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풋볼] 서재원 기자= 한국 선수들의 활약으로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EPL)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그러나 우리가 EPL을 볼 수 있는 부분은 TV 위성 중계에 잡힌 모습이 전부다. 두 시즌동안 모 일간지 EPL 현지 통신원 역할을 수행한 필자의 경험을 통해, TV에서는 볼 수 없는 EPL 뒷이야기를 매주 '서재원의 EPL通'에서 풀어내고자 한다.[편집자주]

약 9개월 동안 이어온 한 편의 드라마가 완성됐다. 디펜딩 챔피언 첼시의 몰락부터 레스터 시티의 우승까지, EPL 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시즌이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시즌 최종전까지 드라마 같았다. 토트넘 홋스퍼는 15일 오후 11시(한국시간) 영국 뉴캐슬에 위치한 세인트제임스 파크에서 열린 2015-16 EPL 38라운드, 뉴캐슬 유나이티드와의 최종전에서 1-5 충격적인 패배를 당했고, 같은 시각 애스턴 빌라를 대파한 아스널에 2위의 자리를 빼앗겼다.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UCL) 진출 팀도 사실상 확정됐다. 맨체스터 시티가 스완지 시티와의 최종전에서 1-1 무승부를 거두며, 승점 66점(골득실 +30)을 기록했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승점 63, +12)와의 격차를 3점으로 벌렸다. 테러 위협으로 연기된 맨유와 본머스의 경기에서 맨유가 18골 이상을 득점하지 않는 이상 맨시티가 4위를 확정짓고, UCL 플레이오프에 진출한다.

이렇듯 마지막 순간까지 손에 땀을 쥐게 했던 2015-16 시즌. 필자의 주관적인 시각에서 한 시즌 동안 우리에게 의미 있었던 10가지 사건을 총 정리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1. 손흥민 토트넘 이적...‘손세이셔널’한 데뷔 (8~9월)

이번 시즌 EPL이 더욱 특별했던 이유는 손흥민의 존재 때문이었다. 독일 분데스리가의 함부르크, 레버쿠젠 등에서 활약했던 손흥민이 시즌 초반 토트넘 홋스퍼로 이적한 것. 토트넘은 지난해 8월 28일 구단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레버쿠벤에서 활약하던 손흥민 영입에 성공했다. 메디컬 테스트를 통과했고, 5년 계약을 체결했다”고 발표했다. 그렇게 손흥민은 13번째 한국인 프리미어리거가 됐다.

손흥민의 이적이 우리를 두근거리게 한 이유는 그의 가능성 때문이었다. 10년 전 박지성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이적을 시작으로 12명의 선수가 EPL 무대를 밟았지만, 박지성 만큼의 임팩트를 주지 못했다. 하지만 한국 축구의 최고의 스타로 자리 잡고 있는 손흥민이라면, 과거 박지성의 활약을 재현해 주리라는 기대감이 있었고, 그의 이적은 EPL에 대한 관심을 더욱 뜨겁게 달궜다.

데뷔부터 화려했다. 지난해 9월 선덜랜드와의 5라운드 원정 경기에서 데뷔한 손흥민은, 자신의 첫 홈 데뷔전인 카라바흐와의 유럽축구연맹(UEFA) 유로파리그에서 멀티골을 터트리며 화려하게 등장했다. 이어진 크리스탈 팰리스와의 6라운드에서도 득점을 성공시키며 EPL과 런던에 ‘손세이셔널’을 일으켰다. 그때까지만 해도 분명 손흥민의 시작은 성공적이었다. 

#2. 감독들의 수난시대...로저스의 경질과 클롭의 입성 (10월)

이번 시즌도 어김없이 감독들의 수난시대가 계속됐다. 감독 교체의 바람은 시즌 전부터 불었다. 지난해 6월 뉴캐슬 유나이티드는 존 카버, 스티브 스톤 감독대행을 경질했고, 스티븐 맥클라렌 감독은 선임했다. 이어 레스터도 나이젤 피어슨 감독을 경질했고, 시즌을 한 달도 남기지 않은 시점인 7월 14일, 클라우디오 라니에리 감독에게 지휘봉을 맡겼다.

시즌 도중 처음으로 감독직에서 물러난 이는 선덜랜드의 딕 아드보카트 감독이었다. 그는 지난 시즌 선덜랜드를 강등권에서 구해내며 영웅이 됐지만, 올 시즌 초반 8경기에서 승리를 기록하지 못하며(3무 5패) 스스로 감독직에서 물러났다. 이후 선덜랜드는 샘 알러다이스를 감독직에 앉혔다.

경질의 두 번째 주자는 리버풀의 브렌단 로저스 감독이었다. 리버풀은 개막 후 2연승을 기록했지만, 내리 4경기에서 승리하지 못했고(2무 2패), 에버턴과의 머지사이드더비에서도 무승부를 거두는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결국 리버풀은 3시즌 동안 무관에 그친 로저스 감독을 경질했고, 일주일 뒤 ‘도르트문트의 영웅’ 위르겐 클롭 감독과 손을 잡았다.

#3. ‘11경기 연속골’ 바디, 인생역전 신화 (11월)

제이미 바디는 인생역전의 주인공이다. ‘공장직원’ 출신으로 유명한 바디는 2007년부터 2010년까지 7, 8부 리그를 전전하는 스탁스브릿지 파크 스틸스 소속이었고, 할리팍스 타운(2010-11), 플릿우드 타운(2011-12) 등을 거쳐 2011-12 시즌 170만 파운드(약 30억 원)의 이적료로 레스터의 유니폼을 입었다.

그런 바디가 EPL의 역사를 바꿨다. 그는 지난해 11월 29일 영국 레스터에 위치한 킹파워 스타디움에서 열린 15라운드 맨유와의 경기에서 득점하며 11경기 연속골을 기록했다. 이는 2003년 맨유 소속이었던 루드 판 니스텔루이의 기록과 타이를 이루는 수치였다. 

비록 그 기록은 11경기에서 멈췄지만 그의 득점은 멈출줄 몰랐고, 해리 케인, 세르히오 아구에로와 함께 시즌 막판까지 득점왕 경쟁을 펼쳤다. 비록 득점왕 경쟁에선 승리하지 못했지만, 36경기 24골의 기록은 충분히 박수 받아 마땅했다.

#4. 첼시의 몰락과 무리뉴의 경질 (12월)

이번 시즌이 가장 충격적이었던 사건은 디펜딩 챔피언 첼시의 몰락이었다. 시즌 개막전에서 스완지 시티와 무승부를 거두며 불안한 출발을 알렸던 첼시는 초반 16경기에서 무려 9패(4승 3무)를 기록했고, 순위는 16위까지 내려앉았다.

결국 첼시의 선택은 무리뉴 감독 경질이었다. 첼시는 지난해 12월 18일 구단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구단과 무리뉴 감독 모두 이번 시즌 결과가 좋지 않다는 것을 인정했다. 서로 합의 하에 각자의 길을 가는 것이 최선의 이익이라고 생각했다”며 무리뉴 감독과 상호 계약 해지를 발표했다. 사실상 경질이었다.

무리뉴 감독의 경질은 EPL을 넘어 세계 축구계에 충격을 주기에 충분했다. 무리뉴 감독은 알렉스 퍼거슨 맨유 전 감독의 뒤를 이을 EPL 최고의 명장으로 평가 받았기 때문이다. 첼시에서 리그 3회 우승(2004-05, 2005-06, 2014-15), 리그컵 3회 우승(2004-05, 2006-07, 2014-15), FA컵 1회 우승(2007), 커뮤니티 쉴드 1회 우승(2005) 등의 업적을 남겼지만, 그는 쓸쓸히 퇴장할 수밖에 없었다. 

#5. 또 다시 무너진 우승의 꿈...벵거 퇴진 운동 (3월)

20년간 같은 자리를 지켜온 아르센 벵거 감독도 잇따른 감독 교체 바람을 피해갈 수 없었다. 또 다시 리그 우승 실패다. 이번 시즌엔 2연속 우승을 차지했던 FA컵에서도 탈락해 무관으로 시즌을 마감했다.

이에 팬들이 들고 일어났다. 팬들이 집단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한 때는 지난 3월 9일 헐시티와의 FA컵 16강 재경기였다. 이 경기에 원정 응원 온 일부 아스널 팬들이 ‘아르센, 추억은 고맙지만 이제는 작별해야할 때다(Arsene, thanks for the memories but its time to say goodbye)’는 배너를 들고 벵거 감독의 퇴진을 외쳤다.

작은 움직임으로 시작됐던 벵거 퇴진 운동은 시즌 막바지에 이르자 더욱 거세졌다. 지난 1일 노리치 시티와의 36라운드 경기에서 아스널이 1-0으로 승리했음에도 엄청난 야유를 받아야 했다. 'Time for change'란 문구는 어느덧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에선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 됐다.

그래도 리그 최종전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의 분위기는 축제와도 같았다. 토트넘이 뉴캐슬 원정에서 충격적인 대패를 당했고, 아스널이 홈에서 빌라에 대승을 거두며 극적으로 2위를 차지했기 때문이다. 이날만큼은 벵거 감독에 대한 퇴진 운동이 잠시 멈출 수 있던 하루였다. 

#6. ‘명가’ 빌라의 강등...뉴캐슬-노리치도 강등 (4월)

EPL 대표 명가 애스턴 빌라가 챔피언십(2부)으로 강등됐다. 빌라는 지난달 16일 맨유와의 34라운드 원정 경기에서 0-1로 패했고, 일찍이 강등을 확정지었다.

빌라의 강등이 충격적인 이유는 이들이 곧 영국 축구의 역사였기 때문이다. 1887년에 창단된 빌라는 잉글랜드 최초의 축구리그인 풋볼리그(현재에 이르러 EPL로 발전)의 창립 멤버였다. 더욱이 빌라는 1부 리그(EPL 포함)에서 있었던 시즌만 105 시즌이고, 이는 에버턴(113 시즌)에 이어 가장 오랫동안 1부 리그를 지켜온 클럽으로 기록돼 있다. 또한, 아스널, 첼시, 에버턴, 리버풀, 맨유, 토트넘과 더불어 EPL 출범 후 단 한 번도 강등되지 않았던 유일한 팀이었다.

이어 뉴캐슬 유나이티드, 노리치 시티 등도 빌라와 함께 강등이 확정됐고, 그 자리를 번리FC, 미들즈브러 등이 채울 예정이다. 마지막 한 자리는 챔피언십 플레이오프를 통해 결정된다.

* 챔피언십 플레이오프 일정 및 결과(한국시간, 2016. 05. 16 기준)

1경기 1차전: 셰필드 2 vs 0 브라이튼(14일 오전 3시 45분)

2경기 1차전: 더비 0 vs 3 헐시티(14일 오후 8시 30분)

1경기 2차전: 브라이튼 vs 셰필드(17일 오전 3시 45분)

2경기 2차전: 헐시티 vs 더비(18일 오전 3시 45분)

결승전: 1경기 승자 vs 2경기 승자(웸블리 스타디움, 29일 오전 1시)

#7. 위기의 쌍용...막바지 살아난 손흥민 (4~5월)

이번 시즌 한국인 프리미어리거의 활약은 다소 아쉬웠다. 말 그대로 ‘위기’였고, 기성용과 이청용은 이적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기성용은 감독과의 궁합에 문제를 보였다. 프란체스코 귀돌린 감독이 지난 1월 스완지의 감독으로 부임된 후, 그의 출전 시간이 급격히 줄었다. 시즌 막바지엔 5경기 연속 선발 제외(교체1, 대기3, 명단제외1)란 굴욕을 당하기도 했다.

현지 언론도 그를 흔들었다. 영국 웨일스의 지역지 ‘사우스 웨일스 이브닝 포스트’와 ‘웨일스 온라인’ 모두 시즌 내내 기성용에 대한 혹평을 이었고, 최근엔 이적 가능성을 언급하기도 했다. 특히 스완지가 지난 12일 귀돌린 감독과 재계약을 발표하면서, 기성용의 이적 가능성은 더욱 커졌다고 볼 수 있다.

이청용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팰리스의 46차례 공식전 중 29경기에 결장했다. 리그 최종전에서 후반 막판 투입돼 약 13분간 경기장을 누볐지만, 여전히 임팩트는 없었다. 

이청용의 이적은 거의 확실시 된다. 최근 인터뷰가 화근이었다. 이청용은 최근 한국의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앨런 파듀 감독에 대한 생각을 밝혔고, 출전과 관련해 불만을 표했다. 문제는 이 인터뷰가 그대로 영국 주요 매체로 번역돼 실리면서, 오히려 이청용이 현지 언론의 질타를 받는 입장에 놓이고 말았다. 파듀 감독도 기자회견에서 이를 직접 비판하기도 했다. 현 상황에선 이적밖에 답이 없어 보인다.

그나마 위안은 손흥민의 부활이다. 손세이셔널한 모습으로 등장했던 손흥민은 이후 부상과 부진이 겹쳤고, 점차 출전 기회가 줄어들었다. 그렇게 끝날 것 같던 손흥민의 첫 번째 시즌이었지만, 시즌 막바지 다시 살아났다. 델레 알리의 징계로 36라운드 첼시전에 선발 기회를 잡은 손흥민은 선제골을 터트렸고, 이어진 사우샘프턴과의 37라운드에서도 환상적인 돌파와 센스, 마무리 능력을 선보이며 2경기 연속 득점에 성공했다. 비록 뉴캐슬전에선 연속 득점에 실패했지만, 손흥민의 부활은 다음 시즌을 기대케 하기 충분했다.

#8. ‘동화의 완성’ 레스터, 창단 132년 만에 우승 (5월)

레스터의 동화가 행복한 결말로 마무리됐다. 레스터와 레스터의 팬들에겐 평생 잊지 못할 순간이고, EPL 역사에도 전설로 기록될 이야기다. 1884년 창단된 이후 절반 이상의 시기를 하위리그에서 보냈던 레스터는 132년 만에 그 결실을 맺었다.

시작은 작은 돌풍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그들의 돌풍은 그칠 줄 몰랐고, 모두의 예상을 깨고 EPL 우승을 확정지었다. 시즌 전 레스터의 우승 배당금이 5000/1이었으니, 기적이라 말해도 전혀 손색이 없는 일이었다.

레스터의 우승이 대단한 이유는 선수 몸값에서도 증명되는 부분이다. 레스터 선수들의 총 몸값은 리그 15위로 6,300만 파운드(약 1,053억 원)다. 1위는 맨시티로 4억 1,500만 파운드(약 6,938억 원)의 약 1/7 수준이다. 따라서 레스터의 우승은 상업화로 물든 EPL에 또 하나의 메시지를 전달했다고 볼 수 있다. 

레스터의 우승으로 라니에리 감독도 진정한 명장으로 거듭났다. 지난해 7월, 레스터의 지휘봉을 잡은 라니에리 감독은 팀을 10개월 만에 EPL 정상으로 올려놨다. 지도자 인생 31년 만에 처음으로 1부 리그 우승을 경험한 라니에리 감독은 EPL 우승을 경험한 8번째 감독으로 이름을 올렸다.

#9. ‘2년 전 악몽’ 맨유, 사실상 UCL 진출 실패 (5월)

맨유의 이번 시즌은 또 다시 실패였다. UCL 탈락이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사실상 불가능하다. 테러 위협으로 연기된 본머스와의 경기에서 맨유가 18골 이상을 넣고, 승리할 확률은 레스터의 우승 확률보다 낮다고 봐도 무방하다. 

지난 경기 패배가 두고두고 후회될 수밖에 없다. 맨유는 11일 치러진 웨스트햄과의 35라운드 순연경기에서 2-3으로 패했고, 4위로 올라갈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쳤다. 맨유의 UCL 탈락은 분명 자신들의 실수였다.

2년 전 악몽의 되풀이다. 맨유는 2013-14 시즌 7위로 시즌을 마무리하며 UCL 진출에 실패한 바 있다. 지금이 2년 전보단 순위가 높다곤 하지만, 오히려 평가는 더 좋지 않다. 루이스 판 할 감독의 두 번째 시즌이고, 이번 시즌을 위해 앙토니 마르시알,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 모르강 슈나이덜린, 멤피스 데파이 등을 영입하기 위해 약 1억 파운드(약 1,689억 원)을 투자했기 때문이다.

현재 맨유는 FA컵 결승에 진출해 있다. 그러나 FA컵 우승을 차지한다고 해도 맨유는 다음 시즌 UCL에 진출할 수 없고, 판 할 감독의 운명은 곧 결정될 가능성이 크다.

#10. ‘득점왕’ 케인, 16년 만에 잉글랜드 출신 (5월)

득점왕의 주인공은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결정됐다. 물론 기대와는 달리 싱거웠다. 득점 경쟁을 펼치던 해리 케인(23, 토트넘), 아구에로(29, 맨시티), 바디(29, 레스터) 모두 최종전에서 득점에 실패했고, 25골로 득점 선두를 달리던 케인이 최종적으로 득점왕에 올랐다(아구에로-바디, 24골).

케인의 득점왕 등극은 잉글랜드 축구 역사에 중요한 의미를 남겼다. 무려 16년 만에 잉글랜드 출신 득점왕이 탄생했기 때문이다. 1999-2000 시즌 케빈 필립스(당시 선덜랜드)가 득점왕을 차지한 이후 잉글랜드 출신이 EPL 득점왕을 차지한 경우는 없었다. 

사진= 게티이미지코리아, 토트넘 홋스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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