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풋볼= 전주] 서재원 기자= 실패를 경험해야 더 발전할 수 있기 마련이다. 그 실패가 필요한 시점이었고 이는 분명 약효가 됐을 테다.

신태용 감독이 이끄는 대한민국 20세 이하(U-20) 대표팀은 26일 오후 5시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전북과 평가전에서 0-3으로 완패했다. 최종 명단 발표를 앞둔 신태용호에 뜻 깊은 경험이었다.

# 상대는 K리그 최강, 변명 여지없는 완패

제대로 만났다. 최종 명단이 발표되기 직전. 신태용호의 마지막 상대는 K리그 클래식 최강 전북으로 결정됐다. 평가전 성사 자체만으로 감사할 따름이었다. 리그가 한찬 진행 중인 팀과 평가전을 갖는 것 자체가 이례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신태용 감독도 전북과 매치에 대해 “리그 일정 속에서도 대표팀을 위해 귀한 시간을 내준 전북에 감사하다”고 말했다.

전북의 희생과 배려는 거기에 그치지 않았다. 신태용호를 위해 완벽한 스파링 파트너가 돼 준 것. 최전방에 에두를 비롯해 고무열, 김보경, 정혁, 에델 등 공격 라인에 주전급 선수들을 대거 투입했다. 수비형 미드필더 최철순과 박원재, 조성환, 김민재, 이용으로 이어지는 수비라인도 마찬가지였다. 골키퍼만 김태호가 나왔을 뿐 사실상 베스트였다.

경기 전 만난 신태용 감독은 “최강희 감독님께서 대표팀을 위해 주전급 선수들을 대거 기용해주신다고 했다. 물론 리그 일정이 있기에 전반 만에 한정되겠지만, 그마저도 감사하다”고 했다. 예상대로 전북은 후반 시작과 동시에 8명의 선수를 교체했다. 그럼에도 후반에 나온 선수가 이동국, 김진수 등이었다. 실제로 79년생 이동국과 대표팀 선수들의 나이차는 20살 가까이 났다.

명단만 봐도 게임이 안 되는 경기였다. 실제 경기도 그랬다. 전반 9분 만에 김민재의 선제골이 터텼고, 2분 뒤 고무열이 추가골을 넣었다. 약 10분 만에 승부가 기울었다. 그 뒤에 전북의 일방적인 경기가 펼쳐졌다. 이승우, 백승호 등 신태용호의 에이스조차 맥을 추리지 못했다. 후반 들어 전북이 봐준 감이 있었지만 그래도 전북이 일방적이었다. 이동국의 추가골까지 나오며 경기는 3-0 전북의 완승으로 종료됐다.

# 완패를 바랐던 신태용 감독의 숨은 뜻

무모한 도전이었다. 사실 신태용 감독 스스로도 예상했던 결과였다. 강팀과의 경기와 완패. 이는 신태용 감독이 보고 싶었던 모습이기도 했다. 그래야 본인도 대표팀의 약점을 보다 명확히 파악할 수 있었다. 최종 명단 발표를 앞둔 시점이기에 더욱 그러한 부분이 필요했다.

신태용 감독은 경기 초반 관중석에서 경기를 지켜봤다. “똑같은 위치에서 파악하다 보면 선수들의 움직임과 동선 등을 파악하기 힘들다. 위에서 경기를 보면 큰 그림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신태용 감독이 확인하고 싶었던 장면은 실점 이후 팀이 어떻게 대처하는 가였다. 선수들의 침착성, 팀의 흔들림을 확인하고 싶었다. 대표팀은 이른 시간 두 골이나 내줬고, 그 모습을 확인한 신태용 감독은 다시 벤치로 돌아왔다. 결과는 무의미했다. 신태용 감독은 단지 깨지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또 다른 뜻도 있었다. 대표팀은 본선에서 기니, 아르헨티나, 잉글랜드 등 강호들과 A조에 묶였다. 말 그대로 죽음의 조다. 실력이 아닌, 단순히 상대 팀의 네임벨류 만으로 먼저 위축되지 않는지도 파악해야 했다. 경기 후 신태용 감독은 “몇몇 선수들이 ‘전북’이라는 이름에 위축되는 모습을 보였다. 본선에서 아르헨티나, 잉글랜드 등 강팀을 만나야 하는데, 그 부분을 대비한 경기였다”고 말했다.

결과는 완패였다. 그럼에도 신태용 감독은 이번 전북과 경기에 상당한 만족감을 보였다. 그는 “많은 관중이 오셨다. 이런 많은 관중을 처음 경험하는 선수도 몇몇 있었다. 무엇보다 열심히 경기에 임해준 전북과 최강희 감독님께 다시 한 번 감사를 드린다. 좋은 약효가 됐다고 생각한다”고 전북전의 의미를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신태용 감독의 의중대로 선수들 스스로 많은 것을 느꼈다. 경기 후 믹스트존에서 만난 백승호는 “확실히 압박이 다르더라. 속도나 강도가 대단했다. 개인적으로 정말 많이 배웠다. 전북 형들에게 정말 감사하다”고 전북전의 소감을 밝혔다. 이승우 역시 같은 의견을 내비쳤다.

# 진짜를 대비한 훈련, 깨짐의 중요성

이전까지 신태용호는 승승장구했다. 신태용 감독이 지휘봉을 잡으면서 팀 분위기, 경기력 등 모든 부분이 상승했다. 지난달 열린 4개국 대회도 성공적이었다. 주전급이 나선 온두라스, 잠비아를 상대로 승리했다. 경기력도 만족스러웠다. 비록 마지막 에콰도르전에 패했지만 실험의 의미가 컸다. 신태용호는 이 대회에서 우승했고 본선에 대한 희망을 봤다.

이번 소집 후 흐름도 좋았다. 명지대와의 첫 번째 연습경기에서 0-0으로 비겼다. 이어진 수원FC와 경기에선 2-3으로 패했지만 가능성을 확인했다. 지난 24일엔 전주대를 1-0으로 꺾었다. 같은 또래가 아닌 선수들을 상대로도 좋은 결과를 낸 것이다.

그러나 이는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는 부분이었다. 정작 중요한 건 본선이었고, 사실상 그 전의 결과는 무의미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준비기간 중 잘하다가 본선에서 한 번 분위기가 꺾인다면 더 큰 화를 불러올 게 분명했다. 한 번, 필요시 그 이상의 자극이 필요했고, 넘어짐을 경험할 필요가 있었다. 신태용 감독이 말한 ‘좋은 약효’란 표현이 이 부분이었다.

이는 과거 역사에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직접적인 비교가 될 수 없겠지만, 20년 전 U-20 대표팀도 그랬다. 당시에도 죽음의 조에 포함됐지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워낙 강했다. 아시아 예선에 이은 평가전에서 승승장구했다. 대회 직전엔 최강 아르헨티나와 1-1로 비기기도 했다. 하지만 정작 본선 첫 경기에서 남아공과 비겼고, 이후 분위기가 180도 달라졌다. 이어진 프랑스전과 브라질전엔 씻을 수 없는 대패를 당했다. '쿠칭 쇼크'란 단어가 괜히 붙은 게 아니었다.

당시 대회에 참가했던 이관우 역시 과한 자신감이 오히려 독이 됐다고 했다. 그는 “(죽음의 조가) 두렵다는 생각은 없었다. 평가전과 전지훈련의 성과도 좋았다. 어떤 팀을 상대하든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그런데 정작 본선 첫 경기에서 승리하지 못하자 이후 분위기가 급격히 하락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러면서 지금 대표팀도 실패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런 의미에서 신태용호의 전북전 패배는 상당히 의미 있었다. 자칫 자만으로 빠질 수 있는 자신감을 잡았고, 자신들의 민낯을 제대로 확인할 수 있던 경기였다. 이제 전북전에 발견된 문제점들을 하나씩 채워나가는 일만 남았다. 

사진= 대한축구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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