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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훈의 HIS-tory] ‘에버턴의 악동’ 루니, 맨유의 전설이 되다

[인터풋볼] 세상에 사연 없는 사람은 없다. 세계적인 축구 스타들도 마찬가지. 현재는 가장 화려한 삶을 살고 있는 스타지만 모두가 꽃길만을 걸어온 것은 아니고, 시련을 이겨내 세계적인 스타로 성장한 경우가 많다. 그래서 축구 전문 언론 '인터풋볼'이 준비했다. 꼭지명은 역사를 영어로 한 'HIS-tory'. 즉 그 사람(His)의 이야기(Story)로 해석할 수 있다. 우리가 몰랐던 슈퍼스타들의 숨겨진 이야기를 독자 여러분들에게 소개한다. [편집자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캡틴 웨인 루니가 새로운 역사를 썼다. 루니는 지난 22일(한국시간) 영국 스토크 BET365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6-17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EPL) 22라운드 스토크 시티 원정 경기에서 환상적인 프리킥골을 터트리며 맨유의 극적인 무승부를 이끌었다. 루니는 이날 득점으로 맨유 통산 250골을 기록하며 바비 찰턴 경을 제치고 맨유의 최다 득점자에 이름을 올렸다. 여기에 맨유의 17경기 무패행진을 이끌며 자신의 가치를 증명했다.

사실 루니는 이번 시즌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 무리뉴 감독이 새롭게 지휘봉을 잡으면서 ‘캡틴’ 루니를 중심으로 전술을 짰지만 루니는 극심한 슬럼프에 빠지면서 기회를 살리지 못했다. 여기에 각종 구설수에 오르며 자기 관리에 실패한 퇴물이라는 소리까지 들어야 했다. 그래도 루니는 묵묵하게 기회를 기다리며 화려했던 과거를 내려놓고 누구보다 헌신하며 자세를 낮췄다. 결과적으로 루니는 가장 중요한 순간 빛을 내며 맨유의 위대한 레전드 반열에 올랐고, 맨유 역사의 한 페이지에 자신의 이름을 새겼다.

에버턴의 악동에서 맨유의 위대한 레전드가 된 루니. 잉글랜드 축구의 역사를 새로 쓰고 있는 루니의 어린 시절부터 현재까지를 독자 여러분들에게 소개한다.

# 에버턴의 악동 루니, 아스널의 무패행진을 저지하다

천재와 악동. 이 두 단어로 루니의 어린 시절을 표현할 수 있다. 루니의 재능은 역대급이었다. 워낙 일찍부터 잉글랜드의 천재라 불리며 재능을 인정받았고, 어린 시절부터 두각을 드러내며 최연소 기록을 갈아치웠다. 재능은 뛰어났지만 루니를 제어하기는 쉽지 않았다. 훗날 맨유의 위대한 명장 알렉스 퍼거슨 감독도 ‘루니는 자신의 성격적인 결함을 극복해낸 인물이다’고 평할 정도로 루니는 악동이라는 말을 달고 다녔다.

영국 리버풀 크록스테스에서 태어난 루니는 어린 시절부터 호기심이 많고, 장난기가 많았다. 일찌감치 모든 운동에 두각을 드러내 축구는 물론이고 여러 운동을 접했던 루니는 9세 때 에버턴의 유스 팀에 입단해 본격적인 축구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루니의 승부욕은 엄청났는데 시합에서 지기 싫어서 공격을 하다가도 페널티킥을 막으려 골키퍼를 자처했다는 이야기도 있고, 잠깐이지만 골키퍼로 선수 생활을 하기도 했다. 그만큼 루니의 승부욕은 대단했고, 만약 경기에서 패하는 날이면 분해서 잠을 이루지 못했다.

루니의 성장세는 엄청났다. 탁월한 운동 능력과 승부욕을 바탕으로 루니는 축구 선수로 가파르게 성장했고, 자신의 유스 팀인 에버턴을 응원하며 축구 선수의 꿈을 키웠다. 루니의 축구에 대한 열정을 알 수 있는 일화는 또 있다. 에버턴의 팬이자, 유스 팀의 선수였던 루니는 11세 때 에스코트 키즈로 선정돼 당시 에버턴의 주장이었던 데이브 왓슨과 함께 경기장에 들어섰다. 왓슨은 이때를 떠올리며 루니는 ‘엄청난 개구쟁이였고, 축구에 대한 열정과 궁금증이 많은 아이였다’고 했고, 심지어 루니의 열정적인 질문 공세와 장난을 이기지 못해 짜증을 부리기도 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만큼 루니의 축구에 대한 열정은 엄청났고, 물론 엄청난 승부욕으로 인해 친구들과 다투는 일도 있어 악동이라 불렸지만 그가 선수로 성장하는 밑거름이 됐다.

축구 선수로 꾸준하게 성장한 루니는 2002년 에버턴의 프로 선수로 데뷔했다. 당시 루니의 나이는 16세였는데 영국 언론들은 루니의 등장을 두고 잉글랜드 역대 최고의 재능이라 극찬했고, 하얀 펠레라는 별명을 지어주며 관심을 보였다. 특히 영국 언론들은 루니가 어린 시절 한 시즌에 72골을 기록했다는 점을 강조하며 천재라는 수식어를 아끼지 않았고, 루니는 에버턴 유스에서 각종 득점 기록을 깨며 괴물 공격수로 성장했다.

데뷔전도 센세이션이었다. 루니는 2002년 여름 오스트리아 훈련 캠프에서 처음으로 1군 스쿼드에 포함됐고, 친선전에서 에버턴 1군 데뷔골을 기록하며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역사적인 EPL 데뷔골이었다. 루니는 2002년 10월 19일 아스널전에서 데뷔골을 터트리며 전설의 탄생을 알렸는데 당시 아스널은 리그 29경기 무패행진을 달리고 있었다는 점에서 엄청난 장면을 연출했다. 이후 루니는 에버턴에서 두 시즌을 보내며 77경기서 17골을 기록하며 잉글랜드의 미래임을 증명했다.

# 전설의 시작, ‘명장’ 퍼거슨을 만나다

잉글랜드 최고의 재능 루니를 향한 빅 클럽들의 러브콜은 끊이질 않았다. 그 중 가장 적극적인 팀은 위대한 명장 퍼거슨 감독의 맨유였다. 당시 맨유는 앨런 스미스를 영입했지만 빈공에 시달렸고, 퍼거슨 감독은 특단의 조치로 루니의 영입을 추진했다. 결국 맨유는 2003-04시즌을 앞두고 당시에는 파격적인 금액이었던 3000만 파운드의 이적료로 루니를 영입했다. 현지 언론들은 10대 선수인 루니의 몸값을 두고 말이 많았지만 오히려 루니는 “맨유가 날 사온 것을 파격 세일한 가격이 되도록 하겠다”며 당당한 포부를 밝혔다.

루니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루니는 페네르바체와 챔피언스리그 32강 경기에서 데뷔전을 치렀는데 해트트릭을 터트리며 센세이션한 데뷔전을 소화했고, 이후에도 판 니스텔루이, 긱스 등과 엄청난 호흡을 자랑하며 맨유의 공격을 이끌었다. 루니는 첫 시즌 17골을 터트리며 찬사를 받았지만 맨유는 아쉽게도 무관으로 마쳤다.

루니의 활약은 계속됐다. 특히 지금은 세계 최고의 선수로 성장한 호날두와 호흡이 인상적이었다. 루니는 두 번째 시즌에도 저돌적인 플레이로 맨유의 공격을 책임졌고, 맨유 두 번째 시즌에서 총 19골을 기록하며 맨유 팬들이 뽑은 최우수 선수에 선정됐다.

문제는 악동 기질이었다. 루니는 최고의 경기력을 보이며 맨유 팬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지만 주심의 판정에 불만을 품어 박수를 치는 행동을 하다가 퇴장을 당했고, 상대 수비수에 거친 파울을 범해 좋지 않은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때마다 퍼거슨 감독은 루니를 감싸 안으며 성숙한 플레이를 펼치라고 주문했고, 때로는 따끔한 질책으로 루니를 성숙하게 만들었다.

# ‘윙크 사건’ 호날두와 맨유의 전성기를 이끌다

루니에게는 첫 번째 월드컵 출전이었다. 맨유에서 고속 성장한 루니는 2006 독일 월드컵을 앞두고 부상을 당했지만 산소 텐트 등을 이용해 빠른 회복에 성공했고, 꿈에 그리던 월드컵 출전 기회를 잡았다. 엄청난 기대를 받았다. 그러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루니는 포르투갈과의 8강전에서 카르발류에 파울을 범해 퇴장을 당했는데 이 과정에서 맨유의 동료 호날두가 방송 카메라를 향해 윙크를 해 논란이 나오기도 했다.

환상의 호흡을 자랑하던 루니와 호날두의 관계가 급격히 냉랭해졌다. 특히 극성스럽기로 유명한 영국 언론들은 호날두를 맹비난했고, 맨유로 복귀해서도 분위기가 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루니는 예상보다 쉽게 털어냈고, 호날두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환상적인 호흡을 과시했다.

결과적으로 루니는 2006-07시즌 23골, 2007-08시즌 18골, 2008-09시즌 20골을 기록하며 꾸준한 득점력을 보였다. 특히 호날두, 테베즈, 박지성, 긱스 등과 공격진을 구성하며 리그 우승, 챔피언스리그 우승 등을 일궈내며 맨유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루니가 맨유에서 가장 좋은 활약을 펼쳤던 시즌은 2009-10시즌이었다. 당시 맨유는 공격을 책임졌던 호날두가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한 상황에서 테베즈 마저 라이벌인 맨체스터 시티로 이적했다. 루니의 어깨가 무거웠다. 그러나 루니는 자신을 중심으로 공격진을 구축한 퍼거슨 감독의 믿음에 보답하며 무려 34골을 기록했다. 결국 루니는 프리미어리그 올해의 선수상, 매트 버스비경 올해의 선수상, 프리미어리그 선수협회 올해의 선수상, 영국 기자협회 올해의 선수상 등을 수상하며 화려한 시즌을 보냈다.

# ‘살아있는 레전드’ 루니, 바비 찰턴을 넘다

분명 루니는 전성기였다. 호날두가 없어도 루니는 꾸준한 활약을 펼치며 맨유의 상징적인 선수가 됐고, 데니스 로의 등번호 10번은 온전히 루니의 것이 됐다. 그러나 문제가 발생했다. 루니는 2010-11시즌을 앞두고 이적설이 나왔는데 사생활 문제와 재계약 과정에서 마찰로 인해 이적을 선언했다. 그것도 라이벌팀 맨체스터 시티로 이적하겠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맨유 팬들의 맹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루니는 결국 2010년 10월 맨유와 재계약을 체결했고, 영원한 맨유맨이 되겠다고 약속했다.

꾸준했다. 루니는 2010-11시즌에도 맹활약하며 챔피언스리그 결승 진출과 함께 맨유에 리그 최다 우승(19회)이라는 기록을 선물했다. 이후에도 루니는 꾸준한 경기력을 보이는 동시에 성숙한 모습으로 더 이상 악동 루니의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특히 2011-12시즌에는 리그에서 27골 7도움을 기록하며 리그 최다골 기록을 세웠고, 맨체스터 더비에서는 환상적인 바이시클 킥으로 득점포를 가동하며 EPL 20주년 최고의 골에 선정되기도 했다.

정점을 찍은 루니는 서서히 내려오기 시작했다. 2012-13시즌부터는 최전방 공격수가 아닌 중앙 미드필더 또는 공격형 미드필더로 활약하는 시간이 더 많아졌고, 비록 20번째 리그 우승이라는 기쁨을 맛봤지만 개인 성적은 그리 좋지 않았다. 특히 퍼거슨 감독이 떠나고 데이비드 모예스 감독과 루이스 판 할 감독 체제에서 루니는 잦은 포지션 변경으로 최전방 공격수로의 장점을 잃어버렸다. 결국 파괴력을 잃었다. 이후 루니는 2016-17시즌 무리뉴 감독과 부활을 선언했지만 아직까지는 완벽하게 부활했다는 평가를 듣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루니는 맨유의 레전드다. 각종 구설수에 오르며 자기 관리에 실패한 퇴물이라는 소리까지 들어야 했지만 루니는 묵묵하게 기회를 기다렸다. 초심으로 돌아갔다. 루니는 화려했던 전성기를 떠올리는 것이 아니라 누구보다 헌신하며 자세를 낮췄고, 팀 동료들과 팬들을 위해 뛰었다. 결과적으로 루니는 가장 중요한 순간 빛을 내며 맨유의 역사를 새로 썼고, 맨유 역사의 한 페이지에 자신의 이름을 새겼다.

# ‘레전드’ 루니를 향한 찬사

바비 찰턴: “내 기록이 깨져 실망하지 않는다. 나는 솔직히 루니가 내 기록을 깨서 기쁘다. 나는 은퇴할 당시 35세였지만, 그는 31세다. 앞으로도 많은 골을 넣고, 훌륭한 역사를 쓸 것이다. 루니는 여전히 득점에 기여할 수 있고 은퇴 전까지 활약해줄 수 있다. 루니는 맨유와 잉글랜드 국가대표팀의 최다 득점자이자 위대한 선수로 남게 됐다.”

주제 무리뉴: “루니가 만든 기록은 잉글랜드에서 가장 큰 클럽의 기록이다. 그리고 맨유는 세계에서 가장 큰 클럽 중 하나다. 이제 루니는 맨유의 진정한 전설이 됐다.”

알렉스 퍼거슨: “지난 44년 동안, 루니가 맨유에 처음 왔을 때도, 나는 그 누구도 찰턴의 기록을 깰 거라 생각하지 못했다. 루니의 업적은 놀라운 일이다. 정말 엄청나다. 그는 찰턴보다 200경기나 덜 출전했다. 나는 루니의 기록을 그 누구도 깨지 못할 거라 생각한다. 나는 그것을 절대 상상할 수 없다. 현대 축구를 보자면, 한 선수를 10년 이상 보유할 수 있는 클럽은 몇 되지 않는다.”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루니는 완벽한 선수다. 경기장 밖에서 그는 진정한 리더고, 경기장 안에선 그냥 완벽하다. 루니는 동료들을 잘 도와주고, 인품도 좋다. 그는 골을 넣는 방법을 알고 있고, 도움의 방법도 잘 알고 있다.”

아스널 아르센 벵거 감독: “루니는 내가 본 잉글랜드 선수 중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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