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풋볼= 수원월드컵경기장] 서재원 기자= 킥오프 전까지 희망으로 가득 찼던 수원 삼성은 90분 뒤 절망을 맛봤다.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리자 모두 주저앉았고 박기동은 하염없이 울었다. 반대편 정성룡은 자신의 동료들과 기쁨을 나눴다.

수원은 25일 오후 7시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가와사키와 2017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ACL) G조 조별리그 5차전에서 0-1로 패했다. ACL에서 첫 패를 기록하며 승점 8점을 유지한 수원은 2위로 내려앉았다. 가와사키는 승점 7점으로 16강행 불씨를 살렸다.

희망적이었다. 아쉽지만 과거형이다. 경기 전까지 수원에 리그보다 더 희망적이었던 대회가 ACL이었다. 비기기만 했으면 16강행을 확정지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원정에서도 비겼다. 또 무승부라면 지겹게 해봤다. 그럼에도 서정원 감독은 “방심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무승부보단 승리를 원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희망이 절망으로 바뀌는 시간은 90분이면 충분했다. 경기 종료 후 전광판의 스코어는 0-1. 수원이 졌다. 생각하지도 않았던, 생각조차 하기 싫었던 결과였다. 그 결과가 이 90분 내에 발생했고, 수원은 광저우 에버그란데 원정에서 반드시 승리해야 16강에 진출할 수 있는 상황에 처했다. 즉 조별리그 탈락 위기다.

# 터지지 않은 수원, 박기동이 아쉬웠던 전반

수원은 승리를 원했다. 승리에 대한 약속을 지키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다소 공격적으로 경기에 임했다. 스리백의 틀은 유지했지만, 투톱에 공격형 미드필더를 두 명이나 배치했다. “무승부는 생각하지도 않았다. 홈에서 반드시 승리하겠다고 다짐했다. 선수들도 그렇게 경기에 임했다.” 서정원 감독의 뜻대로 수원은 초반에 공격을 몰아쳤다.

과정은 좋았다. 답답했던 이전 몇몇 경기들과 달리 시원시원한 경기가 전개됐다. 공격형 미드필더에 위치한 이용래와 김종우가 강한 전방 압박으로 상대의 수비를 압박했다. 자연스럽게 공간이 났다.

그러나 결정력이 문제였다. 전반 18분 김종우가 측면에서 찔러준 패스가 박기동에게 연결됐다. 앞에 수비수 한 명이 있었다. 오른발로 슈팅하는 척하면서 접으니 수비가 미끄러졌다. 앞에는 정성룡 밖에 없었고 빠르게 왼발로 슈팅을 때렸다. 그러나 공은 골대 오른쪽으로 빗나갔다. “전반에 득점했다면 쉽게 풀 수 있었던 경기였다.” 서정원 감독도 분명 이 장면을 아쉬워했을 터다.

박기동의 슈팅은 경기 중 가장 아쉬운 장면이었다. 첫 단추가 잘못 꿰졌다. 시간이 흐르니 초조함만 커졌다. 박기동은 사소한 터치에서 실수를 반복했다. 전반 42분 트래핑이 길어지며 찬스를 놓쳤다. 2분 뒤에도 비슷한 장면이 발생했다. 고승범의 슈팅까지 이어졌지만 정성룡이 선방했다. 세컨드 볼의 운도 그의 생각대로 따라주지 않았다.

# 초조함 커진 수원, 정성룡이 빛난 후반

결정적인 몇 번의 찬스를 놓치니 위기가 찾아왔다. 후반 3분 가와사키가 오른쪽 측면에서 프리킥을 얻었다. 나카무라가 날카로운 크로스를 올렸고, 공은 큰 곡선을 그리며 반대편 골문 방향으로 휘어졌다. 수원의 세 명이 뛰어 올랐다. 가와사키는 한 명이었다. 수비수 나라였다. 3대 1의 상황이었지만 공은 나라의 머리를 맞고 골문 안쪽으로 빨려 들어갔다.

실점을 허용한 수원은 초조함이 커졌다. 서정원 감독은 이용래를 빼고 다미르를 넣었다. 얼마 안 있어 수비수 매튜를 빼고 서정진을 넣었다. 스리백에서 포백으로 포메이션을 변경했고 공격 진영의 숫자가 더 늘어났다. 서정원 감독의 승부수였다.

뜻대로 풀리지 않았다. 포백 변경 후 수비 라인이 흔들렸다. 포백 변화 후 1분 만에 수비가 완벽히 뚫렸다. 한 번의 침투 패스로 고바야시가 골키퍼와 일대일 상황을 맞았다. 그의 어이없는 슈팅 실수가 수원엔 다행이었다. 비슷한 장면은 후반 25분에도 반복됐다. 신화용의 선방과 고바야시의 실수가 또 다시 수원의 추가 실점을 막았다. 수원은 또 다시 안도했다.

수비가 흔들리는 사이 공격은 더욱 초조해졌다. 이는 박기동 만의 잘못이 아니었다. 함께 투톱을 이룬 염기훈도 초조함에 측면으로 빠졌다. 그 흐름이 반복되는 가운데 박기동은 더욱 고립됐다. 후반 중반 이후 대부분의 선수들이 급격한 체력 저하를 보였다. 서정원 감독도 “많은 경기 일정으로 선수들의 체력에 문제가 생겼다”고 이를 인정했다.

그래도 수원은 포기하지 않았다. 추가 시간 4분까지 수원은 계속해서 몰아쳤다. 절박함이 보였다. 후반 48분 측면에서 올라온 크로스를 가와사키의 수비수가 걷어냈고, 공은 구자룡에게 흘렀다. 구자룡이 빠르게 슈팅했다. 하지만 가와사키엔 정성룡이 있었고, 그는 동물적인 반사 신경으로 이를 막아냈다.

1분 뒤 경기종료 휘슬이 울렸다. 수원 선수 모두가 고개를 떨궜다. 몇몇은 그라운드에 쓰러졌다. 가와사키 선수들과 경기장을 찾아준 팬들에 예의를 표하기 위해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그 사이 박기동은 하염없이 울고 있었다. 자기 때문이라 생각했을 테다. 결정적 찬스에서 골을 넣었다면 모두 행복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잘하고 싶었는데 몸도, 운도 따라주지 않았다. 그래서 울음을 멈추지 못했다. 그의 눈물에서 '미안함'과 함께 ‘부담감’이란 세 글자가 떠올랐다. 이는 서정원 감독을 포함한 선수단 전체가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지난 2개월간 수원은 이 부담감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아직도 그 끝은 보이지 않는다.

# 정성룡의 고향 방문, 운명 바뀐 수원과 가와사키

정성룡의 존재만으로 화제가 된 경기였다. 정성룡은 지난 2015년까지 5년 동안 수원의 골문을 지켰던 넘버원이었다. 2016년 2월 가와사키로 이적한 후, 약 1년 3개월 만에 친정팀과 자신이 뛰던 빅버드(수원월드컵경기장)를 방문했다. 포항 시절 주전 경쟁을 펼쳤던 신화용과의 맞대결에도 관심이 모아졌다.

그는 자신의 고향에서 확실한 존재감을 과시했다. 전반 막판 고승범의 슈팅과 후반 막판 구자룡의 슈팅까지. 가와사키의 실점 위기를 몇 번이고 막아냈다. 경기 전체를 봤을 때도 전혀 흠 잡을 데 없었다. 옛 동료들과 수원 팬들에게 그런 정성룡은 야속하기만 했다. 그럼에도 경기 후 수원 팬들은 정성룡과 뜨거운 인사를 나눴다.

경기 후 기자회견장에서 정성룡의 이름이 언급됐다. 물론 한국 취재진의 질문이었다. 하지만 가와사키의 오니키 도루 감독은 기자회견 중 가장 많은 시간을 정성룡에 대한 평가에 할애했다. “정성룡은 인간적으로, 인격적으로 훌륭한 선수다. 나도 그렇고 선수들 모두가 그런 정성룡을 너무 좋아한다. 선수로서도 훌륭하다. 오늘 경기에서도 최고의 활약을 펼쳤다. 하지만 그런 실력을 떠나 존경 받을 선수다.” ‘스라바시(훌륭하다)’라는 단어를 몇 번이고 반복해 사용했다.

믹스트존에서도 정성룡에게 가장 많은 취재진이 몰렸다. 그 모습이 신기했는지 가와사키의 직원도 이를 사진에 담았다. “가와사키 유니폼을 입고 있었지만 고향에 온 느낌이었다”는 정성룡은 “수원을 떠났지만 수원 경기를 챙겨보면서 응원하고 있다. 수원이 위협적인 팀이라 생각했고, 오늘 경기에서도 위협적이었다”며 친정팀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드러냈다.

정성룡은 90분 내내 빛났고 경기 후에도 존재감이 있었다. 그 장소가 빅버드라서 더욱 특별했다. 그러나 정성룡이 지켜낸 90분속에 수원의 운명은 바뀌었고, 이는 친정팀 수원에 희망이 아닌 절망이었다. 반대로 현 소속팀 가와사키는 절망 속에서 희망을 찾았다. 그렇게 두 팀의 운명은 바뀌었다. 

사진= 윤경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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