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풋볼] 또 하나의 축제와 감동이 시작된다. 디에고 마라도나, 티에리 앙리, 리오넬 메시 등 수많은 슈퍼스타들을 탄생시켜온 ‘국제축구연맹(FIFA) U-20 월드컵’이 한국에서 개최된다. ‘인터풋볼’은 'FIFA U-20 월드컵 코리아 2017' 개막을 맞아, 매주 수요일마다 대회와 관련된 주제를 하나씩 선정해 소개하는 시간을 갖는다. 또한, U-20 월드컵을 뛰었던 축구 스타들을 만나 다양한 이야기를 독자 여러분들에게 들려 드릴 예정이다.[편집자주]

올해 한국에서 개최되는 U-20 월드컵은 21번째 대회다. 지금으로부터 40년 전, 아프리카 튀니지에서 그 첫 발을 내딛었다. 하지만 한국은 1회 대회에 불참했고, 그들의 U-20 월드컵 도전기는 1979년 일본 대회부터 시작됐다. 

한국의 U-20 월드컵의 역사는 어쩌면 성인 팀의 월드컵 역사보다 찬란했다. 1983년 멕시코 대회에서 4강 신화를 일궈내며 ‘붉은 악마’라는 이름을 전 세계에 알렸고, 1991년 포르투갈 대회에선 남북 단일팀이 출전하며 크나큰 감동을 선사하기도 했다.

# ‘1979 일본 대회’ U-20 월드컵에 역사적인 첫 발

한국은 1978 아시아축구연맹(AFC) 유스 챔피언십 우승 자격(이라크와 공동우승)으로 1979 FIFA 월드 유스 챔피언십(현 U-20 월드컵)에 참가했다. 당시 한국과 함께 아시아 대표로 참가한 인도네시아는 이라크를 대신해 출전했다. 물론 개최국 일본도 자동 참가했다.

이 대회에서 한국은 역사적인 대회 첫 골과 첫 승을 일궈냈다. 첫 경기였던 파라과이전에선 0-3으로 대패했지만, 2차전에서 만난 캐나다를 상대로 후반 18분 이태호가 결승골을 터트리며 1-0으로 승리했다. 1979년 8월 27일, 한국의 U-20 월드컵 역사에 기록적인 날이다. 

대회 결과는 아쉬웠다.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인 포르투갈전에서 0-0으로 비기며 1승 1무 1패를 기록하며 2위 포르투갈과 동률을 이뤘다. 그러나 골득실차(한국 -2, 포르투갈 -1)에서 3위로 밀려났고, 8강행에 실패했다.

# ‘1981 호주 대회’ 이탈리아전 4-1 승...8강행은 또 실패

80년대 초반 한국 U-20 대표팀은 아시아 최강을 자랑했다. 1978 AFC 유스 챔피언십에 이어 1980년 대회에서도 우승하며 2연패를 달성했다. 아시아 챔피언 자격으로 1981 FIFA 월드 유스 챔피언십에 참가했지만 조편성 운은 따르지 않았다. 한국은 이탈리아, 루마니아, 브라질 등과 함께 B조에 편성됐다.

시작은 좋았다. 이변이었다. 한국이 1차전에서 이탈리아를 대파한 것. 전반 7분 만에 곽성호가 선제골을 넣었고, 최순호가 멀티골(전반 12분, 29분)을 터트리며 전반을 3-0으로 마쳤다. 후반 막판 이경남이 쐐기골을 넣은 한국은 4-1로 경기를 마쳤다. 

그러나 이후 결과는 아쉬웠다. 2차전에서 루마니아에 0-1로 패했고, 3차전에서 브라질에 0-3으로 완패했다. 조별리그 성적 1승 2패. 한국은 또 다시 조 3위로 8강행에 실패했다. 한편 한국과 함께 아시아 대표로 참각한 카타르는 이 대회에서 준우승을 차지했다.

# ‘1983 멕시코 대회’ 원조 4강 신화...붉은 악마의 시작

아시아 대회를 또 다시 우승(3연패)한 한국은 멕시코 대회를 통해 FIFA 월드 유스 챔피언십에 세 번째로 도전했다. 개최국 멕시코를 포함해 스코틀랜드, 호주 등과 한 조에 묶인 한국은 불안함을 안은 채 대회에 참가했다.

1차전에서 스코틀랜드에 0-2로 패하며 불안하게 시작했지만, 2차전에서 개최국 멕시코를 2-1로 꺾었다. 3차전에선 김종부의 결승골에 힘입어 호주를 2-1로 꺾은 한국은 2승 1패, 조 2위로 8강 진출에 성공했다.

한국의 돌풍은 8강에서 그치지 않았다. 한국은 8강에서 우루과이를 만났고 연장까지 가는 접전 끝에 2-1로 짜릿한 승리를 거뒀다. 당시 멀티골을 터트린 신연호는 최고의 스타로 발돋움했다.

끝은 다소 아쉬웠다. 브라질과의 준결승전에 이어 폴란드와의 3, 4위전에서 연달아 1-2로 패하며 4위로 대회를 마쳤다. 물론 실패는 아니었다. 당시 한국의 돌풍은 전 세계에 깊은 인상을 남겼고, 이 대회를 통해 한국 축구에 ‘붉은 악마’라는 애칭이 붙기 시작했다.

# ‘1991 포르투갈 대회’ 남북단일팀에서 8강까지

3회 연속 아시아 예선을 통과하지 못한 한국은 1991년, 8년 만에 대회 참가 자격을 얻었다. 1991년 포르투갈 대회는 남북 단일팀이 출전한 역사적인 대회이기도 했다.

남북 단일팀이란 역사적인 사건에 의미를 뒀기에 대회 성적에 대한 기대는 높지 않았다. 남북 단일팀의 구성이 남한과 북한이 1대1 비율로 맞춰졌고, 남한은 골키퍼 최익형을 비롯해 강철, 이임생 등 수비진, 북한은 조인철, 최철, 정강성 등 공격에 비중을 뒀다. 손발을 맞출 시간도 약 1개월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성적은 기대 이상이었다. 주장 마우리시오 포체티노(현 토트넘 홋스퍼 감독)가 이끄는 아르헨티나와의 1차전에서 1-0으로 승리한 한국은, 아일랜드와의 2차전에서 후반 44분 최철(북한)의 극적골로 1-1로 비겼다. 3차전에서 루이스 피구, 루이 코스타, 주앙 핀투 등 ‘황금세대’가 주축을 이룬 포르투갈에 0-1로 패했지만 조 2위로 8강에 진출했다.

“하나 된 힘은 강하다”는 외신의 찬사가 이어졌지만 그 기적은 8강에서 멈췄다. 이번에도 브라질을 넘지 못했다. 남북 단일팀은 8강에서 만난 브라질에 1-5로 대패하며 대회를 마감했다. 당시 지오바네 엘베르, 호베르투 카를로스 등이 주축이 된 브라질은 준우승을 차지했고, 우승컵을 포르투갈이 들어올렸다.

# ‘1993년 호주 대회’ 무패에도 8강행 실패

호주는 1981년 3회 대회 개최에 이어 12년 만에 9회 대회를 개최했다. 호주는 U-20 월드컵 역사상 유일하게 동 대회를 두 번 개최한 국가로 기록돼 있다. 한국은 아시아 대회 준우승 자격으로 출전 자격을 얻었고, 김진우, 이기형, 김대의, 최용수, 최성용, 조진호, 서동원 전경준 등이 주축을 이뤘다.

아쉬움이 큰 대회다. 한국은 조별리그에서 3무를 기록하며, 단 한 번도 패하지 않았지만 승리가 없어 토너먼트 진출에 실패했다. 승점 3점(골득실 0)으로 미국(승점 3, +5)과 동률을 이뤘음에도 골 득실차에서 밀려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운이 없던 대회로도 기록된다. 한국은 3경기 모두 선제골을 기록했음에도 동점을 허용했다. 특히 3경기 모두 후반 막판 실점을 허용했기에 아쉬움을 크게 남겼다.

* 한국의 U-20 월드컵 도전기는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

글= 서재원 기자

사진= FIFA.com(U-20 월드컵 코리아 2017 조직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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