졌고, 창의성 넘치는 패스로 로마의 공격을 진두지휘했다.

당시 카펠로 감독은 3-4-1-2 포메이션을 사용했는데 토티를 1에 해당되는 공격형 미드필더로 배치했다. 수비적으로 자유로워진 토티는 당시 세계 최고의 플레이메이커였던 지네딘 지단과 비견될 정도로 최고의 활약을 펼쳤고, 리그 30경기에서 13골을 기록했다. 특히 토티는 2001년 5월 17일 파르마전에서 득점포를 가동하며 로마의 3-1 승리를 이끌었고, 결국 로마는 유벤투스 등을 따돌리고 스쿠데토(세리에A 우승)를 차지했다. 이는 로마 역사상 세 번째 리그 우승이었다.

토티의 활약은 계속됐다. 토티는 공격형 미드필더와 최전방을 오가며 맹활약했고, 2001-02시즌 8골, 2002-03시즌 14골, 2003-04시즌 20골, 2004-05시즌 12골, 2005-06시즌 15골, 2006-07시즌 26골, 2007-08시즌 14골, 2008-09시즌 13골, 2009-10시즌 14골, 2010-11시즌 15골 등 꾸준한 활약을 펼쳤다. 또한, 이 기간 동안 로마는 두 번의 코파 이탈리아, 두 번의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우승을 차지하며 전성기를 누렸고, 토티 역시 5번의 세리에A 올해의 이탈리안 선수상을 차지했다.

어린 시절 교황과 한 약속을 지켰다. 세계 최고의 선수가 되겠다고 맹세한 토티와 그를 위해 기도해준 교황. 로마가 사랑하는 두 인물은 시간이 꽤 흐른 후 다시 만났고, 토티는 세계 최고의 선수가 되어 교황을 찾아가 자신이 한 약속을 지켰다.

# 레알 거절한 토티, 로마의 황제가 되다

무려 28년 간 로마에서 활약했다. 진정한 ‘원 클럽 맨’을 넘어 세계 축구 역사에 남을 선수다. 그러나 토티가 딱 1번 흔들렸던 적이 있었다. 바로 레알 마드리드의 러브콜. 당시 레알 마드리드는 호나우두 등 세계 최고의 선수들이 있었고, 플로렌티노 페레스 회장은 토티에게 등번호 10번의 유니폼을 보내며 레알 마드리드의 일원이 될 것을 설득했다.

토티도 흔들렸다. 토티는 당시를 회상하며 “로마가 리그 우승을 차지한 다음 시즌이었다. 레알 마드리드 이적에 매우 가까웠던 적이 있었고, 솔직히 흔들렸다. 내가 가보고 싶었던 길이기도 했고, 당시 로마와 나는 재계약 문제가 있었다. 진지하게 팀을 떠날까 고민했지만 내 심장이, 그리고 친구들과 가족이 마드리드에서는 내가 지금 로마에서 누리는 것들을 찾지 못한다고 이해시켰다. 레알은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나를 영입하고 싶어 했고, 어쩌면 레알은 내가 로마를 떠나 몸담았을지도 모르는 유일한 클럽이다. 그러나 내 가족들과 친구들은 내가 왜 로마에 남아야하는지 설득했고, 이것은 큰 선물이었다”며 레알의 제안을 거절했음을 고백했다.

만약 토티가 레알로 이적했다면 그의 커리어는 달라졌을 수도 있다. 당시 세계 최고의 선수였던 지단과 비견됐던 유일한 선수가 바로 토티였는데 만약 두 선수가 같은 유니폼을 입고 뛰었다면 세계 축구 역사가 바뀌었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5번의 우승 트로피 밖에 없는 토티의 진열장에는 더 많은 트로피로 채워져 있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토티는 후회하지 않았다. 토티는 “지금은 이렇게 웃으면서 과거의 일을 이야기할 수 있다. 이것이 행복하다. 레알의 제안에 흔들렸고, 로마와 함께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차지하지 못한 것은 아쉽다. 그러나 나는 로마를 사랑하고, 이곳에서 정말로 행복했다”며 로마의 황제가 된 것을 후회하지 않았다.

# 로마를 떠나는 토티의 고별사

‘No.10’ 프란체스코 토티:

내 생각이 아직 정리가 안됐기에 인터뷰를 하지 않겠다. 그러나 마지막 불을 끄고 나오기란 쉽지 않다. 두려운 것도 사실이다.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은 언제나 그렇듯 여러분의 따뜻한 시선과 응원이다.

정말로 감사하다. 그리고 사랑한다 로마. 나의 어머니와 아버지, 가족들 그리고 친구들에게 감사하다. 굿바이라는 말로 시작하고 싶었다. 그 이유는 내가 이 고별사를 제대로 읽을 수 있을지 스스로도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로마에서 28년을 이 짧은 글로는 부족할 것이다. 시나 노래로 써드리고 싶지만 그럴 능력이 없어 아쉽다.

어린 시절 내게 최고의 장난감이나 놀이는 당연히 축구였다. 오늘까지도 그렇다. 2001년 6월 17일로 돌아가면 우리 모두는 시간이 조금이라도 더 빨리 가길 원했고, 마지막 휘슬소리를 기다릴 수 없었다. 나는 그때(우승)를 생각하면 여전히 소름이 돋는다. 아름다운 동화였고, 꿈만 같다. 그러나 지금 현재는 꿈이 아닌 현실이다. 이제 나는 더 이상 그때로 돌아갈 수 없다.

이 편지를 나를 응원하는 모든 어린이들에게 바친다. 과거의 아이들이 자라서 이제는 부모가 됐지만 여전히 ‘토티골’이라고 외치고 있다. 이제 그 아름다운 동화는 끝이 났고, 나는 유니폼을 내려놓는다. 로마인으로 태어나, 로마 사람으로 살아왔고, 이 팀의 주장이 되었다는 것은 더할 나위 없는 영광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특권이었다. 당신은 언제나 그리고 앞으로도 내 삶이다. 나는 더 이상 내발로 당신을 기쁘게 해줄 수 없지만 내 심장은 언제나 당신 곁에 있을 것이다. 이제 남자가 되어 떠난다. 28년 간의 사랑을 자랑스럽고, 기쁘게 여기겠다. 사랑한다 로마.

# ‘로마의 황제’ 토티의 기록

-리그 619경기 250골

-이탈리아 국가대표 58경기 9골

-우승 커리어: 세리에A 1회(2000-01), 코파 이탈리아 2회(2006-07, 2007-08),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2회(2001, 2007), FIFA 월드컵 우승 1회(2006)

-개인 수상: Guerin d'Oro 2회(1998, 2004), 세리에A 올해의 영플레이어 1회(1999), 유로 2000 결승전 MOM, 유로 2000 베스트11, 세리에A 올해의 선수상 2회(2000, 2003), 세리에A 올해의 이탈리안 선수상 5회(2000, 2001, 2003, 2004, 2007), ESM 올해의 팀 3회(2000-01, 2003-04, 2006-07), FIFA 100인 선정, 세리에A 도움왕 3회(1998-99, 2006-07, 2013-14), 세리에A 득점왕 1회(2006-07), 유로피언 골든슈 1회(2006-07), 골든풋(2010)

-로마 기록: 로마 올타임 득점 1위(307골), 로마 올타임 세리에A 득점 1위(250골), 로마 올타임 출전 1위(786경기), 로마 올타임 세리에A 출전 1위(619경기), 로마 올타임 챔피언스리그 출전 1위(57경기), 로마 올타임 유럽대항전 출전 1위(103경기), 세리에A 최연소 주장(22세 34일), 챔피언스리그 최고령 득점(38세 59일), 단일 클럽 세리에A 득점 1위(250골)

글=정지훈 기자

사진=게티 이미지, 로마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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