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풋볼] 세상에 사연 없는 사람은 없다. 세계적인 축구 스타들도 마찬가지. 현재는 가장 화려한 삶을 살고 있는 스타지만 모두가 꽃길만을 걸어온 것은 아니고, 시련을 이겨내 세계적인 스타로 성장한 경우가 많다. 그래서 축구 전문 언론 '인터풋볼'이 준비했다. 꼭지명은 역사를 영어로 한 'HIS-tory'. 즉 그 사람(His)의 이야기(Story)로 해석할 수 있다. 우리가 몰랐던 슈퍼스타들의 숨겨진 이야기를 독자 여러분들에게 소개한다. [편집자주]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이름만으로도 전 세계 축구 팬들을 설레게 하는 ‘슈퍼스타’ 호날두가 2016년 최고의 별로 등극했다. 국제축구연맹(FIFA)은 10일 오전 2시 30분(한국시간) 스위스 취리히 TPC 스튜디오에서 ‘더 베스트 FIFA 풋볼 어워즈 2016’을 개최했고, 올해의 선수로 호날두를 선정했다.

쟁쟁한 라이벌들을 제쳤다. 호날두는 최종 후보였던 리오넬 메시(바르셀로나/아르헨티나)와 앙투안 그리즈만(아틀레티코 마드리드/프랑스)을 제치고 올해의 남자 선수상을 거머쥐었다. 새로운 역사를 썼다. 이미 2016 발롱도르를 차지한 호날두는 이번 FIFA 올해의 선수상까지 차지하며 2016년을 자신의 해로 만들었다. 여기에 호날두는 ‘FIFA FIFPro 월드베스트11’까지 선정되며 세계 최고의 선수임을 증명했고, 개인 통산 두 번째 FIFA 올해의 선수상을 차지하며 지네딘 지단과 호나우두(이상 3회)의 뒤를 이었다.

늘 당당함을 잃지 않으며 세계에서 가장 화려한 삶을 살고 있는 호날두. 그러나 그의 어린 시절은 화려한 삶과는 거리가 멀었고, 포르투갈에서도 가장 가난한 섬 마을에서 태어나 축구 선수의 꿈을 키웠다. 그래서 'HIS-tory'에서 준비했다. 2016년 최고의 별로 등극한 호날두의 어린 시절부터 현재까지를 독자 여러분들에게 소개한다.

# 지독하게 가난했던 섬 소년, 축구 선수의 길을 걷다

호날두는 슈퍼스타다. 잘 생긴 외모와 탄탄한 몸매 그리고 뛰어난 축구 실력으로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축구 스타다. 여기에 슈퍼카, 호화 저택 등 화려한 라이프스타일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호날두가 어린 시절부터 부유한 삶을 살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실상은 반대였다. 호날두는 어린 시절 지독하게 가난한 삶을 살았다. 호날두는 북대서양에 위치한 포르투갈령의 해외 섬인 마데이라 제도에서 태어났고, 이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지금도 그렇지만 마데이라 제도의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가난했고, 특히 호날두의 가족은 시에서 가장 싼 값에 빌려주는 아파트에 살았다. 당시 호날두는 두 명의 누나와 한 명의 형과 같은 방을 썼는데 겨울에는 매우 추웠고, 여름에는 천장에서 비가 새기도 했다.

호날두의 가정환경은 좋지 않았다. 아버지는 알코올중독자였고, 형은 마약 중독자였다. 이런 이유로 주로 생계를 책임진 것은 청소부였던 모친이었고, 당시 호날두는 청소부였던 어머니를 부끄러워했다고 훗날 회고했다. 그래도 호날두는 희망을 놓지 않았다. 유일한 즐거움과 희망은 축구였다. 지금은 당당한 신체조건을 가지고 있는 호날두지만 어린 시절에는 제대로 먹지 못해 ‘말라깽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다. 호날두가 축구를 시작한 것은 우연이었다. 어느 날 빈민가 놀이터에서 혼자 흙장난을 치던 호날두는 멀리서 축구를 하는 동네 친구들을 발견했다. 가난하다는 이유로 호날두는 축구를 함께 하지 못했지만 우연이 날아온 축구공을 찼을 때 희열을 느꼈고, 어머니를 졸라 축구를 시작했다.

호날두의 축구 실력은 또래보다 월등했다. 유년 시절 호날두는 아마추어 구단인 안도리냐에서 축구를 시작했는데 부친은 이곳에서 장비 관리자로 근무하고 있었고, 곧바로 두각을 드러냈다. 아주 좋은 신체조건은 아니었지만 호날두는 어린 시절부터 스피드가 있었고, 기술이 좋았다. 이에 2년 동안 인근의 프로 구단 나시오날에서 축구 선수의 꿈을 키웠다.

참고: 호날두의 이름은 부친이 가장 좋아하는 배우이자, 미국의 대통령이었던 로널드 레이건의 이름에서 딴 것이었지만 훗날에는 브라질 축구의 전설 호나우두와 비견되고 있다.

# 빠르게 성장한 호날두, 심장병을 극복하다

호날두의 성장 속도는 빨랐다. 1997년, 12세가 됐을 때 호날두는 포르투갈의 명문 클럽 스포르팅 리스본의 테스트에 참가했고, 실력을 인정받아 1500 파운드(약 215만 원)에 계약을 체결했다. 호날두는 스포르팅 리스본 입단과 함께 리스본으로 전학을 가야 했고, 12세의 어린 나이에 부모와 떨어져 혼자 살아야 했다.

새로운 환경 적응에 어려움이 있었다. 포르투갈에서 많이 떨어진 섬 마데이라 출신인 호날두는 리스본 친구들과는 다른 억양과 말투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를 두고 반 친구들의 놀림을 받아야 했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호날두는 매일 눈물을 흘렸는데 처음 마데이라로 돌아갔을 때 다시는 리스본을 돌아가지 않겠다고 버틴 적도 있었다.

그만큼 호날두의 리스본 생활을 힘들었다. 그러나 호날두는 축구를 포기하지 않았고, 세계적인 선수가 되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했다. 이미 14세 때 반 프로 무대에서 뛸 능력을 갖췄던 호날두는 어머니와 합의를 통해 학업을 중단하고 축구에 전념하기 시작했다. 호날두는 마른 몸을 살찌우기 위해 평소보다 많은 음식을 섭취했고, 탄산음료, 패스트푸드 등을 멀리하며 철저하게 자기 관리를 했다. 휴식 시간 마저 축구에 도움이 되는 탁구를 즐겼고, 훈련장에 가장 먼저 도착해 가장 나중에 떠날 만큼 엄청난 노력을 했다.

위기도 있었다. 호날두는 교사에게 의자를 던진 일로 퇴학을 당한 적이 있었는데 나중에 호날두는 “나를 존중하지 않았다”고 말했고, 부모와 함께 살지 않았기 때문에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고 말했다. 오히려 이런 것들이 호날두가 더 축구에 집중할 수 있게 만들었다.

축구에만 집중하던 호날두에게 청천벽력 같은 일이 벌어졌다. 호날두는 어릴 적부터 정상인보다 두 배는 빠르게 심장이 뛰는 질병이 있었는데 이것 때문에 앞으로 축구 선수를 계속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다행이도 수술을 하고 재활 치료를 하면 좋아질 수 있었지만 호날두의 집안은 값비싼 수술비를 지불할 수 없었다.

모든 가족이 호날두를 도왔다. 호날두의 소식을 들은 아버지와 형은 수술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취직을 해 돈을 벌었고, 마침내 1년 후 온 가족이 모은 돈으로 수술을 할 수 있었다. 호날두의 의지는 엄청났고, 수술도 성공적이었다. 호날두는 수술 후 몇 시간 만에 퇴원했고, 며칠 후에는 훈련에 복귀했다. 재활을 마친 후 호날두는 더욱 훈련의 강도를 높이며 프로 선수로 성장했다.

# 프로 무대에 데뷔한 호날두, ‘은인’ 퍼거슨을 만나다

호날두는 연습벌레였다. 타고난 재능도 있었지만 호날두를 더 좋은 선수로 만든 것은 연습이었다. 특히 호날두는 브라질 선수들의 기술을 보면서 따라하려고 노력했고, 화려한 드리블 기술을 갖추게 됐다. 이에 호날두가 16세가 되자 당시 스포르팅의 1군 감독이었던 라실로 뵐뢰니 감독이 호날두의 드리블 능력을 높이사 1군으로 승격시켰다. 그는 스포르팅의 U-16, U-17, U-18, 리저브, 그리고 1군 경기를 단일 시즌에 뛴 최초의 선수가 됐다.

폭발적인 스피드와 드리블 능력을 갖춘 호날두를 많은 빅 클럽들이 주시했다. 특히 호날두는 2002년 모레이렌스와의 프리메이라리가 데뷔전에서 2골을 넣어 팀의 3-0 완승을 이끌었는데 이후 구단 관계자는 리버풀과 바르셀로나에 호날두를 추천하기도 했고, 아르센 벵거 감독도 관심을 보였다.

그러나 호날두의 진정한 가치를 알아 본 인물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위대한 명장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었다. 호날두는 2003년 8월 맨유를 상대로 맹활약을 펼치며 승리를 이끌었는데 이때 퍼거슨 감독과 맨유 선수들의 찬사를 얻어냈다. 결국 퍼거슨 감독은 2003-04시즌을 앞두고 호날두를 영입했다. 당시 이적료는 1224만 파운드(약 175억 원)였는데 이는 잉글랜드 축구 역사상 청소년 선수 최고 이적료였고, 맨유가 영입한 최초의 포르투갈 선수였다.

등번호는 7번이었다. 호날두는 스포르팅에서 사용하던 등번호 28번을 원했지만 맨유는 조지 베스트, 에릭 칸토나, 데이비드 베컴 등 전설적인 선수들이 사용했던 7번을 부여했다. 그만큼 호날두에 대한 기대감은 높았고, 비록 초반에는 적응에 어려움을 겪었지만 이내 맨유 최고의 선수로 성장했다. 특히 호날두는 퍼거슨 감독 밑에서 팀플레이를 배우며 맨유를 넘어 세계 최고의 선수가 됐다.

호날두는 퍼거슨 감독과의 만남을 회상하며 “스포르팅에서 활약할 때 전화 한 통을 받았다. 그는 나를 원한다고 했고, 그의 말을 듣고 나는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아니 전율이었다. 내게 전화를 한 사람은 퍼거슨 감독이었다. 나는 곧바로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고, 눈물이 나와 말도 잘 나오지 않았다. 나는 어머니에게 ‘이제 더 이상 청소부 일을 하지 않으셔도 돼요’라고 말했다. 퍼거슨 감독은 내게 아버지와도 같은 인물이었고, 현역 생활에서 가장 중요하고 영향을 끼친 부분 중 하나였다”고 회고했다.

# 가난한 섬 소년 호날두, 세계에서 가장 비싼 선수가 되다

호날두의 활약은 엄청났다. 맨유 데뷔 시즌에서 40경기에 출전해 6골을 기록한 호날두의 성장 속도는 엄청났고, 이후 9골, 12골, 23골, 42골을 기록하며 점점 득점력이 좋아졌다. 첫 시즌 FA컵 우승을 따낸 호날두는 이후 3번의 프리미어리그 우승, 리그컵 2회 우승 등을 차지하며 프리미어리그를 정복했다. 특히 2007-08 시즌에는 무려 42골을 기록하며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끌었다.

개인상도 뒤따랐다. EPL 올해의 선수상을 2번이나 받은 호날두는 2008년에는 발롱도르와 FIFA 올해의 선수상을 휩쓸며 세계 최고의 선수로 올라섰다. 이제는 맨유와 결별한 시간이었다. 이미 레알 마드리드의 공식적인 관심을 받던 호날두는 2009년 여름, 역대 최고 이적료인 8000만 파운드(약 1145억 원)를 받고 레알의 유니폼을 입었다. 가난했던 섬 소년 호날두가 세계에서 가장 비싼 선수가 된 순간이었다.

레알의 왕은 호날두였다. 그의 입단식을 보기위해 최소 80,000명이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 운집했고, 주장인 라울이 이미 등번호 7번을 차지함에 따라 호날두는 등번호 9번을 받았다. 당시 호날두는 입단식에서 등번호 9번이 적힌 유니폼을 레알의 전설적인 선수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로부터 받으며 전설의 시작을 알렸다.

레알에서의 활약도 인상적이었다. 이적료가 아깝지 않은 활약이었다. 레알 마드리드 데뷔 시즌 33골을 기록한 호날두는 이후 시즌을 치를수록 득점력이 올라가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라울로부터 등번호 7번을 물려받은 후 53골, 60골, 55골, 51골, 61골을 터트리며 명실상부 레알의 에이스로 우뚝 섰다.

흥미로운 맞대결이었다. 맨유에서 첫 발롱도르를 차지했던 호날두는 스페인 무대에서 라이벌 리오넬 메시와 직접적인 대결을 펼쳤다. 한 마디로 세기의 라이벌전이었다. 처음에는 메시가 우위를 차지했다. 메시가 4년 연속 발롱도르(2009년~2012년)를 차지하는 동안 호날두는 2인자에 머물렀다. 그러나 호날두는 2013-14시즌 51골을 기록하며 레알의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끌었고, 결국 2013년 발롱도르를 탈환하며 2년 연속 세계 최고의 선수로 선정됐다. 이후 메시가 2015년 다시 발롱도르를 받았지만 2016년 호날두가 발롱도르와 FIFA 올해의 선수로 선정되며 세기의 라이벌전을 이어갔다.

# 2016년 최고의 별 호날두, 그의 활약은 계속된다

부진 논란이라는 위기를 극복한 호날두가 2016년을 자신의 해로 만들었다. 당연한 결과였다. 55골(레알 42골, 포르투갈 대표팀 13골)이 모든 걸 말해준다. 2015-16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UCL)에서 소속팀 레알의 정상을 이끌었고, 16골로 득점왕을 차지했다. 유로 2016에서는 3골을 터트리며 포르투갈을 첫 정상에 올려놓았다.

새로운 역사도 썼다. 2015년까지는 FIFA와 프랑스 풋볼이 공동으로 발롱도르를 시상했지만 올해부터는 프랑스 풋볼은 발롱도르, FIFA는 올해의 선수상을 따로 시상했다. 이런 이유로 호날두는 새롭게 바뀐 두 번의 시상식에서 모두 최고의 선수로 선정됐고, 2연패를 달성하며 새로운 역사를 썼다.

여기에 호날두는 ‘FIFA FIFPro 월드베스트11’에 선정됐다. 개인 통산 두 번째 FIFA 올해의 선수상을 차지하며 지네딘 지단과 호나우두(이상 3회) 뒤를 이었다. 더불어 라이벌 메시와 함께 2007년부터 2016년까지 10연속 월드베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또한, 통산 4번째 발롱도르까지 거머쥐며 축구 역사에 남을 선수가 됐다.

# ‘전설이 된 섬 소년’ 호날두의 위대한 득점 기록

포르투갈 스포르팅 리스본(2002-03): 31경기 5골

잉글랜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2003~2009): 292경기 118골

스페인 레알 마드리드(2009~2017): 366경기 378골

포르투갈 국가대표(2003~2016): 136경기 68골

# 호날두, 우승 경력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리그 4회, FA컵 1회, 챔피언스리그 1회, 리그컵 2회, 커뮤니티실드 1회, 클럽 월드컵 1회

레알 마드리드: 리그 1회, 챔피언스리그 2회, 코파 델 레이 2회,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 1회, 슈퍼컵 2회, 클럽 월드컵 2회

포르투갈: 유로 2016 우승

글=정지훈 기자

사진=게티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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