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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훈의 HIS-tory] 문제아에서 맨유의 신이 된 남자,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인터풋볼] 세상에 사연 없는 사람은 없다. 세계적인 축구 스타들도 마찬가지. 현재는 가장 화려한 삶을 살고 있는 스타지만 모두가 꽃길만을 걸어온 것은 아니고, 시련을 이겨내 세계적인 스타로 성장한 경우가 많다. 그래서 축구 전문 언론 ‘인터풋볼’이 준비했다. 꼭지명은 역사를 영어로 한 ‘HIS-tory’. 즉 그 사람(His)의 이야기(Story)로 해석할 수 있다. 우리가 몰랐던 슈퍼스타들의 숨겨진 이야기를 독자 여러분들에게 소개한다. [편집자주]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는 여전히 월드클래스였다. 36세의 나이로 인해 기량이 하락했다는 평가가 있었지만 최근 12경기서 12골 4도움을 기록하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13경기 무패(10승 3무)행진을 이끌었다. 차원이 다른 골 결정력이다. 최근 12경기서 12골을 기록하는 동안 즐라탄은 머리, 발 등 온몸을 무기로 사용하며 득점을 만들었고, 여전히 월드클래스임을 증명했다.

프리미어리그 적응도 끝났다. 벌써 모든 대회를 통틀어 18골을 넣었다. 벌써부터 맨유 데뷔 시즌 최다골 기록을 갈아치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고, 잉글랜드프로축구선수협회(PFA)가 선정한 12월의 선수로도 선정됐다.

한 마디로 맨유의 신이다. 즐라탄은 맨유로 이적하면서 에릭 칸토나가 맨유의 왕은 한 명만 존재한다는 말에 “칸토나의 이야기를 들었다. 우선, 그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다. 나는 언제나 그를 존경해왔다”고 하면서 “나는 맨유의 왕이 되지 않을 거다. 맨유의 신이 될 것이다”며 당당한 포부를 밝혔고, 현재 자신이 한 말을 지키고 있다.

언제나 당당하면서도 자신감이 넘치는 즐라탄. 과연 어린 시절에도 그랬을까? 그래서 ‘HIS-tory’에서 준비했다. 2016년에만 50골을 기록하며 ‘축구의 신’ 리오넬 메시(51골)에 이어 최다 득점 2위를 차지한 즐라탄의 어린 시절부터 현재까지를 독자 여러분들에게 소개한다.

# 불우했던 어린 시절, 유일한 희망은 축구

즐라탄은 늘 당당하다. 이런 이유로 많은 사람들은 즐라탄이 부족함 없이 자랐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실상은 반대였고, 즐라탄의 어린 시절은 불우했다. 즐라탄의 부모는 스웨덴 이민자였고, 이민자들의 생활은 쉽지 않아서 즐라탄의 가족은 늘 가난했다. 여기에 즐라탄은 어린 시절 부모의 이혼으로 복잡한 가정환경 속에서 자랐고, 스웨덴 말뫼의 이민자 지구인 로젠고르에서 불우했던 어린 시절을 보냈다.

복잡한 가정환경과 가난. 즐라탄의 유일한 희망은 축구였다. 즐라탄의 어머니는 다섯 남매를 키우기 위해 늘 밤늦게까지 일을 했고, 이런 이유로 양육 방식은 매우 거칠었다. 특히 어머니는 즐라탄이 잘못을 할 때면 참지 못해 때리기도 했고, 아이들을 거칠게 다뤘다. 이에 즐라탄은 집에 있기 보다는 밖에 나가서 노는 것을 좋아했고, 운동장에서 축구하는 것을 특별하게 좋아했다.

자연스럽게 축구는 즐라탄의 삶에서 모든 것이 되었다. 즐라탄은 어린 시절 큰 코로 인해 많은 놀림을 받았고, 이민자였기 때문에 많은 차별을 받았다. 또한, 즐라탄은 언어 장애 치료를 받기도 했는데 이는 매우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고, 이때부터 즐라탄은 축구에 더욱 집중했다. 결과적으로 축구는 즐라탄에게 있어서 슬픔과 분노를 치료하는 놀이이자, 탈출구였다.

# 문제아 즐라탄, 호나우두를 보고 축구 선수로 성장하다

가정환경이 어려웠던 즐라탄은 소위 말하는 문제아였다. 가난했던 즐라탄은 도둑질을 해 문제를 일으키기도 했고, 친구들을 자주 때려서 선생님들에게 자주 혼나기도 했다. 문제아로 낙인이 찍혔다. 즐라탄이 좋은 성적을 받아도 부정행위를 했다는 의심을 받을 정도로 선생님들에게는 문제아였고, 결국 즐라탄은 학업에 흥미를 잃었다.

즐라탄에게 희망은 축구뿐이었다. 교실에서는 문제아였지만 그라운드에서는 달랐다. 즐라탄은 6세 때 축구화를 선물 받은 후 말뫼 BI와 FBK 발칸의 유소년 클럽들을 거치며 축구 선수로 성장했는데 교실에서와 달리 그라운드에서는 문제아가 아닌 최고의 선수였다.

축구 선수 즐라탄은 곧바로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았다. 훗날 인터뷰에서 즐라탄은 발칸 청소년 팀에서 0-4로 뒤지는 상황에서 하프타임때 교체 투입됐는데 이때 8골을 득점했다고 말했을 정도로 청소년 시절부터 축구 선수로 인정받았다. 이후 즐라탄은 나쁜 짓을 하는 것을 그만두기로 결심했고, 축구에만 전념해 고향 클럽 말뫼의 주전 자리를 꿰찼다.

즐라탄은 특별하다. 압도적인 피지컬을 가졌지만 피지컬을 내세운 축구를 구사하지 않는다. 큰 키에도 유연한 볼터치를 가졌고, 세밀한 개인 기술과 아크로바틱한 몸동작으로 득점을 만든다. 이유가 있었다. 즐라탄은 어린 시절부터 화려한 드리블과 기술을 구사하는 브라질 축구에 푹 빠져 있었고, 특히 브라질의 전설적인 공격수 호나우두를 롤모델로 삼으며 축구 선수로 성장했다.

연습만이 살길이었다. 즐라탄은 호나우두의 기술을 보면서 연습에 집중했고, 새로운 기술을 익히기 위해 개인 훈련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지금의 즐라탄 스타일을 만든 것은 연습이었고, 롤모델 호나우두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즐라탄은 최근 인터뷰를 통해 “호나우두는 정말 경이적인 선수였다. 그는 어려운 것을 해냈고, 마법을 만들었다. 이런 유형의 선수를 과거와 지금도 보지 못했고, 호나우두와 같은 선수는 존재하지 않는다. 어릴 적 그를 보면서 나 스스로에게 경기의 차이점을 만들고 빛이 나는 저런 선수가 되자고 이야기했다"며 자신의 우상에 대한 존경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 말뫼에서 프로 데뷔한 즐라탄, 빅 클럽들의 관심을 받다

즐라탄은 곧바로 두각을 드러냈다. 큰 키와 유연한 움직임 그리고 화려한 기술과 득점력을 갖춘 즐라탄을 탐내지 않을 팀은 없었다. 일단 즐라탄은 1996년 고향팀 말뫼와 프로 계약을 체결했고, 1999년 프로 데뷔했다. 이후 즐라탄은 빠르게 성장하며 2001년까지 말뫼에서 리그 40경기에 출전해 16골을 기록했고, 스웨덴 U-18 대표팀과 U-21 대표팀에 발탁되며 주목을 받았다.

즐라탄의 진가를 알아본 아스널 아르센 벵거 감독의 러브콜도 받았다. 그러나 즐라탄은 벵거 감독의 입단 테스트 요청을 거절하며 “나는 입단 테스트 같은 오디션이 필요 없는 사람이다”고 했고, 2001년 870만 유로(약 110억 원)의 이적료로 네달란드 명문 아약스의 유니폼을 입었다. 당시 870만 유로는 상당히 큰 금액이었고, 20세의 즐라탄은 곧바로 전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았다.

승승장구였다. 즐라탄은 처음에는 출전 기회를 잡지 못했지만 로날드 쿠만 감독이 새롭게 지휘봉을 잡자 주전으로 올라섰고, 아약스는 2001-02시즌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이후 즐라탄은 아약스의 최전방을 책임지며 환상적인 득점력을 보여줬고, 2004년 8월 22일 NAC전에서 엄청난 득점 장면을 만들며 유로스포츠 올해의 골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러나 문제가 발생했다. 2004년 8월 즐라탄은 네덜란드와 A매치에서 아약스 팀 동료인 라파엘 판 데 바르트에게 부상을 입혔고, 이후 판 데 바르트가 즐라탄이 고의로 부상을 입혔다고 고발하자 분위기가 좋지 않아졌다. 자존심이 강했던 즐라탄은 이때부터 아약스 구단 관계자와 마찰을 빚어왔고, 결과적으로 2004년 1600만 유로(약 200억 원)의 몸값으로 이탈리아 최고의 명문 유벤투스로 이적했다.

# 트러블 메이커or우승 청부사...즐라탄, 이탈리아 무대를 평정하다

즐라탄은 두 개의 별명이 있다. 하나는 우승 청부사, 그리고 다른 하나는 트러블 메이커다. 사실 즐라탄은 아약스를 시작으로 유벤투스, 인터 밀란, 바르셀로나, AC밀란, 파리 생제르맹(PSG) 등 세계적인 명문 구단을 거치면서 모두 우승컵을 차지했고, 우승 청부사라는 별명이 붙었다. 그러나 자존심이 강한 성격 때문에 한 팀에 오래 머물지는 못했고, 트러블 메이커라는 인식도 강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즐라탄이 세계 최고의 선수로 평가받는 이유는 실력이다. 기복이 없다. 유벤투스로 이적한 즐라탄은 데뷔 시즌 16골을 기록했고, 2005년 스웨덴 올해의 선수에 선정됐다. 이후 즐라탄은 달라진 공격 역할에 적응하지 못했고, 유벤투스가 승부조작 사건으로 강등되자 2480만 유로의 이적료로 인터 밀란으로 이적했다.

즐라탄은 어린 시절부터 호나우두가 활약했던 인터 밀란의 팬이었고, 적응의 문제는 없었다. 즐라탄은 곧바로 화끈한 골 결정력을 과시하며 15골로 팀 내 최다 득점자가 됐고, 인터 밀란은 17년 만에 자력으로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이후에도 즐라탄의 활약은 계속됐고, 2007-08시즌 17골, 2008-09시즌 25골을 기록하며 인터 밀란의 3연패를 이끌었다. 특히 인터 밀란의 세 번째 시즌에서는 주제 무리뉴 감독과 함께 최고의 호흡을 보이며 이탈리아 무대를 평정했다.

# 여전히 월드클래스 즐라탄, EPL도 평정할까?

이탈리아 무대를 평정한 즐라탄은 2009년 세계 최고의 클럽인 바르셀로나로 이적한다. 당시 바르셀로나는 리오넬 메시라는 스타가 있었고, 펩 과르디올라 감독이라는 명장이 있었다. 그러나 즐라탄은 과르디올라 감독과 불화를 겪으면서 서서히 출전 기회를 잡지 못했고, 결국에는 한 시즌 만에 팀을 떠나 AC밀란으로 이적했다. 이후 즐라탄은 부활에 성공하며 밀란에서 2시즌 동안 56골을 기록하며 세계 최고의 공격수라는 명성을 되찾았고, 결국 2012-13시즌 엄청난 몸값을 자랑하며 PSG로 이적했다.

즐라탄은 프랑스 무대도 평정했다. 적수가 없었다. 즐라탄은 두 시즌 동안 총 75골을 기록하며 PSG의 2연속 리그 우승을 이끌었고, 챔피언스리그에서도 준수한 활약을 펼치며 역시 즐라탄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이로써 즐라탄은 네덜란드, 이탈리아, 스페인, 프랑스 무대에서 우승을 차지하는 진기록을 만들었고, 이번 시즌을 앞두고 새로운 도전을 위해 무리뉴 감독이 있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이적했다.

맨유의 신이 되겠다는 말을 지키고 있는 즐라탄이다. 시즌 초반에는 새로운 리그 적응에 어려움을 겪으며 부진에 빠진 적도 있었지만 최근에는 완벽한 적응력으로 다시 엄청난 화력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세계 최고의 이적료를 기록한 폴 포그바와 함께 맨유의 공격을 이끌고 있고, 맨유의 신이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이제 남은 것은 EPL 평정이다.

# ‘맨유의 신’ 즐라탄의 위대한 득점 기록

스웨덴 말뫼(1999~2001): 40경기 16골

네덜란드 아약스(2001~2004): 110경기 48골 15도움

이탈리아 유벤투스(2004~2006): 92경기 26골 6도움

이탈리아 인터 밀란(2006~2009): 117경기 66골 32도움

스페인 바르셀로나(2009~2010): 46경기 22골 13도움

이탈리아 AC밀란(2010~2012): 85경기 56골 27도움

프랑스 PSG(2012~2014): 86경기 75골 34도움

잉글랜드 맨유(2016~): 28경기 18골 4도움

# 즐라탄, 클럽에서 우승 경력

아약스: 리그 2회, KNVB컵 1회

유벤투스: 리그 2회(승부조작으로 박탈)

인터 밀란: 리그 3회,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2회

바르셀로나: 리그 1회,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 2회, 슈퍼컵 1회, 클럽 월드컵 1회

AC밀란: 리그 1회,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1회

PSG: 리그 3회, 쿠프 드 프랑스 2회, 쿠프 드 라 리그 3회, 트로페 데 샹피 3회

맨유: 커뮤니티 실드 1회

글=정지훈 기자

사진=게티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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