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풋볼] 서재원 기자 = 한국 선수들의 활약으로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EPL)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그러나 우리가 EPL을 볼 수 있는 부분은 TV 위성 중계에 잡힌 모습이 전부다. 두 시즌동안 모 일간지 EPL 현지 통신원 역할을 수행한 필자의 경험을 통해, TV에서는 볼 수 없는 EPL 뒷이야기를 매주 '서재원의 EPL通'에서 풀어내고자 한다.[편집자주]

(잉글랜드 축구협회)FA컵이 올해로 145주년을 맞이했다(세계 대전으로 대회는 135회 째). 한 때 휘청거렸던 FA컵의 명성이 다시 되살아날 수 있을까?

이번 시즌 FA컵이 한 창 진행 중이다. 지난달 30일과 31일(이하 현지시간)에 걸쳐 2015-16 에미레이츠 FA컵은 4라운드(32강)가 진행됐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첼시 등 5라운드(16강)에 진출한 14개 팀이 결정됐다. 32강에서 승부를 결정짓지 못한 웨스트햄 유나이티드와 리버풀, 피터보로 유나이티드와 웨스트 브로미치 알비온(WBA)은 오는 각각 오는 9일과 10일에 재경기를 치러야 한다.

아직 16강에 진출한 16개 팀이 모두 결정되지 않았지만 대진이 미리 결정됐다. FA는 지난달 31일 FA컵 32강 경기가 치러진 직후 16강 대진을 추첨, 발표했다. 이번 시즌 FA컵은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대회가 예고됐다. 첫 번째 대진 추첨부터 첼시와 맨체스터 시티의 대결이 성사됐다. 우리의 관심을 모으는 코리안 더비도 성사됐다. 손흥민의 토트넘 핫스퍼와 이청용의 크리스탈 팰리스의 맞대결도 16강의 빅매치로 평가 받는다.

# 145주년의 FA컵...그 시작은?

FA컵은 지구상 가장 오래된 축구 대회로 알려져 있다. 이 대회는 각국 축구협회(FA) 대회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다. 영국만 놓고 보자면,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EPL) 소속팀부터 풋볼 리그 챔피언십(2부 리그), 풋볼 리그1(3부 리그), 풋볼 리그2(4부 리그) 등의 프로팀들과 콘퍼런스 프리미어, 콘퍼런스 노스, 콘퍼런스 사우스 등 5개 지역리그 아마추어 리그 등 총 12개 리그의 클럽들이 참가하는 영국 최대 규모의 축구 대회다.

FA컵의 역사는 축구를 사랑했던 한 사람으로부터 시작됐다. 그 주인공은 찰스 윌리엄 앨콕 경이다. 선박 사업을 하던 앨콕은 1859년 포레스트FC(원더러스FC의 전신)라는 축구팀을 창단했고, 자신이 창단한 축구 클럽에서 선수로 활동했다. 그는 영국 언론 ‘스포츠맨’에서 기자로도 활동했는데, 1859년 ‘축구 연감(Football Annual)’을 편집한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앨콕은 1871년 FA의 비서관으로 일하면서 “FA에 소속된 모든 팀이 참가하고, FA가 주관하는 컵 대회를 신설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의 제안은 바로 받아들여져 1872년, 15개 팀이 참가하는 첫 번째 FA컵이 개최됐다. 당시 대회를 제안한 앨콕은 원더러스FC의 주장으로 참가해 자신의 팀을 대회 첫 번째 우승으로 이끈 진기한 기록도 갖고 있다. 이후 월콕은 FA의 부회장(1878~1907)까지 역임하기도 했다.

그렇게 시작된 세계 최초의 축구 대회는 145년 동안 이어졌다. 첫 대회는 영국 런던의 케닝턴 오벌 경기장(현재 크리켓 경기장으로 사용되고 있다)에서 치러졌고, 결승전 관중 수는 2천여 명밖에 되지 않았다. 그러나 점차 참가팀의 수가 많아지고, 규모가 커지자 토트넘이 우승한 1900-01시즌 대회 결승전에는 관중 수 10만 명을 돌파하기도 했다. 이후 FA컵은 지난 시즌까지 결승전에는 평균 9만 여명이 운집하는 최대 규모의 대회로 자리 잡았다. 2014-15 시즌 아스널과 애스턴 빌라의 결승전에도 90,437명의 관중이 경기장을 찾았다.

# EPL에 비해 점차 명성을 잃어가던 FA컵

145년 전통의 FA컵도 숱한 위기를 맞았다. 어느 대회나 마찬가지로 대회를 운영하는 자금의 문제가 가장 컸다. 특히 토너먼트 대회라는 특성상 적은 수의 경기 수, EPL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관중 수 등으로 이익을 창출할 수 있는 경로가 부족했다. 한 시즌 풀리그로 운영되는 EPL이 중계권과 광고 수입 등으로 엄청난 이익을 얻는 것과는 대조됐다.

FA가 그 활로를 찾기 위해 고안한 방안은 메인 스폰서 유치였다. 1871년부터 1994년까지 메인 스폰서를 유치하지 않았지만 1994-95시즌부터 ‘리틀우즈 풀스’와 메인 스폰서 계약을 체결했고, ‘AXA’(1994-98), ‘E.ON’(2006-11), ‘버드와이저’(2011-14) 등이 메인 스폰서로 활동했다.

그러나 기업들은 FA컵의 스폰서를 크게 반기지 않았다. 정통을 유지하려는 FA의 확고한 신념으로 네이밍라이츠권을 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회 명칭에 스폰서 이름이 노출되지 않자 기업 입장에서 스폰서 효과가 상당히 떨어졌다. 2002-03 시즌부터 2005-06시즌까지, 그리고 2014-15 시즌에 스폰서를 유치하지 못한 이유도 FA컵을 후원하려는 기업이 없었기 때문이다.

스폰서 유치 실패로 위기를 맞은 FA컵은 결국 자신들의 순수성과 전통성을 포기하기로 결정했다. FA컵은 이번 시즌부터 ‘에미레이츠’와 스폰서 계약을 맺고 대회 명칭을 ‘에미레이츠 FA컵’으로 바꾸는 데 합의한 것이다. 이는 144년 동안 이어오던 ‘FA컵’이란 대회 명칭이 최초로 바뀐 사례이자, FA컵의 위기를 대변해주는 사건이기도 했다.

영국 현지 언론에 따르면 FA와 에미레이츠는 2015-16시즌부터 2017-18시즌까지 3년에 3천만 파운드(약 526억원)의 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알려졌다.

# 전통을 버린 FA컵...명성을 회복할 수 있을까?

FA와 에미레이츠가 대회명칭 계약을 성사했을 당시만 해도 현지 축구팬들의 반발이 엄청났다. 당시 영국 언론 ‘더 선’은 “팬들이 SNS을 통해 ‘축구와 FA컵의 순수성을 버리는 일이다’며 엄청나게 반발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새롭게 바뀐 FA컵이 정작 시작되자, 별다른 문제가 발생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흥행의 징조가 보이고 있다. 이번 시즌 들어 FA컵에서 이변이 발생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어쩌면 최근 들어 가장 치열한 FA컵, 그리고 결승전 매치가 치러질 확률이 커지고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FA컵 16강부터 첼시와 맨시티가 만나는 빅매치가 성사됐다. 첼시의 거스 히딩크 감독은 "맨시티와의 경기는 결승전과 같을 것이다"고 대진 추첨 결과에 대한 소감을 밝혔다. 뿐만 아니라 16강에 맨유, 아스널, 토트넘 등 EPL 강호라 평가 받는 팀들이 모두 16강에 진출했다. 만약 리버풀까지 웨스트햄을 꺾고 올라온다면 EPL의 전통적인 빅4 또는 빅5가 모두 16강에 진출하는 대회가 될 전망이다.

사실 그동안 FA컵의 흥행적 요소가 떨어진 결정적인 이유도 이변으로 인한 대진 탓이 컸다. 지난 시즌에도 32강전에서 맨유, 첼시, 맨시티 등 강호들이 일찍 탈락했고, 결승전에서 아스널과 빌라가 만나 다소 박진감이 떨어지는 경기(4-0 아스널 승)가 펼쳐졌다.

최근 10년간 결승전 대진도 다소 아쉬운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2013-14시즌엔 아스널과 헐시티, 그 전 시즌에는 위건 애슬레틱 대 맨시티 등의 결승전에서 만났다. 최근 10년간 FA컵에서 빅클럽 간의 대진이 펼쳐진 시즌은 2011-12 시즌(첼시 대 리버풀)과 2006-07 시즌(첼시 대 맨유) 뿐이었다.

그러나 이번 시즌 FA 16강 대진 결과, EPL 팀들이 전원 8강에 진출할 수 있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물론 아직 상황은 더 지켜봐야 한다. 하지만 큰 이변이 발생하지 않는 이상, 최근에 볼 수 없었던 가장 박진감 넘치는 FA컵 8강과 준결승, 그리고 결승 대진까지 기대해볼만한 대회가 될 가능성이 충분하다.

잠시 휘청했던 세계 최고의 축구대회인 FA컵. 자신들의 전통까지 버린 FA가 이번 시즌을 기회삼아 다시 그 명성을 되찾을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 있을지 기대가 모아진다.

사진= 게티이미지코리아, 英BBC 트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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