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풋볼] 또 하나의 축제와 감동이 시작된다. 디에고 마라도나, 티에리 앙리, 리오넬 메시 등 수많은 슈퍼스타를 탄생시켜온 ‘국제축구연맹(FIFA) U-20 월드컵’이 한국에서 개최된다. ‘인터풋볼’은 'FIFA U-20 월드컵 코리아 2017' 개막을 맞아, 매주 수요일마다 대회와 관련된 주제를 하나씩 선정해 소개하는 시간을 갖는다. 또한, U-20 월드컵을 뛰었던 축구 스타들을 만나 다양한 이야기를 독자 여러분들에게 들려 드릴 예정이다[편집자주].
“루이스 피구, 루이 코스타, 주앙 핀투…. 포르투갈 친구들이 볼을 어찌나 잘 차던지. 긴 머리 찰랑찰랑, ’탁탁탁’하니 금세 골문까지 가더라. 우승할 만했지.”
조진호(42, 부산 아이파크) 감독이 국제축구연맹(FIFA) U-20 월드컵을 떠올렸다. 조진호 감독은 U-20 월드컵에 두 번 출전(1991 포르투갈, 1993 호주) 했다. 특히 1991 포르투갈 대회는 남한과 북한이 ‘단일팀’으로 임해 의미가 더해졌다. 사령탑은 두 명, 선수는 남한 9명, 북한 9명 총 18명이 참가했다. 식사와 훈련을 제외하고 함께 생활할 수 없었다. 그런데도 기대 이상인 ‘8강’의 성적표를 받았다.
“대회를 앞두고 포르투갈로 갔다. 2~3주 정도 북한 선수들과 훈련했다. 한 팀인데 밥 먹고 훈련하는 것 외에는 철저히 통제된 생활이었다. 추억을 만들 시간조차 없었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서로를 이해하려 노력했다. 그래도 짧게나마 훈련하면서 해보자는 의지가 강했던 것 같다.”
포르투갈 대회에서 1차전 상대는 마우리시오 포체티노(현 토트넘 홋스퍼 감독)가 주장인 아르헨티나였다. 당시 아르헨티나는 ‘강호’로 꼽혔고, 남북 단일팀보다 한 수 위였다. 수비는 한국 선수들이 주축을 이뤘고, 공격과 허리는 북한 선수 위주로 꾸려졌다. 조진호 감독은 한국 선수 중 유일하게 주전 공격수로 뛰었다. 결과는 조인철의 결승골로 1-0 승리. 출발이 좋았다.
조진호 감독은 “사실 대회를 준비하면서 어려움이 많았다. 그때는 사계절 잔디도 없었고, 상대 정보는커녕 제대로 된 영상조차 없었다 모든 게 주먹구구식이었다. 지금은 환경, 기량적, 모든 면이 좋아졌다”고 떠올리면서, 1차전에 만났던 아르헨티나에 관해 ”아르헨티나는 세계 최고였다.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포체티노가 주장이었다니… 솔직히 생각이 안 난다(웃음). 다른 두 선수가 상당히 잘했던 거로 기억한다. 어쨌든 우리가 이겼다. 국제대회에서 첫 경기는 정말 중요하다. 8강 진출의 밑거름이 됐다”고 털어놨다.
아르헨티나에 쾌승을 거둔 남북단일팀은 2차전에서 아일랜드와 1-1로 비겼다. 이어 개최국이자 황금세대라 불렸던 포르투갈을 3차전에서 만났다. 루이스 피구, 루이 코스타, 주앙 핀투 등 스타들이 즐비했다. 아쉽게 0-1로 졌지만, 조 2위로 8강 진출에 성공했다. 8강에서 지오바네 엘베르, 호베르투 카를로스가 포진한 브라질에 1-5로 패하며 위대한 여정의 마침표를 찍었다. 이 대회에서 포르투갈이 우승, 브라질이 준우승을 차지했다.
“포르투갈 선수들을 딱 봤는데 긴 머리가 찰랑찰랑, 반하겠더라. 공은 또 어찌나 잘 차던지. 우리가 지금 이야기하는 빌드업 과정이 엄청났다. 탁탁 원투, 금세 골문에. 나는 경기 전에 ‘슈팅 하나만 하자’고 다짐했는데… 솔직히 90분 동안 뭘 했는지 모르겠더라(웃음). 브라질도 마찬가지였다. 전반에만 세 골을 허용했다. 다리가 안 떨어졌다. 실력도 실력이지만 물기 있는 잔디, 사계절 잔디가 익숙하지 않았고, 현지 적응도 어려웠다. 아쉬웠지만 급조된 팀치고 나름 잘했던 것 같다.”
조진호 감독은 2년 뒤 열린 1993 호주 대회에도 참가했다. 절친인 최용수 감독과 투톱을 구축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3무로 미국에 골 득실 차에 밀려 8강 진출에 실패했다. 오히려 조진호 감독은 이 대회가 더욱 아쉬웠다고 밝혔다. 이유는 멤버 구성이 좋았고, 조직적으로 잘 갖춰져 있었기 때문이다.
“경험이 있어 2년 전보다 개인적이나 팀적으로 준비가 잘된 상태였다. 특히 (최)용수와 호흡이 좋았다. 내심 4강 이상을 바라봤는데, 허무하게 끝났다.”
20년도 넘게 흘렀지만, 조진호 감독은 두 대회를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U-20 대회를 통해 선수로 한 단계 성숙해졌고, 프로와 국가대표 활약으로 이어졌기 때문. 현재 후배들을 지도하며 ‘나도 예전에는 저랬었지, 젊었었는데…’라며 추억과 생각에 잠기곤 한다고 했다. 의미 있고 큰 대회가 안방에서 열린다. 그는 후배들이 명심해야 할 애정 어린 조언을 건넸다.
“우리나라가 큰 대회를 개최하는 건 기쁜 일이다. 지난해 12월 신태용호에 속한 선수들과 제주 서귀포에서 연습경기를 했다. 가능성을 발견했고, 좋은 선수가 많더라. 수개월이 지난 지금은 훨씬 단단해지고 있다. 신태용 감독님이 선수 관리를 워낙 잘하는 걸로 유명하다. 걱정 없다. 백승호, 이승우라는 스타도 있다. 해줄 땐 해주고 이타적인 플레이로 잘한다. 축구 읽는 흐름이 남다르다. 특히 이승우는 근성이 있고 특별하다. 분명 잘할 거다. 손발을 맞출 시간도 꽤 있다. 충분히 8강 이상 성적을 낼 거로 예상한다.”
마지막으로 그는 후배들에게 직접 메시지를 남겼다.
“후배들아, 방심은 최고의 적이다. 마음 단단히 먹어야 한다. 세계 대회는 쉽지 않단다. 준비 잘하고 운동장에서 본인의 기량을 마음껏 펼쳐라. 더 발전하고 큰 무대로 갈 수 있는 길이 될 수도 있어. 한국 축구의 역사를 썼으면 좋겠다. 응원하마!”
인터뷰(부산)=이현민 기자
사진=이현민 기자, U-20 월드컵 조직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